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7 08:33:28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라틴어: Arrecinus Clemens
전체이름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Marcus Arrecinus Clemens
생몰년도 미상~ 미상
소속 프라이토리아니
최종 계급 근위대장
종교 로마 다신교
부모 아레키누스((父)
테르툴라(母)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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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대의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장. 별칭 칼리굴라로 잘 알려진 3대 황제 가이우스의 충직한 근위대장이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가(카이사르 가문)의 충신으로, 서기 41년 1월 벌어진 암살 정국 속에서 황숙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네로 게르마니쿠스를 옹립하고 내전을 막았다.

2. 생애

밝혀진 전체 이름은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이다. 고향은 아드리아 해와 인접한 이탈리아 반도의 북동쪽 도시 피사우룸(오늘날의 이탈리아 페사로)로, 부모 모두 로마의 오래된 기사계급 출신이다. 아버지는 아레키누스, 어머니는 테르툴라이며, 형제자매로는 누나 아케키나 클레멘티나가 있다. 누나 아케키나 클레멘티나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형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의 아내인데, 매형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역시 처남처럼 칼리굴라의 최측근이다. 아내는 율리우스 루푸스의 여동생 율리아로 역시 기사계급 출신 로마인이다. 자녀로는 도미티아누스에게 의심 받아 억울하게 피살된 원로원 의원 마르쿠스 아레키우스 클레멘스와, 후일의 황제가 되는 티투스의 첫 아내 아레키아 테르툴라가 있다.

일찍부터 프라이토리아니 부대원으로 입대해, 3대 황제 가이우스(칼리굴라) 통치기간 대부분인 서기 38년부터 서기 41년까지 근위대장에 올라 충성스럽고 명예로운 친위대장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근위대장 마크로 숙청 직후부터 매형이 모신 칼리굴라에게 직접 지명되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때 그는 칼리굴라 정부의 신임 아래 프라이토리아니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존경을 받았는데, 꼼꼼하고 군율 관리와 업무 태도가 엄격해 칼리굴라와 황숙 클라우디우스 등에게 큰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야사에 따르면 카시우스 카이레아처럼 칼리굴라에게 부하들 앞에서 종종 놀림을 당하고 조롱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는 오늘날 여러 기록을 토대로는 거짓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카이레아에게 칼리굴라가 업무 지적을 하면서 "여자 같다."고 인격적 모독을 하여 원한을 산 것은 사실이었다.

서기 41년 1월, 카시우스 카이레아와 그를 따른 20명 남짓의 암살범들이 원로원 의원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의 도움 아래 비무장 상태의 칼리굴라 황제를 암살했다. 이때 클레멘스는 로마 외곽의 근위대 군영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소식을 듣자마자 장교들과 함께 군영 내 질서를 바로잡고, 그라투스를 비롯한 병사들을 황궁으로 보내 황숙 클라우디우스와 칼리굴라 가족의 구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황후 카이소니아, 공주 율리아 드루실라는 원로원의 명 아래 카이레아, 율리우스 루푸스 등 암살범 20명에게 살해됐다. 그렇지만 그라투스가 동료들과 극적으로 황궁에 잠입해 기적적으로 황숙 클라우디우스를 찾아냈다. 그라투스는 클라우디우스의 생환이 확인되자 그를 모셔 가장 먼저 새 황제로 선포함과 동시에 충성을 맹세했고, 클레멘스가 있는 근위대 군영으로 모셨다. 클레멘스는 이때 클라우디우스를 황제로 선포했고, 프라이토리아니는 민주적 투표 아래 아우구스투스 가문과 그 직계인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에 대한 재신임을 만장일치로 확인 후 클라우디우스를 황제로 삼고 원로원과 암살범들에게 피살된 칼리굴라를 위한 복수를 다짐했다.

클레멘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즉위 후, 잠시 근위대장을 지내며 그동안 없던 경호체계를 만들었다. 그는 황제 접견시 비무장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황제 동선이 노출되더라도 접견을 위해 온 모든 사람을 완전 무장한 병사들이 붙어 무제한 수색을 하는 등의 새로운 경호를 클라우디우스에게 건의해 이를 실행했다.

클라우디우스가 제위에 올라 군권 장악 등이 안정되기 전까지 근위대장으로 있었다고 한다. 이후 후임자들에게 자리를 명예롭게 물려준 뒤 은퇴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때의 일 아래 그의 아들은 원로원 의원이 되고 그 일가는 귀족 신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