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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국가대표 경력/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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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021 2022
손흥민
2021년
파일:카타르 월드컵 예선_대한민국_손흥민.jpg
소속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EAFF)
등번호 7
C
기록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흰색글씨.svg 출전 0경기
선발 2경기
1득점 MOM 1회
파일:AFC_AsianQualifiers_Brandmark_Horizontal_1_GradientFullColourOnLightBg_WEB.png
선발 5경기
3득점 MOM 2회
합산 성적
선발 7경기
4득점 MOM 3회
1. 개요2. 벤투호
2.1. 3월 A매치 평가전2.2.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2차예선
2.2.1. 6월 소집
2.3.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최종예선
2.3.1. 9월 소집
2.3.1.1. 1차전 VS 이라크
2.3.2. 10월 소집
2.3.2.1. 3차전 VS 시리아2.3.2.2. 4차전 VS 이란
2.3.3. 11월 소집
2.3.3.1. 5차전 VS UAE2.3.3.2. 6차전 VS 이라크
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손흥민의 2021년 국가대표 활약상을 정리한 문서. 손흥민이 국가대표로 발탁된 지 12년차가 되는 해이다.

2. 벤투호

2.1. 3월 A매치 평가전

3월 A매치 기간 소집명단 발표 하루 전인 3월 14일, 아스날전에서 전치 2주의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손흥민을 3월 소집명단에 넣고 구단과 합의를 거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22일 출전 불가 판정이 나오며 10년 만에 열리는 일본과의 원정 평가전에 불참하게 되었다. 한편 손흥민이 불참한 상태에서 치른 3월 25일 한일전은 3:0 참패를 당했다.

4월 중순 슈퍼 리그의 창설로 인해 손흥민의 거취가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소속팀인 토트넘이 슈퍼 리그에 참가하게 되면서 UEFA와 FIFA의 징계로 인해 소속 선수인 손흥민이 국가대항전에 참여할 수 없어질지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슈퍼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 6팀의 탈퇴 이후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 되었고, 슈퍼리그에 대해 피파의 징계가 사라져 출전이 가능해졌다.

2.2.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2차예선

2.2.1. 6월 소집

2.2.1.1. 7차전 VS 투르크메니스탄
2021년 5월 24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 발탁되었다. 6월 3일부터 13일까지 북한, 투르크메니스탄, 스리랑카, 레바논과 단기간 동안 내리 경기를 뛰어야 하는 몹시 힘든 일정이었지만, 북한의 기권 몰수패로 첫 경기가 취소되면서 대표팀 성적에도 주전인 손흥민으로서도 호재가 되었다.

6월 5일 투르크메니스탄과의 홈 경기에서는 대활약을 했다. 비록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장기인 중거리슛에 양질의 크로스, 탈압박과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움직임까지 보여줬다. 특히 4번째 골을 만든 원거리에서 시도한 무회전 프리킥과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머리 위로 툭 차서 압박을 벗겨내며 권창훈에게 연결해 5번째 골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 코너킥에서 연결된 세 번째 골까지 다섯 골 중 세 골에 관여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텐백에 맞서 드리블, 라인브레이킹, 킬패스, 중거리 슈팅 등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모조리 발휘해 상대 수비진을 흔드는 크랙의 역할을 100% 소화해냈다. 투르크메니스탄전 활약상
2.2.1.2. 9차전 VS 스리랑카
6월 9일 스리랑카전에서는 감독이 대거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결장했다. 언론에서는 4년 반만에 제대로 된 휴식이라는 말도 나왔다. 경기는 5:0 대승을 거두었다.
2.2.1.3. 10차전 VS 레바논
6월 13일 레바논전에서는 팀이 전반전에 어이없게 선제골을 먹힌 이후 전반 25분 칩샷을 시도해 골키퍼까지 넘겼으나, 상대 수비가 오버헤드킥으로 골이 들어가기 직전에 걷어내어 정말 아쉽게 동점골의 기회를 놓쳤다. 이후 후반 5분 송민규에게 날카로운 코너킥을 전달해 레바논의 자책골을 유도한 뒤 송민규의 시그니쳐 세리머니를 해 주었다.[1] 또한 후반 18분 하프라인부터 빠른 스피드로 공을 몰고가 수비 한 명을 재낀뒤 킬패스로 박스 안에 있는 남태희가 PK를 얻어냈다. 키커로 나서 PK를 성공시키며 역전골을 넣었다.[2] 득점 후 손으로 23 을 표현한 뒤 카메라에 대고 Hey, Chris ! Stay Strong, I Love you !라고 외쳤다. 당일 새벽에 UEFA 유로 2020 본선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진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쾌차를 바라는 세리머니였다. 또한 자신의 시그니처 세리머니인 찰칵 세리머니를 처음으로 국대에서 선보였다. 레바논전 활약상

