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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문서는 상명대학교의 역사에 대해 다룬다. 상명대학교의 설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변천 과정, 캠퍼스 발전, 학문적 변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보다 상세하고 최신의 정보는 상명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및 관련 자료를 참고할 것.2. 1930~50년대
2.1. 상명고등기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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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고등기예학교 |
상명실천여학교 수업장면 |
상명대학교의 기원은 1937년 12월 1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14번지에 설립된 상명고등기예학원에서 시작된다. 설립자인 배상명은 일본 도쿄의 동경여자고등기예학교[1]에서 유학한 후, 한국에서도 수예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기예학교를 세웠다.
2.2. 상명실천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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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실천여학교 1 |
상명실천여학교 2 |
1940년, 학교는 정식으로 여자실업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교명을 상명실천여학교로 변경하였다. 이와 함께 종로구 사직동으로 교사를 이전하고, 약 3만 원을 들여 2층 양옥 건물을 신축하였다. 당시 교육 과정은 본과 3년, 전수과 2년 과정으로 운영되었으며, 입학정원은 150명이었다.
2.3. 재단법인 상명학원의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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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학원 80주년 |
1945년 7월 15일, 재단법인 상명학원이 설립되었으며, 이후 6.25 전쟁 기간 중 부산 구덕산에 상명중학교와 상명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두 학교는 1979년 재단법인 민정학원으로 독립하였으며, 설립 당시에는 여학교로 운영되다가 2003년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다.
1953년, 상명학원 재미재단이 설립되었으며, 당시 신시내티 대학교 총장이던 월터 C. 랭삼(Walter Consuelo Langsam)이 명예 이사장을, 한국 YMCA 총간사를 지낸 조지 A. 피치(George Ashmore Fitch)가 이사장을 맡았다.
3. 1960년~1980년대
3.1. 상명여자사범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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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여자사범대학 로고 |
상명여자사범대학 모습 |
상명여자사범대학 입구 |
1965년 3월 5일, 상명대학교의 직계 전신인 상명여자사범대학이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대학 설립 기념일 또한 1965년으로 지정되었다. 같은 해, 서울 종로구 세검정 홍지동에 신축 교사를 착공하였으며, 1966년 9월 1일 670평 규모의 4층 신축 건물로 이전하였다. 초대 학장으로는 설립자인 배상명이 취임하였다.
개교 당시 가정교육과(30명), 미술교육과(30명), 체육교육과(30명) 총 90명이 입학하였으며, 1967년에는 국어교육과 및 외국어교육과(영어전공)가 신설되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학과를 증설하며 교육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3.2. 상명여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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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여자대학 천안캠퍼스 설립 |
1983년 3월 1일, 상명여자사범대학은 상명여자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며 사범대학에서 일반대학으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미 교육부에 종합대학교 승격을 신청하였으나 반려되었다.
1985년 3월 1일에는 충청남도 천안시에 천안캠퍼스가 설립되었다. 이는 여자대학교 최초의 지방캠퍼스로, 기존의 청주여자사범대학이 서원대학교로 남녀공학화되면서 충청권 유일의 여자대학이 되었다. 1986년에는 설립자인 배상명이 별세하였다.
3.3. 상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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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여자대학교 로고 |
대학 규모를 확장한 상명여자대학은 1987년 3월 1일, 종합대학교로 승격되면서 상명여자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 재단 내 비리 문제가 불거지며 1987년과 1988년에 걸쳐 학내 민주화 투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약 2억 원의 횡령, 신입생 및 편입생 부정입학, 대천 부지[2] 매입 논란 등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학생들은 중간고사 거부 및 밤샘 농성을 벌였으며, 결국 당시 총장이었던 방정복이 사퇴하고 교수 직선제를 통해 신임 총장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신임 총장은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방정복 총장에게 다시 자리를 넘겨주었으며, 이에 반대하는 추가적인 투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4. 1990년대 ~ 현재
4.1. 상명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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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학교 로고 |
2017년에는 서울캠퍼스와 천안캠퍼스를 통합하는 이원화 캠퍼스 체제로 개편되었다. 이를 통해 수도권 대형 대학으로의 전환을 이루었으며, 두 캠퍼스 간 복수전공 및 제한적인 전과[3]가 가능하도록 운영 방침을 변경하였다. 현재 상명대학교는 다양한 국책 사업을 수행하며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