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12:54:09

박정순

前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박정순
朴正淳 | Pak Jong Sun
파일:정치국 후보위원 박정순.jpg
출생 1928년 7월 1일
평안남도 평원군
사망 2011년 1월 22일 (향년 82세)
평양냉면
국적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직업 정치가
주요서훈 김일성훈장(1987)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1. 개요2. 생애3. 경력4. 여담5. 장의위원회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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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인. 당의 조직문제를 담당한 당료로 보인다.

2. 생애

1928년 7월 1일, 평안남도 평원군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0년 7월에 조선인민군에 입대, 6.25 전쟁에 참전했으며 종전 후 중앙당학교를 졸업하여 군당부부장, 도당지도원을 거쳐 1962년, 중앙위원회 지도원으로 배치되었다. 이후 중앙위원회 과장, 부부장을 거쳐, 1970년, 함경남도 제2비서에 임명되었고 1975년 평양시 당위원회 조직비서로 일했다.

1986년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1987년 4월, 김일성 75세 생일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이때 역시나 조직지도부 소속인 윤승관보다 서열이 앞선 것을 보면 이때부터 조직지도부 소속으로 잘나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98년,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조직지도부 중앙기관 담당 부부장을 지내면서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였는데, 2001년 경 그의 딸이 재혼을 하면서 그와 친했던 장성택이 아예 직접 결혼식을 찾아왔고 김경희도 경공업부 부부장을 대신 보내서 선물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장성택과 박정순에게 동시에 눈도장을 찍으려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아부를 해댔는데, 이날 파티에 참석했던 내각 체육지도위원장 박명철이 교통사고를 내면서 김정일에게 호화 결혼식의 존재가 들통났다고 한다. 이에 대노한 김정일이 현대판 종파가 따로 없다고 조직지도부 검열을 실시해고, 혁명화를 당하면서 한동안 고생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12기 대의원에서 탈락했던 것이 설명된다. 하지만 다시 복귀하여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임명되어 사업하였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을 지냈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2011년 1월 22일 1시, 폐암으로 인해 8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는 부고를 발표, "박정순동지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충직한 전우로서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적 위치에서 오랜기간 동안 사업하면서 당과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을 철통같이 다지고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를 철저히 확립하며 당조직들의 전투적 기능과 역할을 높이기 위하여 온갖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였다."라고 매우 높게 평가했다. 3차 당대표자회 이후 불과 4개월만에 사망했다는 점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된 것은 조명록처럼 예우상 인선일 가능성이 높다.

1월 23일에 김정일이 화환을 보냈으며 1월 24일에 장의식이 거행, 시신이 애국렬사릉에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알겠지만 명색이 정치국 후보위원임에도 남한에서도 신상에 대해서 대단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2010년까지 통일부 북한의 주요인물 자료에 수록되지도 못할 정도였다.

3. 경력

임기시작 임기종료 비고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2010년 9월 28일 2011년 1월 22일 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거
임기 중 사망
조선로동당 6기 정치국 후보위원
2010년 9월 28일 2011년 1월 22일 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거
임기 중 사망

4. 여담

2014년 탈북한 정찰총국 대좌 출신 김국성의 아내가 박정순의 조카라고 한다.

5. 장의위원회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