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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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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仲錫

1. 개요2. 생애3. 성향4. 저서
4.1. 저서일람
5. 여담

1. 개요

홈페이지

대한민국역사학자, 대학교수. 본관은 대구(大丘)[1].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3년 8월 정년퇴임하여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 ‘약산김원봉과함께’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다. 역사스페셜 같은 역사 관련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기도 했으며 인터뷰도 자주 하는 편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 생애

1948년 8월 25일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서정철과 어머니 경주 김씨 김기선(金基仙, 1912. 6. 2 ~ 1984. 9. 24)[2] 사이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7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67학번으로 입학해 일계 김철준(一溪 金哲埈, 1923 ~ 1989) 교수 등의 가르침을 받았고[3], 이듬해에 휴학하던 중 1969년 3선 개헌 반대 시위에 참여, 그 해 철학과·미학과·종교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다 제적당하고, 결국 군대에 강제로 입대했다가 1972년에 만기 전역했다.

군에서 전역할 무렵 10월 유신이 있었고, 복학 허가가 떨어졌다. 1973년 유신체제 반대 시위 운동에 가담했는데,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 연루되어 사전검속을 당했다. 당시 고향으로 피신해있었는데 집에서 붙잡혔다고(...) 그때 중앙정보부에서 심하게 고문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당시 중정에서 이철, 유인태 등이 안 잡히니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고문했다고 한다.[4] 서중석 교수 회고에 따르면, 물고문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지금도 고문 후유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5] 민청학련 사건으로 군사법정에서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20년으로 감형됐다. 실제 투옥기간은 10개월 반 정도였다고 한다.#

석방된 후 다시 학교에서 두 번째로 제적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운동권 후배들을 만났다는 이유로 국군보안사령부로 연행되었고 심한 구타를 당했다. 그때 세 번째로 제적당했다고 한다.

1979년 동아일보 기자[6]신동아에서 1988년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기자생활 중에도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면서 지내다 1984년 봄에 사면복권됐고, 복학할 수 있었다. 1984년 9월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 입학하여 3년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1987년 석사 학위[7]를 취득했고, 1988년 3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 해 9월 동아일보 기자를 사직하고 학문에만 전념하기 시작, 1990년 8월에 '한국 현대사' 분야로 국사학 박사 학위[8]를 취득했는데, 이를 통해 한국 역사학계에서 한국현대사 박사 학위 1호로 기록되었다.[9] 이후 한국 현대사의 최고 권위자로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학위를 취득하고 얼마 뒤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에 임용되어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 부문의 제자들을 가르쳤으며[10] 2013년 8월에 정년 퇴임했다. 후임자는 당초 일본인 후지이 다케시氏(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 현 일본 동경외국어대 교수)라고 알려졌으나 2015년 2학기부터 오제연 교수가 후임자로 부임했다.

이후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을 비롯한 현대사의 여러 과거사 사건 진상규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밖에 대중강연도 활발하게 하는 편이다.

2013년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 '1974년 긴급조치 1·4호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서중석 교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서 교수와 함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황인성, 나병식 등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서 교수 등이 벌인 학생 데모의 목적은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공소사실처럼)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은 없었다"고 판결 내렸다.

3. 성향

사관은 대체적으로 강만길 교수나 이이화 선생과 같은 민중사관 쪽의 평화통일 민족주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좌우합작과 6.15남북공동성명과 같은 햇볕정책에도 호의적이다.

한국사에서 이승만김구[11]와 같은 우파노선, 박헌영, 김일성과 같은 좌파노선 모두에 비판적이고, 좌우합작을 지향하던 중도파인 김규식이나 안재홍, 여운형, 그리고 민족주의 성향에 현실론적 노선을 중시하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이재유나, 식민지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지만 해방 이후 좌익에서 중도파로 전향한 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가해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봉암을 높이 평가한다. '약산김원봉과함께'에서 공동대표를 맡기도 한 것으로 보아 김일성, 박헌영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김원봉에 대해서는 온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개정증보 2~3판 머릿말에 따르면 발간 시점에서 벌어진 최근의 역사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쓰는 유보적인 모습도 보인다.

포스트모더니즘계열 사상이나 역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동 학교 명예교수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전문가 김택현 교수이며, 딸 서지원 서울대 교수는 베네딕트 엔더슨의 저서 『상상의 공동체』를 번역하고 『베네딕트 앤더슨』이라는 책을 썼다.[12]

더불어 학부에서는 그리 엄격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원에서는 공부를 압박하는 무서운 교수님으로 꼽혔다고 한다. 물론 학부생 중에도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다. 과거에는 한국사 교양과목 수업이 열리면 가장 먼저 자리가 차서 광클을 해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교수였다.

