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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륙 본토 동남부, 산악 지대와 사막을 영토로 삼아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한 왕국. 비룡이 중심인 독특한 군대를 지녔으나 발모어 반란을 통해 건국된 제노이라에게 패해 국왕이 전사했고 멸망했다. 후계자인 왕자가 2명 있었으나 소식은 불명.그 후 차남 길베르트의 생존이 판명. 독자적으로 병력을 다시 모아 바움라터를 탈환한 뒤, 재차 침공해 온 제노이라군을 해방군과 협공하여 격퇴에 성공. 드라켄가르드군의 재기를 내외에 주장했다.
길베르트와 해방군의 연합은 계속됐고, 마침내 왕성 솔드래거를 제노이라군에게서 탈환. 길베르트가 왕위에 올랐고 드라켄가르드 왕국은 부흥의 걸음을 내디뎠다.
2. 조직
- 풀스 의용군: 드라켄가르드에서 제노이라군을 쫓아내는 걸 목적으로 활동하는 저항 조직. 풀스 지방 사람들을 중심으로 설립되었으며 배신이 연발한 왕도 함락 당시의 실망감 탓에 왕족은 믿을 수 없다는 방침을 지녔다.
풀스 지방 해방을 계획하던 중 리아가 해방군과의 협력을 제안하여 승낙. 하지만 코르니아인의 힘을 빌리는 것에 대한 내부 반발도 거세, 결국은 단독으로 군세를 움직였으나 역습을 받고 포위당해 전멸의 위기를 맞이한다.
최종적으로 해방군에게 구출 되었다. 이후에는 협력하여 풀스 지방의 통치와 치안 유지를 맡게 되었다. - 삼독 용병단: 드라켄가르드에서 활동하는 용병단. 단장 제러미가 모은 범죄자 출신 중심의 용병단. 삼독이란 욕망, 분노, 무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제노이라의 드라켄가르드 침공 당시 일찌감치 제노이라군에 붙어 많은 전장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 공적 덕분에 드라켄가르드 함락 후에도 제노이라군에게 성채 도시 어돕티 통치를 위임받았으나 해방군에게 공격받자 동료의 희생을 꺼리지 않는 제러미의 지휘 탓에 허무하게 괴멸했다.
3. 시설
- 솔드래거성: 드라켄가르드의 수도로 왕성을 낀 대도시.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곳에 성을 쌓아 그곳에서 성시를 넓혀 갔다. 길베르트가 탈환에 성공한 후 풍부한 물자와 해방군에서 할 일을 찾는 용병들이 모이고 있다.
- 항구 마을 풀스: 드라켄가르드 북동부 풀스 지방의 큰 항구 마을.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해상 요충지다. 간헐천으로 인해 드라켄가르드 왕국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지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마을 주민에겐 예로부터 독립자존 문화가 정착됐다.
- 옴팔라스트 마을: 드라켄가르드 중앙부 옴팔라스트령의 마을. 주변에 광산, 유적, 삼림이 있어 자원이 풍부하지만, 역병이 유행하여 현재는 쇠퇴했다. 그럼에도 주변에는 풍부한 채집지가 있다.
- 바움라터 투기장: 드라켄가르드 동부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도시. 마을 전체가 투기장으로 발전한 역사를 지녔다. 주변에는 채집지가 풍부하게 존재한다.
- 프리츠트라제 요새: 드라켄가르드 북서부에 있는 거대한 요새. 코르니아와 전쟁 중이던 시대에 건설되어 오랫동안 코르니아의 침공을 막아 왔으나 제노이라군에겐 손쉽게 함락당했다. 순수한 군사 시설로 영민은 거의 없다.
- 성채 도시 어돕티: 드라켄가르드 중앙부에 있는 성채 도시. 코르니아와의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 세워진 어돕티 방면의 중심 도시. 입구에 견고한 문을 갖췄고 남쪽은 어돕티 방면 영지의 각 도시로 이어지는 요충지이다.
- 웨스자이트 마을: 드라켄가르드 남서부 해안에 있는 마을. 해안에 위치했지만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물은 산악 지대에 있는 고대 제노이라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추측되는 지하 수맥에 의지한다. 신세를 망친 자들이 모이는 마을이라고 한다.
- 항구 마을 크라니히: 드라켄가르드 북서부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앞바다는 비교적 파도가 잔잔해 재건하면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설비가 존재한다.
- 즈노바 마을: 드라켄가르드 북부에 있는 숨겨진 마을. 왕성 솔드래거 서부의 숨겨진 동굴로만 출입할 수 있어 왕성 함락 후에도 제노이라군에게 존재를 들키지 않았다고 한다.
4. 설정
- 사막: 드라켄가르드 남쪽에 펼쳐진 모래와 암반으로 이루어진 넓은 토지. 고대 제노이라 시대의 유적이나 수수께끼의 거대 생물 화석 등이 다수 발견되며 오아시스가 있어 그 주변엔 마을도 존재한다.
