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괴물같은 고교 시절
덕수정보고 시절에는 굉장히 유망한 투수였었다.[1] 고교 야구 무대에서 공식적으로 150km의 구속을 찍은 몇 안 되는 투수. 당시 서울권에서 류제국에 필적할 만한 투수는 없었고, 전국적으로 따져야 김진우라는 초고교급 라이벌이 있을 뿐이었다.고2이던 2000년 대통령배 1회전에서 이대호-장민석의 경남고에 3-2 승리를 거뒀다. 선발투수 이대호는 1회에 3실점 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1개의 안타도 맞지 않는 피칭을 선보였다. 16강전 대구상고와의 경기에서 베이스 러닝 도중 에이스 이정호와 부딪히는 불운이 있었으나 동기생 좌완투수 고광선의 활약으로 6-2 승리를 거뒀다. 8강전 춘천고와의 경기에서 6-2 승리 당시 승리투수였다. 준결승전 추신수, 정근우가 버틴 부산고와의 경기에서 1-8로 패했고 김백만이 완투승을 거뒀다.
고3이던 2001년 청룡기 준결승전에서는 경기고와의 경기에 등판, 9이닝 1실점 20탈삼진 완투승을 따 내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결승전에서는 시즌 2관왕을 노리던 광주진흥고를 꺾고 승리하였다.[2][3] 청룡기 최종 성적은 4경기 등판해서 29⅓이닝 7자책 53탈삼진에 4승 평균자책점 1.82. 말 그대로 괴물이 따로 없었다. 거기에 청룡기 최우수선수상, 최우수투수상, 수훈상을 싹쓸이했다.
2. 미국 시절
시카고 컵스 시절 |
당시 박찬호의 성공으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국내 팜의 유망주를 찾기 위해 대한민국을 자주 찾던 때였으며, 당연한 순리인지 모르지만 미국 메이저리그 팀 시카고 컵스와 1라운더급의 규모인 160만 달러의 계약을 맺어 마이너리거로 활동하면서 메이저리그 콜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2003년의 물수리 사건[4]을 겪으면서부터 점차 야구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5]
2004년 후반기 즈음에 당한 팔꿈치 부상으로 구속이 떨어졌고, 2006년 5월 29일에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올랐지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맞붙었던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1과 1/3이닝 동안 4홈런을 맞고 7실점6자책점을 기록하며 후 조기 강판당하고 다음 날인 그의 생일에 마이너리그로 쫓겨났다. 이미 상실한 구위와 계속된 잔부상에 시달리며 류제국은 기대치를 전혀 채우지 못한 채, 외야수 앤드류 로페스와 투수 그렉 라인하드를 상대로 탬파베이 레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첫 승리(구원승)를 거두었지만, 이게 메이저리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이팀 저팀 돌아다녔지만 고질화된 팔꿈치 부상 때문에 확실한 자리를 잡을 수 없었고, 결국 2008년 시즌 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방출된 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이적했으나 시즌 시작 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웨이버 공시되었다. 이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류제국을 영입하려고 했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이적을 거절당하며 2009년에는 무적 선수로 남았다. 이듬해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을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비자 문제로 합류가 늦어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마저 방출당하며 이대로 야구 인생이 끝나나 싶었다.
3. 영구 귀국
결국 뛸 팀을 찾지 못한 그는 팔꿈치 부상을 안은 채 2010년 4월에 충격적인 영구 귀국 선언을 한다. 귀국 후 신검을 받은 그는 재검 끝에 팔꿈치 부상을 사유로 그 해 6월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6] 귀국 후 자신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있는 LG 트윈스 입단을 타진했다. 하지만 아직 미필이었던 그는 병역 문제를 더 이상 미룰 방편이 없다시피해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고양시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며 2013년 복귀를 목표로 병역과 재활을 병행했지만, 오랜 기간 실전 피칭을 중단한 상태였던 류제국이 어느 정도의 투구를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로 보였다. 박동희 기자의 트위터에 따르면 트윈스 구단은 메디컬 체크를 검토한 후에 영입을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이후 당장 몸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는지, 소집 해제를 눈 앞에 둔 2012년엔 5월 중순부터 일주일에 세 번 구리구장으로 가 공을 던지고 몸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2009년 10월까지도 구리 구장에서 공을 던졌다고 했다.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재활에 매진하다가 최근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때 페이스북을 했는데[7], LG로 올 거냐는 팬의 질문에 명확히 답을 하지 않아 다시 다른 리그로 진출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으나, 위의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본인의 의지도 그렇고, 소집 해제 후 곧바로 LG 트윈스에 입단할 것으로 보였다.
