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5 09:28:13

보르지보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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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457E><colcolor=#FFF> 보헤미아 프르셰미슬 왕조 15대 공작
보르지보이 2세
Bořivoj II
파일:보르지보이 2세.jpg
제호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 보르지보이 2세
(Bořivoj II)
출생 1064년
사망 1124년 2월 2일 (향년 59~60세)
재위 보헤미아 공국의 공작
1100년 ~ 1107년
보헤미아 공국의 공작(복위)
1117년 ~ 1120년
자녀 야로미르, 스피티흐네프, 리톨드, 올드르지흐, 리체자
아내 오스트리아의 헬비르가
형제 바츨라프, 유디트 프르셰미슬디카, 루드밀라, 볼레슬라프, 브라티슬라프 2세, 블라디슬라프 1세, 유디트 그로이치스카, 소베슬라프 1세
아버지 브르제티슬라프 2세
어머니 시비엥토스와바 스와티와
1. 개요2. 행적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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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헤미아 공국 프르셰미슬 왕조 15대 공작.

2. 행적

보헤미아 국왕 브르제티슬라프 2세와 폴란드 대공 카지미에시 1세의 딸 시비엥토스와바 스와티와의 차남이다. 1099년, 이복형이자 보헤미아 공작인 브라티슬라프 2세는 자기 아들 브라티슬라프 대신 이복 남동생 보르지보이 2세를 상속인이자 후계자로 지명하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로부터 보르지보이 2세가 보헤미아를 영지로 삼는 것을 승인받았다. 그가 이런 조치를 내린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감옥에 가둬뒀던 사촌 올드르지흐의 영지를 몰수하고 보르지보이 2세에게 넘겼다. 이에 브르제티슬라프 2세의 동생이며 올로모우츠 공작이었던 오타 1세의 아들들인 오타 2세, 스바토플루크는 숙청될 것을 우려해 해외로 망명했다.

1100년 12월 22일, 브라티슬라프 2세는 즈베치노 마을 인근에서 사냥하고 돌아오던 중 로렉(Lorek)이라는 괴한이 쏜 화살에 맞아 암살당했다. 로렉은 도주를 시도했지만 체포를 피할 수 없게 되자 단검으로 자신의 몸을 찔러 자살했다. 그에게 큰 피해를 입었던 브르쇼프 가문이 암살을 사주했다는 설과 보르지보이 2세가 사주했다는 설이 세간에 나돌았지만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후 보헤미아 공작에 오른 보르지보이 2세는 1101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 에게 경의를 표하는 대가로 보헤미아를 영지로 상속받는 것을 인정받았고, 올드르지흐를 석방시키고 영지를 돌려주라는 황제의 지시 역시 따랐다.

올드르지흐는 브르노로 돌아온 뒤 보헤미아 공작위를 탈취하기로 마음먹고, 오스트리아 용병대를 고용하는 한편,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 자신을 보헤미아 공작으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하인리히 5세는 교황청과 성직자 서임권 분쟁에 몰두하고 있던 터라 그를 도와줄 여유가 없었다. 올드르지흐는 쿠트나 호라 인근으로 진군해 보헤미아 귀족들이 자신에게 호응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보르지보이 2세와의 첫번째 교전을 치른 올드르지흐는 용병들이 그를 위해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다며 뿔뿔이 흩어지자, 보르지보이 2세와 협상한 끝에 더이상 공작위를 욕심내지 않겠다고 약조하고 브르노를 계속 다스리는 걸 인정받았다.

1103년, 보르지보이 2세는 폴란드 대공국을 양분하고 있던 볼레스와프 3세 크쉬보우스티즈비그뉴 형제 중 즈비그뉴와 손잡고 볼레스와프 3세의 영역을 동시에 공격했다. 볼레스와프 3세는 이에 맞서 부하 젤리스와프에게 모라비아를 습격하게 했다. 젤리스와프는 모라비아의 많은 도시와 마을을 약탈했지만, 귀환하던 중 보르지보이 2세의 습격을 받고 패배했다. 이에 볼레스와프 3세 본인이 직접 모라비아로 재차 출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볼레스와프 3세는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하자 외교술을 구사하기로 했다. 보르지보이 2세는 그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고 즈비그뉴와의 동맹을 끊었다.

