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01:22:24

섭(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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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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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씨2. 실존 인물3. 가상 인물

1. 성씨



葉은 중고한어에서 잎사귀의 "엽"(與涉切, jĭɛp)과 성씨의 "섭"(書涉切, ɕĭɛp), 두 가지 발음이었으나 근현대로 오면서 "엽" 한가지로 통일되었다. 한국에선 같은 한자를 쓰면서 중국처럼 발음을 통일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서 엽씨섭씨로 나뉜다. 섭자 음으로 읽는 유명인으로는 청나라 말기의 장군으로 섭지초(葉志超)가 있다.

본관은 1985년과 2000년, 2015년 시행된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경주(慶州), 공촌(公村, 또는 수원), 수원(水原), 이파산(泥波山)[1], 처인(處仁, 또는 용인), 충주(忠州), 해평(海平, 또는 선산) 등 7개의 본관이 나타났고 각 본관의 유래는 밝혀진 바 없다. 《증보문헌비고》에는 회미(澮尾)[2], 인의(仁義)[3], 평해(平海) 등의 본관도 나타난다.

인구는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국에 604명(경주 313명, 공촌(또는 수원) 64명, 수원 5명, 이파산 2명, 처인(용인) 1명, 충주 4명, 해평(선산) 8명, 기타 171명, 미상 36명)으로 나타났고, 2000년에는 전국에 450명(경주 285명, 공촌(수원) 105명, 수원 11명, 이파산 2명, 처인(용인) 4명, 충주 31명, 해평(선산) 10명, 미상 2명)으로 줄었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 때부터 엽씨가 등장하는데, 아마 이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2000년 당시 엽씨의 인구는 전국에 127명(경주 113명, 충주 3명, 미상 11명)으로 나타났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섭씨의 인구가 75명(경주 71명, 기타 4명)으로 대폭 줄었고, 엽씨의 인구는 571명(경주 483명, 담양 26명, 진주 8명, 충주 39명, 기타 15명)으로 대폭 늘었다. 그리고 《경주엽씨대동보(慶州葉氏大同譜)》가 2018년 9월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수동에 있던 경주엽씨대동보편찬위원회에서 발행된 것으로 보아 1985년 당시 섭씨로 신고했던 사람들이 2010년대 들어서는 엽씨로 바꾸고 있는 추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사》 세가(世家)에 1012년(현종 3) 여름 6월에 북송 사람 섭거전(葉居腆)이 임덕(林德)·왕호(王皓)와 함께 고려에 투항한 기록이 있으며, 1061년(문종 15) 여름 6월에 북송의 진사(進士)인 섭성(葉盛)을 전전승지(殿前丞旨)로 임명했는데, 음률에 밝았다는 기록도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 및 사마방목·국조문과방목 등에 섭천지(葉千枝)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섭천지는 1465년(세조 11) 식년 진사시에 3등 70위로 입격해 단양군 훈도(訓導, 종9품)를 역임하던 중 1485년(성종 16) 알성(謁聖) 문과에 3등 1위로 급제했고, 관직은 성균관 전적(典籍, 정6품)에 이르렀다. 《성화1년을유1월○일생원진사시방목(成化元年乙酉正月○日生員進士試榜目)》과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는 그의 본관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재향지(梓鄕誌)》- 순흥지(順興誌) 문과편(文科篇) 본조(本朝) 조에 본관이 여주(驪州)이고 수민단(壽民丹, 現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에서 살았다고 쓰여 있다. 《성화1년을유1월○일생원진사시방목]](成化元年乙酉正月○日生員進士試榜目)》에 거주지는 한성부, 아버지는 사정(司正, 정7품) 섭공무(葉孔茂)로 기재되어 있다.[4]

중국 바둑기사 녜웨이핑(섭위평)이 한자는 다르지만 聶 성을 쓴다.

2. 실존 인물


3. 가상 인물


[1]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에 있던 지명이라고 한다.[2]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3]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에 있던 태인현(泰仁縣)은 태산(泰山)과 인의(仁義)가 합쳐서 생긴 지명이다.[4] 《경주엽씨대동보(慶州葉氏大同譜)》 207쪽에 이 인물이 등장하고 있어 경주 엽씨 문중에서는 그를 경주 엽씨(慶州葉氏) 11세의 인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족보상 기록에 따르면 엽천지(葉千枝, 1464. 11. 13 ~ 1516. 8. 25)의 자는 문현(文賢), 호는 만취당(晩翠堂), 아버지 엽평중(葉平仲, 1428. 8. 6 ~ 1467. 2. 13)과 어머니 남원 윤씨(1428. 3. 20 ~ 1469. 5. 7) 윤병남(尹炳南)의 딸 사이에서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형 엽억지(葉億枝)가 있었다. 그러나 족보상 1464년에 태어난 사람이 1465년에 진사시에 입격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경주엽씨대동보(慶州葉氏大同譜)》 상의 기록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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