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계약금 문제 때문에 난항을 겪었다. 류제국 쪽은 봉중근이 입단할 당시의 금액을 원하는 반면, LG는 부상 경력 때문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계약금 문제로 엘지와 틀어졌는지 통수 치고 일본으로 가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고 했는데, 자신의 팬카페에 직접 해명하는 글을 올렸다. 오히려 봉중근급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주장했고, 협상이 잘되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계약할거 같다라는 글을 남겼다. 참고로 일본행 기사를 쓴 기자는 이종범 LG 코치설을 썼던 성환희 기자였다.
그런데 다시 돌연 미국으로 갔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게 문제가 되는게, 그 동안 LG 트윈스로부터 온갖 지원을 다 받아놓고 연봉이 맘에 안 든다고[8] 그냥 비행기를 타 버린 것이다. 서로의 입장에 대한 온갖 썰이 나돌었지만 일단 중론은 메이저리그 통산 3시즌 동안 고작 39⅔이닝에 7점대 방어율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왔으면 얼마를 주든 감사히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네이버 댓글창이든 야갤이든 LG 트윈스 갤러리[9]든 엠팍이든 대동단결하여 류제국을 깠다.
또 다른 기사에 의한 협상과정의 전말은 이렇다.
1차 협상: 류제국 13억 원 vs. LG 8억 원
2차 협상: 류제국 10억 5천만 원 vs. LG 9억 5천만 원
3차 협상: LG 다시 1차협상 때 제시 금액인 8억 원을 다시 꺼내들었고 이에 열받은 류제국 미국행.
2차 협상: 류제국 10억 5천만 원 vs. LG 9억 5천만 원
3차 협상: LG 다시 1차협상 때 제시 금액인 8억 원을 다시 꺼내들었고 이에 열받은 류제국 미국행.
그래도 결국은 LG 입단 초읽기에 들어갔고, 먼저 미국행이나 협상과정의 기사들을 부정하고 계약사항의 모든 것들은 구단에 일임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2013년 1월 31일 연봉 1억, 계약금 5억 5천만 원에 계약했다. 협상 과정에서 오가던 제시액인 8억이나 10억 등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금액에 계약한 셈.
3.1. 류제국의 실패 이후 유망주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논란
류제국뿐만 아니라 많은 고교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거의 꿈을 안고 마이너리그로 갔지만, 그 중 성공한 선수는 추신수 한 명뿐이다. 대학교까지 확대하면 한양대학교 재학 중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와, 말도 안되게 짧은 기간동안 마이너리그 씹어먹고 승격한 김병현 정도밖에 없다. 마이너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거나 메이저리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온 선수들이 많아지며, 이래저래 '국내에서 데뷔하고 잘해서 미국 가는 게 좋아 보인다'는 의견이 목소리를 얻고 있다. 심지어 류제국 이후에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직행한 선수들은 메이저리그를 밟는 것조차도 못하고 있다. 남윤성을 시작으로 30명 이상 미국으로 직행하였으나,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룬 선수는 최지만, 박효준, 배지환 세 명밖에 없다.[10] 결국 AAAA리거가 된 데다가 메이저리그 콜업에 실패한 선수들은 모두 포기하고 대한민국으로 귀국(+병역)한 데다, 대한민국에서 드래프트 직후 방출당하거나 아예 드래프트조차 못 되면서 미국에 간 것을 후회하는 선수도 있다.가뜩이나 마이너리그는 소위 '끌어올려주는' 아시아 야구 시스템과 달리 '떨어뜨리는' 시스템인데, 주전이 되기 위한 레벨도 AA~AAA리그 정도인 KBO와 그것을 한참 뛰어넘어 메이저리그 레벨까지 올라가는 것은 차이가 굉장히 크다.
