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20:20:54

1970년 서울 시내버스 개편


1. 개요2. 개편 노선 목록

1. 개요

1970년 4월 1일부로 시행된 서울특별시 시내버스의 개편에 대하여 소개하는 문서이다. 당시 개편에서는 <좌석버스, 급행버스, 일반버스> 등 3개 등급으로 운영했던 노선들을 <급행버스, 일반버스, 시영버스>의 새로운 형태의 등급으로 바꾸는 방식의 '대개편'이 시행되었다. 기존에 운행하던 좌석버스들은 전부 입석(도시형)으로 전환되었다.

이 때 시행되었던 개편이 2004년 7월 1일 서울 대중교통 개편까지 유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1] 34년 간 수 많은 노선의 신설과 폐선, 개편 등으로 상당수의 흔적이 사라졌다.

1970년 개편 당시에는 차후 신설될 노선들을 대비해 일부러 중간중간에 공번을 두었지만, 이마저도 70년대 중반 이후 다 차버리는 바람에 '-1, -2'와 같은 파생번호가 쓰이게 되었다. 정릉 기점으로 시계방향으로 부여하는 규칙도 기종점 변경, 좌석버스 신설 및 도시형 전환, 노선권 매각, 업체들의 자의적인 번호 부여 등등으로 인해 금방 무의미해졌으며 거기에 시영버스 출신 노선을 의미하는 200번대, 70년대 중후반 이후 사용된 순수 신설노선 전용 번호대인 300번대, 어린이대공원 경유 노선 번호대인 500번대, 80년대 신설된 좌석버스 번호대인 700번대[2], 지하철 연계 순환버스 800번대가 한데 뒤섞여 10년만에 분류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2. 개편 노선 목록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ffff, #ffffff 20%, #ffffff 80%, #ffffff);"<tablealign=center><tablewidth=400><tablebordercolor=#ffffff><tablebgcolor=#ffffff> 파일:서울특별시 휘장(1947-1996).svg서울특별시 시내버스
1970년 개편 노선
}}} 급행버스 / 일반버스||
기존 번호 개편 번호 기점 종점
71번 (좌석) 1번 정릉동 연희동
72번 (좌석) 2번 서강
71번 (입석) 3번
11번 (급행) 7번 수유리 홍익대학교
13번 (급행) 8번 망원동
13번 (입석) 9번 서울역
12번 (급행) 13번 의정부시 의정부시
14번
16번 (입석) 15번 도봉동 종로5가
12번 (입석) 18번 창동 후암동
11번 (좌석) 19번 쌍문동 마포구
15번 (입석) 20번 서울역
13번 (좌석) 23번 삼양동 용산동
15번 (좌석) 24번 영등포
17번 (좌석) 25번 미아국민학교 효창동
10번 (급행) 26번 삼양동 시흥군 안양읍
17번 (입석) 27번 서울역
10번 (좌석) 31번 장위동 북아현동
12번 (좌석) 32번 후암동
11번 (입석) 33번
23번 (좌석) 37번 이문동 염리동
23번 (입석) 38번 석관동 원효로
35번 (좌석) 39번 경희대학교 서울역
25번 (좌석) 43번 상계동
24번 (좌석) 45번 불암동 종로5가
26번 (좌석) 48번 망우리 응암동
56번 (입석) 49번 중랑교 문화촌[3]
22번 (급행) 50번 면목동 연희동
57번 (입석) 51번 문화촌
21번 (좌석) 54번 전농동 마포구
22번 (좌석) 55번 답십리 봉천동
22번 (급행) 56번 이촌동
22번 (입석) 57번 효창동
91번 (입석) 60번 마장동 구평동
33번 (좌석) 62번 성수동 동교동
36번 (좌석) 63번 경마장 효자동
37번 (급행) 64번 뚝섬 서울역
36번 (입석) 65번
31번 (좌석) 68번 천호동
37번 (좌석) 69번
31번 (급행) 70번
31번 (입석) 71번
56번 (좌석) 74번 옥수동 홍은동
57번 (좌석) 75번 갈현동
45번 (급행) 76번 금호동 신길동
41번 (입석) 78번 한남동 서울역
38번 (좌석) 79번 금호동 보광동
42번 (입석) 80번 보광동 서울역
81번 응봉동
81번 (좌석) 84번 중앙대학교 경동중학교
82번 (좌석) 85번 동작동 성북동
82번 (급행) 86번 남성동 홍릉
81번 (급행) 87번 동작동 중곡동
83번 (급행) 88번 중화동
81번 (입석) 89번 남성동 신흥사
62번 (좌석) 92번 상도동 창신동
42번 (좌석) 95번 신림동 미아동
65번 (입석) 96번 중앙청
39번 (좌석) 98번 신길동 마장동
41번 (좌석) 99번 농대앞[4]
91번 (좌석) 101번 대림동 독립문
89번 (급행) 103번 시흥군 안양읍 중앙청
89번 (좌석) 104번 삼청동
83번 (급행) 107번 동작동 중화동
80번 (좌석) 109번 영등포 영등포
87번 (좌석) 110번 양남동 청계6가
87번 (입석) 111번 중앙청
86번 (좌석) 112번 문래동 을지로6가
86번 (급행) 113번 약수동
86번 (입석) 114번 서울역
84번 (좌석) 118번 구로동 을지로6가
84번 (급행) 119번 중앙청
84번 (입석) 120번
85번 (좌석) 123번 오류동 청계6가
85번 (급행) 124번 중앙청
85번 (입석) 125번
80번 (급행) 128번 화곡동 중곡동
88번 (좌석) 129번 김포군 중앙청
88번 (급행) 130번
20번 (입석) 132번 홍릉 합정동
21번 (입석) 133번 노고산 회기동
78번 (입석) 135번 염리동 구평동
75번 (좌석) 136번 서강[5] 쌍문동
72번 (입석) 137번 자유센터
61번 (좌석) 139번 봉원동 동대문
61번 (급행) 141번 남가좌동 마장동
64번 (입석) 142번 상도동
53번 (좌석) 145번 화전동 서울역
52번 (급행) 146번 수색동 이문동
53번 (입석) 147번 서울역
55번 (좌석) 150번 북가좌동 봉천동
51번 (급행) 152번 역촌동 역촌동[A]
51번 (입석) 155번 갈현동 옥수동
52번 (입석) 156번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A]
51번 (급행) 157번 갈현동 답십리동
158번 갈현동[A]
56번 (급행) 161번 문화촌 장위동
57번 (급행) 162번 수유리
26번 (입석) 164번 홍릉 양주군 진접면 장현리
27번 (입석) 165번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
서울특별시 시영버스 (200번대)
103번 (입석) 207번 시흥동 시청
115번 (입석) 209번 영등포구청 한양대학교
113번 (입석) 215번 도봉동 서울역
113번 (좌석)
102번 (좌석) 228번 화곡동 용두동
102번 (입석) 229번 개화동 영등포구청
111번 (좌석) 233번 구평동 공무원아파트[9]
104번 (입석) 243번 상계동 서울역
104번 (좌석)
105번 (입석) 271번 거여동 시청
108번 (입석) 272번 송파동 서울역
109번 (입석) 273번 광주군 동부면 신장리 을지로5가
110번 (입석) 274번 하일동[10] 서울역
116번 (입석) 275번 광주군 중부면 수진리 천호동
106번 (입석) 288번 원지동 시청


