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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개요
省墓명절에 조상들의 묘(산소)를 찾아가서 제사를 올리는 풍습을 말한다. 귀성과 겸하여 고향의 지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2. 시기
대개 설날과 추석에 이루어진다. 4월 초 한식에도 성묘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때문에 해당 시기에는 성묘를 하기 위해 전국 고속도로나 유명 공동묘지 인근 도로가[1] 빽빽히 틀어차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특히나 한식 때는 봄철 꽃놀이 시즌과 겹치기 때문에 양대 명절 성묘길보다 도로가 더 막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3. 성묘를 못하는 예
3.1. 묘의 파괴
21세기 들어 공공기관 및 공기업 등 공공시설이나 학교, 회사, 도로, 철도 건설은 물론이고 골프장, 스키장, 수영장, 워터파크 등 위락시설 건설을 위해 시공사가 묘지를 파헤치는 바람에 조상 묘가 사라져 성묘를 못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특히 골프장의 경우가 그렇다. 골프장들은 대부분 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 대명 리조트에서 강원도 홍천군에 소노펠리체 리조트를 건설할 때도 이런 사례가 나왔다. 여기서는 대명 측에서 골프장 건설을 위해 조상 묘 4기를 훼손해 후손들이 성묘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럴 경우 시공사는 해당 묘지를 무연고 묘지로 신고하고 진행한다고 한다. 문화재 복원을 위해 묘지가 파괴된 경우도 드물게 있다. 실제로 풍납토성의 경우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성벽 내부에 무덤이 있었으나 문화재 복원 사업으로 인해 묘지가 사라졌다.실제로 골프장 한가운데에 묘지가 있고 누군가가 골프를 치고 있다는 이유로 성묘를 하지 못하게 막은 사례도 있다. 물론 시공사가 묘지 파헤칠 때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한다. 만약 선산을 파헤쳤는데 그게 높으신 분들의 선산이라든가 했다가는... 물론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집안 소유의 산을 선산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다. 애초에 남의 산에 몰래 묘지를 설치했다면 사유재산 침해다.
도굴 등으로 남의 묘지를 훼손하는 행위는 명백한 잘못이지만 관련 법적 규제가 전무하기 때문에 묘지에 대한 유족들의 권리가 지켜지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괴담에서도 어떤 유원지나 오락 시설이 원래는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라는 식의 클리셰가 자주 다뤄진다.
3.2. 종교상의 이유
일부 기독교 신도들은 성묘가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기독교 교리와 충돌한다는 종교적인 이유로 성묘를 거부하기도 한다. 특히 개신교 계열 신자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성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무덤 앞에서 기도를 하는 건 개신교 측에서도 합법적으로 조상을 공경할 수 있는 방법이다.천주교는 성모 마리아를 예수의 어머니로서 공경하기에 조상을 공경한다는 관점에서 무덤 앞에 절 하는 것을 허용한다.
3.3. 여성
명절 기간에 남자들만이 조상들의 묘 및 제사상에 절하는 경향이 있다. 여자(할머니, 며느리, 딸 등)는 그저 여자라는 이유로 성묘 시간에 배제되고 주방 일(음식 만들기, 설거지 등)에 동원되기만 할 뿐이다. 초ㆍ중ㆍ고에 다니는 딸조차도 조상들의 묘에 절하러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집안의 남자 어른들은 유교적ㆍ체력적인 특징상 딸들과 휘하 여자 친척들을 성묘에 동원하지 않기 때문이다.이건 성차별로만 오해할 수도 있는데 과거엔 선산들이 지금처럼 도심이 아니라 농촌과 산촌, 그 중 숲이나 들, 산에 많이 있었다. 양지바르고 넓은 평야지대 근처에 있는 곳도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선산은 깊숙이 있다. 거기다가 산과 숲, 들이라서 뱀들(주로 독사)과 멧돼지, 독충들도 목숨을 노리려고 많이 숨어 있다. 먼 옛날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도 많았다. 이런 방해꾼들이 숨어 있는 환경에 대인원들이 간다는 건 누구 하나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는 멍청한 짓이며, 과거에는 지금처럼 산들이 많았고 차가 산소 인근에 주차하기도 쉽치 않았기에 산소에 인사드리러 간다는 것도 쉽지 않았으며 거기다가 비포장도로도 흔했으며, 산을 직접 타고 올라가야 했다. 여기에 겨울 한가운데에 있는 설날의 경우, 산행 자체도 결코 쉽지 않다. 성묘라는 부분을 빼고 겨울이 제일 산행하기 위험한 계절이다. 그나마 땅이 꽝꽝 얼어있으면 미끄러짐만 조심하면 되지만, 설날이 늦어져 2월인 경우, 땅이 녹기 시작하여 진흙탕인 것은 물론이요, 비탈길이 무너져 사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결국 소수인원으로 가야 하는 건 기정사실이라, 굳이 간다면 과거엔 가는 길에 방해되는 나뭇가지도 낫으로 쳐가며 산행에 익숙하고 군대에서도 했던 눈 치우기도 하며 체력이 좋았던 장손과 큰집 식구들, 휘하 남성 친척들만 가게 된 남아 선호 사상의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선산에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굳이 시간들여 엄동설한에 산행을 한다는 것 자체도 결코 유쾌하진 않은 일이며, 과거엔 절을 올릴 때 신발은 물론 양말조차 벗어야 했었다. 눈바닥 위에서 맨발,맨손으로 절 올리는 것에 허례허식이라는 말 이외에 무슨 적절한 말이 있을까. 핵가족화로 형제자매 자체가 적어진 요즘은 아들딸 구분없이 데려가는 경우가 흔하며, 허례허식 지키느니 안전을 위해 장갑 및 신발도 신은 채로 절을 올리는 게 디폴트다. 설날의 주방 일도 계속 간소화, 간략화되며 장기적으론 사라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정확히는 명절에 친족이 모인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는 한식날 조상들 산소에 방문해서 지내는 묘사도 마찬가지다.