결국 '대한민국 선수들은 대한민국에 남아서 국내 리그를 정복한 뒤 가야 한다' vs '어릴 때 가서 마이너리그를 통과하는 걸 무작정 말릴 순 없다' 사이의 논쟁은 류제국 하나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며, 누가 옳고 그름을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3.2. 2013 시즌
2013 KBO 리그 승률 1위 |
2군에서 몸을 만들며 시즌을 시작했다. 퓨처스 리그에서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퓨처스 리그에서 뛰는 1군 투수들의 상당수가 이 정도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 때문에 마냥 기대를 걸 상황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혜르노빌조차 퓨처스 리그에서 1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로 1군 리그와 퓨처스 리그의 격차는 크기 때문이다.
착실히 몸을 만들어 최고 구속이 140km/h 중반까지 나왔다. 김기태 감독은 류제국의 몸이 100% 완성돼야 1군 콜업을 할 것이며 그 시기는 6월 쯤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그리고 생각보다 컨디션이 빨리 올라왔는지 5월 19일 잠실에서 열린 KIA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그리고 이 날부터 LG 트윈스에서 제국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이날 경기는 김진우와의 맞대결로, 고교야구 시절 최고의 투수였던 둘의 대결로 기대를 한껏 모았지만, 김진우는 LG 타자들에게 공략당하며 4⅔이닝 동안 7실점(3자책)을, 류제국 또한 홍재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이후 6회 들어 나지완에게 다시 투런홈런을 맞은 뒤 내려갔다. 이 날 류제국은 5⅓이닝 81투구수 5피안타 2피홈런 2사사구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4:7로 이겨서 승리 투수가 되어 대한민국에서의 첫 승을 선발승으로 따냈다.
그리고 5월 26일 잠실에서 열린 SK전에 선발 등판하였다. 4⅓이닝 동안 94개의 공을 뿌리면서 피안타 6개와 볼넷 4개를 맞으면서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위기 상황마다 꾸역꾸역 막으면서 결국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류제국이 내려간 이후 팀은 5명의 투수들이 무실점으로 막아내다가 결국 9회말에 정의윤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스코어 0:1의 승리를 거두었다.
6월 29일 잠실 SK전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팀은 영봉승으로 승리.
6월 말까지 본인은 3승을 챙겼지만 등판한 7경기 중 6경기가 팀 승리로 이어지는 등 승리의 아이콘이 되었다.
7월, 8월에도 총 6경기에 나와 2승 2패를 기록했고 그 중 4경기를 이겼다. 특히 꾸역꾸역 버티는 변태 피칭으로 무사 만루에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내기도 하는 등 위기 속에서도 타자를 잡아내는 것이 특징.
결국 9월 18일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시즌 10승째를 거뒀다. 이는 해외파 선수의 복귀 첫 해 최다승이다. 그 전까지 최고 성적은 2007년 이승학의 7승이었다. 게다가 10승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승률왕 경쟁에 나섰다.
