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10:21:15

어둠의 숲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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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문제점
3.1. "어리석은 문명"의 존재3.2. 우주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인가?
4. 기타

1. 개요

어둠의 숲 고찰[1] 우리는 왜 외계인을 찾아선 안 되는가[2]

어둠의 숲 가설(Dark Forest Hypothesis)은 페르미 역설의 한 가지 해결책으로 제시된 가설이다. 왜 인류가 외계 문명과 접촉하지 못하고 있냐는 질문에, 우주 문명간의 접촉은 필연적으로 어느 한쪽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외계 문명들은 서로 다른 문명에게 발견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을 제시한 것이다.

2. 상세

마치 미지의 위험한 어두운 숲에 사냥꾼이 살아남기 위해 몰래 숨어 있다가 뭐가 나타나면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으니 일단 쏴죽여버리는 것처럼, 우주 문명들은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도 모르는 다른 문명이 우주 어디에 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그들을 피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상대를 발견하면 먼저 죽여야만 살 수 있다는 상황이란 가설이다.

의외로 개념의 기초 자체는 꽤 오래전에 나온 것으로 적대적인 외계인의 위협을 상정한 SF물은 이미 수도 없이 존재해왔다. 현실에서도 파이오니어, 보이저를 비롯한 외우주 탐사선을 태양계로 내보낼 때 '굳이 외계의 침공을 부를 수 있는 우리의 위치 정보를 외부에 내보낼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또한 아서 C. 클라크 경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관하여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리 말고 더 있거나, 우리뿐이거나. 그 두 가능성이 모두 끔찍하다'라는 말로 타 외계 문명에 대한 두려움을 논평한 적이 있다.

이후로 천문학자이자 유명 SF 작가인 데이비드 브린이 1983년 페르미 역설에 대한 기고에서 처음으로 이 구상을 제대로 정립하였으며, 마찬가지로 유명 SF 작가인 그레그 베어가 1987년에 쓴 소설 《신의 용광로》에서 전술하였듯 어둡고 위험한 숲에 이 상황을 비유하면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레그 베어는 어두운 숲에 홀로 떨어진 아기새가 엄마를 찾아 시끄럽게 짹짹거리는 상황을 언급하며, 아기새는 무방비의 먹잇감이지만 그 숲에 수많은 맹수가 가득하기에 아무도 먼저 나서지 못하고 지켜만 본다는 상황을 가정해보았다. 누구라도 새에게 달려들면 잡아먹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했다가는 다른 무수한 맹수에게 자기 존재와 위치가 노출되어 스스로가 먹잇감이 될 테니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둠의 숲 가설이 참이라면 페르미 역설은 해결되지만, 마찬가지로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법인 대여과기 가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류에게는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앞서 짹짹거리는 아기새와 마찬가지로, 인류가 저 무한한 어둠의 숲인 우주에서 골든 레코드, 수많은 우주 탐사선, 100여 년부터 쏜 모든 전파는 우리의 존재를 우주에 광고한 꼴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태양계 탐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세상이 멸망하거나 퇴화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언젠가 태양계 너머의 별들도 탐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존재는 우주에 알려지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보다 훨씬 발달한 카르다쇼프 척도 1단계 이상의 문명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3] 그 문명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호의적인지, 우리는 또 그들이 우리에게 호의적일지 적대적일지 모른다. 만약 이야기가 통한다 해도 당연히 광년 거리로 떨어져서 메세지를 주고받는 건 한 몇 년씩 걸릴 것이며, 대화가 성사되어 한쪽이 진심으로 평화를 바라도 다른쪽이 그걸 기만 작전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생존을 위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문명을 파괴하거나 없애려 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이다. 아무리 인류의 문명 수준이 그들에 비해서 낮다고 해도, 문명이 파괴되지 않은 이상 언젠가 기술적 특이점 등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몇백 년 사이에 그들하고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러면 이는 그들의 문명이 위협받는다는 신호가 될 것이며, 그 전에 우리 인류의 문명을 멸망시킬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평화적으로 다가가도 우리와 진화 과정 자체가 완전히 다른 외계생명체들이 우리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며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평화적으로 지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외계인들이 과연 호전적이고 적대적인 존재인가는 장담할 수 없는 요소이다. 다만 인류 문명의 호전성은 오랜 세월 동안 약육강식의 자연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겨난 본능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이와 유사한 환경에서 발달한 외계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호전성을 지닐 것이라 가정할 수 있다. 자원이 거의 무한한 환경이 아닌 한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선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호전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가설이 페르미 역설의 정답이 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어떤 문명이 우주에 자신들의 존재를 나타내는 순간, 다른 동일하거나 더 상위의 문명이 필연적으로 그 문명을 멸망시키기 때문에 외계인들이 안 보인다는 것. 그러면 결론적으로 이 가설에 따르면, 우주에는 3가지 문명들이 존재한다.
  • 우리 인류 문명처럼 우주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다 필연적으로 멸망당할 문명.
  • 타문명의 존재를 두려워해 제 존재를 숨기는 문명.
  • 이미 멸망한 문명.