1105년, 보르지보이 2세는 자신에게 폐위된 뒤 복위를 꾀한 아버지 하인리히 4세에 대적하는 하인리히 5세를 지원하기 위해 바이에른으로 진군했다. 사촌인 스바토플루크가 이를 이용해 프라하에서 정변을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폴란드 대공국으로 망명해 볼레스와프 3세의 보호를 받았다. 1107년, 볼레스와프 3세는 헝가리 국왕 칼만과 연합해 보헤미아로 쳐들어가 보르지보이 2세를 축출하고 스바토플루크를 보헤미아 공작 스바토플루크 2세로 앉혔다. 보르지보이 2세는 하인리히 5세에게 망명했다.

이후 하인리히 5세는 공작위에 오른 스바토플루크 2세를 소환했고, 스바토플루크 2세는 형제 오타 2세에게 통치 대행을 맡기고 황제를 알현하러 갔다가 체포되었다. 보르지보이 2세는 스바토플루크 2세가 체포된 틈을 타 그로이츠슈 백작 비프레히트 2세의 지원을 통해 복위를 꾀했지만, 스바토플루크 2세를 대신해 통치를 맡고 있던 오타 2세에게 격퇴되었다. 그 후 스바토플루크 2세는 하인리히 5세에게 많은 양의 금을 지불하고 항상 복종하겠다고 맹세해 석방된 뒤 보헤미아 공작으로 인정받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보르지보이 2세는 폴란드 대공 볼레스와프 3세 크쉬보우스티의 궁정으로 망명했다.

1108년 자신 덕분에 보헤미아 공작이 되었던 스바토플루크 2세가 간섭을 받기를 거부하고 자신과의 정쟁에서 패해 해외로 망명한 즈비그뉴를 보호하는 것에 격분한 볼레스와프 3세는 보헤미아 측이 하인리히 5세의 헝가리 침공에 동참하느라 병력을 헝가리에 보낸 틈을 타 보르지보이 2세를 보헤미아 공작에 복위시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도중에 포모제인이 북쪽 국경을 넘어 여러 마을을 파괴하자 군대를 북쪽으로 돌렸다.

1109년 스바토플루크 2세가 암살당하자 프라하로 진격했지만 오타 2세에게 패배하고 사로잡힌 뒤 프라하 요새에 감금되었다. 비프레히트 2세의 장남 비프레히트 3세가 그를 도우려 했지만 프라하 인근 전투에서 오타 2세에게 격퇴되었다. 이후 양자는 보헤미아 각지에서 내전을 이어가다가 1110년 하인리히 5세가 보르지보이와 비프레히트 3세를 봉국을 혼란에 빠뜨린 죄로 체포하고 보르지보이 2세의 남동생 블라디슬라프 1세를 보헤미아 공작으로 선임하면서 분쟁이 종식되었다. 보르지보이 2세의 지지자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관직에서 추방되었고, 일부는 실명형에 처해졌다. 비프레히트 2세는 아들의 석방을 위해 막대한 몸값을 황제에게 지불해야 했다.

이후 7년간 조용히 지내던 보르지보이 2세는 1117년 블라디슬라프 1세가 오스트리아 변경백 레오폴트 3세의 압력에 못 이겨 그를 보헤미아 공작위에 복귀시키고 자데츠만 소유한 덕분에 복위되었다. 그러나 이후 3년간 홍수와 폭풍 등 자연재해에 시달리는 바람에 민심을 잃었다. 결국 1120년 블라디슬라프 1세가 정변을 일으켜 그를 축출했다. 그 후 헝가리로 망명했으며 1124년 2월 2일에 사망했다.

3. 가족

  • 오스트리아의 헬비르가(? ~ 1142): 오스트리아 변경백 레오플트 2세의 딸
    • 야로미르(? ~ 1138): 1132년 이탈리아로 진군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로타르 3세의 군대에 보헤미아 출신 기병 300명과 함께 참전한 사실과 사망년도만 전해진다.
    • 스피티흐네프(? ~ 1157)
    • 리톨드(1102 ~ 1143): 올로모우츠 공작(1135 ~ 1137)
    • 올드르지흐(? ~ 1124년 이전)
    • 리체자(? ~ 1124년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