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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선수 경력/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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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의 연도별 시즌 일람
~2010년 2011년 2012년

1. 트레이드 전2. 넥센으로의 트레이드3. 트레이드 이후

1. 트레이드 전

2010년 9월 17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 도중 나주환과 충돌한 사고로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아 재활하는 바람에 뒤늦게 1군에 소집되었다. 하지만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16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었고,[1] 이택근의 영입으로 인해 외야 포지션이 완전히 포화되어 1루 자리마저도 이택근이 주전으로 차지하고 있어서 LG 트윈스 내에서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2군에서는 162타수 53안타 9홈런 0.327의 성적을 내면서 2군 본즈 명성 어디 안간다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까지 모습은 1군에 적응 못하는 흔해빠진 무명의 선수의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였다. 이대로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면 1,2군을 오가다가 은퇴하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저런 선수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트레이드 마감시한일인 7월 31일, 박병호에게는 인생을 바꾼, 한국 야구계에서는 거포 계보를 바꿔버린 [[탈쥐효과|역사적 트레이드가 다가오게 된다]].[2]

2. 넥센으로의 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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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이적 후의 사진. 이 당시만 해도 박병호가 터질 줄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등번호도 25번에서 대표적인 오른손 강타자의 상징인 52번[3]으로 바꿔 달았다.

트레이드 마감일인 2011년 7월 31일, LG의 투수 자원 보강을 위해 송신영김성현이 LG로 가고,[4] 심수창과 함께 넥센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여기에 뒷돈 15억이 있었다는 기사가 나왔다가 삭제되었는데, 2018년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에서 실제로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

트레이드 과정에서 당시 연패 중이었던 심수창에게 더 많은 시선이 모였지만, 박병호에 대한 설왕설래도 많았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과연 박병호가 넥센에서 터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커뮤니티에서 열띤 토론이 오갔다. 사실 몇 년을 뛰었는데도 통산 타율이 2할도 안 되는 성적이라 다른 선수 같으면 100% 포기겠지만, 그 엄청난 피지컬과 2군에서의 발군의 타격성적 때문에 기대를 접으려다가도 또 하게 만들고, 특히 1군에서 잠깐이나마 미칠 때의 포스가 워낙 강렬해서 2군에서 묵히기도 아까운 자원이었다.

특히 LG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던 거포임에도 자신의 스윙을 가져가지 못했다는 점이 대체로 심리적 압박감에서 기인했던 것으로 말미암아, 2011년 당시 타선의 파워 부족에 4번 타자 문제점[5]을 안고 있는 김시진 감독의 전폭적 지원이 있다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충분히 설득력을 얻었다.

이 당시 엠엘비파크에서는 박병호를 왜 보내냐는 글이 올라왔었다. 당시에만 해도 수십명에게 분란 유저 취급을 받으며 까였지만, 지금은 성지가 되어 있는 중.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서 2011년 5월에 박병호가 넥센으로 오면 30홈런씩 날릴 것이라는 예언글도 역시 성지가 되었다.

박병호가 먼저 터지느냐 LG 팬들의 속이 먼저 터지느냐 희망고문을 안겨 준 선수였는데, 트레이드로 공은 넥센으로 넘어갔다.

3. 트레이드 이후

2011년 8월 2일 대구전에 출장하여 1, 2루 상황과 만루 상황을 말아드신 데다 4타수 무안타라는 신고식을 치러 넥센 팬들에게 미친 듯이, 정말 미친 듯이, 나노 단위[6]로 까였다.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박병호를 스폰지밥의 뚱이와 흡사하다며 깠다.

그러나 8월 3일 경기에서 4회 초 장원삼의 공을 통타해서 펜스 직격 2루타를 쳐냈으며 후속 타자 강정호의 텍사스성 안타 때 재빨리 홈을 밟아 넥센 이적 후 첫 안타와 첫 득점을 신고했다. 그리고 8월 4일에는 또 안타를 기록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8월 5일 ~ 7일간의 3연전이었으며 코리 알드리지의 어깨 부상으로 인해 알드리지 대신 4번으로 들어섰다. 헌데 첫 타석에서 풀 카운트까지 끌고 귀신같이 유격수 앞 깨끗한 안타를 기록해서 3일 연속 안타에 성공했다. 5회말에도 적시타를 때려 팀의 우세에 공헌했다. 그리고 7회말 공격에 드디어 터졌다! 두산 투수 고창성의 5구를 노려 우중간을 가르는 솔로 홈런을 날렸다. 이날 4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다른 두 개의 안타도 상당히 깨끗하게 맞힌 안타였고 볼카운트도 LG때와 달리 풀 카운트까지 끄는 등 침착해졌다. 홈런의 경우 사실 잘 맞은 건 아니었지만 (방망이 위쪽에 걸치듯이) 플라이가 될 것 같았던 타구가 뒤로 쭉쭉 뻗더니 중견수가 어어? 하는 사이에 넘어간 거였다. 타고난 파워가 엄청나다는 증거다.

