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06:32

셰이 기븐/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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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셰이 기븐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1.1.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이전

지역의 아마추어 팀인 리퍼드 셀틱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아일랜드 축구 협회 주최의 청소년 대회 4강에서 던도크와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이때 스코틀랜드의 프로 축구팀인 셀틱의 눈에 띄게 되어 셀틱 유스팀의 프리 시즌 아일랜드 투어를 함께 하게 되었고, 그 다음 해 셀틱과 계약을 하였으나 셀틱에는 이미 주전 골키퍼가 있었기에 1군 경기에 출장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계약이 만료되어 방출되고 만다.

이후 블랙번 로버스로 임대를 가게 되지만 이 곳에서도 주전 골키퍼였던 팀 플라워스[1]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3부리그의 스윈던 타운으로 임대를 간다.

그리고 그 시즌 1월에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선덜랜드 AFC로 임대되어[2] 17경기에 출장하여 12경기 무실점을 기록하는 엄청난 기량을 보이며, 선덜랜드의 프리미어 리그 승격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12경기 무실점이 인상깊었는지 1997년 여름이적시장에서 뉴캐슬의 새 감독으로 임명된 케니 달글리시에 의해 150만 파운드에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영입된다.

1.2.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뉴캐슬로 영입된 기븐은 1997년 8월 9일에 홈에서 셰필드 웬즈데이를 2:1로 이긴 경기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이후 스티브 하퍼, 샤카 히즐롭, 파벨 스르니체크를 밀어내며 팀의 주전 골키퍼로 자리잡았고, FA컵 결승에도 출장했지만 아스널에 패해 트로피를 들지 못하였다.

2001-02 시즌부터 2003-04 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으로 전 경기 선발 출장을 기록한다.

또한 2002년에는 PFA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되기도 했고, 2004년 9월 16일에 있었던 브네이 샤크닌과의 UEFA컵 경기에 출장함으로써 앨런 시어러가 갖고 있던 뉴캐슬의 유럽 대회 최다 출장 선수 기록도 갈아치웠다.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며 04-05 시즌을 마치고 2005년에 결성된 대단한 수비조합이 기븐을 기다리게 되는데...

1.2.1. 2005-06 시즌

3B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세 명의 수비수는 뉴캐슬에 같이 뛰게 되면서 생지옥을 펼쳐보였다.[3]

인외마경이라 불리며 온간 연민의 대상이 된 줄리우 세자르QPR 정도나 되어야 명함 정도[4] 내밀 수 있는 생지옥이 펼쳐졌다. 디디에 드록바티에리 앙리는 잘 막은 3B였지만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공격수에게는 숭숭 뚫리며 '기븐신'이라는 칭호를 얻게 한 일등공신들이 되셨다.

이전에도 세이브 능력이 좋았던 기븐이었지만 05-06 시즌 3B의 엄청난 활약으로 인한 강제 레벨업과 동시에 강제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3B의 방출 내지는 강제이적을 통해 한숨 돌리나 싶었으나 이 3B로 시작된 수비 불안은 이후에도 이어져 결국 08-09 시즌 챔피언쉽으로의 강등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정작 05-06 시즌에 왜 강등을 당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데 많이 노쇠하여 막판에 은퇴를 하기는 했지만 제 역할은 톡톡히 하신 이 분이 계셨고, 당시 포텐이 터졌던 제임스 밀너를 비롯해서 제대로 나오진 못 하면서도 리그에서 10골 정도는 넣어주던 마이클 오언 등 공격진은 나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기븐이 매우 잘 막았다. 괜히 기븐신이라 불리운 게 아니며 그 결과 7위를 수성하며 기븐은 뉴캐슬의 수호신이 된다.

