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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VH1 선정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
1. 레인보우
딥 퍼플을 탈퇴한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가 결성한 하드록, 헤비 메탈 밴드. 레인보우가 일반 명사라서 구분을 위해 첫번째 앨범의 제목이기도 한 '리치 블랙모어의 레인보우(Ritchie Blackmore's Rainbow)'라고 나오기도 한다.
헤비락 역사상 중요한 밴드중 하나로 로니 제임스 디오, 코지 파웰, 그레이엄 보넷, 밥 데이즐리, 돈 에일리 등등 하드 록/초기 메탈 역사상 중요한 수많은 인물들이 거쳐갔다. 레인보우의 족보. 사실 이렇게 멤버가 자주 바뀌는 것은 이미 딥 퍼플 시절부터 있던 일. 다만 딥 퍼플은 멤버의 구성에 따라 기수로 구분할 수 있지만, 레인보우는 워낙 자주 바뀌어서 그것도 못한다. 그나마 보컬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바뀌었기 때문에, 보컬 기준으로 기수를 삼는 경우도 있다.
Temple of the King, Stargazer, Kill the King, Long Live Rock 'n' Roll, Since You Been Gone, All Night Long 등 수많은 명곡 및 싱글 히트곡들을 잇따라 발표하며, 한때는 딥퍼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한시대를 풍미하였다.
리치 블랙모어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The Ritchie Blackmore Story에서 딥 퍼플에선 계속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자신의 성향과 너무 다른 노선으로 음악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밴드에 참여하기 어려웠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외에도 동시대에 활동했던 레드 제플린과 블랙 사바스는 자기들만의 철학과 색채를 가진 음악들을 줄줄이 내놓으면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하였고 완벽주의자였던 리치는 여기서 많은 열등감을 가졌었다고 한다. 덤으로 이안 페이스와 존 로드가 기존의 헤비메탈 사운드와 다른 펑크(funk) 적인 사운드와 리듬 위주의 곡을 제안했는데, 이 스타일은 절대로 리치의 스타일이 아니었고 갈등은 계속 고조되었다.[1] 그 결과, 본인의 성향에 맞는 음악 활동을 위해 밴드를 나가게 된다.[2]
1.1. 로니 제임스 디오 보컬 시절
그야말로 블랙모어의, 블랙모어에 의한, 블랙모어를 위한 밴드. 모든 작업 등은 블랙모어의 지휘 아래 돌아갔고, 마음에 안 드는 멤버는 쓱싹쓱싹 잘려나갔다. [3] 즉 멤버라기보단 세션맨 취급에 가까웠고, 레인보우는 멤버들의 성향을 골고루 잘 보여주기보단 오직 리치 블랙모어 자신의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밴드였다. 그 결과 블랙모어가 다시 딥 퍼플로 돌아가기까지 1975년에서 1984년까지의 세월동안 무려 17명이나 되는 멤버가 교체되었다. [4]오랜 기간동안 무명으로 있던 로니 제임스 디오는 이런 밴드의 보컬리스트 오디션에서 단박에 붙었다. [5][6] 레인보우의 결성과정을 좀더 자세히 적자면, 딥 퍼플 오프닝 무대 등의 인연으로 디오를 눈여겨본 리치 블랙모어가 자신의 솔로 앨범 작업을 함께 하다가 디오를 영입해서 새 밴드를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말했고, 디오가 엘프의 멤버들도 함께라면 좋겠다고 해서 레인보우가 발족되었다. 그리고 첫 앨범 Ritchie Blackmore's Rainbow 발매 직후 구 엘프의 멤버들은 전원 해고되었다.(...)
이후 드러머 코지 파웰, 키보디스트 토니 캐리, 베이시스트 마크 클락 등을 영입하여 2집 Rising을 발표하고, 밥 데이즐리와 데이비드 스톤을 들여 3집 Long Live Rock and Roll 녹음작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 시기 앨범들은 리치 블랙모어의 취향을 반중하는 중세풍 이미지가 강하며, 고향인 영국과 독일에서는 이미 음악적,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하며 전 유럽에서 딥 퍼플 못지 않은 영향력을 행세하게 되었다.
4집 앨범을 준비하면서 리치는 보다 큰 상업적 성공을 위해 지금까지 내세웠던 중세풍의 이미지를 버리고, 보다 단순한 파퓰러한 록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리치의 새로운 노선에 반기를 든 디오[7]는 밴드를 나가고 블랙 사바스에 가입해 그 전설의 Heaven and Hell에 보컬로 참여한다.[8]
이 이외에도 리치 블랙모어의 인터뷰에 따르면[9] 이 당시 디오는 작업이나 연습보단 늦게 사귀게 된 여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리치 역시 그가 밴드를 떠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앗다고 한다.
로니 제임스 디오 는 블랙 사바스로 떠나고, 리치는 딥 퍼플 시절의 옛 동료 이안 길런 을 찾아가 화해를 요청하고 새로운 보컬로 영입하려 하지만, 이언 길런은 화해는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밴드를 떠나서 레인보우에 가입하고 싶어하진 않았다. [10] 이안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딥 퍼플 시절의 동료 로저 글로버가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되고, 곧 그는 공석인 베이시스트 자리까지 꿰차며 밴드에 눌러 앉게 된다.
이 시절의 주요 대표곡으로는 'Temple of the King[11]', 'Catch the Rainbow'[12], 'Stargazer',[13] 'Tarot Woman', 'A Light in a Black', 'Kill the King'[14], 'Long Live Rock 'n' Roll'[15], 'Gates of Babylon', 'L. A. Connection', 'Rainbow Eyes'[16] 등이 있으며, 유명한 라이브 앨범으로 Rising Tour를 담은 'On Stage'(1976)가 있다.
레인보우의 명곡들 대부분 디오 보컬 시절의 곡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17] 이 시절 발표된 Temple of the King, Catch the Rainbow, Rainbow Eyes 이 세 곡의 발라드 덕분에 대중적인 인기도 얻을 수 있었고, 80년대 중후반까지 국내 라디오에서도 자주 레인보우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1.2. 그레이엄 보넷 보컬 시절
결국 새로운 보컬 그레이엄 보넷을 가입시켜 만든 4집 Down to Earth 는 빅히트를 기록하게 되고, 레인보우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게 된다. 디오 시절에는 오로지 자기 기타 실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곡들이 많았다면, 이 때부턴 밴드 음악에 중요한 세션들간의 밸런스가 엄청 강조되었다.Down to Earth 앨범은 기존의 중세풍의 웅장한 이미지는 사라졌지만 제임스 딘을 연상시키는 미남 보컬리스트 그레이엄 보넷의 강렬한 보이스와, 곡 자체는 간결해졌지만 보다 헤비해진 기타 사운드 등이 음악적으로도 큰 호평을 받게 된다.
사진을 보면알겠지만 앨범의 프로듀서로 초빙 됐던 로저 글로버는 베이시스트가 공석일땐 무대위에서 같이 공연하곤 하였다.