- 비리저 유적: 드라켄가르드 북동부 풀스 지방에 있는 유적. 고대 종교 시설로, 내부는 지하를 포함하여 매우 넓고 견고한 구조라 중대 규모의 부대도 주둔할 수 있다.
- 옴팔라스트의 재난: 제노이라가 드라켄가르드 옴팔라스트 방면으로 침공했을 때, 역병이 크게 유행했던 사건. 당시 옴팔라스트에서는 오랫동안 제노이라군을 격퇴해 왔지만 갑자기 영지 내에서 역병이 발생해 순식간에 퍼지게 된다.
- 투기장: 바움라터 투기장에서 개최되는 모의전을 통해 강자를 결정하는 대회와 그걸 대상으로 한 도박 전반을 가리킨다. 노예 검투사들과의 싸움에서 시작돼 이윽고 규칙과 도박 종류가 정비되면서 현재의 형식이 되었다.
- 젝스헬름 가문: 드라켄가르드의 귀족이자 명문가. 왕성 남동쪽에 위치한 산맥 주위 일대를 관할하는 드라켄가르드 최대의 유력 귀족이었으나 제노이라군 침공 시 당주 젝스헬름 백작이 전사했고 그의 두 자식도 행방불명되었다.
5. 특징
자국에서 자라는 생물 용을 사역해 태운 용기사를 중심으로 한 군대는 그리폰으로 무장한 코르니아 왕국의 기사단보다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코르니아와는 예부터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를 위해 미아 마을 근처 헤르슈탄 보루와 전쟁 도중에도 광산지대가 있는 프리츠트라제 요새를 세워 대응했다. 코르니아 왕국이 발모어의 반란으로 멸망하자 드라켄가르드의 휴고 왕은 이때가 영토확장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발모어의 반란을 피해 망명 하러 온 버지니아를 장남인 루트비히와 결혼시켜 장차 코르니아를 합병할 명분을 만들려고 했다.그러나 제노이라 제국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맹공을 가했으며 드라켄가르드 왕국은 험준한 지형지물들을 이용해 그럭저럭 버티며 분투[1] 하기도 했으나 코르니아처럼 바르톨로의 지배술에 의해 왕가에 충성하던 이들이 지배당한 이후 배신을 하며 무너졌다.
제노이라에 의해 점령된 이후 일부 뜻있는 귀족들은 저항군을 만들었지만 탄탄히 준비해온 코르니아와는 달리 연계가 모래알 수준이라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해방군이 드라켄가르드 각 지를 해방할 때 리아랑 관련된 저항군을 조우하게 되고 리아의 중재 끝에 항구마을을 협공해 수복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저항군 내부에서 큰 반발과 코르니아 해방군을 믿을수 없다며 작전 예정시간보다 먼저 돌격했다가 위기에 빠진적이 있었다.[2]
길베르트와 어레인의 친밀도 대화 3단계에서 보다 세세한 설정이 밝혀진다. 드라켄가르드 왕국은 본디 코르니아에서 왕위 계승 분쟁에서 패배하고 추방당한 왕자가 세운 코르니아의 그림자 같은 나라였다. 국토의 상당 부분은 사막과 산악이라 농사도 목축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척박하다. 선왕 휴고가 코르니아의 귀족을 초대해 나라 각지에서 가져온 식재료로 정성껏 대접했으나 코르니아 귀족은 눈쌀을 찌푸리며 입도 거의 대지 않았다는 일화를 통해 드라켄가르드가 코르니아에 비해 빈곤한 나라임을 알려준다.
6. 기타
모티브는 스위스, 저지대(베네룩스), 독일 왕국(프로이센 왕국+오스트리아 대공국)+이탈리아[3]를 비롯한 신성 로마 제국 지역으로 추정.[1] 힐다가 나오는 마을은 제노이라 군 침공 당시 험난한 지형을 적절하게 이용해 무려 6개월간 패퇴시키기도 하였다. 이에 제노이라군은 정면으로 안 된다 여겨 역병을 퍼뜨리는 약물을 인근 광산으로 옮겨 역병을 퍼뜨린 끝에 이겼다.[2] 이 저항군이 아무런 귀띔도 없이 무작정 행동한 것이라 병력을 집결시키기에 시간도 걸리니 조셉은 냉정하지만 저들을 버리고 천천히 공략해야 한다고 간언하지만 어레인은 기동력이 좋은 소수 정예로 구출한다는 계획을 짜내 이들을 구출하고 항구를 수복하는 계획을 짰다. 저항군은 자기네들의 독단행동으로 죽음을 각오했지만 해방군이 위험을 무릎쓰고 자신들이 농성하던 장소까지 와서 구원을 해주자 이후부터는 미안함 때문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며 해방된 항구를 자신들이 어떻게든 지켜내겠다고 자처한다.[3] 투기장(콜로세움)의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