기존에 레다메스 리즈, 우규민이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데에 이어 류제국마저 10승 투수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LG 트윈스는 2011년에 이어 다시금 10승 선발 3명을 보유하는 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0월 5일 시즌 마지막 경기, 팀의 2위 탈환이 달려있는 중요한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해 7⅓이닝 2실점 호투로 12승을 따내 시즌 끝까지 자신이 왜 승리의 아이콘인지 증명한다. 팀은 스코어 2:5로 승리하며 이날 한화에게 진 넥센 히어로즈에게 2위를 뺏어오는데 성공하며 해피엔딩으로 페넌트레이스를 끝냈다. 비록 올 시즌에 합류했지만 류제국도 그동안 LG의 서러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선수들과 같이 눈물을 보였다. 또 자신도 힘든 선수 생활을 겪었기에 팀에 보탬이 되는 좋은 성적을 올린 것에 대한 눈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승과 승률만 봐서는 에이스급의 좋은 성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운이 상당히 따른 성적이다. 볼넷 허용 비율(BB/9)은 무려 4에 육박하며, 평균자책점이 3.87인 것에 반해 FIP는 무려 4.64이다. WAR는 1.94로 무난한 수치이다. 사실 LG팬들도 리그 씹어먹는 성적을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시즌 내내 잘 버텨주기만을 바랐다. 실제로도 평균 5이닝 이상을 먹어주었고 거기에 운이 따라주면서 팀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거기다 류제국이 없었으면 그자리에 들어갈 쓸만한 선발 후보가 정말 너무나도 없었기에 비판하는 여론이 일어도 금방 수그러들었다.[11][12]
10월 16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⅓이닝 109투구수 4피안타 4볼넷 1사구(死球) 8탈삼진 2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69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패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고, 10월 16일 경기가 그의 2013년 플레이오프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3.3. 2014 시즌
자세한 내용은 류제국/선수 경력/201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3.4. 2015 시즌
부상으로 5월 9일 kt전에야 1군에서 첫 경기를 뛰었다. 5.2이닝 3실점을 기록했으나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5월 17일 SK전에서는 7이닝 4실점을 기록했고 타선의 도움을 받으면서 시즌 첫 승을 기록하였다.
5월 23일 롯데전은 3.1이닝 4피홈런 9실점으로 말 그대로 멸망하고 말았다. 팀은 11:19로 패했고 당연히 류제국이 패전 투수가 되었다.
8월 4일 NC전에서 1회에만 7실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팀은 8:1로 패했다.
8월 9일 두산전에서는 6.1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8월 15일 KIA전에서는 7이닝 2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플러스를 기록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또 다시 패전투수가 되었다.
8월 27일 SK와의 경기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불펜의 방화로 또 다시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2015년 11월에 열리는 국제야구선수권대회 WBSC 프리미어 12의 45인 예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팬들은 박종훈[13], 조무근과 함께 예비 엔트리 최대 미스터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28인 최종 엔트리에서는 제외되었다.
9월 13일 드디어 불운을 딛고 시즌 4번째 승리를 따냈다!
시즌 종료 후 LG 트윈스의 새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LG에서 투수가 주장을 맡게 된 것은 2003년 이상훈 이후 13년 만이다. 기존 주장이 딴 팀으로 가서 바뀌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애초에 엘지의 주장 임기는 2년이다.[14] 즉 이진영이 가든말든 주장 투표는 진행되었을 것이란 소리. 실제로 이진영 본인도 9월경에 주장을 내려놓는 것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인터뷰를 하기도.[15]
당시 개표방송
3.5. 2016 시즌
자세한 내용은 류제국/선수 경력/2016년 문서 참고하십시오.2016년 9월 18일 잠실 삼성전에서 생애 첫 완봉승을 달성하고.
아마도 가슴에 있는 캡틴 상징이 류제국 선수에게 더 큰 힘을 준 것 같습니다. 류제국 선수는 책임감이 넘칩니다. 자기 야구 하기도 바쁜데, 주장 역할을 맡으며 팀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습니다. 주장의 자존심으로 힘들었던 7회, 8회를 넘기는 모습이 제 눈에는 보였습니다.
지면을 빌어 처음으로 담당기자와 선수가 아닌, 동갑 친구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류제국, 오늘 진짜 멋졌다."
자랑스러운 친구 류제국에게 "진짜 멋졌다". 2016년 와일드카드 2차전이 끝난후.
지면을 빌어 처음으로 담당기자와 선수가 아닌, 동갑 친구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류제국, 오늘 진짜 멋졌다."
자랑스러운 친구 류제국에게 "진짜 멋졌다". 2016년 와일드카드 2차전이 끝난후.
