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5 16:33:29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ssisi-skyline.jpg
원경
기본 정보
위치 이탈리아 아시시
종교 가톨릭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지위 교황청 준대성전
(Papal minor basilica)
건축 정보
축성 1253년 5월 25일
건축가 엘리아 봄바도네
양식 로마네스크, 고딕
착공 1228년 7월 17일(하부 성당)
1239년(상부 성당)
완공 1230년(하부 성당)
1253년(상부 성당)
건축 내역
길이 80m
너비 50m
신랑 너비18m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글 [1]
영어 [2]
프랑스어 [3]
국가·위치 이탈리아 아시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4], (ii)[5], (iii)[6], (iv)[7], (vi)[8]
지정번호 990
1. 개요2. 역사
2.1. 지옥의 언덕에서 천국의 언덕으로2.2. 지진으로 인한 파괴와 복원
3. 건축4. 조토의 벽화
4.1. 설명4.2.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5. 관련 문서

이탈리아어 Basilica Papale di San Francesco d'Assisi
라틴어 Basilica Sancti Francisci Assisiensis
영어 Papal Basilica of St. Francis of Assisi
프랑스어 Basilique Saint-François d'Assise
스페인어 Basílica de San Francisco de Asís
포르투갈어 Basílica de São Francisco de Assis
독일어 Basilika San Francesco
중국어 亚西西的圣方济各圣殿
일본어 フランチェスコ聖堂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ssisi_San_Francesco_BW_2.jpg

1. 개요

이탈리아 아시시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으로, 준대성전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매장된 무덤 위에 세워진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중심지이자 순례자들의 참배가 이어지는 성지이다. 중세의 거장 조토 디 본도네프레스코화로 그린 프란치스코의 생애 연작으로 유명하다. 2000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유적'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프란치스코회에서는 5월 24일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봉헌 축일로 기념한다.

2. 역사

2.1. 지옥의 언덕에서 천국의 언덕으로

1226년 10월 3일 사망한 성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에서 범죄자들이 처형되는 장소였던 '지옥의 언덕'이 예수가 못박힌 골고타 언덕을 닮았다며 죽은 뒤 그곳에 묻히기를 바랐고, 본인의 뜻대로 되었다. 사망 2년 만인 1228년 7월 16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프란치스코를 시성하였고, 이를 기념하고자 프란치스코 무덤 위에 성당을 건설하기로 정하였다. 성인이 묻힌 언덕의 이름은 '지옥의 언덕'에서 '천국의 언덕'으로 바뀌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9세프란치스코시성식이 거행된 바로 다음날인 7월 17일에 대성당의 초석을 놓았다. 언덕 경사면에서 공사를 진행하였기 때문에 전체 구조는 하부와 상부 2개로 나뉘어졌다. 성 프란치스코의 시신은 그때까지도 부패하지 않고 온전했다는데, 2년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1230년 5월 25일 성령강림대축일에 새로 지어진 하부 성당에 유해를 모셨다. 상부 성당은 1239년부터 1253년까지 공사에 들어가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같은 해에 상부 성당과 하부 성당을 축성했다.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총장을 지냈던 교황 니콜라오 4세는 1288년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교황 성당(Papal Church)'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어느 시점인지는 알 수 없으나, 프란치스코회프란치스코의 무덤을 비밀스러운 장소에 숨겼다. 그 작업이 은밀했기 때문에 언제 숨겼는지도 불분명하다. 어떤 자료는 1230년에 하부성당을 건축하고 성인의 무덤을 옮겨올 때부터 숨겼다고 설명하지만, 다른 자료는 15세기까지만 해도 무덤이 공개적인 장소에 있었다고 서술한다. 무덤을 숨긴 목적 또한 이슬람 세력을 걱정해서였다고도 하고, 이탈리아 가문들 간 싸움 때문이었다고도 하는 등 서로 다르다. 아무튼 어느 때부터인가 프란치스코의 무덤은 비밀스러운 장소에 있었다. 그런데 비밀이 너무 잘 지켜지는 바람에(…) 무덤의 행방이 묘연해져, 단지 하부성당의 어딘가에 묘소가 있다는 수준으로만 구전되었다.

600년 가까이 지난 19세기 초, 교황 비오 7세에게 허가를 받아 고고학자들이 하부성당에서 묘소가 있을 만한 곳을 조사하여 1818년에 결국 숨겨진 묘소를 발견하였다. 하부 성당의 제대 앞 회중석 자리에 입구가 있었고 입구 위를 덮어 성당 바닥과 일체화하여 위치를 숨겼다. 학자들이 바닥을 뜯어 입구를 찾아내자 13세기에 무덤을 보호할 때 쓰던 철제 난간이 있었고, 난간 너머로 통로를 따라 내려가자 프란치스코의 관을 안치한 지하석실이 나타났다.

관이 있는 위치는 하부 성당의 제대 아래쪽과 거의 일치했다. 하부 성당에서 성직자가 제대 위에서 봉헌하는 미사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 위에서 드리는 미사나 다름없었던 것. 프란치스코의 시신 곁에는 금속화폐 10여 개가 있었는데,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시신 이장에 참여했던 누군가가 주술적 의미로 놓지 않았는가 짐작할 뿐이다. 현재는 하부 성당 지하에 석관을 모시고 순례자들이 참배케 한다.

