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동역 | ||
역명 표기 | ||
평부선 | 봉동 Pongdong 鳳東 / 凤东 / [ruby(鳳東, ruby=ポンドン)] | |
주소 | ||
개성시 판문구역 봉동리 | ||
관리역 등급 | ||
중간역 (평양철도총국) | ||
운영 기관 | ||
평부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 |
개업일 | ||
경의선 | 1906년 4월 3일[1] | |
철도거리표 | ||
평양 방면 손 하← 3.9 ㎞ | 평부선 봉 동 | 도라산 방면 판 문2.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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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의선 및 평부선의 철도역, 개성시 판문구역 봉동리[2] 소재.2. 역 정보
1906년에 일제가 경의선을 처음 부설했을 당시부터 영업한 유서깊은 역이다. 일산역이나 금촌역, 수색역 등과 비슷한 시기에 개업했다.6.25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삼팔선이 봉동역 위에 있는 개성역 바로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어서 대한민국의 영토였다. 1949년 5월 18일 개성 박물관의 유물들을 이곳을 통해 후방으로 이송했으며, 1950년 6월 21일 마지막 증기기관차가 개성역에서 봉동역을 거쳐 서울역으로 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6.25 전쟁 통에 북한이 땅따먹기를 해서 지금은 북한의 영토이며, 역사(驛舍)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못미.
6.25 전쟁 50년 후인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면서 경의선 복원사업을 통해 역이 부활했다. 개성공단과 가장 가까운 역이라는 이유로 경의선 화물철도 (문산역~봉동역)가 운행하게 된 것. 그래서 임시승강장모양으로 역이 부활했다. 역명판도 없 고, 역에 역명도 써있지 않고, 역사(驛舍)도 당연히 없다.
봉동역 앞에 화물터미널이 생기기 전까지는 화물열차가 봉동역이 아닌 판문역에서 회차하게 되어있다.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는 문산역과 철도 화물 수송을 계획으로 명시하는 10.4선언까지 이루어졌다. 2008년 11월 28일부터 남북관계 경색여파로 현재는 경의선 화물열차 자체가 다니지 않는다.
화물터미널이 없는 상태에서 대한민국이 보내주는 원조물자를 받고 있다. 주로 받는 물품은 쌀 및 비료 등. 참고링크
3. 여담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소련군이 주둔하던 개성역에서 기차를 타지 못해 이 역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장면이 나온다.4. 둘러보기
평부선의 역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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