3.6. 2017 시즌
지난 시즌의 대활약 덕에 지난 시즌 연봉 1억 8천만 원에 비해 94.4%나 오른 3억 5천만 원에 연봉도장을 찍었다. 4월 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 올 시즌 첫 등판하여 5이닝 3실점을 기록하고 시즌 첫승을 올렸다.4월 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 등판하며 6이닝 4실점 1자책점으로 두번의 실책과 전준우의 3점홈런이 이어지며 고생했으나 그 이후 다양한 변화구와 컨트롤을 앞세워서[16] 6이닝을 채웠고 그 이후 타자들의 맹공격이 이어지며 2승째를 거두고 자책점이 1점에 불과해서 결과적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단 두경기에서 직구 최고구속이 138~139km에서 놀고 있어서 송짬뽕보다 덜 나오는 상황이라 구속 반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시즌 중반부터 고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5월 중순 이후 부진에 빠지면서 현실이 되었다.
4월 14일 kt를 상대로 7이닝 2실점을 하며 3승을 거둔다.
4월 20일 한화를 상대로 5이닝 3실점하며 4승을 거둔다.
4월 26일 SK타선을 상대로 6이닝 1피안타 무실점이라는 호투를 펼치면서 시즌 5승을 거두었다. 뒤이어 올라온 불펜투수진도 단 한 점도 실점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SK의 연속홈런기록까지 끊어버렸다.
5월 2일 NC를 상대로 7이닝 2실점을 했으나 팀타선이 침묵하며 첫 패를 안았다.
5월 7일 두산을 상대로 5.1이닝 3실점을 하며 6승째를 거두었다. 유희관과 맞대결에서 첫 승리다.
5월 13일 한화를 상대로 4.2이닝 6실점 (3자책)을 하며 2패째를 안았다. 이 경기 이후 휴식차원으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5월 24일 1군으로 돌아와 꾸준히 선발 등판했지만 한 달 가까이 승리를 올리지 못했다.
6월 16일 기아전에서 거의 40일 만에 시즌 7승째를 거두었다.
7월 9일 1군에서 제외됨으로써 전반기를 7승으로 마감했다. 승리는 준수하지만 WAR은 0.67로 투수 중 57위, ERA 4.48로 다른 성적은 별로 좋지 못하다.
7월 20일 kt전에서는 1회초에 1실점했으나 곧바로 타선이 1회말 대거 6점을 뽑으며 쉽게 8승을 거둘까 싶었지만... 5회초 볼질을 하면서 점수를 퍼줘 승리투수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강판되었다. 다행히 팀은 승리. 경기 중반을 백창수가 팀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갔고 후반에 이천웅이 적시타를 2연속 치면서 더운 날에 진땀승을 거두었다.
7월 27일 넥센전에서는 6.1이닝 3실점으로 QS를 기록했지만 타선이 점수를 뽑지 못하면서 패전위기에 몰렸으나 9회말 극적인 끝내기 승리로 팀이 승리하면서 패전은 면하게 되었다.
8월 19일 삼성전에서는 거의 열흘의 휴식시간이 있었음에도 1회부터 3실점을 하면서 화려하게 출발했다. 4회만에 96구로 강판되었고 다행히도 뒤이어 올라온 유원상 진해수 이동현이 1점도 내주지 않았고, 제임스 로니의 적시타로 팀은 역전승을 거뒀다.
주장이지만... 사실 지금 있는 선발들 중에서 임찬규를 제외하고 제일 못 던진다. 심지어 임찬규보다 ERA도 높다!
사실상 LG팬들이 믿고 거르게 되었다. 어쩌다가
9월 14일 kt와의 경기에서 타선이 라이언 피어밴드를 상대로 5점씩이나 지원해줬지만 역시나 3회부터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하더니 다음타자는 문선재의 실수로 출루 그리고 연속안타를 맞고 그 와중에 부상을 당해 강판되었다.
이로써 사실상 류제국의 2017년 시즌은 마감하게 되었다.
3.7. 2018 시즌
스프링캠프 청백전에서 1.2이닝 3실점했고, 이 과정에서 김현수에게 홈런을 맞고 '이래서 내가 김현수를 데려오자고 한 거다'는 발언을 해 또 욕을 먹었다.미세한 허리 통증이 있어 무릎 부상을 당한 이형종과 함께 조기 귀국했다. 이형종은 응원해도 류제국은 '이제 스카우트로 전업하라'는 식의 반응들이 많다...