3. 문제점

근본적으로, 이 가설은 다음의 가정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 모든 문명은 "어리석지 않다." (모든 문명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하지 않는다.)
  • 모든 문명 간의 관계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다. (모든 문명은 자기 문명만을 지키려 할 뿐, 서로 교류하거나 상생하려 하지 않으며, 다른 문명에 대한 폭력의 사용을 꺼리지 않는다.)
  • 임의의 문명 X에 대해, 그 문명을 멸망시킬 수 있는 다른 문명이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나 인류 문명은 외계 문명을 확인한 적이 없으므로 이 가정들이 참이라는 보장이 없다.

3.1. "어리석은 문명"의 존재

데이비드 브린 등 이 가설에 대해 사고실험을 한 일부 사람들은 "거대한 침묵"을 끝낼 수 있을 만큼 스스로의 존재를 널리 알릴 용감한, 혹은 어리석은 문명이 있으면 침묵은 해결될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우주간 문명들간의 이런 불편한 침묵이 이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이들 중 한 문명은 어느날 지구에서 온 메시지를 받고 지구 인류 문명이라는 다른 문명의 존재를 깨달았다. 이들은 지구 문명을 잠재적 위협으로 보고 제거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지구 문명의 위협도가 낮으니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 논의한다. 강경파가 지구 인류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자 온건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지구 인류를 멸망시킨다고 치자, 하지만 우리 문명은 혹시 있을지 모를 다른 문명으로부터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지금까지 침묵을 지켜왔다. 만약 지구 인류 문명을 멸망시킨다고 한다면 우리가 지구를 멸망시키는 행동이 우리보다 더 고도화된 문명에게 파악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들이 지구보다 더 앞선 문명을 가졌고, 생존을 위해 타문명을 파괴한 우리를 더 위협적으로 본다면 어찌할 것인가?"

강경파는 이 질문에 침묵한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또 희망적인 예상을 하던 다른 문명이 자신들의 위치를 알린 것이 발견된다. 이 문명은 혼란에 빠진다. 이제 지구와 이 문명의 존재로 인해 이런 메시지를 내는 종족을 모두 제거한다고 하면 이 문명은 다른 문명에 대한 노출 위험을 두 배로 감수해야 한다. "다른 종족에게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이들 문명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우리에게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 문명은 반론을 내놓지 않고 침묵한다. 다른 비슷한 생각을 가진 문명들도 섣부르게 나서다가 자신들의 위치가 파악될까봐 두려워 나서지 못한다. '정 그렇게 실질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문명이 있다면 위협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서겠지'라고 각자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이런 식으로 점점 용감한, 혹은 어리석은 문명들이 자신들을 알아달라는 메시지를 우주에 퍼뜨리며 우주에서는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문명들의 메시지가 퍼져나간다.