하지만 앨범 발표 후 열린 투어 도중 드러머였던 코지 파웰이 달라진 음악적 노선에 반기를 들며 탈퇴한다. 그리고 장발이었다가 매우 짧게 머리를 자른 그레이엄 보넷은 리치와 사이가 어색해지면서 리치는 리허설에도 오지 않는 등 슬럼프를 보이게 되고 결국 그레이엄은 밴드를 나가게 된다.[18][19] 여기 까지가 개성 넘치는 헤비메탈 밴드 레인보우였고, 그 이후로는 좀 더 대중적인 노선을 걷게 된다.
이 시절의 히트곡으로 'Since You Been Gone', 'All Night Long', 'Lost in Hollywood' 등이 있다.
1.3. 조 린 터너 보컬 시절
1981년 후임 보컬 조 린 터너[20]의 가입 후 중세풍의 이미지는 완전히 벗어버렸고, 팝적인 사운드를 가미한 레인보우는 기존 팬들의 우려와 실망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미국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과를 얻게 된다. 당시 미국에서는 MTV 가 전성기를 맞이하던 때라 레인보우의 곡들도 이에 맞춰 전보다 더 짧아지고 말랑말랑해져갔다. Difficult to Cure 앨범의 'I Surrender''나 'Spotlight Kid' 등을 들어보면 확실히 이전 분위기와는 다르다.리치의 인터뷰에선 이 당시는 여태껏 해왔던 하드한 노래보단 멜로디 위주의 잔잔한 곡들을 즐겨 듣던 때라[21] "나도 이런거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이런 곡들을 많이 냈다. 이 당시 리치가 좋아하던 밴드는 포리너, 러버보이 등의 AOR 록 밴드들이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Bent Out of Shape 앨범의 Street Of Dreams[22] 이다. 여태껏 가져왔던 리치와 레인보우의 성향에 맞는 곡은 아니었다. 리치와 조 린 터너의 인터뷰에 의하면 대중성을 겨냥했던 음악이 자신들의 의도였다고 한다. 조 린 터너와 같이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갔을 때 쥬크박스에서 신보의 음악들이 계속 나오자 만족했다고 한다. 예전처럼 자기방에서 혼자 즐겨듣는 음악보단 이런 열린 공간에서 다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싶었다고 한다. 이 것만 봐도 리치의 음악적 성향이 프로그레시브하고 공격적인 하드락에서 팝적인 선율과 멜로디를 강조한 하드락으로 크게 변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 시절 Straight Between the Eyes 앨범의 Stone cold 등 두 세곡이 빌보드 락차트에 오르면서 히트를 치기도 하지만, 리치는 1984년 레인보우를 활동을 돌연 멈추고 로저 글로버와 같이 자신의 옛 밴드 딥 퍼플의 재결성에 참여 한다.
팬들은 실제 레인보우의 역사는 여기까지이고, 그 이후의 레인보우는 밴드라기보다 리치의 솔로 프로젝트로 여기고 있다.
이 시절의 주요 대표곡으로는 'I Surrender', 'Spotlight Kid', 'Stone Cold', 'Street of Dreams' 등이 있다.
1.4. 두기 화이트 보컬 시절
이안 길런과의 갈등으로 다시 딥 퍼플을 탈퇴한 리치 블랙모어는 자신의 이름을 딴 솔로 앨범을 내려고 했으나 에이전트의 강요로 레인보우라는 타이틀을 걸고 새 앨범을 냈고, 보컬은 두기 화이트로 발탁이 된다.이 당시 앨범 Stranger in Us All은 예전같은 전통 헤비메탈 곡에 중세풍 느낌의 곡들도 많이 섞여있는데, 한참 중세풍 음악에 빠져있던 동시에 그쪽으로 활동하던 아내인 캔디스 나이트와 같이 작곡 작업을 했었기 때문이다. 수록곡 Ariel이 아내와 같이 작업한 첫번째 곡이라고 한다.
원래 밴드가 아닌 리치의 솔로 프로젝트 였기에 젊은 뮤지션들이 세션으로 기용되었다. 리치와 나머지 4명의 멤버들과의 나이 차이는 보통 15년 정도가 났는데 그 덕에 공연실황을 보면 아이언 메이든 비슷한 NWOBHM 밴드에 리치가 스페셜 게스트로 나온 듯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 당시의 활동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리치 블랙모어가 아내를 보컬 겸 프론트맨으로 내세운 블랙모어스 나이트를 결성하면서 레인보우 활동을 무기한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2016년도에 레인보우 활동을 재개하기 전까지 메탈 기타리스트로서의 마지막 활동이다.
리치 블랙모어가 후에 "두기 화이트는 아이언 메이든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어했다." 라고 말한 것을 볼 때 두기 화이트와 음악적인 견해의 차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 레인보우를 거쳐간 멤버들
라이벌 격인 화이트 스네이크가 비교적 알려진 멤버들을 영입하는 형태였다면, 리치 블랙모어는 코지 파웰[23]과 로저 글로버[24]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멤버를 영입해서 쫒아낼 때는 실력파 내지 스타 뮤지션으로 성장시키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25][26]하지만 1집 레코딩후 쫒겨났던 로니 제임스 디오를 제외한 나머지 ELF 멤버들의 행보는 그렇지 못했다.
1.5.1. 보컬
로니 제임스 디오 (1975 -1979) : 활동기간이 길었던 디오지만 레인보우 전의 ELF 까지는 긴 무명의 세월을 버텨야 했다.딥 퍼플의 오프닝 밴드를 하면서 드디어 리치 블랙모어를 만나면서 감춰진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락의 거물 중의 거물로 성장하게 된다. 지금도 레인보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보컬리스트. 하지만 중세풍의 음악을 벗어나려는 리치 블랙모어에게 반기를 들고 탈퇴하여 블랙사바스로 가게 된다. 미국인이면서 브리티쉬 록에 더 잘 어울리는 보이스를 가졌으며 80년대 중반 자신의 밴드 디오를 결성하면서 락 보컬의 지존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는 인물.그레이엄 보넷 (1979 -1980) : 마블스 활동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지만 레인보우에 가입하면서 스타가 되었다. 마블스는 그레이엄 보넷, 트레버 고든 두 사람이 통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는 듀엣이었는데 이때도 그레이엄은 평범한 팝송을 엄청난 하이톤으로 불러대고 있었다. 리치의 선구안이 빛을 발한 케이스다. 본인은 정작 락 싱어도 아니었고 락을 즐겨 듣지도 않았는데 레인보우에 가입하면서 자신의 강력한 보이스를 발견하게 된다. 탈퇴후 MSG, 알카트라즈(Alcatrazz)[27] 그리고 임펠리텔리 등 의 밴드를 거치며 로니 제임스 디오에 이어 80년대 록신을 풍미하는 거물급 보컬리스트가 된다. 1년남짓한 활동기간동안 온갖 루머도 양산되었는데, 리젠트 헤어의 그레이엄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리치가 장발을 계속 권했지만 거부했던 그레이엄을 리치가 기타로 폭행했다는 루머가 대표적이다. 당시 활동 멤버 전원이 루머라고 밝혔던 일화. 하지만 그레이엄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리치가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조 린 터너 (1980-1984) : 전임자 두명이 중음역대의 파워풀한 창법을 구사한다면 전형적인 팝 보컬에 가까웠던 스타일. 하지만 리치는 이 점이 오히려 레인보우의 새로운 노선에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으며 기존앨범에 비해 팝적으로 변한 레인보우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28] 후일 리치의 강력한 후광으로 재결성한 딥 퍼플의 이안 길런의 후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지만, 결국 리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에 의해 쫒겨난다.[29] 이후에도 글렌 휴즈와 듀엣앨범을 내기도 하고 잉베이 맘스틴과도 활동한다. 솔로 앨범도 많이 냈으며 다른 밴드의 보컬로 공백기 없이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하고있다.