1.2.2. 2008-09 시즌

3B이후로 계속해서 지적되어 오던 수비불안이 한번에 폭발했고, 그는 뼈아프게도 뉴캐슬의 강등과, 기븐의 고통으로 돌아왔다. 공격, 미드필더진에는 오바페미 마르틴스, 호나스 구티에레스등 알찬 멤버들이 있었지만 수비들은 조직력이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뉴캐슬의 수비진은 더이상의 수비불안을 견딜 수 없었던 운영진의 한이 서린 대대적인 영입이 있었는데, 호세 엔리케, 파브리시오 콜로치니, 라이언 테일러와 같이 지금도 리그에 남아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에 더불어, 제레미 은지탑,클라우지우 카사파, 다비드 로젠할 등과 같이 국내 및 해외에서 그럭저럭 준수한 실력을 뽐내주던 자원들이었고, 말 그대로 네임벨류만 놓고 보면 무척이나 튼실해 보이는 수비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한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폭망했다.

스티븐 테일러만 믿고 축구 보던 시절
세바스티앵 바송도 잊으면 섭하다[5]

지금은 EPL에서 모습을 감춘 은지탑, 카싸파, 로젠할 역시 똥을싸기 바빴고, 위에 언급된, 엔리케, 콜로치니, 테일러 등은 지금이야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고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들 역시 자동문에 불과했다. 그저 나이 어린 스티븐 테일러와 별다른 기대 없이 헐값에 데려왔던 세바스티안 바쏭만이 괜찮은 활약을 해주며 기븐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트이게 해주었다.

몇몇 선수에 대해서만 언급을 좀 해보자면, 엔리케는 2007년~2008년 즈음 당시에만 해도 어려서 경험 부족으로 인한 수비 실수라던지 여러 잔문제가 많아서 주전 자리를 꿰차기도 힘들었고 엔리케가 주전 자리를 꿰찼을 때 뉴캐슬은 이미 강등행 막장 테크를 탄 시점이었다.

콜로치니는 당시만 해도 3B에 버금가는 구멍이었고, 따라서 주전이 되지 못했음은 말 할 필요도 없다. 09-10 시즌 들어 챔피언쉽에서 뉴캐슬에 적응하면서 폼이 올라와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테일러는 08-09 시즌 중반의 겨울이적시장에서 영입되었다. 엔리케와 마찬가지로 뉴캐슬에서 자리잡았을 때에는 이미 막장테크를 탄 이후다. [6]

위에서 언급했던 것 처럼 수비조직력이 전체적으로 막장이었던 시즌이지만 그 중에서도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2008년 12월 28일 리버풀 FC와의 경기일 것이다.


2분 13초부터 해설마저 Shay given nil Liverpool nil이라고 한다[7]... 한명이서 팀을 상대하는 기븐
영상 제목은 Given VS Liverpool

총 5실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븐의 평점은 9.5점이었다.(MOM은 당연지사)

사실상 이 경기 이후로 기븐의 뉴캐슬에 대한 정이 떨어졌다고 한다. 다행인지 곧 1월 이적시장이 열리게 되었고, 기븐은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뉴캐슬은 기븐만한 엄청난 골키퍼를 당연히 구할 수 없었고, 수비 조직력도 완벽하게 채워내지 못하고 강등포를 맞게 된다.[8]

다행이라면 물이 올라온 엔리케와 구티에레스가 뉴캐슬에 잔류해 뉴캐슬은 이듬해 프리미어 리그에 복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븐 덕에 EPL 주전급 실력을 가졌음에도 쭉 벤치에 앉아 있던 스티브 하퍼가 마침내 주전이 되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그러나 하퍼는 기븐처럼 10년 가까이 주전하진 못 하고 3년 만에 어느 후배에게 주전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1.3. 맨체스터 시티 FC

이적 후 기자회견에서 기븐은 그를 잡기 위해 큰 노력을 하지 않은 뉴캐슬의 경영진을 비판했고, "우승을 할 수 있는 클럽에서 뛰고 싶었습니다. 축구 선수로서의 인생은 짧기에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면 엄청나게 까였겠지만, 기븐이니까 이런 말을 해도 뉴캐슬 팬들이 그를 깔 수가 없다 첫 시즌에는 37번을 달았다.