여기서 좀 더 가설을 비틀어보자, 이런 지구의 메시지를 보고 다른 문명은 타 문명에 대한 노출 위협을 감수하고 지구 문명을 멸망시키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그들이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무기의 에너지를 다른 고도의 문명이 감지하고 만다. 이들은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문명의 수준과 지구 문명의 수준을 비교하고 전자의 문명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문명에 대해서 선제공격을 가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 문명은 자신의 존재를 다시 다른 문명에게 드러내고야 말았고 이 문명은 다시 또 다른 문명에게 비슷한 이유로 공격을 당한다. 결국 이렇게 자신을 숨기려는 시도로써 타 문명을 공격하는 우주 문명들이 필연적으로 싸우다가 멸망하는 사이, 지구를 공격하지 않고 자신을 숨기려는 문명들과 이들 중 가장 하등해 위협 대상에서 가장 멀어진 지구 문명은 살아남아서, 우주에서의 전쟁을 보며 자신을 숨긴답시고 타 문명을 공격한 이들의 최후를 관측하며 오히려 어둠의 숲 가설과는 반대로 우주엔 관찰될 만한 문명들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만 파악한다. 이렇게 문명들은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타 문명을 공격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결국 이 가설의 문제는 이 우주에 정말로 그렇게 문명이 가득 차서 서로의 위협이 되는 문명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문명이 있다고 해도 그 문명은 자기보다 약한 문명, 강한 문명 모두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걸 꺼리게 될 수 밖에 없어 그런 두려움이 없는 문명간의 메시지를 실제적으로 완벽히 제거할 강력한 구심점이 없다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외부로부터의 관측을 꺼리는 문명이 다른 문명을 잠재적 경쟁자로 봐서 무조건 적대할 수밖에 없다면, 다른 별에 있을 문명을 완전히 파괴하는 데는 분명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될 것인데 그런 거대한 에너지 자체가 타 문명이 관측될 수 있는 메시지가 된다는 게 이 가설의 가장 큰 모순인 것이다. 또한 이 문명이 그걸 두려워해서 비교적 에너지가 적게 드는 전쟁, 즉 워프 같은 시공간을 접는 에너지가 크게 드는 수단이 아닌 빛의 속도보다 낮은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에 병력을 태우고 고전적인 육상전을 시도한다고 해도 문제인 게 그 과정에서 피침공 문명이 더욱 발전해 우주선에 있는 병력의 문명보다 문명 수준을 앞지를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데다가, 그렇게 스스로 제한전을 걸어 문명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수준을 낮췄을 때 보급의 문제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생기며 무엇보다 이미 전 우주로 퍼졌을 가능성이 높은 메시지를 과연 침공 문명만 받아보았을지가 문제인 것이다. 메시지를 전파한 문명에 대해 어느 문명이 그 메시지를 받아보았다면, 마찬가지로 다른 문명들 역시 메시지를 전파받아 이 문명을 주시하게 될 가능성은 충분하며 문명간의 교류가 없으므로 침공 문명은 이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전파되던 메시지가 끊기면 다른 문명들이 과연 누가 그랬는지 추적할 수밖에 없고 이러나 저러나 전쟁을 일으킨 문명이 발각당할 확률은 증가하는 것이다.

결국 메시지를 외부로 마구 전달하는 문명을 제거하기 위해선 다른 문명들간의 합의와 조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 가설 자체가 '어떤 문명들이 다른 문명을 두려워하여 교류 자체를 거부하고 발각되지 않기 위해 은둔하는 게 기본상태다'는 가정을 근간으로 삼고 있으니 다른 문명을 두려워해 숨은 문명들에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서로 숨어있는 문명들보단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 교류하여 이해관계가 잘 맞는 문명들끼리만 다른 문명에 대한 제재가 가능하다는 결론만 나오는데 그런 우주적 문명간의 동맹이 애초에 가능하다면 문명들이 꼭 서로를 무서워해서 멸망시키는 것만 있을 이유가 없고 우주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 있을 뿐이라는 기본적인 이 가설의 가정은 완전히 붕괴하고 만다.