두기 화이트 (1994-1997) : 스코틀랜드 출신의 보컬리스트로서 어찌보면 이미 쟁쟁한 프로인 상태에서 레인보우에 합류한 전임자들과는 다르게 꽤 극적인 사연을 지녔는데, 레인보우 합류 이전의 커리어는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부업으로 극장로비에서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아이언 메이든의 새 보컬리스트 오디션을 봤다가 블레이즈 베일리에게 밀려 떨어진 그는, 기존에 뿌려두었던 데모테이프가 캔디스 나이트의 손에 들어가게 됨으로서 재결성 레인보우의 오디션을 권유받았고 곧 90년대 레인보우에 합류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개인적인 솔로 프로젝트와 마이클쉥커, 잉베이 맘스틴 등과 활동했다.
1.5.2. 키보드
미키 리 소울 (1975) : 1집에 참여한 Elf의 멤버, 탈퇴 당한 후 이안 길런밴드의 투어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뉴욕 로컬신에서 키보드 세션으로 활약 한다. 90년대에는 존 로드의 키보드 테크니션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그 후 로저 글로버의 베이스 테크니션으로 일하게 된다.한때 은퇴했었으나 2016년 부터 다시 활동한다고 한다.
토니 캐리 (1975 - 1977) : 초기 레인보우의 화려함을 담당했던 젊은 미국인 키보디스트. Rising 앨범 첫 곡 Tarot Woman 의 인트로 키보드 연주가 아주 유명하다. Long live Rock and Roll 앨범의 절반을 녹음하고 탈퇴당했으며 앨범 발매시에는 크레딧에서 삭제 되었다. 레인보우 탈퇴 후 솔로 프로젝트 인 Planet P Project 와 영화 음악 작곡가로 맹활약 하였다. 2009년과 2015년에는 과거 레인보우의 음악을 연주하는 레인보우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2009년에는 Over the rainbow 의 이름 아래 조 린 터너 와 리치 블랙모어의 아들 '위르겐 블랙모어'가 참여하였고, 2015, 2016년에는 'Tony Carey's Rainbow Project: The Dio Years' 라는 이름 아래 돈 에어리 그리고 노르웨이 밴드 WigWam의 Åge Sten Nilsen 이 보컬로 참여하였다. 'Sweden Rock 2015'에 참가한 이 두 사람의 연주는 유튜브에서 볼수 있다. 리치 블랙모어의 말에 의하면 토니 캐리는 심각한 약쟁이였고, 리치가 마약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항상 불평을 했었다고 한다.[30] 그러다가 사우스햄튼 공연에서는 공연 도중에 리치가 기타 솔로를 연주하고 있는 와중에 혼자 마약에 취해 키보드를 긁어대는 이상 행동을 하며 리치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그 공연이 끝난 직후 바로 리치 블랙모어에 의해 바로 레인보우에서 해고 되었었다고 한다. 해고를 통보 받은 직후 리치에게 "넌 날 필요로 해. 내 커리어는 올라가고 넌 내리막길이야." 라고 당당하게 저주를 하는 패기를 보였다가 리치에게 어퍼컷을 얻어 맞고 뻗은건 덤......
데이비드 스톤(1977 - 1979) : 캐나다 출신의 키보디스트로 토니 캐리가 탈퇴한 후 Long live Rock and Roll 앨범의 4곡에 참여 하였다. 자켓에는 토니 캐리 대신 그의 얼굴만 등장한다. 레인보우 탈퇴 이후 가장 활동이 미흡한 멤버 중 하나. 각주에도 언급 되었지만 리치가 개인적으로 엄청 싫어했기 때문에 밴드에서 해고 당했다.
돈 에어리 (1979 - 1981): 코지 파웰의 Hammer, 그리고 블랙사바스의 never say die 앨범의 세션을 거쳐 레인보우에 가입하게 되었다. 후에 MSG, 오지 오스본 밴드[31] 등 여러 밴드에서 활동했던 실력파 키보디스트. 당시에도 제2의 존 로드 라는 평을 들었었는데, 후일 딥 퍼플에서 존 로드의 정식 후임자로 발탁되었고 존 로드가 딥퍼플에서 은퇴한 후 지금까지 딥 퍼플의 키보디스트로 활동중이다.
데이비드 로젠탈 (1981 - 1984): 미국 뉴저지 출신의 키보디스트였으며 이후에 옛 동료인 '척 버기'와 함께 빌리 조엘의 밴드에서 활약하게 된다.
폴 모리스 (1994 - 1997)
1.5.3. 베이스
크레이그 그루버 (1975) : 1집에 참여한 ELF의 멤버. 1980년 기저 버틀러가 탈퇴한 블랙 사바스에 가입하여 역시 오지 오스본의 후임으로 가입한 옛 동료 디오와 함께 Heaven And Hell 앨범의 초기 레코딩에서 베이스를 담당한다. 하지만 디오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온 기저 버틀러에 의해 안타깝게도 탈퇴 당하고 만다. 일설에 의하면 Heaven And Hell 의 그 유명한 베이스 리프도 그의 연주 그대로 기저 버틀러가 다시 연주했다고 한다. Die young 은 공동 작곡 까지 했지만 크레딧에 오르지 못했다.지미 베인 (1975 -1977) : 명반 Rising 그리고 라이브 앨범 On stage 에서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레인보우로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인물.
탈퇴 당한 후에는 Thin Lizzy 를 탈퇴한 브라이언 로버트슨과 Wild Horses 를 결성한다. 여기서는 리드 보컬도 겸했다. 후에 로니 제임스 디오와 디오를 결성하여 큰 명성을 얻는다.
마크 클락 (1977) : 70년대 브리티쉬 록의 베테랑 뮤지션으로 베이스 겸 보컬리스트로 활약한 인물. 이 사람은 레인보우 가입전에도 유명했지만 Long live Rock and Roll 앨범 제작 초기에 쫒겨나서 레코딩은 남아 있지 않다. 레인보우 가입전, 콜로세움, 유라이어힙, 템페스트를 거쳤고 후에 80년대에는 마운틴의 멤버로도 활약했다.
밥 데이즐리 (1977-1979) : 영국을 대표하는 베이시스트 중의 한명으로 레인보우에서 명성을 얻어 이후 오지 오스본, 블랙 사바스, 유라이어 힙 등을 거치면서 유명해졌다. 참여 앨범은 'Long live Rock and Roll' 이지만 전임자인 마크 클락을 내보낸 리치 블랙모어가 본인이 직접 5트랙의 베이스 녹음을 마친후였다. 결국 밥은 8트랙 중 'Kill the King' 등 세 곡에만 참여하였다.
