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의 도시전설
牛の首.사실 여부를 밝히기 어려운 나폴리탄 괴담 계열 이야기이다. 이 계열 도시전설 중에서는 상당히 유명하다.
1.1. 내용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있었다. 어느 봄날, 그는 학교의 소풍 버스 안에서 괴담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평상시 떠들썩한 아이들도 그날은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었다. 왠지 으쓱해진 그는 마지막으로 비장의 괴담인 '소의 목'을 꺼내기로 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소의 목'이라고 하는 괴담이다. 여기에서 '소의 목'이란……. " 그런데 그가 이야기를 얼마쯤 진행하자 버스 안에서 이변이 일어난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저마다 "선생님,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라며 애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느 아이는 새파랗게 질려 귀를 막고, 다른 아이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오줌을 지린 아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교사는 짓궂게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신이 들린 사람 같았다. 잠시 후에 버스가 갑자기 정지했다. 이변을 느끼고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가 운전석을 보자, 버스 운전기사가 비지땀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역시도 공포에 질려 더 이상은 운전을 지속하기 어려워서 차를 세웠을 것이다. 교사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학생들 중에는 두려운 나머지 실신한 아이도 있었다. 그 이후로, 그가 두 번 다시 '소의 목'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
이렇듯 실체가 없는 괴담으로서, 듣는 이의 오만가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시전설. 또 다른 배리에이션으론 이런 것도 있다.
한 남자가 오래된 중고서점에서 우연하게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소의 목'이라는 표제의 그 책은 마음의 준비 없이 읽기엔 지독하리만치 음습하고 괴기스러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 너무나 불안해진 그는 결국 읽는 것을 그만두고 잔뜩 공포에 질려 황급히 서점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지나자 그 책은 어떻게 결말이 났을까 하는 호기심이 그를 자극했다. 처음 그 책을 펼쳤을 때의 악몽 같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음에도 끝끝내 호기심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한 그는 며칠 후 다시 그 서점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책이 없기에 서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런 책은 반입한 적이 없습니다."라며 딱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
이 이야기의 기원으로는 SF 소설가 고마츠 사쿄가 쓴 동명의 단편소설이 가장 유력하고[1], 다만 이 소설은 완전한 고마츠 사쿄의 창작으로 도시전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마츠 사쿄 본인은 "SF 문학계에 예전부터 '소의 목'이라는 짤막한 이야기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SF 작가 츠츠이 야스타카[2]"라고 주장했었다. 아무튼, 그쪽 바닥에서 시작된 도시전설이라는 사실만은 명백한 듯.
원본은, 이렇듯 정말 아무 뜻도 없는 무언의 공포를 상징하지만 실체가 없는 나폴리탄류의 정석과도 같은 이야기다.
1.2. 더욱 확장된 후속작
어쨌든 많은 이들이 이러한 '소의 목' 괴담의 유래를 궁금히 여겨 조사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가 발굴, 제작됐으며, 그중 2002년에 등장해 '진(眞) 소의 목'이라며 널리 퍼진 것은 다음과 같다.'소의 목'이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우면서 가장 유명한 괴담이지만, 그 지나친 공포 때문에 듣는 자로 하여금 미치거나 죽게 만든다. 따라서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들은 바 없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거짓말이나 유언비어로 의심해왔으나….