가설 속 어둠의 숲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어둠의 숲에 사는 사냥꾼은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면 어디에 숨어있든 또 다른 사냥꾼이 나타나서 자길 죽일지 모른다는 걸 안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존재에 대해선 그것으로 상대가 메시지를 보낸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위협인지 아닌지 대략적으로나마 파악이 가능하지만 숨어있어 보이지 않는 위협은 그 존재가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 걸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 더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굳이 메시지를 보낸 상대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파악한 상태에서 어둠의 숲에서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위치가 파악될 총성을 낼 필요가 있을까? 즉 오히려 이런 두려움은 이런 두려움이 없는 문명의 메시지가 퍼지는 걸 방조하여 메시지를 보낸 문명의 안전을 보장할 가능성조차 있다는 것이다.

그레그 베어의 소설 《신의 용광로》로도 다시 한번 돌아가보자. 어두운 숲에 홀로 떨어진 아기새가 엄마를 찾아 시끄럽게 짹짹거리고 있고, 맹수들은 숨어서 그걸 지켜보고 있다. 이제 당신이 숨어서 지켜보는 맹수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불쌍한 아기새가 단순히 불안과 공포에 떨며 엄마를 찾아 짹짹거리고 있을 뿐, 당신을 해칠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안다. 만약 당신이라면, 여차하면 당신을 해칠 수 있는 다른 맹수들에게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은신처에서 튀어나가 아기새를 사냥하겠는가? 아까처럼 가설을 좀 더 비틀어보자.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다른 맹수가 아기새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나서야 한다면, 놔둬도 무력한 아기새와 당신에게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는 다른 맹수 중 누구를 먼저 제거하겠는가?

따라서 오히려 “어리석음을 한껏 가장하는 방법”이 최선의 생존 방법일 수 있다. 한 문명이 이 문단에서 말했던 점들을 깨닫는다면, 최대한 시끄럽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역설적으로 문명의 생존에 더욱 유리할 수 있다. 이 문명은 최대한 요란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메시지 수신자에게 협박을 가하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듣는 것으로 너는 내 위치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메시지를 들은 건 너뿐만이 아니다. 만일 너희가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멸망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너희의 존재도 드러날 것이고 너희 또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멸망당하고야 말 것이다. 결국 너희가 살기 위해서는 우리를 가만 두어야 한다.“ [4]

설령 모든 문명보다 자신이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을 확신하는 문명이 있다고 쳐도 그렇다면 이 가설의 핵심인 '다른 문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침묵'은 그 문명에게 해당사항이 없으므로 그 문명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타 문명을 멸망시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지를 가져 꼭 타 문명에 대한 삭제를 진행하리라는 법이 없고, 오히려 우월한 힘을 바탕으로 타 문명들이 자신들을 감히 앞서지 못하도록 존재를 드러내 간섭하려 할 수도 있다.

3.2. 우주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인가?

어둠의 숲 가설에서는, "우주의 문명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다른 문명을 기꺼이 멸망시킨다."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상생을 포기하고 폭력을 거리낌 없이 쓸 정도로 배타적이고 미성숙한 문명이라면 상호확증파괴 등을 거쳐 이미 멸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어둠의 숲 가설이 외계인들을 너무나도 야만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는 것은 과학기술뿐만이 아니며, 서로 다른 개인, 단체, 문화권과의 상생을 꾀하는 문화외교술도 필연적으로 함께 발전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문명의 문화가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폭력의 사용을 더욱 꺼리고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우주 스케일의 문명을 이루고 유지할 만큼 발전된 외계 종족이라면 다른 종족들과의 상생과 교류를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했을 가능성이 높다. 수백만~수십억의 생명체가 살아가는 행성을 파괴하는 것은 매우 폭력적인 행위이므로, 고도로 문명화된 외계 종족은 이와 같은 학살에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어둠의 숲 가설은 '우주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는 가설을 기반으로 한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성악설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에 따르면, 성선설성악설은 모두 틀렸고 인간의 본성은 훨씬 복합적·입체적이며, 나아가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가설 자체도 자연 상태의 인간을 지나치게 야만적이고 단순한 존재로 그려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가설 자체가 인류 문명에 적용해도 이미 틀린 가설인데, 외계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야만적이고 악할 것이라는 가정은 그 자체로 오류일 수밖에 없다.