로저 글로버 (1979-1984) : 말이 필요없는 딥 퍼플 시절의 동료. 리치와 그리 좋지 않게 헤어졌던 로저는 Down To Earth 앨범 제작에 프로듀서 겸 베이시스트로서 참여하게 된다. 레인보우 가입 시에는 이미 딥 퍼플, 다양한 솔로 프로젝트, 그리고 명 프로듀서로서 거물중의 거물로 성장해 있었다. 덤으로 디오의 탈퇴 후 그레이엄 보넷을 추천해준 것도 로저 글로버고, 그레이엄 보넷 탈퇴 이후 밴드를 아에 때려칠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리치 블랙모어에게 조 린 터너를 추천해준것도 로저 글로버다. 이렇게 Down To Earth 앨범의 대 성공으로 프로듀서, 베이시스트, 리치의 작곡 파트너로 후기 레인보우의 마지막까지 같이 하게 된다.[32] 레인보우 시절 때의 공연 영상을 보면 보기 드문 로저 글로버의 핑거 베이스 연주를 볼 수 있다.
그렉 스미스 (1994-1997)
1.5.4. 드럼
게리 드리스콜 (1975) : 1집에 참여한 ELF의 멤버.R&B 스타일을 기반에 둔 드러머였는데 이 점이 맘에 들지 않았던 리치에 의해 1집 녹음후 탈퇴당함.코지 파웰 (1975-1980) : 1집 멤버들의 해고 이후 딥 퍼플 시절 친했던 이안 페이스가 가입할거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제프 벡을 동경하던 리치는 결국 그의 드러머였던 코지를 영입하게 된다. 코지는 2집 Rising 부터 4집 Down To Earth 까지 레인보우의 황금기를 함께했다. 'Rising' 앨범에서 보여준 그의 파워 드러밍은 리치블랙모어의 기타 못지 않게 레인보우의 상징이 되었다. 'Down To Earth' 앨범 이후 AOR 노선으로 변경하려는 리치에 반기를 들고 자진 탈퇴 후, MSG를 거쳐 라이벌 밴드인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화이트 스네이크로 가버린다. 디오의 탈퇴에도 동요하지 않았던 리치이지만 코지의 탈퇴에는 적잖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바비 론니넬리 (1980-1983) : 코지 파웰의 후임으로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뽑힌 미국인 드러머. 코지 파웰 못지 않은 파워 넘치는 화려한 드러밍과 강렬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레인보우에서 세장의 앨범을 참여하고 탈퇴 후 블랙 사바스 등 수많은 명 밴드를 거치고 80년대 중반 자신의 밴드 'Rondinelli'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80년대 대표적인 헤비메탈 드러머로 유명하다.
척 버기 (1983-1984) (1995-1997) : 레인보우의 마지막 앨범에 참여한 미국인 드러머. 'Balance' 라는 밴드에 있다가 레인보우에 가입, 1995년 재결성에도 참여했다. 현재는 빌리 조엘의 밴드에 옛 동료 데이비드 로젠탈과 참여하고 있다. 재즈 팝 록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드러머 이다.
존 오라일리 (1994-1995)
존 미셀리 (1997)
2. 뉴 레인보우
사진의 좌측 부터 크리스티나 린 스클레로스(하모니 보컬)[33]-리치 블랙모어(기타)-옌스 요한슨(키보드)-로니 로메로(보컬)-밥 누보(베이스)-데이비드 키스(드럼)-캔디스 나이트(하모니 보컬)
2016년 6월, 유럽에서 레인보우의 투어를 돈다고 발표하였다. 리치 블랙모어는 레인보우를 공식적으로 해체한 적이 없는데 블랙모어스 나이트를 결성하면서 리치 블랙모어는 레인보우 활동과 병행하겠다고 말했었지만 레인보우의 활동을 무기한 중단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오랜만에 '리치 블랙모어의 레인보우'의 활동을 재개하였다. 새로운 레인보우의 보컬에, 로드 오브 블랙 이라는 밴드의 보컬 로니 로메로[34] 라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발탁 하였는데, 리치 블랙모어는 인터뷰에서 새로운 보컬에 대해 "로니 제임스 디오와 프레디 머큐리를 합쳐 놓은것 같다." 라고 극찬을 했다.
새로운 레인보우의 라인업이 공식 확정 되었는데:
멤버 구성을 보아도 알수있듯이 기존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멤버들에 옌스 요한슨과 새로운 싱어를 영입시킨 형태로 95년 처럼 새로운 레인보우의 결성이라기 보다는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느낌도 난다.
리치 블랙모어는 유투브에서 로니 로메로가 노래 부르는 영상을 보고[42] 로니 로메로의 연락처를 수소문 하여 로니에게 연락을 하였고, 두 사람은 독일에서 만났는데, 로니는 리치에 대한 험악한 소문들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리치를 만나기 전에 겁을 잔뜩 먹었었지만, 리치는 의외로(?) 로니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그렇게 로니는 새로운 레인보우의 보컬로 발탁 되게 된 것이다.
뉴 레인보우는 리치 블랙모어의 집이 있는 뉴욕에서 며칠 동안 합주를 하며 리허설을 하였고, 이 때 로니 로메로의 부인과 리치 블랙모어의 부인 캔디스 나이트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43]
20년만에 새로 레인보우를 시작한 것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70살이 넘은 고령이다보니 전성기 때만큼의 기타연주 속도가 안나오는 점이 팬들의 아쉬운 점이다. 잉베이 맘스틴 이전에 이미 속주 스타일로 시대를 풍미했던 리치 블랙모어라서 더욱 더 안타깝기도 하다. 무었보다 지난 20년동안 블랙모어스 나이트에서 포크송만 했기 때문에 메탈 연주의 감이 다소 낮아진 것일 수도 있다. 공개된 라이브 영상들을 보면 가양한 애드립과 사운드를 꽉채워서 연주를 들려줬던 전성기 때와 달리 오리지널 보다 더 간소화된 버전으로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어쨌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레인보우의 리치 블랙모어로서 죽기 전 다시 메탈을 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켰고, 팬들의 오랜 소원도 해소되었다.
2.1. 구 멤버 미채용 논란
한편 자신이 새로운 레인보우의 보컬로 발탁될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가[44] 뒷통수를 맞은 조 린 터너는 자신 대신에 로니 로메로 라는 무명의 보컬이 새롭게 발탁 되자 멘붕 하였고, 리치 블랙모어를 비난하였다.조 린 터너의 주장에 의하면 리치가 새로운 레인보우의 출범을 발표하기 이전에 자신은 과거의 레인보우의 예전 멤버들에게 재결합과 합류를 설득하였고, 일부 멤버들에게 승낙도 받았다고 한다.[45] 그러나 리치는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고, 조 린 터너는 후에 리치의 매니저이자 캔디스의 엄마인 캐롤 스티븐스를 통해 리치가 자신을 포함한 레인보우의 예전 멤버들의 기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애당초 레인보우는 멤버들이 자주 갈렸고, 재결합한 딥 퍼플에서 탈퇴 후 다시 레인보우 활동 했을 때도 전혀 새로운 인물들도 활동했던 점을 보면 전혀 놀라운 일은 아니다.[46]
조 린 터너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다면서 자신이 원한 레인보우의 재결성은 자신과, 그레엄 보넷, 두기 화이트 세 보컬과 스케줄이 가능한 예전 멤버들,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의 장남인 위르겐 블랙모어가 다 같이 뭉치는 그런 공연이었는데, 팬을 위해 레인보우의 스페셜 공연을 한다는 리치가 왜 과거의 멤버들을 기용하지 않느냐며 불만을 표시하였다. 조 린 터너와 리치 블랙모어는 딥퍼플 이후로 아에 등지고 산것도 아니었고 2006년도 때 블랙모어스 나이트 활동에서 Street of Dream을 캔디스 나이트와 콜라보한 리메이크판도 같이 녹음하는 등 중간 중간에 어떤식으로든 만나긴 하였다.
