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15:54:01

아이티인

아메리카 각국의 국민정체성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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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참담한 실상3. 문화
3.1. 언어3.2. 종교
4. 창작물에서

1. 개요


아이티인은 과거 아이티가 프랑스령 생도맹그 식민지였던 시절에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 및 일부 혼혈인들의 후손이다. 아이티에도 도미니카 공화국과 함께 스페인이 오기 전까지 타이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스페인의 지배와 학살로 인해 거의 멸족되었고 아이티 내에는 소수의 혼혈 타이노인들이 남아 있다. 2013년 상염새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티인의 유전형질은 평균적으로 사하라 이남 흑인 84%, 기타 인종 16%로 이루어졌다.

소수의 물라토 인구도 존재한다. 이들은 아이티 독립 전쟁 중이던 1804년 섬에 잔존한 백인들을 대부분 학살하는 와중에 의사들과 폴란드인 포로들은 살려두었다. 의사들은 죽이면 자기들 아플 때 치료할 사람이 없으니까 살려준 거고, 폴란드인 포로들의 경우 당시 폴란드가 멸망한지 얼마 안 된 관계로 폴란드인 군인들은 돌아갈 나라가 없었던 이유 및 강대국에 이용당하는 입장에서 서로 동병상련의 처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티의 폴란드계는 현지의 아이티인들과 동화되었다. 프랑스계 백인 및 혼혈인들은 아이티가 독립할 당시에 상당수가 학살[1]당했으며 생존자들은 루이지애나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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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인들은 쌀이 주식으로 쌀과 관련한 문화가 많은 편이라 한다. 아이티의 쌀 포장지에 들어간 그림들은 아이티의 미인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2. 참담한 실상

아이티인들은 아이티 내 1천만여 명이 거주하며, 대부분 극빈층이다. 프랑스 식민시절부터 이어진 과도한 개간 및 환경파괴로 아이티의 환경이 황폐화된 영향도 있으나, 방문해 본 사람들에 의하면 주변 해안에 물고기가 많은데도 어선이 없어서 물고기를 못 잡는 수준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문맹률이 39%가 나오는데, 이는 파키스탄보다 문맹률이 높은 심각한 상황이다. 이웃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에도 아이티인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다. 인구 대다수가 물라토인 도미니카 공화국의 도미니카인들은 순혈 흑인에 가까운 아이티인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는 언어도 다를 뿐만 아니라 GDP가 13배 정도 차이나는 점[2]에다가 평균 교육 수준도 천지차이로 다르고 피부색, 인종 문제까지 더해져서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이웃 국가에 비해 소득 수준이 몇 배 정도 낮으면, 인종이 같고 평균 교육 수준이나 인간개발지수가 비슷해도 이웃 국가 사람들에게 놀림받고 차별당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아이티인들이 얼마나 심한 무시를 당할지 짐작할 수 있다. 이웃 도미니카인들은 적어도 문맹은 극히 드문데, 아이티에서는 구호식량의 유통기한을 잘못 읽어서 폭동이 일어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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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아이티 출신 난민들

오늘날 아이티에서 많은 경제 난민이 발생한 이유로 미국[3][4],쿠바, 칠레, 캐나다[5],브라질, 바하마, 멕시코, 프랑스 등지에 수백만여 명 정도의 아이티인들이 거주한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조상 중에 아이티 출신 흑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6]

2018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왜 노르웨이 같은데서 이민이 안 오고 아이티 같은 똥통 국가(Shithole Countries)에서 자꾸 이민을 오냐고 직접적으로 대놓고 디스한 적이 있다.# 씁쓸하게도 당시 아이티인들은 아이티 난민 출신 유명 인사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반격을 하려고 했는데, 당시 언급된 아이티 출신 유명 인사들이 거의 다 아이티 독립운동 당시 피난간 백인 및 혼혈인이었다.[7]

3. 문화

3.1. 언어

아이티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어가 공용어이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아이티 크레올어라는 프랑스어 크레올을 사용한다. 아이티 크레올어는 크레올어중 화자수가 많은 언어라서 도미니카 공화국, 바하마, 미국, 캐나다 등 아이티인들이 거주하는 곳에선 아이티인들을 중심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도미니카 공화국과 접해 있어서 스페인어를 배우는 아이티인들도 많이 있고 영어도 많이 배우고 있다.

3.2. 종교

스페인의 지배와 프랑스의 지배의 영향으로 아이티인 대다수는 천주교를 믿고 있다. 하지만 아이티인들은 천주교를 믿으면서 동시에 부두교를 믿는 경우가 많다. 원래 부두교가 백인 농장주와 마름들 몰래 아프리카 토속 신앙과 주술을 믿는데서 생겨난 종교임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천주교 성화나 예수상, 성모상 등을 부적이나 혹은 정령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다. 일부 부두교 주술사들은 아이티 독립 영웅으로 기록되어 있다.

프랑수아 뒤발리에 독재 시기에는 부두교를 사실상 국교화하고 여기에 반대하는 천주교 사제들을 박해한 적도 있었다. 그 여파로 오늘날 루이지애나 주의 아이티인 난민 중에는 부두교 컬트 관련한 사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외 개신교를 믿는 아이티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4. 창작물에서



[1] 학살된 민간인 규모는 3~5천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2] 물론 도미니카 공화국이 GDP가 더 높으며, 아이티와 다르게 스페인어를 사용한다.[3] 마이애미 권역과 뉴욕 권역에 절반 넘게 거주하며 보스턴올랜도에도 수만명씩 거주한다. 아이티 혁명 당시 미국으로 피난했던 백인 및 혼혈층들도 있는데, 이들은 주로 프랑스어권이였던 루이지애나주에 정착했다. 이쪽이 현대의 경제 난민들에 비해 수는 훨씬 밀리지만 피난 당시 상류층이였거니와 미국 건국 초창기에 이민 온 관계로 미국 내에서의 영향력은 이 쪽이 훨씬 쎄다.[4] 대표적으로 Jason Derulo가 아이티계 미국인이다.[5] 2021년 캐나다 인구총조사에 캐나다 내의 아이티인은 18만명 중 약 87%정도가 프랑스어권퀘벡주에 거주하며, 그 중의 91%정도가 몬트리올 권역에 거주한다.[6] 정확히는 대 뒤마의 부친인 토마알렉산드르 뒤마가 프랑스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를 둔 흑백혼혈이다. 아버지가 프랑스군 장교였기 때문에 혼혈임에도 프랑스군에 들어갔고 유능했던 덕분에 고속 진급해 프랑스군 최초의 흑인(정확히는 혼혈) 사단장이 됐다.[7] 아이티 혁명 당시 1만여 명 정도의 크레올들이 루이지애나 주로 피난 와 뉴올리언스 같은 지역에 정착했다. 이들 상당수가 특권층 출신이라 어느 정도 교육 받은 사람들 출신이고, 미국 역사 초창기에 정착했으니 오늘날 아이티 흑인 난민들보다 역사적 영향력이 강할 수밖에 없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