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민치록(킹덤)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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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종의 장인 | 명성황후의 부친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순간공(純簡公) 민치록 閔致祿 | |
봉호 |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
시호 | 효정(孝貞) → 순간(純簡) |
출생 | 1799년 |
사망 | 1858년 10월 23일 (향년 59세) (음력 1858년 9월 17일) |
품계 |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
본관 | 여흥(驪興)[1] |
이름 | 치록(致祿) |
자 | 원덕(元德) |
호 | 서하(棲霞) |
생부 | 민기현(閔耆顯, 1751 ~ 1811) |
생모 | 연일 정씨(延日 鄭氏, 1773 ~ 1838) |
부인 | 정부인 해령부부인 해주 오씨[2] (海寧府夫人 海州 吳氏, 1798 ~ 1833) 계부인 한창부부인 한산 이씨[3] (韓昌府夫人 韓山 李氏, 1818 ~ 1874) |
자녀 | 슬하 1녀(1남 3녀) 장남 - 요절 이씨 소생 장녀 - 요절 이씨 소생 차녀 - 요절 이씨 소생 3녀 -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 ~ 1895) 이씨 소생 양자 - 민승호(閔升鎬, 1830 ~ 1874) |
묘소 |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안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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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명성황후의 아버지, 고종의 장인, 순종의 외할아버지이다. 인현왕후 민씨의 아버지 민유중의 장남인 민진후의 현손이자 5대 종손(宗孫)이다.2. 생애
세자익위사세마[4] 및 장릉[5] 참봉을 지냈던 학자 오희상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그의 딸 오씨와 혼인했다. 그러나 오씨 부인은 자식없이 1833년(순조 33년)에 사망했다. 이후 좌찬성을 역임했던 이규년의 딸 한산 이씨와 재혼했다. 이씨 부인 사이에서 1남 3녀를 두었으나, 명성황후를 제외하고는 전부 요절했다.민유중의 종손 자격으로 '여양부원군사손의입승전(呂陽府院君祀孫擬入承傳)'으로서 그의 묘소를 지키는 일을 맡았다.
1826년(순조 26년) 음서로 장릉[6] 참봉 직을 맡았다. 이후 제용감 주부, 의금부 도사, 사복시 주부, 충훈부 도사, 조지서 별감, 사옹원 주부, 장악원 첨정, 선혜청 낭청 직을 두루 역임했다. 또한 과천현감, 임피현령, 덕천군수, 영주군수 등 지방직도 지냈다.
사도시 첨정을 지내던 중인 1858년(철종 9년)에 병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59세.
3. 사후
후사를 정하지 않고 죽어 시묘살이는 훗날 명성황후가 되는 그의 딸 민자영과 부인 이씨가 했다. 제사를 지낼 아들이 필요해 1861년(철종 12년)에 민치록의 11촌 조카 뻘이자 여흥부대부인의 남동생 민승호가 양자로 들어왔다.고종이 즉위한 후인 1866년(고종 3년)에 딸 민자영이 왕비가 되자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여성부원군'으로 추증받았다. 시호는 처음에 '효정(孝貞)'이었다가 '순간(純簡)'으로 바뀌었다.
묘는 처음에 경기도 여주군 금교리[7]에 있었다. 그러나 터가 좋지 않다 하여 충청도 제천, 경기도 이천과 광주로 계속 옮겨졌다가 1894년(고종 31년)에 충청남도 보령군 청연리에 안장되었다. 그러다 2003년에 원래 묻혔던 자리로 다시 이장했다.#
4. 매체에서
<colbgcolor=#94153E> 〈명성황후〉의 민치록 |
작 중에서는 이미 고인이며 사망 당시에는 관을 짤 돈도 없어서 감고당 이씨(선우은숙 분)가 이집저집을 구걸을 했다는 언급이 나왔다.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이미연 분)가 궁 밖으로 피신하여 민유중[8]의 묘에 들렀을 때,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등장했다.
[1] 삼방파 26세 '치(致)' 항렬.[2] 오희상(吳熙常)의 딸.(족보)[3] 이규년(李奎年)의 딸.(족보)[4] 조선 시대 왕세자의 호위를 맡던 관청인 세자익위사 소속으로 잡직(雜職)을 맡아하던 정9품 무관 벼슬.[5]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6]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7] 현재 안금리.[8] 인현왕후의 아버지로 명성황후의 6대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