리치는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조 린 터너의 이런 불만에 대해 반론을 제시했는데, 이번 레인보우의 공연은 물론 팬들에게 추억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좋은 실력을 지닌 뮤지션을 발굴해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데 목적이 있다면서,예전에도 딥 퍼플과 레인보우 등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밴드들의 곡을 다시 한 번 연주해 보고 싶단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새 보컬 로니 로메로가 가진 재능이 아니었으면, 이 공연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로니 로메로에 절대적인 신뢰를 드러냈다.
하지만 좋은 실력을 지닌 뮤지션을 발굴한다는 말은 보컬인 로니 로메로의 발굴을 제외하고는 설득력이 떨어져 보이는데, 밴드 멤버들만 봐도 옌스 요한슨은 발굴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이미 너무 유명하고, 또 리치와 친한 사이다. 하모니 보컬의 캔디스 나이트는 아내, 크리스티나 린 스클레로스와, 베이스의 밥 누보와 드럼인 데이비드 키스만봐도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전 멤버나 현 멤버이다. 말만 레인보우지 블랙모어스 나이트 멤버+새로운 세션 멤버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2월 21일에 딥 퍼플 유튜브 페이지에 공개된인터뷰 영상에서 리치가 말하길, 레인보우를 하더라도 예전 레인보우 멤버들이랑 같이 하기엔 너무 지쳤다고 밝혔다.[47]그리고 원래 레인보우 활동을 다시 재개할 생각은 없었는데, 로니 로메로의 노래를 듣고 결심하게 된 것이라 조 린 터너 혹은 다른 보컬들이 발탁이 안된 것으로 보인다.
조 린 터너는 구 레인보우 마지막 기수의 보컬이었던 두기 화이트에게 찾아가서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 있었다는데, 새앨범을 내고 투어를 뛰지않는 이상은 의미가 없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리치 블랙모어의 선택에도 다 이유가 있었지만 리치 블랙모어 덕분에 메이저 음악계에서 거물로 성장할 수 있게해준 은인에게 너무 심한것 아니냐는 말도 적지않다.
팬덤에선 조 린 터너의 주장도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리치의 주장 역시 틀린 말이 아니고,아직 새로운 레인보우의 활동 방향이 어떻게 될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리치와 캔디스, 그리고 캐롤[48]을 한꺼번에 뒷담화 한 조 린 터너가 성급했다는 평가이다.
2.2. 활동
새로운 레인보우의 공연의 셋리스트에 대해 리치는 70%의 레인보우 곡들과 30%의 딥 퍼플 (물론 자신이 제적하던 시절) 의 곡이 연주 될것이라 밝혔으며, ‘Stargazer’와 같이 팬들이 반드시 듣고자 하는 곡들 역시 셋리스트에 포함되 있다고 밝혔다. 원래는 딥 퍼플 곡 비율도 높았는데 멤버들 중 2명이 레인보우면 레인보우의 곡을 하자고해서 딥 퍼플 곡 비율을 낮췄다고 한다.또한 리치는 세 번의 공연 이후 바로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투어가 시작 되기 때문에 2016년에는 더 이상 새로운 레인보우의 공연이 그 세 번의 공연 외에 더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지만, 팬들의 성원과 요구가 있다면 2017년에도 새로운 레인보우의 공연이 더 있을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레인보우의 투어가 시작 되었고, 첫 공연인 6월 17일에는 지난 3월에 받은 손가락 수술[49]의 후유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리치 블랙모어의 컨디션은 영 별로였고,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6월 18일, 6월 25일 공연에서는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돌아왔고, 보컬인 로니 로메로 역시 리치의 칭찬과 기대에 부응하며 전성기의 로니 제임스 디오를 보는 듯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6월 17일 독일 공연이 DVD와 블루레이로 발매 되었다. 참고로 6월 18일 버밍엄 공연은 예매 시작 후 단 5분 만에 매진 되었다.
성공적이었던 새로운 레인보우의 공연 이후 캔디스 나이트와 로니 로메로의 SNS에는 2017년에도 레인보우의 투어가 있을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결국 2017년 6월에도 투어 스케줄이 잡혔는데, 이번엔 4회다. 6월 17일, 6월 22일, 6월 25일, 6월 28일로 런던과 맨체스터, 글레스고, 버밍엄을 돈다고 한다.[50] 뿐만 아니라 로니 로메로와 함께 레인보우의 새로운 곡을 몇 곡 녹음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2017년 5월 26일, 레인보우의 신곡 2곡을 디지털 싱글 형식으로 발표하였다. 수록곡은 조 린 터너가 보컬이던 시절 이미 한 번 커버하여 수록했었던 I Surrender 을 로니 로메로의 목소리로 다시 커버 하였고,[51][52] Land Of Hope And Glory를 연주하였다. Land Of Hope And Glory 연주곡에 대해서는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이름으로 발표되어야할 곡을 레인보우의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평가다. 그도 그럴게 현 레인보우의 멤버들 중에 리치 까지 포함해 세 사람이 블랙모어스 나이트 출신이거나 현 멤버고, Land Of Hope And Glory 에서 들리는 바이올린과 코러스 역시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멤버가 연주하였으며,[53] 곡도 전형적인 블랙모어스 나이트 스타일의로 편곡, 연주되었으며, 리치의 일렉 기타 톤 역시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Carry On Jon 이나 Darker Shade Of Black의 연장선에 있다.
결국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20주년 기념 앨범'To The Moon And Back: 20 Years And Beyond...,'에도 저 두 곡이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갔다.
2018년에도 레인보우의 투어 일정이 잡혔는데, 당초 일본에 올 것이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루머에 그쳤고,[54] 현재까지 4월 8일 러시아의 모스크바, 4월 11일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4월 13일 핀란드의 헬싱키, 4월 18일 독일의 베를린, 4월 20일 체코의 프라하 로 투어 일정이 잡혀 있고, 예매가 시작 되었다. 위의 사진은 2018년 투어의 포스터로 찍은 사진이다.
