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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안국제공항의 역사를 서술한 문서이다.2. 연혁
2.1. 건설 이전
무안군 망운면은 연중 16일밖에 안개가 끼지 않는 독특한 기상조건을 가지고 있고 주변이 논밭이라 평탄하며, 높은 산이 없다는 특징 때문에 비행장을 짓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평이 있었다. 이미 1944년 8월에 일본이 지금의 무안공항이 있는 무안군 망운면에 군용비행장을 설립했지만 1년 후 일제가 패망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공항에서 500m 떨어진 목동리에만 가도 당시 일제가 건설하다 중단한 비행기 격납고가 아직도 방치되어 있다. #2.2. 건설 추진
1989년 정부는 수도권, 영동, 호남 3개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과 함께 전남 무안 일대를 신공항 부지로 선정하였고, 수도권 신공항은 화성 남양과 영종도 매립지 중 타당성조사를 통해 후보지를 확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 이후 수도권 신공항은 1990년 6월 영종도 매립지가 최종 부지로 확정되어 이후 실제 착공되었으나, 호남 신공항 계획은 목포공항 및 광주공항 확장안과 호남고속전철 건설 계획 등이 부각되었고, 선심성 공약에 대한 반대 여론 등이 겹치며 흐지부지되었다. 1990년 10월에는 안개발생비율 및 건설비용 등을 고려하여 광주공항 확장으로 낙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 1991년 1월 교통부가 발표한 국가 중장기 교통계획에서 목포공항의 확충 작업 완료, 광주공항의 확장 작업 착수, 호남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었으나 호남 신공항 건설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그러다 1993년 7월 26일에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를 계기로 본격적인 호남 신공항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94년 4월 19일에 공표된 제1차공항개발중장기기본계획에서 호남권신공항이라는 명칭으로 정책이 수립되어 무안은 국제선을 담당할 거점공항으로, 광주와 목포는 하위 위계인 국내선만을 담당할 지방공항으로 구체화된다. 7월 28일 교통부는 호남 신공항 건설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7월 30일 국회교체위에서 한화갑 등 민주당 의원들은 영종도 신공항 건설을 즉각 중단하고 무안 신공항 건설에 착수할 것을 주장하였다. # 목포공항의 민항기 취역, 광주공항의 국제선 부문을 대체하고자 했다.
목포공항은 활주로가 짧고, 계기착륙장치도 없었으며 지형과 기상 조건 역시 나빴다. 해안가라 안개가 자주 끼기도 하고, 2004년까지는 착륙로가 한 방향으로 제한되기도 했다. 2002년 결항률은 무려 32.8%로 한 해 최대였다.
1998년 정부는 대선 공약이었던 호남 신공항을 신규 국책 사업으로 추진했다.[1]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지 3주 후인 3월 20일 건교부는 무안군에서 호남 신공항 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를 열어 소음 대책, 접근 도로망 건설, 토지보상, 이주대책 등에 대해 주민들에게 설명하였다. # 같은 해 7월에서는 신설될 무안공항으로 접근하기 위한 무안광주고속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되었다. # 하지만 같은 해 8월 정부가 사업비가 1천억원이 넘어가는 신규 대형국책사업을 정권 임기 내에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이에 언론은 호남 신공항도 정권 임기 내에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보도했다. # 하지만 같은 해 9월 정부가 발표한 제2차 공항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에 무안공항이 포함되었다. # 같은 해 11월 국회 국감 자료에서 1999년 11월 무안공항 착공 계획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 같은 해 12월 제2차 공항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이 고시되었다.
한편 무안공항 건립 예정지 주민들은 특별단가보상, 집단 이주, 공항 우선 취업, 생활대책 보장 등을 요구하며 요구안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공항 건설을 결사 반대키로 결의하여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 1998년 12월 정부는 용지보상을 개시했다. #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기본조사조차 차질을 빚는 등 난항을 겪었다. # 주민들은 공항 건설 반대 및 이주민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삭발 투쟁을 벌이고, 공항건설지원소를 점거하여 농성하는 등 공항 건설에 큰 차질이 예상되었다. # # 1999년 6월에 본격적인 보상 업무가 시작되었다. # 보상금 배정지연으로 공항 건설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었다. # 부동산 폭등기에 접어든 1999년 한해 동안 무안은 전국 최고의 땅값 상승률을 기록했다. # # #
2.3. 건설 과정
1999년 12월 5일, 1,502억 원의 응찰가를 써낸 금호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되었다. 착공은 1999년 12월 말에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토지 보상 완결 문제 때문에 한동안은 진척이 없었고, 실질적인 착공은 2000년 상반기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8월 11일 무안국제공항 기공식이 열렸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 금호건설은 국내공항으론 유일한 턴키 방식으로 수주해 완공시켰다. 한편 활주로 건설현장에 들어가는 골재 납품 등을 금호건설과 안정남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의 첫째 동생이 운영하는 D 산업개발과 막내 동생이 재직중인 K 공사업체가 납품권을 독점하는 것에 대해 특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 # # # 무안공항 비리를 포함하여 여러 비리 사항에 연루된 안정남 장관은 국감에서 여러 비리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졸도하여 응급실로 실려갔고, 이후 근육암 때문에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어렵다며 장관직을 사퇴했다.공항은 1998년 초 정부가 처음으로 건설 계획을 추진할 당시 2001년 완공을 예정으로 보도되었지만, 착공 무렵에는 2002년으로 연기되었다. 이후 2001년 6월에는 편입토지 수용이 지연되어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못해 개항이 2003년으로 늦추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 이후에도 2005년, 2007년으로 계속 늦춰졌다. 총 3,056억 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었다.