[1] 체계가 유지되었다는 얘기지 노선이 유지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2] 좌석버스(미니버스) 제도 시행 초창기인 1977년에는 두자리 수 번호를 사용했으나, 대략 80년대 초반 이후에는 차량 대형화와 도시형버스와 노선이 비슷한 좌석버스의 확대 등등의 사유로 700번대까지 사용하게 되었다.[3] 서대문구 홍제3동 일대에 있는 마을로, 인왕산 자락에 있는 산동네이다. 과거 제일여객 등의 차고지가 위치해 있었다.[4] 1970년 당시 '농대앞'은 두 장소로 유추해볼 수 있는데, 한 곳은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했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서울시립대학교의 당시 명칭인 서울농업대학이다. 그러나 당시의 교통상황을 볼 때 시외버스와 기차로만 갈 수 있던 수원까지 서울시 시내버스가 운행되었을 확률은 매우 낮아 후자의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교통이 매우 발달한 현재에도 서울 시내버스는 의왕시까지만 운행한다.[5] 지금의 서강대역 인근을 말하며, 6716번처럼 루프형 회차 방식으로 운행했다.[A] 명동을 경유한 뒤 서울역에서 회차하는 방식이었다.[A] [A] [9] 현재 이촌동 한가람아파트[10] 게내(고덕천)의 아래쪽에 있었다고 하여 '하일리'였으며, 과거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하일리였다. 1963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하일동으로 편입되었으며, 1979년 현재 행정구역인 강동구 하일동으로 분리되었다. 2000년대 들어 강동지역 재개발 붐에 맞추어 '하(下)'라는 글자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 2000년 강일동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