2018년 3월 9일 로니 로메로와 함께한 최초의 신곡 Waiting For A Sign 가 공개 되었다. 가이드를 캔디스 나이트가 녹음했다는 걸로 볼 때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신보가 발매되면 그 신보에도 블랙모어스 나이트 버전으로 수록될 가능성이 있다.이후 2019년에도 투어를 돌아다니다가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사실상 활동이 없는 상태이며, 2023년 기준으로 투어나 신곡 발표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가 2023년 10월 23일 레인보우 보컬리스트 로니 로메로가 밴드를 탈퇴한것으로 보인다.
2.2.1. 2018년 4월 13일 헬싱키 공연 노 앙코르 사건
1. Spotlight Kid 2. I Surrender 3. Mistreated 4. Since You Been Gone 5. Man On The Silver Mountain 6. Soldier Of Fortune 7. Perfect Strangers 8. Difficult To Cure 9. All Night Long 10. Child In Time 11. Stargazer 12. Long Live Rock 'n' Roll 13. Burn 14. Memmingen 15. Carry On... Jon 16. Black Night 17. Smoke On The Water |
1. Spotlight Kid 2. I Surrender 3. Mistreated 4. Since You Been Gone 5. Man On The Silver Mountain 6. Perfect Strangers 7. Sixteenth Century Greensleeves 8. Soldier Of Fortune 9. Difficult To Cure 10. All Night Long 11. Child In Time 12. Stargazer 13. Long Live Rock 'n' Roll 14. Burn |
위는 2018년 4월 11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연의 셋리스트고, 아래는 4월 13일 핀란드 헬싱키 공연의 셋리스트 인데, 셋리스트에서도 볼 수 있듯이 헬싱키 공연에서는 앙코르로 Black Night와 Smoke On The Water가 연주되지 않고, 그냥 공연이 중간에 끝나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어째서 앵콜이 연주되지 않았는지 많은 추측이 오가고 있고, 그동안 용케 성질을 죽이고 조용히 살던 리치 블랙모어가 오랜만에 대폭발 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증언하기로는 Difficult To Cure 가 연주되던 중 베이스 솔로 때 베이시스트 밥 누보를 비롯한 밴드의 멤버들이 공연 다음 날인 4월 14일에 73세 생일을 맞는 리치 블랙모어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멘트를 하며 리치에게 생일 선물을 증정하였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리치가 화가 난 것으로 보였고, 그 때 부터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하였는데, 그럼에도 공연이 계속 진행되었고, 마지막 곡인 Burn 의 연주가 끝나자 마자 조명이 다운 되었고, 밴드는 무대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멤버들의 작별 인사도 없었고, 공연이 끝나고 항상 흘러 나오던 Snoopy Versus The Red Baron 도 나오지 않았기에 관객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었는데, 그 후로도 관객들은 10분 정도를 더 기다렸지만 결국 그들은 Black Night 와 Smoke On The Water 를 못 듣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리뷰 글
3. 앨범
- Ritchie Blackmore's Rainbow (1975)
- Rising (1976)
- Long Live Rock 'n' Roll (1978)
- Down to Earth (1979)
- Difficult to Cure (1981)
- Straight Between the Eyes (1982)
- Bent Out of Shape (1983)
- Stranger in Us All (1995)
[1] 아이러니하게 리치는 로저 글로버 후임으로 들어온 글렌 휴즈의 펑키한 베이스 리듬을 높이 평가하였고, 딥 퍼플 재결합 때는 섹스 피스톨즈 같은 펑크(punk)록을 높게 평가하면서 이안 길런더러 이런것도 해보자고 제안하였다.[2] 아이러니하게도 후임으로 들어온 토미 볼린이 리치와 달리 음악적 견해가 유연했고 작업할 때 잘 맞았다고 한다. 로저 글로버 후임이었던 글렌 휴즈 역시 펑크적인 리듬 감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두명의 마약 문제 때문에...[3] 후배 기타리스트인 잉베이 맘스틴 역시 개인 밴드인 라이징 포스에서 흡사한 행보를 보였다.[4] 리치는 자신의 곡을 받쳐줄 수 있는 슈퍼 멤버들을 원했고, 문제는 그런 멤버들일수록 개성이 엄청 강하다 보니 서로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키보디스트 데이비드 스톤 같은 경우에는 리치가 진짜로 개인적으로 엄청 싫어해서 잘랐는데, 리치가 후에 데이비드 스톤에 대해 말하길 "그는 매우 불쾌한 사람이었고, 속물이었다. 그는 끔찍하게 냉소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5] 다만 디오는 그 이전에도 엘프 등의 밴드에서 활약하며 딥 퍼플의 오프닝 무대에 서는 등 실력파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결코 새파란 신인의 갑툭튀 데뷔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디오는 이미 딥 퍼플 결성 한참 전부터 활동해 온 뮤지션이다. 장르는 갈아탔지만...사실 뮤지션 경력만 보면 오히려 디오가 블랙모어보다 긴 데다가 나이까지 세살 연상이다. 다만 무슨 이유에선지 오랫동안 원래 나이보다 7살이나 적은 49년생으로 활동했기에 고등학교 졸업시기등 증거로 진짜 나이가 42년생으로 확정되기 전까진 팬들 사이에서도 42년생 설과 49년생 설이 공존했다.[6] 또한 당시 블랙모어와 디오의 인지도가 넘사벽이어서 간과되는 부분이지만 음악적인 부분에서 디오의 영향력은 결코 블랙모어보다 아래가 아니었다. 실제로 이 둘은 디오가 탈퇴하기 전까지 밴드의 거의 전곡을 공동 작곡작사했으며, 2집까지는 프로듀싱도 같이 했다. 즉 음악적으론 둘이 같이 끌고 가는 형태였으며 실제로 이 시기 레인보우 곡들은 밴드 디오의 색과 상당히 유사하다. 멜로디를 담당하는 보컬인 디오가 작곡능력이 뛰어나 음악적 공헌도는 크지만, 인지도 면에선 블랙무어가 넘사벽이라 밴드 구성 면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7] 디오는 중세풍 판타지 느낌을 좋아하는데, 이는 레인보우 시절 명곡 Stargazer나 본인의 이름을 딴 밴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Dio 시절 모든 곡의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고, 앨범 아트워크를 작업했는데, 용이 지키는 성 등 판티지풍의 그림과 몽환적이면서 역시 판타지풍의 가사가 돋보인다. 다만 뮤직비디오 센스는 저예산+디오 본인의 발연기 때문에 거의 병맛 수준. Holy Diver에서 40대의 디오가 검을 들고 뒤뚱거리며 허접한 분장을 한 악당들을 처리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다만 후기 디오는 이런 중세 판타지풍 컨셉을 많이 줄였다.[8] 블랙 사바스는 Mob Rules 이후 탈퇴하고 자기 밴드 Dio를 시작했지만, 토니 아이오미와는 불화로 결별한 것도 아니고 서로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성도 어느 정도 교집합이 있고 했기 때문에 1992년 잠깐 객원 보컬로 가입해서 Dehumanizer라는 앨범을 발매했던 적도 있고, 후에 헤븐 앤 헬이라는 밴드를 다시 결성해서 디오 재직 시절 블랙 사바스 라인업으로 앨범을 내기도 했다.[9] 다큐멘터리 Ritchie Blackmore's Story[10] 대신 리치 블랙모어는 이안 길런의 밴드 공연에 3일을 게스트로 참여한다.