2.3.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최종예선

2.3.1. 9월 소집

6월 소집으로부터 3개월 후 9월 2일과 9월 7일에 열린 최종 예선 명단에도 역시 포함되었다.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경기에서 햄스트링에 문제가 있는 듯 보였지만, 파울루 벤투 감독은 손흥민의 햄스트링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컨펌했다. 우리 시간으로 8월 29일 밤에 펼쳐진 왓포드 FC와의 경기에서 좋은 킥 컨디션을 보이고 31일 귀국했다.
2.3.1.1. 1차전 VS 이라크
9월 2일 이라크전에서는 집중 마크를 의식한 나머지 기회가 와도 최대한 다른 선수에게 넘겨주었으나, 팀 전체적으로 최악의 결정력을 보이면서 0대0으로 끝내고 말았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는 충격을 받았는지 완전히 침울해진 모습으로 결정력 부족을 인정하고[3] 다음을 기약했다.

냉정히 말하면 손흥민이라 어느 정도 넘어가 준 거지 개인 경기 내용은 역대 최악이었다. 손흥민의 이미지가 좋다 보니 방송사와 팬들이 "주장이라 헌신해야 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라는 커버를 쳤지만, 손흥민은 공격수이자 팀의 에이스이다. 공격수의 일은 기회만 생기면 슈팅을 때려야 하는데, 손흥민에게는 그런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만일 그가 헌신한다는 이유로 슈팅을 아끼게 된다면 슈팅이 황의조에게 많이 몰빵될텐데, 이러면 혼자 상대 수비의 지독한 압박을 견뎌야 하는 황의조에게[4] 부담이 가중된다. 부담을 덜기 위해선 측면과 중앙을 휘저어야 하는 황희찬,[5] 이재성[6]도 자신의 일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슈팅만을 노려야 하는데, 이러면 또 중앙 미드필더와 풀백들의 부담이 가중해진다. 즉, 일단 과감히 때려야지 팀의 부담이 덜해지고 진짜 팀에 헌신하는 것이라는 것이다.[7][8]

하지만 9월 7일 훈련 도중 종아리 부상으로 인해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이라크전의 경기력을 만회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많은 팬들은 작년부터 주제 무리뉴 아래 지나치게 혹사를 당하고 올 시즌도 월드컵 2차 예선을 위해 영국에서 일요일 경기를 치르고 하루도 제대로 못 쉬고 풀타임을 소화하다 보니 부상을 안 당할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도 손흥민의 빈자리에 들어간 황희찬이 레바논전에서 맹활약을 펼쳐 승리를 거뒀다.

2.3.2. 10월 소집

2.3.2.1. 3차전 VS 시리아
10월 7일 시리아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는 시차 때문인지 아쉬운 오프 더 볼 움직임과 결정력을 보였다. 하지만 동점 상황에서 해결사로 나섰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홍철의 크로스에 이은 김민재의 헤더로 떨궈준 볼을 침착하게 밀어넣으며 88분에 결승골을 기록했다! 팀의 주장으로써 2:1 승리를 이끌며 경기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9] 하지만 경기가 추가 시간으로 접어들 무렵 종아리를 부여잡고 잠시 필드 위에 쓰러졌다. 아마도 계속해서 종아리에 문제가 남아 있는 듯한 모양이다.
2.3.2.2. 4차전 VS 이란
10월 12일, 숙적 이란 원정에서 4-2-3-1 포메이션의 왼쪽 윙어로 출전하며 시리아전에서 처진 공격수로 뛰었던 손흥민이 다시 익숙한 자리로 돌아왔다. 왼쪽에서 경기를 시작했지만, 경기 도중 황희찬과 수시로 포지션을 바꾸며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전반에는 이란의 집중 견제에 고전했다. 몇 차례 슈팅은 상대 수비수에 막히거나 골문을 크게 벗어났다.

후반에는 시작 3분 만에 이재성의 침투 패스를 받아 상대 수비 뒷공간을 허문 뒤 골키퍼를 앞에 두고 정확한 오른발 슛으로 선제골을 넣었다.[10] 2경기 연속골이며,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원정경기에서 박지성의 골 이후 무려 12년만의 골이자 44년만의 이란 원정 선제골이다. 그간 국가대표팀에서 골 찬스를 다른 선수들에게 계속 양보하고 플레이메이킹에만 치중해 답답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바로 전 경기에서 오랜만에 넣은 골로 자신감을 얻었는지 공격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황희찬이 기존의 공격 가담에서 수비 가담으로 전환함에 따라 손흥민이 그 역할을 수행했으며, 장점인 날카로운 결정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기쁨도 잠시 28분 뒤에 동점골을 내 주며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고, 경기도 그대로 1 대 1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날 손흥민의 폼은 굉장히 좋았다.

