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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 전경. 두 미나렛은 각각 이샤크 첼레비 모스크와 예니 모스크
쉬록 소카크 (중심가)
비톨라 Битол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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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보 | ||
지역 |
펠라고니아 비톨라 | |
시장 | 토니 콘자노프스키 | |
면적 | 2,637km² | |
인구 | 105,644명 | |
인구 밀도 | 26/km² | |
시간대 | UTC+1 (GMT)[1] | |
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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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마케도니아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그리스와 맞닿아 있다. 아드리아해와 에게해, 중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차로에 위치해 있어서 오스만 제국 시절 부터 많은 유럽 국가들이 비톨라에 영사관을 두어서 영사관의 도시로 알려졌다. 비톨라는 북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 쿠마노보에 이어저 3번째로 큰 도시이기도 하다.2. 어원
비톨라라는 이름은 고대 교회 슬라브어인 ѡ҆би́тѣл҄ь에서 유래했으며 그 뜻은 수도원 또는 회랑을 의미한다.3. 지리
비톨라는 드라고르 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며 바바 산의 산기슭에 있는 해발 615m의 고도에 위치해 있다. 바바 산 혹은 펠리스터 산은 해발 2,610m이며 마케도니아 소나무로 알려진 희귀한 소나무 종이 자라고 있다.4. 역사
헤라클레아 린케스티스 유적
역사적으로 비톨라 일대는 마케도니아인들이 살았다. 하지만 마케도니아 왕국의 국왕인 필리포스 2세가 이 일대를 통일하고 비톨라 지역에 헤라클레아 린케스티스(Ἠράκλεια Λυγκηστίς)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다. 헤라클레아 린케스티스는 특유의 전략적 위치 때문에 매우 번영하였으며 이는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4.1. 중세
비잔틴 제국이 쇠락하자 472년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 대왕의 침략을 시작으로 여러 부족들이 비톨라를 공격하였다. 결국 비톨라에 살았던 원주민들은 도시를 떠나고 그 자리를 슬라브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슬라브인들이 비톨라에 정착하자 비잔틴 제국은 이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이 일대에 요새를 세우기 시작했고 이에 슬라브인들도 요새를 짓기 시작했다. 비톨라는 비잔틴 제국과 슬라브인들의 최전선이었고 10세기에는 불가리아 제1제국의 차르인 사무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비잔틴 제국은 비톨라를 탈환하기를 원했고 이에 1015년 불가리아군과 비잔틴 제국군이 비톨라에서 맞붙게 되었다. 결국 비톨라 전투에서 불가리아군이 승리하였고 결국 비잔틴 제국의 황제 바실리오스 2세는 불가리아의 수도 오흐리드에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3세기 부터 힘을 키운 오스만 제국은 비잔틴 제국과 불가리아를 침략하였고 둘은 맥없이 멸망하였다.
4.2. 오스만 제국기
1506년에 세워진 이사크 모스크
오스만 시기 비톨라는 모나스티르(Monastir)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모나스티르는 발칸 반도 남부 지역에서 테살로니키 다음으로 변영한 도시였으며 19세기에는 튀르크주의가 매우 번성하였다. 하지만 이 도시는 알바니아인들이 많이 살아서 알바니아 해방 비밀 위원회가 비톨라에 위치한 페힘 자발라니의 집에서 설립되기도 했다.
4.3. 근현대
19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이 쇠락하자 주변 국가들은 비톨라를 호시탐탐노렸다. 제1차 발칸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하자 비톨라 일대를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가 나눠가졌다. 도시 부분은 세르비아가 가져갔다. 1991년 9월 8일 북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비톨라는 자연스럽게 북마케도니아의 차지가 되었다.5. 랜드마크
예니 코스크 (1558년 건립)와 시가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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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다르 카디 모스크 | 함자 베이 모스크 |
하지 마흐무드 베이 모스크
헤라클레아 린케스티스 유적
- 시로크 소카크 (Широк Сокак) : 비톨라에 위치한 보행자 전용 거리로 비톨라의 중심지로 여러 국가의 영사관이 위치해 있다.
- 장교 홀 (Офицерски дом) : 오스만 제국 시절 만들기 시작해 세르비아 왕국이 완성한 건물로 유고슬라비아 국립군사청사가 들어섰다. 독립 후에는 북마케도니아 공화국 군사청사가 들어섰다가 현재는 문화 정보 센터로 쓰이고 있다.
- 성심 공동 대성당 (Црква Пресвето Срце Исусово) : 19세기 설립된 신 고딕 양식의 가톨릭 성당.
- 시계탑 (Саат кула) : 1664년 이 일대를 다스리던 오스만 제국의 베이인 마흐무트 베이가 세운 시계탑으로 전설에 따르면 60,000개의 달걀을 모아서 껍질을 건축용 모르타르에 섞었다고 한다.
- 하이다르 카디 모스크 (Ајдар Кади Џамија) : 오스만 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미마르 시난가 설계한 모스크로 1561년 완공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비톨라에서 물러나자 모스크는 버려졌으나 튀르키예 정부의 후원으로 2016년 11월 4일 다시 문을 열었다.
- 오래된 바자르 (Стара Чаршија) : 16세기에 세워진 바자르로 현재 86개의 상점과 3개의 큰 철문이 있다.
- 이샤크 셀레비 모스크 (Исак џамија) : 비톨라에서 가장 큰 모스크로 1506년에 세워졌다.
- 매그놀리아 광장 (Плоштад Магнолија) : 비톨라의 중앙에 위치한 광장으로 오스만 제국 시절 주요 문화 중심지였다. 광장 중앙에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국왕이자 비톨라를 설립한 필리포스 2세의 동상이 있으며 마케도니아의 상징인 베르기나의 태양이 있는 분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