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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94462><colcolor=gold> 대한제국 순종의 장인 | 순명효황후의 부친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충문공(忠文公) 민태호 閔台鎬 | ||
봉호 | <colbgcolor=#fff,#1f2023>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 |
시호 | 충문(忠文) | |
품계 |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 |
본관 | 여흥(驪興) | |
이름 | 태호(台鎬) | |
자 | 경평(景平) | |
호 | 표정(杓庭) | |
양부 | 민치삼(閔致三) | |
양모 | 정경부인[A] 기계 유씨 (貞敬夫人 杞溪 兪氏) | |
생부 | 민치오(閔致五) | |
생모 | 정경부인[A] 김해 김씨 (貞敬夫人 金海 金氏) | |
부인 | 파성부부인[B] 파평 윤씨(坡城府夫人 坡平 尹氏) 진양부부인[B] 진천 송씨(鎭陽府夫人 鎭川 宋氏) 의창부부인 의령 남씨(宜昌府夫人 宜寧 南氏) | |
자녀 | 3남 1녀 | |
생몰 기간 | <colbgcolor=#694462> 음력 | 1834년 ~ 1884년 10월 18일 |
양력 | 1834년 ~ 1884년 12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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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태호 초상화 |
2. 생애
생부는 민치오, 생모는 김해 김씨 김원식의 딸이며, 아들 없이 사망한 숙부 민치삼의 양자로 들어갔다. 그의 가계는 인현왕후의 친오빠인 민진원의 직계 후손이었고 친할머니 경주 김씨는 영조의 딸 화순옹주의 손녀였다. 이렇듯 선계를 보면 꽤 뼈대 있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정조 시기 조부 민홍섭이 은전군 역모 사건에 휘말려 처형되는 바람에 가문이 몰락하여 한미해졌고 민태호 역시 그저 그런 한량으로 살았다.그러다 같은 여흥 민씨 가문 출신인 명성황후가 왕비로 간택되면서 민태호의 집안 역시 후광을 받기 시작했다. 1870년 문과 별시에 응시하여 병과로 급제한 후 관직 생활을 시작해 총융사, 어영대장, 무위도통사, 대제학을 지냈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승호가 폭발 사고로 사망한 후 친아들 민영익이 민승호의 양자가 되고, 이어 친딸이 세자빈으로 간택되면서 민태호 역시 명성황후의 사돈이자 최측근이 되어 권세를 누렸다.
1882년 임오군란 때는 구식 군인들의 습격을 받았으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 1883년 종1품 의정부좌찬성을 지냈고 전환국 관리사무를 거쳐 다시 의정부좌찬성에 임명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광무 황제과 명성황후 알현하기 위해 경우궁으로 입궁하던 중 참살당했다. 사후 '충문공(忠文公)' 시호를 받고 1907년 사위 순종이 즉위한 후 이윤용의 상소로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으로 추증받았다.
3. 대중매체에서
4. 민영환의 양아버지?
을사조약 직후 자결한 민영환의 양아버지이자 선혜청 당상으로 임오군란 때 피살당한 민겸호의 형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민영환의 양아버지이자 민겸호의 형 역시 이름이 민태호(閔泰鎬)로 한글 표기가 같고, 또 예전에는 친척 간의 양자 입적이 흔해서 가계(家系) 따지다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일단 구한말 민씨 척족의 핵심 일원들은 다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閔維重)의 자손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민유중을 기준으로 삼고 간단하게 표를 만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민유중의 장남인 민진후(閔鎭厚) 쪽 후손 : ・민유중의 차남인 민진원(閔鎭遠) 쪽 후손 : ・민유중의 삼남인 민진영(閔鎭永)[5] 쪽 후손 : |
촌수를 따져보면, 민유중은 '호(鎬)'자 항렬에게 6대조 할아버지이므로 민태호(閔泰鎬)와 민태호(閔台鎬)는 서로 12촌 지간이다. 명성황후도 마찬가지.
위의 표에서 보듯 민태호 1명만 헷갈려도 족보가 완전히 꼬여버린다. 이런 문제들을 적절히 섞으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1. '민태호', 민승호, 민겸호, 여흥부대부인은 친형제자매이다. 2. 민영익, 순명효황후는 '민태호'의 자식이다. 민영익은 민승호의 자식이기도 하다. 3. 민영환은 '민태호'의 자식이다. 민겸호의 자식이기도 하다. 4. 민승호는 명성황후의 친정오라버니이고, 그 아들인 민영익은 명성황후의 친정조카이다. 5. 따라서 '민태호', 민승호, 민겸호, 여흥부대부인은 명성황후의 친형제자매이고, 또한 민영익, 순명효황후, 민영환은 명성황후의 친조카이다. 6. 그런데, 여흥부대부인은 고종을 낳고, 명성황후는 그 며느리가 되고 순종을 낳고, 순명효황후는 그 며느리가 되고 순종의 아내가 된다. 7. 그러므로 민영익, 순명효황후, 민영환, 고종, 순종은 모두 4촌지간이다. |
5. 가족 관계
- 5대조 : 민진원(閔鎭遠)
- 고조부 : 민형수(閔亨洙)
- 친증조부 : 민백상(閔百祥)
- 친조부 : 민홍섭(閔弘燮)
- 친부 : 민치오(閔致五)
- 양증조부 : 민백흥(閔百興)
- 양조부 : 민상섭(閔相燮)
- 양부 : 민치삼(閔致三)
- 정부인 : 파성부부인 파평윤씨(坡城府夫人 坡平 尹氏) - 부친 윤직의(尹稷儀)
- 계부인 : 진양부부인 진천 송씨(鎭陽府夫人 鎭川 宋氏) - 부친 송재화(宋在華)
- 계부인 : 의창부부인 의령 남씨(宜昌府夫人 宜寧 南氏) - 부친 남명희(南命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