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26 22:38:21

세츠코 비

이름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비 세츠코
본명마츠다이라 세츠코(松平節子)
탄생1909년 9월 9일
사망1995년 8월 25일 (향년 85세)
가족관계남편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학력시드웰 프렌즈 스쿨[1] 졸업
오시루시국화

1. 개요2. 생애3. 결혼과 가정4. 시어머니와의 관계5. 쇼다 미치코를 반대하다6. 말년

1. 개요

松平節子/송평절자 → 秩父宮 雍仁親王妃 勢津子/질부궁 옹인친왕비 세진자

다이쇼 덴노의 차남인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의 아내.

2. 생애

1909년 외교관인 마츠다이라 츠네오(松平恆雄)와 나베시마 노부코(鍋島信子)의 딸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고, 이후에도 중국미국 등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마사코 황후, 키코 비와 같은 귀국자녀 출신.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의 어머니인 나베시마 이츠코(鍋島伊都子)가 세츠코의 이모라서, 이방자에게는 이종사촌 여동생이 된다.

3. 결혼과 가정

다이쇼 덴노의 차남인 야스히토 친왕은 미국을 방문하였다가 워싱턴 DC의 주미일본영사관에서 세츠코를 처음 만났으며, 두 남녀는 1928년 9월 28일 혼인했다.

세츠코의 할아버지인 마츠다이라 가타모리아이즈 번의 9대 번주로, 신선조의 스폰서이자 메이지 유신에 반대했던 다이묘였다. 당연히 유신정권 이후 아이즈 번과 마츠다이라 가문의 처지는 안 좋았는데, 일본 황실에서는 야스히토 친왕과 세츠코를 혼인시키는 것으로 아이즈 번과 마쓰다이라 가문을 복권시킨 것이다.

본래 세츠코의 한자는 節子였으나, 시어머니 사다코 태후도 같은 한자를 쓰고 있었기에, 결혼하면서 한자를 勢津子로 바꾸었다. 이세신궁이 있어 일본 황실과 인연이 있는 지역인 이세(伊勢)에서 勢를, 친정 마츠다이라 가문의 본거지인 아이즈(會津)에서 津을 따와서 지었다고 한다.

세츠코 비는 딱 한 차례 임신했으나, 2.26 사건 당시 남편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과 함께 주둔지에서 도쿄로 돌아오다가 추운 날씨에 몸을 해쳐 유산했다. 이후 다시는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4. 시어머니와의 관계

사다코 태후는 맏며느리 나가코 황후에게는 혹독한 시어머니였던 것과 달리, 둘째며느리 세츠코 비, 셋째며느리 키쿠코 비, 넷째며느리 유리코 비에게는 좋은 시어머니였다. 나가코 황후는 방계 황족 가문의 적녀라, 화족 가문의 서녀 출신인 사다코 태후보다 출신 신분이 더 높았다. 그래서 사다코 태후는 열등감을 가졌다는 소문도 있다. 또한 나가코 황후의 친정 구니노미야 가문은 오만방자하게 행동하거나, 나가코 황후가 줄줄이 딸 넷을 낳은것도 시집살이의 원인이 되기도 했을것이다

사다코 태후는 특히 세츠코 비를 총애해서, 히나마츠리 때가 되면 세츠코 비가 친정에서 가져온 히나인형들을 장식해두고 같이 보면서 즐기곤 했다. 이에 대해 세츠코 비는 만년의 회상록 《은의 본보니엘(銀のボンボニエール)》에서 "아드님만 네 분이시니, 매년 즐거움으로 삼으신 일이었다."고 추억했다. 사다코 태후는 자신과 생일이 똑같은 차남 야스히토 친왕을 편애했고, 세츠코 비는 자신이 총애하는 아들에게 시집 온 며느리이니 더욱 예뻐하였다고 한다.[2]

5. 쇼다 미치코를 반대하다

세츠코 비의 친정어머니 노부코는 황실의 사돈이자 가쿠슈인 동창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황족들과 화족들의 우두머리로 군림했다. 1947년의 신적강하다이쇼 덴노의 직계 자손들을 제외한 모든 방계 황족들과 화족들은 평민으로 강등되었지만, 그들의 콧대는 여전히 높았다.

1957년, 아키히토 황태자는 평민 쇼다 미치코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1958년, 둘은 곧 결혼할 계획임을 발표한다. 미치코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이었고, 쇼다 가문은 대재벌이었다. 그러나 황실의 오랜 전통을 깬 '평민'과의 '연애결혼' 계획에, 옛 황족들과 화족들은 분노했다. 노부코는 반대운동을 주도했고, 노부코의 언니 이츠코[3]는 아예 일기에다 "이제 일본도 다 끝났구나!!"라고 썼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세츠코 비의 형님이자 아키히토 황태자의 어머니인 나가코 황후, 세츠코 비의 아랫동서 키쿠코 비, 야나기하라 뱌쿠렌[4]까지 반대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아키히토 황태자의 아버지 히로히토 덴노가 "이제 황실에도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면서 결혼을 허락하여, 반대운동은 실패로 돌아간다. 1959년 4월, 미치코는 무사히 시집와서 황태자비가 되었다.

이후 세츠코 비는 다른 황족들과 화족들처럼, 미치코 황태자비에게 가혹한 시집살이를 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츠코 비와 키쿠코 비는 차츰 감정이 누그러져서, 이후에는 미치코 황태자비와 친해졌다고 한다.

6. 말년

세츠코 비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조카 아키히토의 자식들인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 아야노미야 후미히토 친왕,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를 친손주처럼 아꼈다.

1990년, 3남매 중 후미히토가 가장 먼저 결혼했다. 키쿠코 비는 후미히토의 아내 키코 비에게 결핵예방협회 총재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귀국자녀이자 친왕비가 된 키코 비에게 친근감과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 세츠코 비가 사망하는 것으로 지치부노미야 가문은 단절되었다. 부부가 살던 저택은 사망 기준으로 다카쓰카사 가즈코 저택[5]에 살던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가 어린 두 딸 마코 공주카코 공주를 데리고 거주하게 되었다.[6]

[1] 워싱턴 D.C.에 위치한 사립 학교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기능이 통합된 학교이다. 다만 세츠고 비 자신이 재학했을 당시에는 이름이 그냥 '프렌즈 스쿨'이었다.[2] 물론 편애를 했다고 해서 형제 관계가 틀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는 차남 후미히토 친왕을 방임해서 키워, 훗날 후미히토 친왕은 막장이 된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형 나루히토 황태자를 몰아내고 자기가 천황이 되려고 해서 문제가 되었다.[3] 이방자여사의 어머니이다.[4] 다이쇼 덴노의 친어머니인 야나기하라 나루코의 조카.[5] 원래는 유모들을 위한 시설이였으나 아키히토 덴노 이후부터 이러한 제도가 폐지되면서 비어있다가 다카쓰카사 가즈코가 강도 피해를 입어 황실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저택이 되었으나 사후에 비워져있었는 데 이곳을 후미히토 내외가 사용했다.[6] 물론 들어오기 전에 대충 수리를 한 다음에 들어갔다고 한다.그 덕분에 주기적으로 저택의 전반적인 리모델링을 요구했으나 여러가지 사유로 거절당하다가 히사히토 탄생때 히사히토 방을 만든다는 등의 이유로 약간 고친 거 이외에는 고치지 못하다가 2019년에 들어오면서 수십억엔을 들여서 개보수하고 있는 데 이 과정에서 카즈코 저택 부지에다가 신 거처를 굳이 만들어서 사용하는 거나 거처 수리비에 왜 이렇게 많이 나오냐면서 일본인들의 비난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