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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338년 9월 23일, 프랑스 함대가 양모를 팔기 위해 영국 해협을 지나가던 잉글랜드 상선 5척을 공격하면서 벌어진 해전. 백년전쟁 최초의 해전이자 대포가 처음으로 사용된 해전이다.2. 상세
1338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와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양측은 상대국을 침공하기 위해 원정 준비에 착수했고, 자연히 양국 사이에 있는 영국 해협은 갈수록 위험해졌다. 그러던 1338년 9월 23일,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은 나라들에 양모를 팔기 위해 항해하던 영국 상선 5척이 플란데런의 아르네뮤이덴 항구 앞바다에서 위그 키에레와 니콜라 바후셰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갤리선 48척의 습격을 받았다.프랑스 해군은 숫적으로 압도적으로 우월하니 손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여기고 적 상선에 바짝 접근했다. 이때 영국 선박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호에 설치된 대포 3문이 프랑스 갤리선들을 향해 포격했다. 프랑스 병사들은 방심하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포격에 경악해 제대로 대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이로 인해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그러다가 전열을 가다듬고 공세를 재개했지만, 잉글랜드 선원들은 존 킹스턴 제독의 지휘하에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이리하여 쉽게 끝날 듯했던 해전은 하루종일 이어졌고, 프랑스 병사 900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포탄이 다 떨어지면서 항전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존 킹스턴은 신변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그러나 뜻밖에 큰 손실을 입은 것에 분노한 니콜라 바후셰는 약속을 무시하고 존 킹스턴을 비롯한 잉글랜드 선원 전원을 몰살하고 상선 5척과 대포 및 화물을 포획했다. 잉글랜드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프랑스인들에게 강한 적의를 품었다. 1340년 6월 24일 슬로이스 해전에서 패배하고 사로잡힌 니콜라 바후셰는 아르네뮤이덴에서의 만행에 원한을 품고 있던 잉글랜드군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