2.3.3. 11월 소집

2.3.3.1. 5차전 VS UAE
11월 11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여러 번 만들면서 풋몹 기준 8.6의 평점[11]을 받아 MOM에 선정되는 등,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가장 중요한 을 넣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에는 이날 득점에 실패했던 위치에서도 골을 때려넣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12] 선수 본인도 땅을 치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잡히는 등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경기는 다행히 황희찬의 페널티킥 결승골에 힘입어 1 : 0으로 승리했다.#
2.3.3.2. 6차전 VS 이라크
11월 17일 타니 빈 자심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무효가 된 패널티킥을 또 성공시켜 A매치 30호 골을 기록하며 김도훈, 최순호, 허정무와 함께 한국 축구 국대 득점 공동 6위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손흥민은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난 뒤 2011 AFC 아시안컵 인도전에서 A매치 첫 데뷔골을 기록한 장소도 바로 도하의 타니 빈 자심 스타디움이었기 때문에 이라크전에서 PK 득점 이후 그 당시의 골 세레머니를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다. 또한, 작은 정우영의 A매치 데뷔골과 이재성의 골에 힘입어 3대0으로 승리하면서 본선진출에 한걸음 다가섰다. 최종예선 6라운드를 마친 현재 3골을 기록하며 4골을 기록 중인 중국의 우레이를 바짝 쫓고 있다.[13]

3. 둘러보기



[1] 송민규는 이 날 대표팀의 선발/교체 멤버 중 가장 어렸고, 소집 명단에서도 2002년 생 정상빈 다음으로 어리다. 유럽 최고의 리그에서 Best 11에 들어간 대선배가 본인의 시그니쳐 세리머니를 알고 먼저 해주는 건 A매치에 첫 발탁된 송민규 본인 입장에서는 엄청난 동기부여다. 팀원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주장의 역할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장면은 손흥민이 주장의 품격을 제대로 드러낸 장면이다.[2] 2019년 10월 10일 스리랑카전 홈 경기 PK 득점 이후 1년 7개월만의 A매치 득점이다.[3] 동시에 경기 막판 이라크가 경기를 지연시킨 것을 비판하였다. 다만 침대축구 시절보다는 훨씬 덜해진 것은 사실이나, 손흥민은 어디까지나 시간 지연을 비판하였지 침대축구에 대한 발언은 일언반구도 없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국가대표팀에 대해 다룬 tvn의 프로그램 "워 룸"에서 비하인드가 공개되었는데, 코너킥 상황에서 이라크 선수가 플래그에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킥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주심이 페널티 박스 쪽만 체크하느라 이라크 선수들이 시간을 끄는 비매너 플레이를 선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4] 이는 황의조의 예선전 부진의 원인이기도 하다.파트너라는 사람이 과감하지가 못한 탓에 혼자 압박당하고 있고 그렇다고 월드클래스급 클래스도 아니기 때문이다.[5] 대표팀에서는 측면을 파괴할 선수가 많지 않다 보니 측면에 많이 기용된다. 그리고 레바논전에서 레바논의 측면 수비진을 말 그대로 파괴해버렸다.[6] 공격이 전개되면 재빨리 박스 안 쪽으로 들어와 공격에 가담해야 하고, 주도권을 빼앗기면 다시 바깥으로 돌아와 수비에도 가담해야 한다.[7] 한국이 아직까지 텐백을 아예 공략 못하면 모를까 지금은 경기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결정력이 문제지 텐백을 아예 못 뚫지는 않는다.[8] 박지성과 비교하는 의견도 있지만 애초에 둘의 포지션은 아예 다르다. 박지성은 팀 전체를 지원하는 하드워커 스타일로 직접 해결하는 게 주 임무는 아니지만 손흥민은 윙 포워드, 즉 공격수로 직접 해결하는게 주 임무다.[9] 이 골은 2019년 10월 10일 스리랑카(8-0 승)와 월드컵 2차 예선에서의 골 이후 2년 만에 나온 손흥민의 A매치 필드골이었다.[10] 이용의 스로인을 키핑하러 내려온 황의조, 기민한 스텝으로 탈압박을 해낸 황인범, 탁월한 위치선정과 킬패스를 보여준 이재성, 그리고 대표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라인브레이킹과 골 결정력을 보여준 손흥민까지 선수들 개개인의 장점들이 유기적으로 잘 맞아들어간 멋진 골이었다는 평이 많다.[11] 경기 최고 평점.[12] 5번이나 슈팅을 가져갔지만, 단 한 골도 들어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빅찬스미스로 분류되는 슈팅은 없었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점이다.[13] 손흥민과 같이 3골을 기록 중인 선수들은 이란의 알리레자 자한바크슈, 호주의 미첼 듀크, UAE의 알리 마브쿠트,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레흐 알-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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