[11] 80년대 중후반까지도 국내 FM에서 자주 들을수 있었던 곡으로 적어도 한국에서는 레인보우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다[12] 원래부터 레인보우의 대표곡으로 유명했는데 발표된지 약 30년이 지난 2010년대 중반에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삽입곡으로 다시 알려졌다. 죠죠 작가가 엄청난 락덕후라 그런 요소를 많이 집어넣었다. 하이웨이 스타나 디오도 그렇고...[13]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곡으로, 레인보우 최고의 명곡으로 손꼽힌다.[14] 3집에 수록되어 있지만 76년 Rising 투어 때부터 라이브 때마다 인트로 곡으로 연주되었다. 가사가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90년대까지 국내 정발판에서 잘려나갔던 적이 있다. 근데 사실 체스에 대한 내용이다...[15] 77년 뮌헨 라이브에서 처음 공개됨[16] 리치와 디오만 녹음에 참여한 앨범의 마지막 곡. 플루트와 현악기 세션이 포함되어 있다. 해외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캐치 더 레인보우와 함께 레인보우 하면 떠오르는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로니 제임스 디오 생전에는 라이브에서 단 한 번도 불리지 않은 비운의 곡. 1998년 이승철이 콘서트에서 불렀다.[17] 이 곡들은 디오 본인이 공동작곡한 곡들이고, 애정이 깊은지 탈퇴 이후에도 자주 부르는 곡들이다. 특히 Long Live Rock and Roll은 안 부르는 공연이 없다시피할 정도로 디오 본인과 팬들에게 사랑받는 곡. 가사 자체가 록 음악에 대한 찬가고 멜로디도 경쾌하기에 관객들 분위기 띄우기에도 딱이고, 구성이 비교적 단순해서 다른 곡들과 붙혀서 메들리로 부르기도 좋다.[18] 그레이엄은 훗날 인터뷰에서 리치는 성격이 좀 그랬지 음악적으로 배울 것이 많았다고 한다.[19] 좀 더 대중적인 노선을 원하는 리치와의 음악적 견해차가 가장 컸다고 한다.[20] 조 린 터너는 당시 금전적으로 쪼들리고 있었고, 자신의 지인이 리치가 레인보우 영입에 관심이 있단 전화를 받고 당장 달려갔다고 한다. 리치는 그레이엄의 탈퇴 후 밴드를 때려칠까 생각했었는데, 로저 글로버가 조 린 터너의 녹음 테잎을 들려줬었는데 목소리가 상당히 괜찮았기 때문에 같이 일하기 좋을 것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한다.[21] 의외일수도 있지만, "ABBA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이고, 세계 최고의 밴드다. 비틀즈와 ABBA 보다 더 좋은 밴드는 없다. 그들의 멜로디는 너무 아름다웠고, 그들의 음악은 무서울 정도로 너무 잘 썼다." 라는 번 매거진 2006년 3월호 인터뷰에서의 발언과 같이 리치는 ABBA 나 펫 샵 보이즈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여러차례 고백했던 적이 있다. 밴드원들한테도 제일 좋아하는 밴드가 ABBA라고하자 마치 배신감을 느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22] 리치 블랙모어 본인이 말한 바에 따르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고, 자기가 만들었던 노래들 중 최고의 노래라고 한다. -출처: 번 매거진 2018년 4월호-[23] 어린 시절 오케스트라에서 드럼을 연주한 경력이 있으며 프로 데뷔가 제프 벡의 밴드 멤버로써 이루어졌다.[24] 리치와 딥 퍼플 시절을 같이 하였다.[25] 딥 퍼플 2기 멤버들은 영국 왕실 음대 출신의 엘리트였던 키보디스트 존 로드를 비롯해 당시 영국에서 내로라하는 슈퍼 세션들로 이뤄진 멤버들이고, 모두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이런 멤버들이 모여서 서로 호흡을 맞추고 활동했던 밴드가 바로 딥 퍼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뮤지션과 그렇지 않은 뮤지션의 차이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런 밴드에 있던 사람과 같이 밴드를 하면 실력이 안 늘래야 안 늘수가 없다. 리치에게 교육받았던 글렌 휴즈, 데이빗 커버데일, 그리고 그레이엄 보넷은 솔로 활동도 무리 없이 할 정도고, 이들도 하나같이 리치에게 엄청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26] 특히 보컬이었던 데이빗 커버테일과 그레이엄 보넷은 단순이 음악하는 법이 아닌 프로듀싱, 매니지먼트와의 관계 등 업계에서 활동하는 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웠다고 한다. 그 결과 둘 다 솔로 활동하는데 문제없었고 특히 데이빗 커버데일은 이 때의 경험과 교육으로 개인 밴드인 화이트 스네이크를 탑클래스 밴드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고 지금도 메탈의 대부로 자리매김하고있다.[27] 잉베이 말름스틴이 거쳐간 밴드로 알려져있다[28] 디오와 보넷 때는 둘의 개성적인 목소리 때문에 다른 보컬들이 서로의 곡을 부르면 어울리지 않았고, 보컬 특색에 맞춰서 곡을 만들다보니 작곡 자체를 유연하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특색이 없던 조 린 터너 덕분에 작곡의 폭이 더 넓어졌다. 즉 누가 불러도 괜찮은 곡을 만들기가 쉬워졌단것[29] 심지어 대인배였던 존 로드도 그를 피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낸 앨범이 13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Slaves & Masters'인데, 딥 퍼플의 색채가 많이 사라지고 레인보우 풍이 되었다는 혹평을 들어며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실패한다.[30] 정작 리치는 그가 마약을 하건 말건, 자기 몸 자기가 망치는 건데, 자기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가 마약에 취해 공연을 망치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는 말을 했다.[31] Mr. Crowley의 멋진 키보드 인트로를 담당[32] 로저는 리치가 어떤 성격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고, 베이스 실력도 프로중의 프로였기 때문에 딥 퍼플 때와 달리 리치의 장단에 꽤 많이 맞춰준 것 같다.[33] 믿기 힘들겠지만 1996년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미국 국가를 불렀던 그 8살 귀여운 소녀다. 블랙모어스 나이트와 레인보우에서 하모니 보컬로 활동하고 있으며 밴드 활동이 없을 때는 보컬 레슨을 하거나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34] 칠레 출신으로 마드리드에 거주[35] 밴드 로드 오브 블랙의 보컬로, 로드 오드 블랙 활동 외에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상술했듯이 로니의 유튜브 영상을 본 캔디스 나이트가 리치에게 로니를 추천했다.[36] 실력은 있지만 그렇게 주목 받던 보컬리스트는 아니었는데 레인보우에 발탁된 후 메탈씬으로 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게되었다. 실력도 흠잡을 곳 없어서 여러곳에서 러브콜이 들어왔고 2021년 1월에는 그 마이클 솅커의 MSG 신보 퓨처링까지 하게되었다.[37] 레인보우로 본격적인 큰 음악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음악시장의 갑질에 대해 엄청난 회의감을 느꼈는지 이에대한 불만을 적어두기도 했다.[38]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전 베이시스트로 2000년 부터 2007년까지 밴드에 있었다. 본명은 로버트 큐리이노고 블랙모어스 나이트 활동 당시에는 Sir Robert Of Normandie (노르망디의 로버트 경) 이라는 예명을 사용했었으며, 참고로 나이는 1943년생으로 리치 블랙모어 보다 두 살 위다.