어찌됐건 당시 넥센에 몇 없던 오른손 장타자로서 좋은 활약을 했다. 첫 경기에서 삽질로 그냥 박병신으로 불렸지만 8월 5일 이후 박병神, 병홀스, 브룸박병호로 순식간에 별명의 격이 높아졌다. 근데 오히려 1루 수비에서 포구를 제대로 못하고 공을 흘리는 등 그나마 좋다는 수비에서 삐끗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8월 5일 경기 뒤 인터뷰에서 누군가와 다르게 LG에서 많은 기회를 줬지만 기대만큼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해서[7] 넥센 팬들의 호감도는 급상승! LG 팬들도 박병호가 탈쥐효과로 터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8월 6일에 또 홈런을 쳤다. 2경기 연속 홈런과 멀티 히트.

8월 7일 경기에선 홈런은 치지 못했으나, 2루타와 안타로 멀티 히트를 기록하고 볼넷도 하나 얻어냈다. 게다가 플라이 타구 1개도 상당히 잘 맞춘 타구였고, 전체적으로 선구안이 향상된 모습을 보이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011년 8월 9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 전에는 3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 1삼진을 기록하며 동료인 선발 심수창의 승리에 기여하였고, 타율은 .293까지 상승하였다. 거기에 잠시 정줄 놓았던 수비력도 발군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하다. 내야수들이 안심하고 과감한 송구를 하는 게 보일 정도였다.

8월 10일 투런 홈런을 쳤다. 하지만 팀의 패배로 다소 빛이 바랬다. 게다가 이 롯데전 3연전에서 이상하게 수비 불안을 보여주어 보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8월 12일 무안타에 시원한 삼진쇼를 펼치며 아름다운 일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으나, 8월 13일 세번째 타석에서 2점 홈런을 날리면서 아름다운 일주일에서의 탈출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8월 18일 한화 이글스 전에서는 4타석 3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을 기록해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런데 심재학 타격코치는 LG 타격코치인 서용빈 코치가 박병호를 잘 다듬어줬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최훈이 8월 8일 카툰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8월 20일, 10회말에 풀카운트 끝에 유동훈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쳐냈다. #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관전하러 오신 어머니께서 눈물을 글썽이는 표정이 잡혀 감동의 도가니탕을 선사했다. 그 전에도 보여줬지만 말도 또박또박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호감도는 더 상승했다.

8월 23일. 드디어 잠실에서 친정 팀 LG와의 첫 경기를 치렀으나 5타수 무안타 3삼진을 기록했다. 심지어 수비 중 억지로 슬라이딩 캐치를 하다 잡을 공을 놓치거나 흘리면서 넥센팬들이 뒷목을 잡게 했다. 그러나 25일 3차전에선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8월 27일 목동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박뱅 쓰리런을 기록해서 심수창의 2승을 견인했다.

아래 표는 특정 기간에 박병호의 성적을 적은 표본이다.
날짜 성적
8월 28일(롯데) 4타수 2안타 1삼진 *2타점
8월 30일(KIA) 5타수 1안타 3삼진
8월 31일(두산) 4타수 2안타 0삼진 *3루타
9월 01일(두산) 3타수 3안타 0삼진 *3루타
9월 02일(한화) 4타수 0안타 1삼진
9월 03일(한화) 4타수 1안타 2삼진 *8호 솔로홈런[8]
9월 04일(한화) 4타수 1안타 3삼진 *9호 솔로홈런
9월 05일(SK) 4타수 1안타 1삼진 *2루타
9월 07일(SK) 3타수 0안타
9월 08일(한화) 3타수 0안타 1삼진
9월 09일(한화) 3타수 0안타 2삼진
9월 10일(롯데) 2타수 0안타 1삼진
9월 11일(롯데) 4타수 0안타 2삼진
9월 13일(SK) 3타수 0안타
9월 14일(SK) 4타수 2안타 0삼진 *2타점 *10호 솔로홈런
9월 15일(두산) 3타수 2안타 1삼진 *2타점 *11호 솔로홈런

이 기록을 자세히 보면 성적이 들쑥날쑥하다가도 치는 날은 대부분 장타가 끼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철저하게 장타 지향의 타격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1년 10월 2일 목동 한화전을 마지막으로 2011 시즌을 마감했다. 이유는 왼쪽 발목에 뼛조각이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여태까지 뛰는 데 별로 지장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래를 내다본 구단의 배려로, 시즌이 끝나갈 무렵에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시즌 고별전인 이 날 경기에서도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두자리수 홈런인 13홈런으로 시즌을 마쳤다.[9]

2011 시즌 최종 성적은 201타수 51안타 13홈런 31타점 0.254 0.344 0.522 0.866 wRC+ 137.0 WAR 1.73을 기록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분명 장타 지향의 타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타율이 LG 시절 성적보다 좋아졌다. 장타율은 타율의 배가 넘는다. 안타를 쳤다하면 기대 루타가 2루타 이상이라는 뜻이다.