뉴캐슬에서 광렙한 보람이 있어서인지 입단하자마자 07-08 시즌, 08-09 전반기 시즌에 주전을 하던 조 하트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조 하트는 이 다음 시즌, 경험을 채우기 위해 버밍엄 시티로 1시즌 임대를 가고, 그렇게 08-09 시즌에 1번을 달았다. 그 정도로 기븐의 위엄은 대단했다.

그러나 기븐이 왔다고 해서 맨시티가 곧바로 상위권 팀으로 덥썩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당시 감독인 마크 휴즈의 전술 능력이 형편 없어서 그 정도의 스쿼드로도 무승부를 잔뜩 이뤄냈고[9] 결국 마크 휴즈는 경질이 되고 로베르토 만치니가 맨시티 감독이 된다.

만치니가 막 감독이 된 시점에는 조 하트가 임대를 다녔기 때문에 당연히 주전을 차지했지만, 조 하트가 임대 기간 동안 폭풍 성장을 해서 돌아와 버리고, 다음 시즌부터 시티의 주전을 차지하면서 10-11 시즌 기븐이 오랜만에 후보 생활을 하게 되었다. 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 할 정도였다. 11-12 시즌, 기븐은 유로 2012 출전을 고려하여 주전 출장을 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하기로 결심했고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게 된다. 본인 말마따나 우승을 위해 맨시티 이적을 택했고 팀의 향후 몇 년간 성적을 보면 혜안이었지만.. 막상 본인은 FA컵만 들어보고 떠났는데 다음 시즌에 팀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뤄내버렸다. 본인의 클래스 또한 뛰어났음에도 하필 조 하트의 전성기가 시작하는 시기가 겹쳐버린 비운의 선수.

1.4. 아스톤 빌라 FC

아스톤 빌라에서도 역시 첫 시즌엔 주전으로 뛰었다. 맨시티에서 후보로 있느라 폼이 많이 떨어져 있을거라 예견된 것에 비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기븐과 경쟁을 하던 브래드 구잔[10]헐 시티에 임대도 다녀가기도 하고 그 뒤에 계약해지로 팀을 떠나다 감독이 바뀌면서 다시 재입단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문제는 이번에도 또 감독이었다. 알렉스 매클리시[11] 체제의 아스톤 빌라는 강등권에서 놀고 있었고, 결국 16위인 상황에서 강등은 면하자는 차원에서 결국 매클리시는 경질당했다.

그 뒤, 12-13 시즌부터 폴 램버트가 새 감독이 되었으나 이 때부터 기븐의 폼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구잔이 주전이 되면서 기븐은 후보가 되었다. 13-14 시즌에도 변한 것이 없었고, 결국 미들즈브러에 임대를 다녀오기도 했다. 복귀 후에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 듯 하더니 맨시티 전에서 구잔이 대형 실수[12]를 저질러서 팀 셔우드 감독이 기븐을 다시 주전으로 쓰고 있는 중. 고마워요 맨시티 14-15 FA컵 결승전에서도 선발로 출전해서 좋은 선방들을 보여줬으나, 팀이 워낙 압도당했고 골들노 하나같이 좋은 궤적으로 들어가서.. 무려 4실점을 하고 패배했다.

1.5. 스토크 시티 FC

1.5.1. 2015-16 시즌

2015년 7월 10일, 스토크 시티 FC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다. 계약기간은 2년이다. 아스미르 베고비치의 이적이 거의 확정적인 가운데 잭 버틀랜드의 서브 및 경쟁자로 영입한 듯. 근데 버틀란드가 잘해도 너무 잘한다... 물론 기븐을 주전으로 노리고 영입한건 아니고 백업, 경쟁자, 그리고 멘토 역할을 해줄거라 기대하고 영입했지만 말이다.

