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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잉글랜드 맨체스터 지역의 문화를 설명한다.맨체스터는 유럽 최초의 산업혁명이 시작한 도시이자, 과거부터 음악을 위시한 예술의 도시이며 축구 명문 도시이다. 축구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의 도시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왔다.
2. 음악
영국 음악계의 전설인 비틀즈가 있는 리버풀에 비하면 명성은 약간 떨어지지만, 맨체스터도 상당히 많은 가수와 밴드를 배출한 도시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는 가까운 리버풀의 영향을 받아 더 홀리스, 더 다코타스, 프레디 앤 더 드리머스, 허만스 허미츠, 더 마인드벤더스 등의 비트 밴드(머시 비트 밴드들, 즉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곳이었다.[1] 이후 1970년대에는 전설의 펑크 록 밴드 버즈콕스가 활동했다.[2]1980년대 들어서는 더 스미스, 조이 디비전을 시작으로 조이 디비전의 후신인 뉴 오더, 스톤 로지즈, 제임스 등의 여러 재기발랄한 밴드들이 1980년대 후반 매드체스터라는 음악 조류를 이끌었다. 이 시기의 맨체스터를 대표하는 레이블은 팩토리 레코드이다. 그리고 맨시티의 광팬이자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오아시스가 등장하며 블러를 제대로 밀어내버리고, 1990년대 브릿 팝 세계를 완전히 오아시스의 것으로 먹어버린 후 세계를 뒤흔들었다.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직후 추도 행사 동안 맨체스터 시민들이 즉흥적으로 부른 노래도 God Save the Queen이 아니라 오아시스의 명곡인 Don't Look Back In Anger였을 정도로 맨체스터 시민들에게 오아시스는 특별한 존재다.[3]
3. 스포츠
3.1. 축구
스포츠 중에서는 축구로 매우 유명한 도시이다. 프리미어 리그를 보유한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유명한 두 프로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맨체스터 시티 FC가 이곳을 연고지로 하고 있다. 맨체스터 더비도 참조.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32시즌 중 맨유가 13회, 맨시티가 8회로 전체 시즌의 3분의 2에 달하는 총 21회의 우승을 두 팀이 양분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잉글랜드에서 최초로 맨유, 두번째로 맨시티가 트레블을 달성한 유이한 클럽들이다. 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한국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이 뛰었던 팀으로 소속된 7년 동안 리그 4회 우승의 순간을 함께 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경우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맨체스터시에 위치해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정확히 따지면 맨체스터의 바로 옆 도시인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트래포드에 위치해 있으므로 엄밀하게 도시 맨체스터는 아니다.
때문인지 국립 축구 박물관이 맨체스터에 지어졌다. 빅토리아 스테이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
3.2. 태권도
'유럽 태권도의 수도'라고 불리며 현 그랑프리 시리즈 최다 개최 도시다. 태권도 경기에 유료관중이 가능하며 4천석 이상 매진한 전적이 있는 몇 안되는 도시 중 하나다. 엘리트 선수가 12명 밖에 없던 시절부터 지원해왔으며 2007년 전용 트레이닝 센터를 건립하였다. 2012 런던올림픽 이후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자 2016년 엘리트와 생활체육을 통합한 국립 태권도 센터를 개장하였다.- 그랑프리 시리즈 2014 2015 2018 2022
- 그랑프리 파이널 2013 2023
- 유럽선수권대회 2012 2022
- 세계선수권대회 2019
4. 기타
- 맨체스터는 영국내 산업혁명이 시작한 도시로 유명하다. 그답게 맨체스터를 상징하는 심볼은 일벌이다. 맨체스터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산업혁명의 역군임을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도시 내에서도 일벌이 그려진 것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다.
- 과거 영국은 물론 유럽 최대의 게임 유통사였던 오션 소프트웨어의 본거지가 영국 맨체스터에 있었다. 다만 1996년에 인포그램즈와 합병 후 런던으로 본사가 이동했다.
[1] 한국에서는 모든 문화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점과 달리, 서양의 경우 로컬 씬의 존재가 새로운 음악의 창출 및 신진 뮤지션 등용의 발판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마다 클럽이 있고 유통망이 있으므로, 지역 특유의 음악와 분위기가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이와 달리 대중문화가 오랫동안 억압되어 왔고, 지역문화 발전에는 더더욱 냉대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로컬 씬의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황무지화되었으며, 이는 조용필이 처음에 활동하던 곳이 서울이 아닌 부산이었음에 기반한다.[2] 섹스 피스톨즈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맨체스터에 와서 공연하고 간 것이 신호탄이었다고 한다.[3] 참고로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영국 왕실 훈장을 받게 된다면 그냥 거절할 것이라고 발언한 바도 있는데, 영국에선 진보 세력들이 왕정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 편이다. 한국같은 공화국에선 이미 좌우를 넘어 끝난 문제이나, 입헌군주제 국가에선 보수주의자(특히 왕당파)들이 왕정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고, 진보주의자들이 왕정 폐지, 공화국 설립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래서인지 입헌군주제 국가의 왕실은 오히려 진보 세력에 구애를 보내는 경우도 상당한 편이다. 일종의 여론 줄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