아직 공도 못잡고 있다고 한다. 이러면 1군 복귀는커녕 은퇴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류제국의 빈 자리에 들어간 대체 선발 김대현, 손주영, 김영준, 신정락이 부진하면서 류제국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무슨 아직 2군등판 기록도 없다.
봉중근은 나름 7월 말 복귀를 잡아놓은 듯한데[17] 류제국은 정말로 아무 소식도 없다. 3월에 '김현수를 잘 데려왔다'라고 말한 이후에는 언론에서 언급되는 일도 전무.
디스크로 인한 허리 통증이 또 재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복귀해서 불안정한 LG 선발진에 힘이 돼주길 기대했지만 8월 6일 디스크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감하며 무산. 재활에는 8개월이 걸릴 예정이어서 빨라야 2019년 4월에나 복귀가 가능하다.[18]
우여곡절 끝에 2019년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되어 훈련을 떠났다.
3.8. 2019 시즌
어렵사리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게 되었지만 전망이 밝지 않았다. 이미 서른 중반을 넘은 나이에 허리 통증이 재발하여 4월에나 복귀가 가능하지만 그때 가도 류중일이 차우찬이나 김대현이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 류제국을 선발 로테이션에 넣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4월 17일 삼성 2군과의 퓨처스리그에 구원 등판하여 1년 7개월 만에 마운드에 올랐고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4월 23일 두산 2군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5~6월 중 1군 복귀를 목표로 순항중이다.
시즌 초만 해도 선발 복귀가 힘들게 생각되었지만 기존 선발이던 임찬규와 배재준이 부상과 부진으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었고, 대체 선수로 기대를 받은 장원삼도 못 미더운 모습을 보여주며 선발 로테에 복귀할 가능성이 생겼다.
드디어 5월 18일 NC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정말 오랜만에 복귀전을 치르게 되었다. 비록 팀은 졌지만 5이닝 3실점(2자책점)으로 호투하며, 4선발에 안착할 가능성이 생겼다.
5월 30일 키움과의 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였다! 경기를 잘 치러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류중일 감독이 부상에서 복귀한 임찬규의 보직을 불팬으로 정하면서 선발의 한 축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쉽게도 7회에 올라온 정찬헌이 동점을 허용하며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 하였다.
6월 22일 잠실 KIA전에서는 1회에 최형우에게 투런 홈런을 맞은 것을 포함해 3실점을 하고 그 이후로 6회까지 쭉 무실점으로 버텼지만 타선이 단 2점밖에 뽑질 못해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의외로 LG의 모든 선발투수들 중 이닝당 평균 투구수가 2위라고 한다. 1위는 이닝당 평균 14개씩 던지는 윌슨이고 2위가 이닝당 16개 극초반으로 끊는 류제국.
8월 7일 KIA전에서는 채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7실점으로 말그대로 탈탈 털리며 팀의 상승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5회에 들어서 탈탈 털리고 있는데도 3점차 리드였기에 승리투수를 만들어주려 했던 류중일 감독의 쓸데없는 고집으로 기어코 역전을 허용한 뒤에 강판, 팀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8월 13일 키움과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하여 5회에 제리 샌즈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등 5이닝 3실점을 기록한 후 곧바로 카를로스 페게로의 역전 만루홈런으로 팀이 역전에 성공하여 시즌 첫 승 요건을 갖추었지만 8회에 동점이 되면서 첫승은 또 날아갔다. 팀은 9회 끝내기로 승리.
8월 22일 어깨 통증을 이유로 1군 엔트리에서 빠졌고 다음날인 8월 23일 바로 은퇴를 선언했다. 어깨 통증보다는 불륜 논란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구단도 이를 수용하였으며, 류제국은 공식 인터뷰를 거절하였고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 동안 팬 여러분께 너무도 과분한 사랑을 받은 점, 가슴 깊이 감사 드린다." 라는 은퇴 심경을 밝히고 은퇴하였다.은퇴 발표 불륜관련의혹
10월 23일 선수단 정리 때 공식적으로 은퇴 처리되었다. 오랜 암흑기를 끊어내고 2010년대 중반 팀의 중흥기를 이끈 일등공신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한 마지막이 아닐 수 없다.