2004년 감사원은 무안공항의 경제성 분석이 크게 부풀려졌다는 내용을 밝혀내고, 무안공항의 착공 및 개항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무안공항의 B/C값(비용 대비 편익) 산정 시 포함되지 말았어야 하는 공항임대 수익 등이 수익 산정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항 건설은 계속 추진되었다.
한화갑 의원이 무안공항 설립을 아주 강력히 추진해 한동안 무안공항은 '한화갑공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2.3.1. 김대중국제공항 개칭 여론
건설 당시부터 전남과 광주 지역에서는 무안국제공항을 김대중국제공항으로 명명하자는 여론이 높았다. 정치권에서도 김대중국제공항으로 개칭하자는 주장이 여러차례 제기된 바 있다.2001년 8월 이정일 광주 서구청장이 무안공항을 김대중공항으로 개칭하자고 주장했다. 이 구청장은 뉴욕의 ‘케네디 공항’, 파리의 ‘드골 공항’, 당시 ‘존 레논 공항’으로의 개칭을 추진중이었던 영국 ‘리버풀 공항’(현 리버풀 존 레논 공항)[2] 등을 예로 들며 “인권과 민주화의 성지를 방문하는 외지인들에게 광주나 무안, 목포라는 지명보다는 ‘김대중’이라는 이름이 훨씬 쉽게 연상될 것"이라며 김대중공항으로 개칭하자고 제의했다. #
이후 2004년 광주에서 김대중공항으로 명명하자는 얘기가 다시한번 흘러나왔으나 이렇다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
2007년 무안공항의 개항을 앞두고 무안과 신안에서 김대중공항으로 명명하자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 # #
박진우 전 무안군 의원 등은 김대중국제공항 추진기구 구성을 준비 중이며, 다양한 토론으로 지역 여론을 모아 김대중국제공항 개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7년 4월 무안·신안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김호산 후보가 지역 여론을 근거로 무안국제공항을 김대중국제공항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한화갑 의원 보좌관 출신인 김 후보는 김대중국제공항으로 개칭하여 "민주·평화·인권의 세계적 인물이며 자산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역의 관광인프라 구축과 지역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오랜 민주화운동 이력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낸 공로 등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 전 대통령의 이름을 공항명칭에 붙일 경우 지명도가 높아져 여러 유리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2007년 8월에는 당시 여당 당대표 출신이자 차기 대선 후보인 천정배 의원이 무안국제공항을 김대중 국제공항으로 개칭하자고 주장했다. #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또다시 지역 사회에서 김대중국제공항으로 개칭 여론이 높아졌다.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기자회견을 갖고 도민들의 뜻이 모아진다면 무안국제공항을 김대중공항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박 도지사는 노벨평화상 수상 등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2020년에는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광주의 군 공항과 광주공항 국내선을 무안으로 이전하고, 무안국제공항의 명칭을 평화와 화해의 상징을 담아 ‘김대중국제공항’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 #
홍준표 대구시장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지난 2021년 9월에 “통합신공항 명칭을 박정희 공항으로, 가덕도 신공항을 김영삼 공항으로, 무안 신공항을 김대중 공항으로 명명하겠다”고 밝힌 적도 있다. 김기현 의원도 “대구경북통합신공항 명칭을 박정희 공항으로 하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경북 지역 언론에서는 "이미 해외에서는 주요 국제공항 명칭을 자국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름을 붙여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케네디 공항, 워싱턴 DC의 레이건 공항, 프랑스 드골 공항,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 대표적이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지역 출신일 뿐아니라 세계 최대 빈국(貧國)이었던 한국을 근대화시켜 경제대국으로 만든 인물이다."면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3]
2024년 정승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또다시 김대중국제공항으로 명칭을 바꿀 것을 주장했다. 정 후보는 “수조원의 건설비가 들어간 무안국제공항이 잠에 빠져 들고 있다”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적 이미지를 확산시킨다면 공항을 홍보한다는 측면에서 국내외적 모멘텀이 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공항 홍보 효과가 큰 선택지가 될 것이며 동아시아 관문공항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2.4. 개항
2007년 완공되어 동년 11월 8일 개항하였다. 개항 후 목포공항의 대체 국내선 공항으로 사용되었고, 목포공항은 폐항되었다. 개항 이후 정부가 무안공항에 각종 이용료를 면제 혹은 감면하는 방침에 대해 '특혜' 시비 논란이 있었다. # 2007년 12월 18일 자유공항으로 선정되면서 외항사의 자유로운 취항이 가능토록 했다.2008년 5월 28일 무안광주고속도로가 전 구간 개통되면서 광주공항의 국제선 전 노선이 무안국제공항으로 이전되었다. 광주공항은 운영 수익으로 자체 시설투자와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캐시카우였지만 1년 사이에 처참하게 몰락해버린다. 국내선은 탄탄한 수요가 있지만 그것만으론 적자를 면할 수 없었다. 또한 무안으로 이전된 기존 광주공항의 국제선 노선들 역시 모객력 부족으로 상하이 노선을 제외하면 정기편 운항이 간헐적이었다.
