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0:10:46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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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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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200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마크 슈워처 109회 1993.7.31 2013.9.7
2 팀 케이힐 108회 2004.3.30 2018.11.20
}}}}}}}}}}}}}}} ||
호주의 前 축구선수
파일:Mark Schwarzer.pn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마크 슈워처
Mark Schwarzer
출생 1972년 10월 6일 ([age(1972-10-06)]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시드니
국적
[[호주|]][[틀:국기|]][[틀:국기|]]
신체 196cm, 95kg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마르코니 스탤리언스 (1990~1994)
SG 디나모 드레스덴 (1994~1995)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95~1996)
브래드포드 시티 (1996~1997)
미들즈브러 FC (1997~2008)
풀럼 FC (2008~2013)

첼시 FC (2013~2015)
레스터 시티 FC (2015~2016)
국가대표 109경기[1] (호주 / 1993~2013)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기록
5. 마크 슈워처에 대한 언사6. 여담

[clearfix]

1. 개요

20년 동안 호주의 골문을 지켜낸 골키퍼이자 미들즈브러풀럼의 레전드격 골키퍼이며 196cm라는 큰 키에 반사신경도 좋았던 골키퍼이다. 유일하게 비 영국인 골키퍼 프리미어리그 500경기 이상 출전하였으며 미들즈브러 FC 소속으로 366경기 출전과 클린시트 151경기를 달성하여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 조건을 충족하였다.[2]

슈워처는 시드니 북서부의 준 시골 교외 지역인 노스 리치몬드에서 태어나 노스 리치몬드 공립학교와 콜로 고등학교를 다녔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마크 슈워처/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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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대표 경력

호주 U-17 및 U-20 대표팀에서 뛰었던 슈워처는 1993년 캐나다와의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로버트 자비카가 17분에 퇴장당한 후 교체 선수로 출전해 국제 데뷔전을 치렀다.

1993년 국가대표로 데뷔하여 10여 년 넘게 자국 호주의 수문장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2005년, 2006 FIFA 월드컵 독일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속에 슈워처가 2번의 슛을 막아내어 32년 만에 조국이 월드컵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2006년 초, 호주가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에서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이적하였고, 한편 월드컵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오심인 듯 오심으로 허용했지만[3], 후반 막판에 팀이 내리 3골을 넣으며 월드컵 첫 승리를 거뒀고, 2차전에서 브라질에 2골을 허용해 패했지만, 3차전인 크로아티아와의 경기는 출전하지 않았고, 대신 팀은 이 경기를 통해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 이탈리아를 맞아 선전했지만, 후반 막판 루카스 닐파비오 그로소의 발목을 걸었다는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했고[4], 실점하고 패해아며 결국 16강에서 대회를 마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변함없이 대표팀을 이끌었는데, 자국이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이적해서 처음으로 AFC 아시안컵에 출전한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서는 8강에 그쳤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조별리그 3위로 떨어졌고,[5]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일본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011년 1월 알렉스 토빈의 출전 기록을 넘어 호주의 최다 출전 남자 선수가 되었으며 41살 때이던 2013년에 국가대표 은퇴 선언을 했다. 통산 기록은 109경기 출전.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이자 40살 336일로 최고령 선수이고, 44회로 최다 클린시트와 20년 38일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대표팀에 몸을 담으며 호주 대표팀 최초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기록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10년 02월
  • 풀럼 FC 올해의 선수: 2008-09
  • PFA 알렉스 토빈 OAM 메달: 2009
  • 호주 프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 2010
  • 호주 축구 명예의 전당: 2021
  • 서브웨이 사커루 세기의 팀: 2022 [6]

5. 마크 슈워처에 대한 언사

많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 선수를 한 줄로 설명하면 EPL에서 15시즌 동안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했습니다.
한준희 #
그는 나와 함께 할 때마다 더 좋아졌고 이번 시즌 그는 우리에게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여타 골키퍼들과 다른 방식으로 경기에 영향을 미치며 걸출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
골키퍼로서 필요할 때 그는 우리를 위해 거기에 있었고 사람으로서, 프로로서 조직에서 놀라운 사람이었다. 나 자신과 스태프, 선수들을 대신해서 빅맨을 그리워할 것이며 그가 레스터에서의 새로운 삶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주제 무리뉴 #

6. 여담

  • 그의 부모인 한스-요아킴(Hans-Joachim)과 도리스(Doris)는 1968년 서독 슈투트가르트에서 호주로 이주했으며 본인 역시 유창한 독일어를 할수 있다.
  • 2007년 6월 닐 몬타냐나 월레스와 함께 "Megs and the Vootball Kids"라는 짧은 아동 소설을 공동 집필하였다.#
  • 2009년에 오스트레일리아 훈장을 받았다.#
  • 아들인 줄리안 슈워처 역시 축구선수인데 마크 슈워처의 아내가 필리핀에서 호주로 이민 간 이민자 출신 집안이라 아들은 본인 어머니, 즉 마크 슈워처 아내의 혈통을 따라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뛰고 있다. 줄리안 슈워처는 본인의 아버지가 활약했던 풀럼의 유스팀에서 뛰기도 했는데 큰 재능은 없는지 1군 무대까지는 오르지 못했고 이후에 잉글랜드 세미프로 리그를 전전하다가 2022년부터 필리핀 리그에서 뛰고 있다.


[1]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2] 유럽리그 시즌 통산 686경기 출장[3] 나카무라 슌스케가 중거리슛을 날릴 때 다카하라 나오히로가 슈워처 앞에서, 야나기사와 아쓰시가 슈워처를 밀쳐서 방해했다.[4] 페널티킥을 줄만한 상황이었는지 논란이 일었다.[5] 1승 1무 1패여서 잘 하면 두 대회 연속 16강에 갈 수 있었지만, 하필 초장부터 독일한테 4대0으로 참패한 것이 결정타가 되면서 같은 성적을 낸 가나한테 골득실에서 밀리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6] 2022년은 사상 첫 호주의 A매치가 1922년 더니딘에서 시작된지 100년이 되는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