잭 버틀랜드가 국가대표에 차출되었다가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며 시즌 후반들어 종종 출전하고있다. 다만 늙긴 늙어서인지 작년에 비해서도 폼이 다소 떨어졌고 서드 골리인 야콥 하우가르드와 나누어서 출전중.

1.5.2. 2016-17 시즌

16-17 시즌에는 초반에 잠깐 나오다가 5경기 만에 14실점을 내주고 결국 챔피언십 더비에서 임대로 이적해온 리 그랜트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그랜트는 매경기 신들린 선방으로 스토크를 캐리중... 시즌 종료 후 자유 계약 신분으로 방출되었다. 방출된 뒤 마이클 캐릭 자선 경기에 골키퍼로 출전했다! 선방도 몇번 보여주고 나쁘지 않은 모습이였지만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는지 민첩함이 상당히 결여된 안타까운 플레이를 펼쳤다.


[1] 당시 잉글랜드 국가대표였다고, 더불어 당시 블랙번은 우승을 차지할 정도의 강팀[2] 이후에 기븐의 팀이 되는 뉴캐슬과는 타인위어 더비로 불리는 엄청난 라이벌 관계의 팀이다. 다만 그런 것치고는 기븐 외에도 여러 선수들이 두 팀을 모두 거쳐간 경력이 있다. 기븐처럼 바로 상대팀으로 간 선수로 잭 콜백이 있으며 기성용도 선더랜드와 뉴캐슬에서 모두 뛴 경력이 있다.[3] 그리고 3B를 완성한 감독 그레엄 수네스는 시즌 도중에 경질당하고, 수석 코치 글렌 로더가 감독 대행으로 시즌을 마쳤다. 성적을 인정받아 그 다음 시즌에 정식 감독이 되었으나, 수네스 못지 않은 삽질로 역시 중간에 경질당했다.[4] 사실 강등권 팀이던 세자르보다 더 심하다. 뉴캐슬은 몇 년 전까지 EPL 상위권 팀이었으며 시대가 좀 흐른 뒤에도 강등은커녕, 중상위권은 기본으로 하던 팀이었다. 세자르가 기븐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5] 저때 당시 스티븐 테일러와 세바스티안 바쏭이 경기에서 버로우 타버리면 기븐이 어떻게해서든 막는수밖에 없었고 자동문 수비덕에 한두골 먹히는 순간부턴 지는게 당연했다.[6] 한 가지 첨언하자면, 위건에서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뉴캐슬의 강등행 급행열차 티켓을 끊어주신 분이 바로 이 라이언 테일러다.[7] 해석하자면 "셰이 기븐 대 리버풀, 점수는 0:0."[8] 맨시티가 노렸던 이유는 빅 클럽들이 하위권 팀 키퍼를 노리는 경우가 많은데 팀 성적은 안좋아도 개인스탯이 좋으면 그만큼 개인기량이 뛰어남에도 수비진이 불안하다는 것이다.[9] 09-10 시즌 맨시티의 주요 선수로는 호비뉴, 뱅상 콤파니, 콜로 투레, 가레스 배리, 나이젤 데 용,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카를로스 테베즈, 로케 산타 크루스 등, 공수 양면에서 엄청난 스쿼드였다. 그런데 이런 스쿼드로 중위권을 달리고 있던 것이었다.[10] 참고로 구잔은 기븐이 오기 전까지 브래드 프리델과 경쟁했다. 물론 당시에도 꾸준히 후보였다. --그리고 이런 경쟁을 거치면서 구잔은 기어코 아스톤 빌라 주전 키퍼가 되었다.[11] 감독 선임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아스톤 빌라 오기 전에 맡았던 팀이 버밍엄 시티였는데 버밍엄 시티는 아스톤 빌라의 최대 라이벌 팀이다. 게다가 매클리시 감독의 버밍엄에서의 성적도 좋지만은 않아서 여러 가지로 논란이 컸다.[12] 간단히 말하자면 세르히오 아게로에게 일촌신청 패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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