엘지에서는 0.125 0.177 0.375 0.522 wRC+ 37.4 WAR -0.08, 넥센에서는 0.265 0.357 0.535 0.892 wRC+ 144.9 WAR 1.80

2011년 12월 10일 이지윤 전 아나운서와 결혼했다.

그리고 박병호가 그 다음 시즌부터 개인통산 300홈런을 쳐내고, 4년 연속으로 홈런, 타점왕에 오르고, MVP를 2번 수상하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직행하고 돌아와 통산 0.278 0.388 0.559 0.948 wRC+ 149.3 WAR 43.33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트레이드 상대 중 한 명은 시즌 후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며 박병호의 트레이드KBO 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트레이드이자 탈쥐효과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1] 이 1홈런은 5월 월명구장 원정에서 KIA 타이거즈에게서 뽑아낸 3점 홈런이었다.[2] 그 이전에는 2000 시즌 중반 해태 타이거즈가 투수력 보강에 눈이 어두워 이호준을 SK로 트레이드한 것이 KBO 역사상 가장 실패한 트레이드였다. 이호준의 트레이드 맞상대는 성영재.[3] 박병호가 트레이드되기 전에 이 번호를 달고 있었던 외야수 강병우가 2011년 6월 7일에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하는 바람에, 이적 당시 넥센에서는 52번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LG 시절 백넘버인 25번을 넥센에서는 이미 대선배인 송지만이 달고 있었기 때문에, 박병호로서는 이를 함부로 요구할 수도 없었다. 대표적인 오른손 강타자 김태균과 같은 배번을 쓰게 된 건 우연이다.[4] 어이없게도 둘 모두 2011년이 끝나고 LG에서 떠났다. 송신영은 FA를 통해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고, 김성현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2012 시즌 직전에 방출당함과 동시에 영구제명됐다. 결국 2011년 7월 31일의 트레이드는 LG에게 제대로 마이너스가 됐다. 그리고 송신영NC 다이노스의 전력보강 선수로 이적했다가 NC 내야진의 잦은 실책으로 인해 박정준, 이창섭, 지석훈을 상대로 신재영과 함께 트레이드되어 넥센 복귀에 성공, 박병호랑 함께하게 된다.[5] 2011년에는 한때 강정호에게 4번을 맡긴 적도 있었으나 체력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유격수에게 언제까지 4번을 맡겨 놓을 순 없었고, 무엇보다 강정호는 4번에서 너무 부진하는 바람에 2군에 갔다 왔다. 코리 알드리지가 4번 타자의 노릇을 잘 수행해 주었지만, 투수 용병으로 가게 될 경우 4번은 공석이 되는 데다가 토종 거포 또한 절실한 존재이기도 했다. 송지만은 이미 노쇠화가 진행됐고, 유한준은 임팩트가 떨어지고, 오재일은 끔찍한 부진에 빠져있었다. 실제로 2011 시즌 후 알드리지와 재계약하지 않으면서 좌완투수 앤디 밴 헤켄을 영입하고, FA로 풀린 이택근을 다시 데려오며 팀의 생각이 맞아떨어지기도 했다.[6] 트레이드로 넥센에 온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팬들에게 더 가혹하게 까이는 경향이 있다.[7] LG 시절 김상현은 최소한 박병호보다 훨씬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고 풀타임 주전으로도 뛰었다. 이것 때문에 LG팬들은 김상현에 대해 상당히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병호도 후의 인터뷰에서 이택근과 비슷하게 대인기피증 드립으로 상당수의 LG 팬들에게 욕을 먹었으나 결국 박병호의 인터뷰는 다시 보니 선녀 같다는 말이 나왔다. 코치진의 폭력 행사가 있었음이 알려지기도 했고, 애초에 안 터진 탈쥐효과 받은 선수들 중 최승준 빼면 가장 적은 기회를 받은 선수였기 때문이다.[8] 고종욱알드리지와 함께 백투백투백 홈런 합작.[9] 게다가 이 시즌 넥센은 기존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진에 빠지면서 일찍이 8위를 확정지었기 때문에, 팀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박병호를 쓸 이유도 없긴 했다. 어차피 트레이드된 직후 주전을 차지하면서 어마어마하게 장타를 쏟아내며 이미 팀에 큰 보탬이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