[1] 덕수정보고 2년 후배로 이용규와 최진행이 있다.[2] 광주진흥고는 청룡기 직전 개최된 대통령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3] 진흥고는 청룡기 결승전 전날에 열린 성남고와의 준결승전에서 많이 던진 관계로 김진우 대신 김경선이 선발 투수로 등장했다.[4] 2003년 류제국이 던진 공에 미국에서도 천연기념물인 물수리가 공에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플로리다 주 법원이 류제국에게 사회봉사 100시간을 내렸다.# 트레이너의 만류에도 여러 차례 공을 던져 물수리를 맞혔고 그의 에이전트가 문화적 차이라고 변명은 했지만 지역 신문에선 그 사건을 크게 다뤘고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거론되었다. 이를 두고 곽백수는 트라우마에서 새를 공으로 치면 화내는 백인들이 사람(이라크인)들을 수류탄으로 던져 죽이는 걸 보고 즐거워한다고 비꼬는 걸 그리기도 했다. 물수리가 플로리다 주에서 천연기념물인 데다가, 잘못도 없는 야생동물을 괴롭혀 죽이는 걸 옹호할 수는 없다. 외국에서는 동물 학대에 대한 잣대가 꽤 엄격하다.[5] 2013년의 인터뷰에서 '천연기념물인 줄 알았다면 안 던졌을 것이다'라며 물수리 사건에 대해 해명을 한 것을 보면 여전히 동물 학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듯하다. 위의 설명에도 적혀있듯이 문제의 본질은 물수리가 보호종이라는 것이 아니라 죄 없는 동물을 본인의 재미만을 위해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인터뷰[6] 애초에 중졸이라 그 전부터 현역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졸이 현역을 갈 수 있게 바뀐 것은 1985년생 이후 출생자부터이다.[7] 현재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8] 류제국과 LG 구단이 생각한 금액 차이가 상당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서재응, 봉중근 급으로 요구를 했다고. 첫 번째 협상 때 류제국은 13억 원, LG는 8억 원을 제시했다.[9] 특히 LG 트윈스 갤러리는 안그래도 늑장 계약에 짜증이 나 있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버리니 아주 갈아마실 기세로 깠다. 통칭 류가놈.[10] 이 중 최지만이랑 배지환은 메이저에서 나름 성과를 남겼으나 박효준은 메이저리그를 밟아 보는 데 그치기만 했다.[11] A: 류제국 거품이다 → B: 류제국 쓸래, 임찬규 쓸래? → A: ...갓제국느님. 보통 이 순서였다.[12] 한 시즌을 잘 버티면서 선발 10승과 WAR 2를 기록하는 솔리드한 선발을 구하거나 키우기는 사실 힘든 일이다.[13] 다만 언더핸드 투수 특성상 생소한 투구폼과 구질을 바탕으로 하여 미국, 중남미 타자들에게 최강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박종훈을 예비 엔트리에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정대현, 박석진 등 옆구리 투수들을 발탁해 국제전에서 잘 활용하여 좋은 성적을 낸 사례가 많기 때문.[14] 2년 단임제로 연임 불가하나 한번 쉬고 나면 다시 할 수 있다.임기 기간만 제외하면 우루과이 대통령제와 비슷.[15] 이진영이 팀을 떠난 2차 드래프트는 11월 29일에 이루어졌다.[16] 소위 '더러운' 볼 끝을 만들어서 느려진 구속을 커버하는 듯?[17] 그러나 7월이 지났는데도 복귀하지 못했고 9월 말 은퇴를 선언했다.[18] 허리 인대가 석회처럼 굳으면서 이게 허리 신경을 눌러 2달 뒤에 휠체어를 타야할 수도 있다는 소견까지 들었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