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0 22:16:53

상트 오틸리엔

독일어: Benediktinerkongregation von St. Ottilien
영어: Benedictine Congregation of Saint Ottilien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는 베네딕토회 규칙을 따르는 가톨릭 수도회 중 하나로, 모원이 독일 에레싱 부근에 있다. 오틸리아 연합회(Ottilianer Kongregation) 또는 선교 베네딕도회라고도 불린다.

상트 오틸리엔(St. Ottilien, 혹은 장크트 오틸리엔) 수도회는 안드레아스 암라인(Andreas Amrhein) 신부에 의해 1884년에 설립되었으며, 현재까지 아우크스부르크 교구의 지역에서 수도생활을 계속해 오고 있다.

오틸리엔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성녀 오틸리아에게 봉헌된 조그만 경당이 있었던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과 교류가 많은 수도회이기 때문에, 한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가는 수도원이기도 한다. 수도원 성당 옆에 위치한 선교박물관(Missionsmuseum)에는 한국 관련 유품들이 소규모 소장되어 있다. 주로 아프리카 선교 관련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 관련해서도 꽤 중요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어서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선교박물관의 입장료는 별도로 없고 기부로 운영된다.

기록에 따르면 1908년 9월 15일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는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고등 교육기관 설립에 적합한 수도회 물색을 위해 프랑스로 건너온 뮈텔 주교는 이를 위해 수많은 수도회를 방문했으나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로마에서도 역시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던 뮈텔 주교는 포교성성 장관 고티 추기경을 만난 자리에서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도회를 소개받았다. 귀국 일정까지 늦춰 수도원을 찾았던 뮈텔 주교는 놀벨도 웨베 아빠스를 만나 한국 사정을 전하며 선교사 파견을 청했다.

상트 오틸리엔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1884년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에 의해 시작, 선교의 틀을 막 잡아나가던 상황에서 1887년 아프리카에 첫 선교사를 파견한 이후 여러 가지 면에서 여력이 부족하던 때였다.

그러나 뮈텔 주교의 설득으로 웨버 아빠스는 이듬해 1월 11일 모원 경리책임자 도미니쿠스 엔쇼프 신부와 딜링엔 수도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원장신부를 한국에 파견했다. 한국에서 베네딕도회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고 남자수도회가 처음으로 한국 땅에 공동체를 마련하는 서막이기도 했다.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를 비롯한 수도사들이 1909년부터 한국에 와서 수도생활과 선교,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1909년부터 1927년까지는 서울에서, 그 이후 1948년까지는 함경남도 덕원군[1]에서 수도생활을 했다.

1948년 이후에는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수용소에 수감되거나 추방을 당했다.

대수도원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이 이룩한 수도회는 한국전쟁기를 거쳐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으로 이전하여, 지금의 왜관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명맥을 한국에서 이어오고 있다.

대수도원에 가기 위해서는 겔텐도르프(Geltendorf) 역이나 장크트 오틸리엔(St. Ottilien)역을 가야 한다. 뮌헨 국제공항이나 중앙역에서는 지상전철(S-Bahn)을 통해서 겔텐도르프까지 간 뒤에 그곳에서 장크트 오틸리엔 역으로 BRB를 타고 갈 수 있다. 아니면 겔텐도르프 역에서 내려서 약 3-40분 정도 도보로 수도원에 도달할 수도 있다. 혹은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BRB를 타고 장트 오틸리엔 역으로 오는 방법도 있다. BRB가 보통 30분 혹은 1시간에 1대 오므로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겔텐도르프 역을 나가면 택시 예약 카운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택시를 탈 수도 있다. 택시요금은 대략 10-20유로 선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대수도원에는 피정의 집(Exerizitenhaus)과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다. 예약은 수도회 홈페이지를 통해 하면 된다. 숙박예약 담당 수도자나 직원의 경우에는 영어를 할 수 있으므로 영어로 메일을 보내도 무방하다.


[1]원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