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2 19:30:18

신명철(기자)

파일:신명철기자.jpg

김인식 전 감독(오른쪽)과 함께 찍은 사진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1953년 ~ 2022년 1월 25일

대한민국의 스포츠 전문 기자.

2. 생애

신일고등학교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서울신문사 산하의 스포츠 전문지이던 주간스포츠 기자로 입사하여 언론계에 발을 들였지만 불과 1년만에 신군부의 언론계 정화운동에 휘말려 해직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1980~1981년 농심 홍보부에서 근무하다 1982년 한국야구위원회 홍보실 직원으로 스카우트 되면서 야구와 인연을 맺었고, 1985년 스포츠서울 창간 멤버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인 야구 전문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과 오마이뉴스, 스포츠 전문 잡지 SPORTS 2.0의 편집장을 역임한 후 2016년 부터는 SPOTV NEWS의 편집국장 및 편집위원으로 근무하였다.

2021년 5월 담도암이 발견되어 투병 생활에 들어갔고 한때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며 변함없이 취재 및 기고 활동을 펼쳤지만, 2022년 새해 들어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1월 25일 숨을 거두었다. 향년 69세.

3. 여담

  • 스포츠서울 기자 시절, 나이는 동갑이지만 상사이자 선배인 이종남의 신임이 깊던 후배 기자 중 한명이었다.[1] 그는 야구 뿐 아니라 스포츠 전반으로 깊은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종종 갑작스레 라디오 프로에서 전화로 출연 요청을 받으면 대본 없이도 곧바로 생생한 스포츠 관련 소식을 막힘없이 전해주는 등 언변도 뛰어났다.
  • 야구선수 신명철이름이 같아서 생전 여러가지 해프닝이 있었다. 롯데삼성, SK 감독을 지낸 김용희가 착각하여 신명철 선수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이 신명철 기자에게 걸어서 "명철이가?" 라고 했다가 신 기자가 "나는 그 신명철 아니오" 라고 해서 넙죽 사과한 일도 있었다. 또한 신명철이 전날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그 다음 날 후배 기자가 일부러 큰 소리로 "이봐, 신명철이가 어제 4타수 무안타 쳤다며?"라고 외치면서 상사를 은근히 물먹이기도 했다고...
  • 1980년대 최고의 타자 장효조트레이드 설을 최초로 터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1987년 시즌 후 신명철이 한 카페에서 삼성 라이온즈 홍보담당 김상두 과장과 한잔 하던 중 김상두가 "장효조의 트레이드를 검토 중이다" 라고 넌지시 얘기했다. 저녁 늦은 시간대라 신문사 마감은 다 끝났으려니 하고 털어놓은 것인데, 그 때 스포츠서울은 조간판 인쇄를 준비할 시간이라 신명철은 '이걸 터뜨려 말어?' 라고 고민하며 맥주만 들이붓다 꽐라가 되어 화장실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서 야간 데스크를 지키던 친구이자 동료 기자인 김기선[2]에게 공중전화를 걸었다.
신명철(이하 신) : 여보쉐요, 놔 쟝효존데 너 뉴구야?
김기선(이하 김) : 누구요? 장효조? 너 신명철이지? 어디서 이렇게 쳐마시고 헛소리야?
신 : 얌마! 쉰명철이가 트레이드 된대! 지금 샴셩 김샹두 과장하고 한잔 하는데 쉰명철을 트레이드 시킨대!!
김 : 이자식아 신명철은 너잖아. 삼성이 뭔 수로 널 트레이드 시킨다는 거야? 술먹었으면 집에 가서 발닦고 자!
신 : 그게 아니라 쟝효조가 트레이드 된다고! 빨리 조간판 윤전기 세우라고 그래!
김 : 뭣이? 장효조 트레이드?!
그렇게 장효조 트레이드설은 스포츠서울 1면 지면을 탔지만 결과적으로 트레이드 카드가 맞지 않아 장효조의 이적은 불발로 끝났다. 당시 삼성은 장효조를 보내는 대신 최소 15승은 보장할 에이스급 투수를 원했지만 트레이드 상대를 자처하고 나선 태평양 돌핀스가 "투수는 못 줄 것 같으니 현금으로 장효조를 줄 수 없느냐"고 생떼를 쓰며 삼성의 속만 긁었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사실 1987년 시즌이 끝나고 약체 청보 핀토스 전력을 그대로 물려받아 창단한 태평양이 그만한 투수가 있을 리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장효조의 트레이드 시도는 1987~1988년 스토브리그를 활활 불태운 초대형 떡밥으로 남았다.
결국 장효조는 삼성에 잔류했지만 장효조를 타 팀으로 보내야겠다는 삼성 측의 의도는 여전했고, 1988년 시즌 종료 후 끝내 장효조를 투수 장태수와 묶어서 장효조의 고향 연고팀롯데 자이언츠로 보내고야 말았다.[3] 장효조의 반대급부로 온 선수는 1980년대 롯데 중심 타선의 한 축이었던 김용철 이었다.
한편 신명철과의 술자리에서 기밀을 잘못 누설했다가 그의 기자 본능에 된통 혼쭐이 난 김상두 과장은 이후 각 신문사의 윤전기 세우는 시간을 줄줄이 꿰고 살았다고 한다.



[1] 1990년대 초중반 이종남은 야구부장, 신명철은 차장으로 스포츠서울 야구부를 지휘하며 적지 않은 특종을 잡아냈다.[2] 신명철과 1953년생 동갑내기로 스포츠서울 창간 멤버이자 입사 동기였으며 야구를 주로 담당했다. 2020년 작고.[3] 한편으로 장효조는 롯데로 간 덕분에 현역 마지막 시즌인 1992년 생애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득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