메이지 유신 시기, 폐번치현 절차에 따라 일본 전국의 측량과 인구조사를 하던 때의 동북지방에서 있었던 이야기. 과거 마을이었으나 이제는 폐허로 변한 땅을 조사하던 한 공무원이 큰 나무의 밑동으로부터 대량의 인골과 함께 소의 머리와 흡사한 동물의 뼈를 발견했다. 공무원은 조사 대장에 인골의 수를 기록해 측량을 마치고 가장 가까운 남쪽의 마을로 옮겼다. 공무원은 그곳에서 조사를 마친 뒤 숙소에 머무르는 중에 숙소의 주인에게 앞서 발견한 인골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숙소의 주인은 "관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라며 운을 뗀 뒤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도 막부 말기 텐포(天保) 3년(1832)부터 일본에는 수년에 걸쳐 엄청난 대기근이 덮쳤다. 그 유명한 에도 말기의 '텐포 대기근'이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쓰러진 말에 이빨을 박고 날고기를 먹으며, 굶주려 쓰러진 시체를 들개나 새가 와서 뜯어먹는다.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도 비정하게 음식을 서로 빼앗아 그야말로 축생만도 못한 상황이다."라고 적힌 비참한 상황이었다. 텐포 4년(1833) 가을 어느 깊은 밤, 이 남쪽 마을을 한 외지인이 찾았다. 휘청휘청 걷는 그의 몸뚱이는 사람이었으되, 머리는 그야말로 소와 같았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다가가 붙잡으려 하는 그때, 낫과 곡괭이 등을 손에 쥔 이웃마을 사람들이 수십 명씩 떼를 지어 나타났다. 그들은 공포 분위기를 잔뜩 조성하며 "소몰이 축제는 어디에도 발설하지 마라." 그들은 저마다 이렇게 외치며 그 외지인을 붙잡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날이 밝자 마을 곳곳에 그 이야기가 퍼져 나갔지만 아무도 이웃마을까지 확인하러 나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 그 이웃마을을 다녀온 사람이 '벌써 그곳에 사람이나 가축의 기척은 어디에도 없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이후 이들은 오랫동안 그 사라진 이웃마을을 '소의 마을'이라 불렀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이름조차 부르는 사람도 없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숙소의 주인은 이야기를 마치고 허겁지겁 뒤처리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공무원은 이 이상한 이야기에 대해 즉각적인 해석은 보류하기로 했다. 그는 다시 관청으로 돌아와 조사대장을 마무리할 즈음에 이 이야기를 떠올리고, 친밀한 선배에게 해석을 요청했다. 선배는 에도 말기 텐포 연간의 주민 대장을 조사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대기근 당시엔 굶어 죽은 사람을 가족들이 식량으로 삼아 먹었던 일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을에서는 시체뿐 아니라 약한 사람을 잡아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먹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면하고자, 그 의식을 '소몰이 축제'라고 칭해 소의 머리 가죽을 씌워놓고 잡아 죽인 것은 아닐까? 당시 그 폐허에서 헤아린 인골의 수를 따져보면 거의 마을 주민 전원에 해당한다. 소의 뼈 역시 마을에서 길렀을 가축의 수와 일치한다. 기근의 비참함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어쩌면 주민은 물론 친형제와 부부 간에도 수라와 같은 지경이 되어 이미 사람이라고는 칭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 또한, 이런 사실은 외부의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기에, 마을은 계속 고립 속에서 황폐해져 남쪽 마을을 포함한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으리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비참함은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지만, 이 일은 묻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선배의 말을 깊이 받아들인 공무원은, 이후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고 속으로만 묻어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러일전쟁 시기. 고령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그 남자는 전란의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손주들을 불러모아 무심코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손자 중 한 사람이 이후 뒤늦게 진실을 알아채고 말았다. |
실은 아무 관계가 없다던 그 남쪽 마을 사람들이, 이웃마을 사람 전원을 '소몰이 축제'라 칭하며 한꺼번에 잡아먹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많은 뼈를 누가 어떻게 묻었겠는가…! 그렇게 소의 목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저주의 단서가 붙었다. 누구의 입에도 오르지 않고 내용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소의 목 이야기를 알고 있다. 무언가의 본질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그 자체에 영혼이 깃들어 점차 사람들 사이로 영향을 끼쳐나가기 때문이다. |
이 이야기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으나 특기할 것으로 일본 역사에서도 가장 혹독한 기근이었다는 텐포 대기근[3]을 소재로 삼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극악한 식인행위에 대해서는 DNA 구조상 인육이 가장 맛있기 때문이라는 단서가 붙기도 한다.
주 무대인 텐포 연간은 일본뿐 아니라 조선, 청나라 등 동아시아 3국의 사정이 모두 흉흉하던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 조선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에 따른 삼정의 문란에 기근까지 더해져 농민 봉기가 빈발했으며, 청은 기근으로 서민들이 굶어 죽는 와중에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이 터졌다. 따라서 사실상 세 나라 모두 막장이나 다름없던 고난의 시기였다.[4]
일례로 우리나라에도 위 이야기와 유사한 것이 있다. 파와 부추를 즐겨 먹는 이유로서 과거 사람들이 너무 굶주린 나머지 부모형제가 모두 소로 보여 서로 잡아먹었다. 이를 막기 위해 기근 속에서도 튼튼한 파와 부추를 길러 섭취, 혹은 파와 부추를 먹자 사람이 소로 보이는 증세가 사라져 먹기 시작했다는 전설이다.