3.4. 귀성이 어려운 이들
귀성과 마찬가지로 조상의 묘가 댐으로 인해 수몰되거나[2] 북한 치하에 있는 경우[3] 성묘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매년 설날과 추석이 되면 황해도, 평안도 계통 실향민들이 임진각 망배단에 모여서 북쪽을 향해 합동 차례를 지낸다. 함경도 계통 실향민들은 통일전망대로 가기도 한다.4. 회사에서의 성묘
공공기관, 공기업, 대기업 등에서 근무하시는 높으신 분들(최소 장관, 차관, 전무, 상무 이상급)은 명절때마다 자기 조상님들을 모신 무덤들이 있는 선산에 성묘하러 갈 때 자신들 혼자 가기 싫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이 이렇게나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고 자랑하러 갈 겸 휘하 임직원들을 강제로 참석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휘하 임직원들 입장에서는 명절휴일 다 빼앗기고 명절수당도 없어 이래저래 좋지 않다.공공기관은 해당 공무원들을 좌천시켜 시골 오지로 내보내겠다느니 협박하고, 대기업은 해당 직원들을 정년 45세 이전에 해고시키겠다느니 협박하는 그런 식으로. 그래도 이런 경우는 옛날 1980~1990년대에나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당연히 이런 악습이 없다고 봐도 된다. 지금에도 굳이 있긴 한데, 이런 경우는 높으신 분들이 강제로 시킨다기보다는 휘하 임직원들이 스스로 해당 높으신 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설령 이런 악습을 시킨 높으신 분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국민신문고 등 민원을 이용해 가차없이 신고하자.
5. 쇠락
귀성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이후에는 비율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나마도 고향에 부모님이 있는 경우가 여전히 남아있는 귀성과는 달리 장례 문화는 오늘날 화장이 90%를 차지하여(2021년 6월 기준) 절대적 주류가 되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단, 묘가 아니라 봉안당을 찾는 것도 성묘라고 부르기는 한다.2020년대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유행으로 성묘 문화 쇠락이 더 빨라지고 있다.
그래도 재벌들은 일반 서민들과는 다르게 여러 개의 선산들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아직까지도 매장을 자주 하기에 성묘 비율도 더 높은 편이다.
6. 여담
성묘하면서 무덤의 잡초를 깎는 벌초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성묘대행업체라는 것이 생겨서 이런 업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성묘대행업이 대인기라고 한다.교통정체가 너무 심해서 각 집안의 대표만 가는 경우도 있다.
산에 올라갈 때는 좋은 옷은 절대 입지 않고 낡은 옷을 준비해서 갈아입고 성묘하는 것이 필요하다. 잡초와 흙먼지를 다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물론 하얀 신발도 바닥의 흙에 오염되기에, 어두운 색의 신발을 신어야 한다.
부부 합장을 할 경우 봉안당을 1번만 들러도 부모 성묘를 다 할 수 있다.
성묘하러 가는 조상의 묘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면, 후손들은 명절 및 기일마다 한국사에 친숙해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1] 망우리, 벽제, 용미리 등 서울 근교에 조성된 서울시립묘지 인근 도로가 대표적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울대리 천주교묘지 등으로도 많이 간다.[2] 산업화 이후 이렇게 실향민이 된 사례가 늘고 있다. 시초는 일제강점기 화천댐이며, 산업화 시기에 남강댐, 팔당댐, 소양강댐, 춘천댐, 안동댐, 대청댐, 충주댐 등 굵직한 댐들이, 그 이후 용담댐, 군위댐, 영주댐, 운문댐, 군남댐 등 자잘한 댐들이 세워지면서 댐 실향민이 많이 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충주댐 건설로 고향과 조상 묘가 수몰된 임하룡이 있다.[3] 과거에는 중국이나 소련에 조상 묘가 있었던 사람도 성묘가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