2.2. 지진으로 인한 파괴와 복원

파일:external/www.traditioninaction.org/B_460_Basilica.jpg 파일:external/cdn.c.photoshelter.com/002-Italy-Assisi-Earthquake-Destruction-Saint-Rufino-face-in-pieces-Art-Religion-1997.jpg
상부 성당의 프레스코화가 내려앉는 순간 벽화의 파편과 원래 모습을 찍은 사진

1997년 9월 26일, 이탈리아 움브리아와 마르케 지방에 리히터 규모 5.5와 6.1의 강진이 연달아 발생했다. 하부 성당은 무사했지만 조토 디 본도네가 그린 상부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는 산산조각나 벽면에서 떨어져 나가는 피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잔해 더미에서 벽화의 파편을 골라냈고, 30만개가 넘는 파편들을 기존에 촬영된 사진 자료와 컴퓨터를 이용해 짜맞추는 작업을 통해 복원에 착수했다. 조토의 벽화는 복원 작업이 시작된 지 3년여 만인 2000년 세상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8만개 가까운 파편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지금까지도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기사

2013년 9월 4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선택한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곳을 방문해 성해가 안치된 지하토굴에서 기도한 뒤 성당 앞 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가톨릭계 국제자선단체인 카리타스 관계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기사

3. 건축

성당 건물은 석회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평면 구조는 측랑이 없는 십자형이다. 보다 정확히는, 하부 성당은 신랑과 익랑으로 이루어진 반면 상부 성당은 신랑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4. 조토의 벽화

4.1. 설명

비잔티움고딕 회화의 평면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공간감을 넣은 그림을 통해 유럽 미술의 발전 방향을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변화시킨 선구자로 추앙받는 조토 디 본도네는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상부 성당에 프레스코 벽화 연작 28점으로 그렸다.

조토 이전의 그림은 배경을 금색으로 칠해 입체감이 부족했던 반면, 조토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상부 성당의 벽화들은 짙은 파란색으로 배경을 칠해 기존의 회화가 갖지 못한 입체감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조토가 사용한 파란색은 '조토 블루'라 불리며 후대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는데, 야수파의 창시자인 앙리 마티스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최근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일생 연작이 조토 한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라 여러 화가가 공동으로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4.2.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상부 성당 벽면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가 28개의 프레스코화로 신랑 좌우 벽면에 그려져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항목 참조.

1. 한 청년으로부터 훗날 교회의 존경을 받으리라는 예언을 들은 성 프란치스코
2. 자신의 옷을 벗어 가난한 이에게 주는 성 프란치스코
3. 꿈에서 십자가가 새겨진 갑옷으로 가득 찬 궁전을 본 성 프란치스코
4.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쓰러져가는 교회를 일으키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성 프란치스코
5. 모든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주면서 세속의 영화를 포기하는 성 프란치스코
6. 꿈에서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을 떠받치는 성 프란치스코를 본 교황 인노첸시오 3세
7. 프란치스코회의 설립을 인가하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
8. 불마차의 환시를 본 프란치스코회 수사[9]
9. 하늘에 걸려 있는 의자의 환시를 본 프란치스코회 수사
10. 아레초에서 마귀를 쫓아내는 성 프란치스코
11. 술탄 앞에서 신앙을 증명하는 성 프란치스코
12. 기도를 드리던 중 공중부양하는 성 프란치스코
13. 그레초에서 은둔 생활을 하면서 첫 구유를 만든 성 프란치스코
14.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는 성 프란치스코
15.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16. 첼라노 기사의 고해성사를 듣는 성 프란치스코
17. 교황 앞에서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18.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의 설교에 나타나 축복하는 성 프란치스코
19. 성흔을 입은 성 프란치스코
20. 사망하면서 흰 구름을 타고 영혼이 올라가는 성 프란치스코
21. 아고스티노 수사가 임종할 때 나타난 성 프란치스코
22. 성 프란치스코의 관을 열고 성흔을 확인하는 예로니모
23. 성 프란치스코의 사망을 슬퍼하는 성녀 키아라와 수녀들
24. 프란치스코를 시성하는 교황 그레고리오 9세
25.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성 프란치스코의 성흔을 의심하자 교황의 꿈에 나타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병에 채워 보여주는 성 프란치스코
26. 죽을 병에 걸린 환자를 치유하는 성 프란치스코
27. 부인을 소생시켜 고해성사를 한 후 다시 잠들게 한 성 프란치스코
28. 회개한 이단자를 감옥에서 구하는 성 프란치스코

5. 관련 문서



[1]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유적[2] Assisi, the Basilica of San Francesco and Other Franciscan Sites[3] Assise, la Basilique de San Francesco et autres sites franciscains[4]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5]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6]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7]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8]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9] 남자 수도자를 수사(修士), 여자 수도자를 수녀(修女)라고 한다. 수사에는 사제서품을 받은 성직수사와, 서품을 받지 않은 평수사가 있다. 전자를 수도사제, 수사신부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