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20:26:36

심호섭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심철섭(沈喆燮)
본관 청송 심씨[1]
출생 1891년 7월 25일
경상도 진주목 대각면 사곡동 이덕실
(현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덕곡마을)
사망 1935년[2] 10월 18일
경상남도 진주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853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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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심호섭은 1891년 7월 25일 경상도 진주목 대각면 사곡동 이덕실(현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덕곡마을)에서 아버지 심상홍(沈相泓, 1862 ~ 1910. 1. 21)과 어머니 광산 김씨(1866 ~ 1933. 11. 13) 김주호(金周琥)의 딸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숙부 심상정(沈相廷, 1853 ~ 1899. 3. 10)에 입양되었다.

그는 1919년 당시 수곡면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해 3월 3.1 운동이 전국에서 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재를 털어 격문과 태극기를 만들면서 면내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후 1919년 3월 22일 수곡면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1919년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공소하였으나 곧 취하하여 그 뒤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26년경에는 일본의 도쿄·나고야 등지를 무대로 친일 한국인단체인 상애회(相愛會)와 근로조합(勤勞組合)을 상대로 투쟁하여 민족의식과 항일애국정신을 고취시켰다.

귀국 후 진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5년 10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심호섭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21일 당초 진주시 봉곡동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했다.

[1] 안효공파-신천공 효겸(孝謙)파 24세 섭(燮) 항렬.[2] 청송심씨족보에는 1936년에 별세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