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02:50:32

김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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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의 장인 | 인목왕후의 부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의민공(懿愍公)
김제남
金悌男
출생 1562년(명종 17)
사망 1613년 7월 18일 (향년 51세)
(음력 광해군 5년 6월 1일)
사사형
묘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봉호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시호 의민(懿愍)
본관 연안 김씨 (내자시윤공파-의령 종중 13세)
공언(恭彦)
부모 부친 - 김오(金祦)
모친 - 안동 권씨 권성복(權成福, 1535 ~ ?)[1]
형제자매 2남 2녀 중 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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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 김효남(金孝男, 1553 ~ ?)
누나 - 김효례(金孝禮, 1556 ~ ?)
남매[2] - 이홍(李鴻)의 처
부인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광주 노씨(1557~ 1637)
자녀 3남 2녀
장남 - 김내(金琜, 1576 ~ 1613)
장녀 - 청송 심씨 심정세(沈挺世)의 처 김씨(1581 ~ 1604)
차녀 - 인목왕후
차남 - 김규(金珪, 1596 ~ 1613)
3남 - 김선(金瑄, 1599 ~ 1614)

1. 개요2. 생애3. 여담4. 가족 관계5.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조선 중기의 인물. 김전의 증손이며 김안로의 종손(從孫)이고 세종의 4남인 임영대군의 외5대손이자 인목왕후의 아버지, 정명공주영창대군외할아버지이자 의친왕비의 11대조.

2. 생애

1562년 아버지 김오(金祦)와 어머니 안동 권씨 권상(權常)의 딸 사이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585년 식년시 진사시에 2등 3위로 입격한 뒤# 출사하였으며 종6품 현감으로 있던 1597년 별시 문과에 병과 10위로 급제하였다.#

1602년 차녀가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가 되어 연흥부원군이 되었으며 김제남은 문과에 정식 급제한 사람이라 충분히 정승판서로 오를 수 있었지만 사양한 듯 보인다. 1613년 이이첨 등에 의해 인목왕후 소생인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했다는 공격을 받아 계축옥사로 사사되었다. 1616년에 인목왕후 폐모론이 일어나면서 다시 부관참시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관직이 복구되고 영의정으로 추증되어 신원복권되었다.

3. 여담

  • 우연의 일치이지만, 광해군이 김제남에 대한 사사를 명한 날에 지금의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터졌다.
  • 김제남의 자손들은 계축옥사인조반정이라는 난리통을 겪으면서도 용케 살아남아 대를 이어나갔지만 조선 왕실과 통혼하지 않다가[3], 세월이 흘러 11대손인 의친왕비의친왕과 결혼하면서 왕실과 다시 인척관계를 맺게 되었다. 하지만 의친왕비는 슬하에 친자녀는 없었고 의친왕의 수많은 서자녀들을 키우면서, 김제남의 후손들은 끝까지 조선 왕실과 악연으로 얽히게 되었다.[4]

4. 가족 관계

  • 조부 : 김안도(金安道) - 정의공주의 아들인 안여달의 딸의 외손자[5]
  • 조모 : 창녕 성씨(昌寧 成氏) - 성현[6](成俔)의 손녀이자 성세통의 딸
    • 부 : 김오(金祦)
  • 외조부 : 권상(權常, 1508~1589)
  • 외조모 : 문화 류씨 - 류복룡(柳伏龍)의 딸
    • 외삼촌 : 권이(權怡, 1532 ~ ?)
    • 어머니 : 권성복(權成福, 1535 ~ ?)
  • 외조모 : 여산 송씨 - 송송(宋松)의 딸[7]
    • 이모 : 권연근(權連瑾, 1539 ~ ?)
  • 부인 :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 광주 노씨(光州 盧氏, 1557~1637) - 노기(盧垍)의 딸
    • 장남 : 김내(金琜, 1576~1613)
    • 며느리 : 정경순(鄭敬順, 1575~1640) - 정묵의 딸
      • 손자 : 김천석(金天錫, 1604~1673)
      • 손자 : 김군석(金君錫)
      • 손녀 3명 : 김광찬[8]의 처 · 최극량의 처 · 이후연의 처
    • 장녀 : 연안 김씨(延安 金氏, 1581~1604)
    • 사위 : 심정세(沈挺世, 1579~1613) - 구사맹의 외손자이자 인헌왕후의 조카, 인조의 이종 사촌형. 심의겸의 친손자이다.
      • 외손자 : 심진(沈榗, 1602~1690)
      • 외손녀 : 백홍일의 처
    • 차녀 :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
    • 사위 : 선조(宣祖, 1552~1608)
    • 차남 : 김규(金珪, 1596~1613)
    • 며느리 : 서미생(徐楣生, 1597~1666) - 정신옹주의 장녀
      • 손자 : 김홍석(金弘錫, 1612~?)
    • 3남 : 김선(金瑄, 1599~1614)ㆍ

자세히 보면 증조부와 종조부는 재상이었으며, 장남 김내는 정3품 청주목사를 지냈고[9], 둘째 사위는 조선의 국왕이었으며, 맏사위와 며느리들도 모두 조선 중후기의 당대 최고 명문가 출신이었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다시피 계축옥사에 휘말려 가족들이 거의 멸문에 가깝게 몰살당했다가, 후손들 중 몇몇이 살아남으면서 간신히 가문의 대를 이어나갔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5. 대중매체


[1] 권상(權常)의 장녀이며 임영대군의 외고손녀. #[2] 누나인지 여동생인지 생년이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다. #[3] 일설에 따르면 광해군의 견제로 아버지 김제남과 형제들, 아들 영창대군까지 잃은 인목왕후가 자신의 친정에게 다시는 왕실과 혼인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고 한다.[4] 그래도 의친왕비는 남편의 혼외자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의친왕의 자녀들도 의친왕비를 친어머니처럼 따랐다고.[5] 세종정의공주 → 안여달 → 안씨 →송씨 → 김안도[6] 용재총화의 저자.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11대조[7] 모친인 권성복의 계모.[8] 문곡 김수항의 아버지이며 숙종의 후궁 영빈 김씨의 증조부다. 또한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6대조[9] 하지만 김제남의 장남 김내와 성균관 진사였던 차남과 삼남은 모두 계축옥사에 휘말려 일찍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