[39]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Under A Violet Moon'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었던 적이 있다.[40] 블랙모어스 나이트 현 드러머이다. 블랙모어스 나이트와 레인보우의 활동 외엔 누나인 셰노 키스(본명 메간 키스)와 함께 '미션 제로'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41] 원래 메탈 드러머가 아닌지라 그의 드럼 스타일이 기존의 레인보우 곡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있지만, 리치 블랙모어 역시 전성기 때와 달리 담백하게 연주를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42] 리치는 스스로도 노땅인걸 알고있어서 유튜브나 이런 21세기식 미디어 매체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엔 캔디스가 보여주려는 로니의 영상을 안보려고 했는데 캔디스가 스피커로 틀어서 강제로 듣게했다.[43] 파일:external/www.deep-purple.it/Rainbow-ristorante-2015-696x464.jpg
사진에서 아랫줄 가운데가 로니 로메로고 왼쪽에 있는 여성이 로니 로메로의 부인으로 추측된다. 로니의 오른쪽은 당연히 리치 블랙모어와 캔디스 나이트고 뒷줄의 가운데가 드러머 데이비드 키스, 오른쪽이 옌스 요한슨, 왼쪽이 베이시스트 밥 누보다.[44] 조 린 터너 본인이 리치 블랙모어에게 콜을 받았었다고 2015년 초에 인터뷰를 했었다.[45] 하지만 그레이엄 보넷과 두기 화이트는 그래도 참여 안 했을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이 두명은 마이클 쉥커 페스트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46] 구 레인보우 마지막 기수는 원래 레인보우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은 멤버는 아니었다. 솔로 앨범으로 모은 멤버들이었는데 음반사의 압박으로 레인보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을 한 것.[47] 구 레인보우 마지막 멤버들이 딥 퍼플 재결합 때문에 해산된 것을 제외하면, 그 이전 멤버들은 죄다 좋지 않은 이유로 짤렸다, 아무리 수십년이 지났다해도 다시 만나긴 힘들것이다. 그리고 이미 70살이 넘은 고령의 나이로 오랜만에 본 옛 멤버들과 다시 호흡을 맞추는 것도 매우 힘든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블랙모어스 나이트 멤버들과 같이 하는게 더 편한 것[48] 캔디스 나이트의 엄마 캐롤 스티븐스를 말한다. 그녀는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데, 딥 퍼플과 레인보우 팬들에겐 프라하에서의 딥 퍼플 CD 파손 사건으로 유명하다.[49]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손가락 관절염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었는데, 3월의 수술도 그와 연관이 있는 걸로 추정된다.[50] 2004년 블랙모어스 나이트 투어의 일본 공연 이후 리치 블랙모어는 미국과 유럽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이 싫어서 라고 한다.[51] 이 리메이크 버전에선 찬반의 논란이 많다. 기타를 제외한 나머지 세션들이 MIDI를 이용해서 우려먹은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오리지널에 비해 너무 밋밋하고 박자위주라는 평이 강하다. 하지만 라이브 버전을 보면 진짜 다들 이렇게 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에 비해 별도의 다양한 톤 없이 악기의 오리지널 사운드 위주로 녹음하다보니 나타난 현상이었고, 드럼 역시 드러머 자체가 상당히 담백하게 연주하는 타입이다.[52] 현재 해당 영상의 덧글을 사용이 금지된 상태다[53] 또한 위의 각주에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키보디스트 옌스 요한슨도 블랙모어스 나이트 엘범에서 세션으로 참여 한적이 있다.[54] 구 레인보우 시절 땐 일본에 공연하러 갔었지만 리치 블랙모어는 비행기타고 엄청 멀리가는 것과 자기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사는 것을 엄청 좋아하지않는다고 한다. 미국 활동 당시에도 다들 미국왔다고 좋아할 때 혼자 향수병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났었다고 한다.
사진에서 아랫줄 가운데가 로니 로메로고 왼쪽에 있는 여성이 로니 로메로의 부인으로 추측된다. 로니의 오른쪽은 당연히 리치 블랙모어와 캔디스 나이트고 뒷줄의 가운데가 드러머 데이비드 키스, 오른쪽이 옌스 요한슨, 왼쪽이 베이시스트 밥 누보다.[44] 조 린 터너 본인이 리치 블랙모어에게 콜을 받았었다고 2015년 초에 인터뷰를 했었다.[45] 하지만 그레이엄 보넷과 두기 화이트는 그래도 참여 안 했을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이 두명은 마이클 쉥커 페스트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46] 구 레인보우 마지막 기수는 원래 레인보우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은 멤버는 아니었다. 솔로 앨범으로 모은 멤버들이었는데 음반사의 압박으로 레인보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을 한 것.[47] 구 레인보우 마지막 멤버들이 딥 퍼플 재결합 때문에 해산된 것을 제외하면, 그 이전 멤버들은 죄다 좋지 않은 이유로 짤렸다, 아무리 수십년이 지났다해도 다시 만나긴 힘들것이다. 그리고 이미 70살이 넘은 고령의 나이로 오랜만에 본 옛 멤버들과 다시 호흡을 맞추는 것도 매우 힘든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블랙모어스 나이트 멤버들과 같이 하는게 더 편한 것[48] 캔디스 나이트의 엄마 캐롤 스티븐스를 말한다. 그녀는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데, 딥 퍼플과 레인보우 팬들에겐 프라하에서의 딥 퍼플 CD 파손 사건으로 유명하다.[49]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손가락 관절염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었는데, 3월의 수술도 그와 연관이 있는 걸로 추정된다.[50] 2004년 블랙모어스 나이트 투어의 일본 공연 이후 리치 블랙모어는 미국과 유럽을 벗어난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이 싫어서 라고 한다.[51] 이 리메이크 버전에선 찬반의 논란이 많다. 기타를 제외한 나머지 세션들이 MIDI를 이용해서 우려먹은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오리지널에 비해 너무 밋밋하고 박자위주라는 평이 강하다. 하지만 라이브 버전을 보면 진짜 다들 이렇게 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에 비해 별도의 다양한 톤 없이 악기의 오리지널 사운드 위주로 녹음하다보니 나타난 현상이었고, 드럼 역시 드러머 자체가 상당히 담백하게 연주하는 타입이다.[52] 현재 해당 영상의 덧글을 사용이 금지된 상태다[53] 또한 위의 각주에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키보디스트 옌스 요한슨도 블랙모어스 나이트 엘범에서 세션으로 참여 한적이 있다.[54] 구 레인보우 시절 땐 일본에 공연하러 갔었지만 리치 블랙모어는 비행기타고 엄청 멀리가는 것과 자기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사는 것을 엄청 좋아하지않는다고 한다. 미국 활동 당시에도 다들 미국왔다고 좋아할 때 혼자 향수병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났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