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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수오멘린나 요새 |
영어 | Fortress of Suomenlinna | |
프랑스어 | Forteresse de Suomenlinna | |
국가·위치 | 핀란드 헬싱키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1년 | |
등재기준 | (iv)[1] | |
지정번호 | 583 |
1. 개요
핀란드 헬싱키에 인접한 6개의 쿠스탄미에카 섬(Kustaanmiekka), 수시사리 섬(Susisaari), 이소무스타사리 섬(Iso-Mustasaari), 피쿠무스타사리 섬(Pikku-Mustasaari), 랜시무스트사리 섬(Länsi-Mustasaari), 롱외렌 섬(Långören)에 걸쳐 연결된 성형 요새.2. 역사
대북방전쟁에서 루스 차르국에게 무릎을 꿇고 잉그리아, 에스토니아, 리보니아, 카렐리아를 잃은 스웨덴은 러시아 제국에서 제위 계승 분쟁이 일어나자 실지를 되찾고자 하타르당(hattarna)의 주도로 러시아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그러나 재빨리 러시아 제위를 차지한 옐리자베타는 역공을 가했고 스웨덴군은 핀란드에서 러시아 제국군에게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1744년 체결된 오보 조약으로 스웨덴은 퀴메네 강(Kymmene älv)[2]에서 사이마 호에 이르는 영토를 러시아 제국에 추가로 할양했고 이에따라 차후 러시아가 핀란드를 노리고 침공한다면 방어가 매우 어려워졌다. 1747년 스웨덴 의회는 러시아 제국군으로부터 핀란드를 방어할 새로운 요충지로 당시에는 한미한 어촌이었던 헬싱키 근처를 선정했고 이듬해 1월부터 아우구스틴 에렌스베르드의 주도하에 공사가 시작되었다.문제는 당시 자유 시대의 스웨덴 정계로, 하타르당과 뫼소르당으로 갈라져 싸우던 스웨덴의 정치 환경 때문에 요새 건설을 위한 제대로 된 자금 조달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구스타브 3세가 대 러시아 전쟁을 일으켰던 1788년에도 수오멘린나 요새는 여전히 완공되지 못했기 때문에 불완전한 방어 시설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독일·폴란드 원정이 끝난 후 러시아 제국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나폴레옹과 조약을 맺어 핀란드에 대한 러시아 제국의 관할권을 인정받았고, 1808년 핀란드를 침공했다. 러시아군에게 포위당한 수오멘린나 요새는 얼마 못가 항복했고 1809년 프레드릭스함 조약이 체결되어 핀란드 전역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 산하 핀란드 대공국 시대에는 요새 대부분이 완성되었으나 크림 전쟁 당시 영국 해군에게 신나게 털렸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는 오랜만에 요새 전역이 무장 단계에 들어섰다.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면서 핀란드는 독립했으나 곧 핀란드 내전에 휩싸였고 수오멘린나 요새는 적군 포로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이때 스웨덴어인 스베아보리로 불렸던 요새의 이름도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핀란드어인 수오멘린나 요새로 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오멘린나의 군사적인 입지는 무의미해졌고, 1973년 민간 행정으로 넘겨졌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3. 관광
현재 헬싱키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중 한곳으로 헬싱키 시민들이 자주 찾는 소풍 장소이기도 하다. 섬에는 여러 박물관이 있으며 마지막 핀란드 잠수함인 베시코(Vesikko)가 전시되어있다. 요새의 건설을 진두지휘했던 아우구스틴 에렌스베르드의 묘지가 요새 내부에 있는데 당시 스웨덴 국왕이었던 구스타브 3세가 그의 공적을 기려 직접 디자인을 해주었다고 한다.헬싱키 카우파토리(Kauppatori)에서 수오멘린나 요새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헬싱키 시내 교통권으로 탈 수 있으며 약 20분 정도 가면 요새에 도착한다.
관광지이나 섬에는 약 9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니 너무 시끄럽게 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