이후 30분 거리에 위치한 광주공항과 공멸 위기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결국 감사원은 2009년에 또 "광주공항과 무안공항을 통합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2012년 개항 5년을 맞아 서울지방항공청이 작성한 무안공항 사후평가 보고서에서 따르면 1998년 설계 당시 무안공항의 2012년 연간 국내선 이용객 수 예측치는 814만 7000명이었으나, 2012년 실제 무안공항 국내선 이용객수는 1만 8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예측치의 0.2%에 불과했다. #
2014년 6월 울진비행장에 이어 2번째로 비행교육원이 설치 운영되기로 결정되었다.
2018년 하계스케쥴부터 제주항공이 국제선 정기편 3개노선 왕복합계 주28편(14W)을 취항하며 국제선 노선이 크게 확충되었다.#
12월 3일 오사카에서 무안으로 오는 항공편 탑승객이 무안공항 50만 번째 이용객에 당첨되었다. 2018년 이용객은 56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
2019년 하계스케쥴에 국내선 정기편 1개노선 왕복합계 일8편(4D), 국제선 정기편 12개노선 왕복합계 주108편(54W) 등을 운항하며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2.4.1. 코로나19 시기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자 무안공항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방 공항들이 손에 꼽는 소중한 국제선 노선을 단항하며 몇 없는 국내선 노선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특히 무안공항은 갓 취항을 시작한 전세편 외엔 제대로된 국내선 노선 조차 없어 2023년까지 양양국제공항과 전국 공항 운영 실적 꼴찌를 다투고 있었다.[4][5] 무안공항이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자 전남도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공항 활성화 계획을 열심히 추진했고, 2024년 상반기부터 제주항공, 진에어가 코타키나발루, 몽골 울란바토르 등의 정기편 노선이 재개되어 다시금 숨통을 틔기 시작했다.2024년 12월 8일 진에어가 오사카, 도쿄[6]를, 제주항공이 방콕, 나가사키[7]를 취항했다.
2.4.2. 제주항공 사고 발생
하지만 국제선 재활성화 단 3주만에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가 발생하며 179명이나 사망하는 사건을 맞이한 무안공항은 최소 2025년 10월까지 공항 운영을 중단하였다. 특히 이 사고가 재해가 아닌 인재임이 밝혀지며 국가적 충격이 크게 이어지고 있어 공항이 정상적으로 운영될지는 미지수이다.[8]
일각에서는 재개항까지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공항 재보수기간보단 소비자 심리 회복과 공항 안정화 기간의 영향이 크다. 승객들의 불안심리나 버드스트라이크에 대한 대책 강구 등 단순 공항 재정비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
2.5. 광주공항과 통합
[1] 사실 이는 여성부 설립처럼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3후보의 공동 공약이긴 했다.[2] 그 외에도 음악가의 이름이 들어간 공항에는 바르샤바 쇼팽 국제공항, 부다페스트 프란츠 리스트 국제공항 등이 있다.[3] 물론 박정희는 독재자라는 엄청난 과오가 있기 때문에 김일성기념관 세우는 급이라며 욕을 먹었다.[4] 하이에어가 취항하던 2023년에도 무안공항은 여전히 부정기 외항사 항공편과 부실한 국내선 노선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정기 노선 없이 운영되는 기간이 길어지자 항공대 소속 훈련기가 보딩브릿지에 연결된 여객기보다 훨씬 많을 정도였다. 제주항공이 2024년 복항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안한 공항이라는 별명도 있었다.[5] 양양공항은 그래도 2022년까지 존재했던 플라이 강원이라는 양양을 베이스로 한 항공사가 집중 취항해 공항이 텅텅 비진 않았다. 서울 - 양양 노선과 제주 - 양양 노선과 같은 핵심 국내선이 데일리로 있었고, 도쿄와 베이징 같은 알짜 정기 국제선도 계획하는 등 공항의 잠재적 성장점이 뚜렷해 무안공항과는 처지가 전혀 달랐었다. 플라이 강원이 A330기를 도입하는 등 무리한 경영만 하지 않았어도 현재의 양양공항은 무안공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성장을 한 지방 공항이 됐을 것이다. 현재는 양양이 오히려 무안한 공항이 되어 씁쓸한 부분.[6] 이 두 항공편은 코로나19 전 제주항공이 잠깐 취항했으나 장기 단항했다.[7] 신규 취항[8] 위험한 목포공항을 대체하려고 지은 것이 무안공항인데 거기서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나 버렸으니 시선이 좋을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