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10:23:07

해(성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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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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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解2. 海
2.1. 상세2.2. 나무위키에 등재된 유명인2.3. 가상 인물
3. 관련 문서

1.

우리나라 고대 성씨 중 하나로 부여의 왕성으로 유명하며, 백제 대성팔족의 해씨도 부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1] 발해에서도 하급귀족쯤 되는 가문으로 등장한다.[2] 북부여와 고구려 건국신화에 나오는 시조신 해모수(解慕漱)를 시조로 하며, 해모수를 마찬가지로 조상으로 보는 고구려 왕성(王姓) 고씨나 백제 왕성(王姓) 서씨, 여씨는 그 후손이 현존하지만, 정작 해(解)씨는 1930년 조선총독부 국세조사와 1985년도 및 2000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다가 201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야 전국에 겨우 9명만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도 해씨가 존재한다. 물론 한국의 해씨와는 전혀 상관없이 우연의 일치로 같은 한자를 썼을 뿐으로, 기원을 보면 주나라의 왕성인 희성(姬姓)에서 계출되었고, 현 산시성 윈청시에 위치해 있었던 해현(解縣)을 주 왕실로부터 봉지로 받았기에 당시에 으레 그랬듯이 지명을 씨로 쓰게 된 것에 해당한다. 당서 열전에도 해완(解琬)이라는 인물이 등재되어 있다. 또한 원래 복성인 해비(解毗, 解批)씨가 성씨를 축약하면서 탄생한 해씨도 있다 한다. 중국의 백가성(百家姓)중 161위이다. 현대중국의 해씨는 94.6%가 한족이다.

2.

본관은 김해(金海) 단본이며, 시조는 명나라 홍무제 때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해서필(海瑞必)이다. 해서필은 호가 양촌(陽村)으로 홍무제의 명을 받아 대도독(大都督)의 직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조선 태조가 그의 공훈을 높이 사 김해부원군(金海府院君)에 책봉하였다고 한다.[3] 시조의 묘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에 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1 「앙엽기(盎葉記)」에 수록된 '동국제성(東國諸姓)'을 보면, 이덕무가 1789년(정조 13) 《동국여지승람》을 수보하면서 한성부 호적을 일일이 검사하며 당시 한성부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성씨를 모두 기록해놓았는데, 이 중에서도 해(海)씨가 나타난다.

중국 통계에 따르면 중국 해(海)씨중 46.4%가 회족, 31.2%가 한족, 18.4%가 몽고족이다.

2.1. 상세

1930년도 조선총독부 국세조사 당시에는 김해(金海) 6가구, 진주(晉州) 1가구, 본관 불명 1가구 등 총 8가구가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지역별
전라남도 목포부 호남정(현 목포시 호남동) - 김해 해씨 해종한(海宗漢) 1가구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수산리 - 김해 해씨 해춘수(海春洙), 해낙서(海洛瑞), 해경욱(海京旭) 3가구
●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하촌리(현 나주시 반남면 성계리) - 김해 해씨 해대례(海大禮), 해일순(海溢順) 2가구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 진주 해씨 해종수(海宗洙) 1가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면(현 영암읍) 농덕리 - 본관 불명 해학중(海學仲) 1가구
※ 8가구 모두 전라남도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영암군에 김해 해씨 3가구, 진주 해씨 1가구, 본관 불명 1가구, 그리고 나주시에 김해 해씨 2가구, 목포시에 김해 해씨 1가구가 나타났다.

이중 전라남도 목포부 호남정(현 목포시 호남동)에 살던 해종한(海宗漢)씨는 해씨가 명 태조 때 중국에서 이주해 온 귀화성[4]이라고 전하였으며,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에 살던 해종수(海宗洙)씨는 그 내력에 대해 당시로부터 약 50년 전[5]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이주해왔다고 증언했다.

198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김해 본관 이외에 진주 본관이 사라지고, 영암(靈巖)과 함양(咸陽) 본관이 새로 나타났다. 인구는 전국에 270명(김해 150명, 영암 80명, 함양 10명, 기타 22명, 미상 8명)으로 나타났다. 2000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전국에 322명(김해 149명, 영암 121명, 함양 48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영암 본관과 함양 본관이 다시 사라지고 김해 142명, 기타 4명 등 전국에 146명으로 인구가 대폭 줄었다.

아래 유명인들을 제외하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해덕진(海德珍, 1976. 2. 21 ~ )[6]과 전직 복싱 선수 해학기(海學基)[7]가 유명하다.

2.2. 나무위키에 등재된 유명인


2.3. 가상 인물

3. 관련 문서


[1] 그런데 정작 부여가 멸망한 뒤의 부여 왕족은 여(餘)씨를 사용한 바 있다. 성씨가 완벽히 정착했던 시대가 아니고 기록이 미비해서 정확한 내역은 확인 불명.[2] 발해의 대귀족 가문인 우성망족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은 소백제가 발해에 흡수되며 백제계 발해인이 생기게 됨으로 인해 등장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3] 해서필(海瑞必)이 조선에서 큰 공을 세워 봉군까지 될 정도였다면, 조선왕조실록에서 그의 이름을 단 한 차례라도 논하지 않았을리가 없으며, 또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부상서는 조선시대 이조판서에 해당하는 고위직으로서 명나라 초기에 이부상서를 지낼만큼 고위관료였다면 적어도 바이두 백과(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영어판 위키백과보다 훨씬 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의 이부상서(吏部尚书) 항목에 언급되었을텐데, 바이두 자체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신원이 불확실하므로 믿기는 어려운 정보이다.[4] 이와 관련하여 명나라의 유명한 청백리였던 해서가 있다.[5] 1880년경[6]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1기 수료.[7]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목포시 죽교3동에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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