너무나도 굶주린 나머지 인육을 먹었다는 풍문은 동아시아 세 나라 모두 공통으로 발견되며, 저 시절로부터 못해도 190년은 지난 2024년 지금도 북한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가 아주 허무맹랑하다고는 볼 수 없다. 기근이 심한 나머지 식인을 하였다는 기록은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5] 실제로 저 당시로부터 1세기 뒤인 20세기 우크라이나 대기근과 스탈린그라드 전투, 레닌그라드 공방전, 고난의 행군에서도 식인이 빈번하게 발생했었다. 실제로 당시 우크라이나와 소련, 북한에서는 인육시장(...)이 열리는 등 막장상황이었다.
상업지 작가 죠카(叙火)의 '이형괴기담'이라는 상업지에서는 원판 괴담에 수간과 폴리모프를 추가하여 훨씬 끔찍하고 역겨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의 '돼지 가면 놀이' 역시 위 '소의 목' 괴담과 매우 유사하다. 여기선 시간은 6.25 전쟁 철, 장소는 강원도 인근의 펀치볼로, 작 중 나온 소 가죽 대신 돼지 가면을 쓴 이들이 마을 사람들을 죽여 인육을 만드는 등 '돼지 가면 놀이'를 한다. 원작과 약간 다르게 돼지 가면 놀이 이야기를 발설한 사람은 자신도 똑같이 돼지 가면 놀이에 참여하게 되어 인육을 탐하게 된다고.
1.3. 결론
소의 목 자체가 예전부터 구전되던 도시전설이고, 애초부터 나폴리탄식 괴담이므로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다시 말해 쿠네쿠네, 사메지마 사건, 키사라기역, 스기사와 마을처럼, 그냥 도시전설로 남겨두는 쪽이 흥미 면에서는 더 무방할 것이다. 이 도시전설의 핵심은 소의 목이라는 기묘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단어에서 우러나오는 상상력이기에. 그렇다고 버스기사가 운전을 못 할만큼 무서운 얘기냐? 하면 고개를 갸웃할 법도 하지만 사람마다 담력은 다르니...
호시노 유키노부가 그린 <무나가타 교수 전기담>[6]이라는 고고학+인류학+미스터리 만화에서 이 괴담을 소재로 에피소드를 구성한 적이 있다. 작품 진행이 참으로 담담한 데다 학술적인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는지라 별로 안 무섭다. 그저 기근일 때는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안 됐다 싶은 정도.
1.3.1. 관련 문서
2. 서양의 폴암, 파르티잔의 한 종류
파르티잔 중에서 갈고리나 돌출부가 없이 매끈한 이등변삼각형 형태의 넓은 날을 지닌 것을 소의 목, 소의 혀라고도 부른다.[1] 1993년 출간한 <돌>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되었다.[2]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작가.[3] 에도 4대 기근은 일본 에도 시대에 이상기후, 해충, 자연재해 등으로 흉작이 연이어져 발생한 기근 중 그 규모가 매우 컸던 네 차례 기근 중 하나이다. 에도 시대는 소빙하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전반적으로 한랭하여 냉해 등으로 흉작과 기근이 빈발했다. 4대 기근은 다음과 같다. 간에이 대기근(1642-1643), 교호 대기근(1732), 텐메이 대기근(1782-1787), 덴포 대기근(1833-1839)[4]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인 아일랜드에서도 200만 명이 죽어나가는 대기근이 발생했다.[5] 한국사에서도 삼국사기와 조선왕조실록, 고려사를 비롯한 문헌에서 이런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6] 원작 이름은 <무나카타 교수 전기고宗像教授伝奇考>. 여기서 '무나카타'라는 성은 후쿠오카현에 있는 무나카타시(宗像市)에서 땄다. 작중에서도 무나카타시 앞바다에 있는 오키노시마(沖ノ島)섬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