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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장 김격식 金格埴 | Kim Kyok Si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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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8년 3월 11일 |
함경남도 정평군 | |
사망 | 2015년 5월 10일 (향년 77세) |
직업 | 정치인, 군인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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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군인이자 정치인.전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및 인민무력부 부장이다.
2. 생애
1938년 3월 11일,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1957년 9월,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군 경력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 1971년 6월,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무관보로 다녀왔다. 1982년 4월, 구분대장을 지냈으며 대대장, 연대장, 여단장, 훈련소참모장 등을 거쳐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90년 5월 23일, 조선로동당 6기 18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되었으며 1991년 12월 24일, 조선로동당 6기 19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1992년 4월 23일, 최고사령관 명령 0024호에 따라 상장으로 진급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4년 10월 즈음에 2군단장에 임명되었으며 1997년 2월 9일, 최고사령관 명령 0087호에 따라 주상성, 김성규, 박재경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한동안 잘 보이지 않다가 2007년부터 김정일 현지지도를 많이 수행하는 등 측근 대열에 진입하였고, 2007년 4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조동된 김영춘의 뒤를 이어 총참모장에 임명된 것이 확인되었다. 2008년 10월, 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9년 2월에 리영호가 총참모장이 되면서 물러났고 4군단장으로 이동하였다. 북한 군부 권력 내 김영철과 더불어 대남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로, 4군단장 재임 시절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의 배후자로 의심받는 인물이다.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상장 강등이 확인되었으나 2012년 10월, 다시 대장으로 진급하여 김정각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되었다.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보선되었으며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12기 7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에 보선되었다. 하지만 불과 2주 후에 장정남에게 인민무력부장직을 내주고 해임되었다. 이에 대해서 개성공단 폐쇄를 주장했다가 남한의 반발 때문에 실익 없이 끝나자 문책을 당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이후 정치국 후보위원에서도 해임되었다. 하지만 중앙위원회 위원 직함은 유지했다. 2013년 5월에 잠시 총참모장을 다시 맡았으나 3개월 후에 리영길에게 도로 물려주었다.
2014년 1월, 김정은을 다시 수행하면서 공개석상에 나타났고 2014년 3월, 최고인민회의 13기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당연히 국방위원회에서는 탈락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건강 악화 때문인지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2015년 5월 10일, 0시 30분에 암성중독에 의한 급성 호흡부전으로 인해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와 국방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김격식동지는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슬하에서 인민군대의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 성장하여 우리 당의 선군혁명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온 혁명전사이다. (...) 동지는 오랜 기간 군단장,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을 비롯하여 인민군대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하면서 백두산혁명강군의 불패의 위력을 높이 떨치고 사회주의 조국을 굳건히 보위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 동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우리 당의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당에 무한히 충실하였으며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쳤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3. 수훈
4. 경력
임기시작 | 임기종료 | 비고 |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 ||
2007년 | 2009년 2월 11일 | 김영춘의 후임으로 임명 리영호에게 이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장 | ||
2012년 10월 | 2013년 4월? | 김정각의 후임으로 임명 장정남에게 이임 |
조선로동당 6기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 ||
2013년 3월 31일 | 2014년 4월 8일? |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보선 2014년 4월 8일 정치국 회의에서 해임? |
12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 | ||
2013년 4월 1일 | 2014년 4월 9일? | 최고인민회의 12기 7차 회의에서 선거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에서 임기 만료? |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 ||
2013년 5월? | 2013년 8월? | 현영철의 후임으로 임명 리영길에게 이임 |
5. 여담
- 김영철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장과 함께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켄 고스는 당시 작전은 정찰총국이 주도했을 것이며 김격식의 관여는 제한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였다.
-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그외에 총참모장을 2번 역임한 인물로는 최광이 있다. 리영길은 이후 3번 총참모장을 지낸 기록을 세움으로 김격식을 넘어서게 되었다.
- 사촌동생 김대식은 정찰국장을 역임했다.
6. 참고문헌
- 2017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