4. 저서

대표저서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가 있는데, 박사논문을 출판한 이 책은 한국현대사 연구 서적 단행본으로 연구가치가 상당히 높은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에 대해 좋든 싫든 간에 현대사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로서는 반드시 한두번쯤 보거나 참고하게 돼있다. 초보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어렵고, 문장도 매우 빽빽한 편으로 근현대사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13]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대중용으로 쓴 책으로, 읽기 쉽게 구성된 한국 현대 통사이다. 그밖에도 대중용 강연을 모으거나, 대중용으로 쉽게 글을 써서 여러 책을 출간하였다. '한국현대사 60년'도 대중용 책으로, 이 책은 외국 여러 국가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4.1. 저서일람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 역사비평사, 1988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역사비평사[14]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 1948~1950 민주주의 · 민족주의 그리고 반공주의》,역사비평사[15]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돌베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대한민국 선거이야기》,역사비평사
《한국 현대사 60년》,역사비평사
《이승만과 제1공화국 :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역사비평사[16]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창비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역사비평사
《조봉암과 1950년대 상,하》,역사비평사
《전장과 사람들》,선인
《전쟁 속의 또 다른 전쟁 : 미국 문서로 본 한국 전쟁과 학살》,선인
《민족주의와 역사교육》,선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 : 5인5색 한국 현대사 특강》,철수와영희
《배반당한 한국민족주의》,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비극의 현대지도자》,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역사비평사
《거꾸로 희망이다》,참언론 시사인북
《6월 항쟁(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돌베개, 2011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1~20권(완) ,오월의 봄
《전환기 현대사의 역사상》,역사비평사, 2021

5. 여담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인 정재환이 그의 지도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 주기적으로 프레시안에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해당 인터뷰 시리즈는 오월의 봄 출판사를 통해 책으로도 나오고있다.
  • 뉴라이트 계열 연구자들은 서중석 교수를 싫어하며, 서중석 교수 역시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을 싫어하고 비판한다.
  •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을 비판했다가 연세대학교 용재 석좌교수 시상을 하루 전에 취소당했다.


[1] 만사공(晩沙公) 경우(景雨)파 27세 석(錫) 항렬.[2] 김문환(金文煥)의 딸이다.[3]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초판 머릿말에서 김철준 교수가 언급됐다.[4] 당시 중정은 폭력으로 도시 중심부를 마비시키고 새 정권을 세우려 했다는 식으로 몰았다고 한다.[5] 고문당한 이후론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한다. 2009년~2010년 즈음부터는 수면제를 상시 복용해야 잘 수 있다고 한다.[6] 이 무렵 10.26 사태 나고 다시 복학 조처가 내려져 학생 신분이기도 했다고 한다.[7] 석사 학위 논문 : 韓末 . 日帝侵略下의 資本主義 近代化論의 性格 : 島山 安昌浩思想을 중심으로(한말 . 일제침략하의 자본주의 근대화론의 성격 : 도산 안창호사상을 중심으로).[8] 박사 학위 논문 : 解放後 左右合作에 의한 民族國家建設運動 硏究(해방후 좌우합작에 의한 민족국가건설운동 연구). 당시 지도교수는 한영우 교수였다.[9] 역사를 부문사로 다룬 논문과 논저는 이미 앞서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특히 사회과학계에서 활발한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1979년 처음 출간되어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집필진들도 대부분 사회과학 전공자들이었다.[10] 코미디언 출신 방송인 정재환이 그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11]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은 정치인 김구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를 하는 편이다. 이는 김구가 불굴의 의지를 가진 독립투사이긴 했지만 정치력에 있어서는 이승만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우파 강경론과 임정집권, 신탁반대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결국 중도노선과의 연합도 실패하고, 우파 내에서는 미군정 반대 쿠데타를 꾀하다 발각되 미군정과 갈라서고, 김성수나 장택상 등의 한국민주당 세력이나 이승만과도 갈라지며 고립된 점, 그 과정에서 통일논의가 물거품이 된 점 등이 꼽힌다.[12] 물론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는 인문사회계열의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을 번역했다고 해서 앤더슨의 논지를 무조건 동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13] 한국현대사에 관심을 가진 학부생들이 멋모르고 덤볐다가 현대사 연구의 꿈을 포기했다는 썰이 있을 정도...[14] 출세작,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15] 위의 지속 내용[16] 20세기 한국사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