4. 기타

  • 류츠신의 소설 삼체의 2부 "어둠의 숲(한국 정식발매명 암흑의 숲)"이 이 이론의 이름을 따왔고 내용도 동일하다. 소설 속에서는 우주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것, 그리고 기술 폭발로 인해 다른 문명의 기술 수준이 단시간에 다른 문명을 위협할 만큼 발전할 수 있다는 두 가지를 덧붙이며 어둠의 숲 가설에 타당성을 부여했다. 그래서 작중에서는 우주는 실제로 어둠의 숲 가설과 같은 상태이며 지구의 인류 문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 스텔라리스의 선구자 종족 종 유트(Yuht)와 선택 가능 기원 중 "어둠에 대한 공포"(Fear of the Dark)가 이 가설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원 중 '어둠에 대한 공포'는 아예 어둠의 숲 가설에 따른 개별적인 스토리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 C. M. 코세멘(C. M. Kosemen)의 소설 All Tomorrows 역시 이 비극을 다루었다. 벌레를 연상케 하는 쿠(Qu) 문명은 이미 인류가 태동하기 이전부터 지구를 숱하게 방문하여 토착생물로 유전자 조작을 일삼았으나 인류는 이것을 가벼이 여겼고, 그 대가로 지렁이같은 수준의 유전조작 퇴화를 거쳐 멸망에 이른다.
  • 고전 SF 비디오게임인 프리스페이스에서는, 우주전쟁을 벌일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호전적인 문명이 있으면 갑자기 시반이란 대군이 나타나 전멸시켜버린다. 즉 프리스페이스에서는 대규모 우주전쟁을 벌이는 종족들은 반드시 시반한테 멸망당한다. 시반들은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이냐 같은 것을 따지는 게 아니라 종족의 호전성과 기술력만을 기준으로 멸망시키기 때문에, 게임에서도 지구인과 바수단이란 외계 종족이 전면전을 벌이던 중에 갑자기 등장한 시반 함대에게 사이좋게 쓸려나간다. 시반들은 일절 대화를 안 하기 때문에 왜 공격해오는 건지 물어볼 방법도 없으며, 엔딩에서 주인공이 하는 독백에서 “시반은 우주를 평등하게 만드는 존재(great equalizer)”라는 추측이 나온다. 즉 다른 문명을 공격해 압도할 만큼 특출나게 발전하고 공격적인 문명은 시반이 박살내서, 전 우주에 다양한 문명들이 싹틀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즉 어둠의 숲 가설에 대한 안티테제가 시반이다.

[1] 아이작 아서의 영상.[2] 쿠르츠게작트의 영상.[3] 우리는 은하 끝자락에 있어서 은하 중심에 있을지도 모르는 우주적인 문명들과 접촉하지 않아 안전한 것일 수도 있다.[4] 실제로 본 가설에 근거한 SF소설 삼체에서 작중 인물이 이 도박을 통해 인류와 삼체 외계문명간 평화협정을 이끌어낸다. 삼체문명과 인류가 1:1로 전면전을 벌이면 인류는 쪽도 못 쓰고 완패할 수밖에 없지만, 인류가 최후의 단말마로 삼체문명의 존재를 전우주에 퍼뜨려 불특정 제3세력에게 삼체의 본거지를 광고할 수 있다고 협박한다. 소설의 결말에서는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인물이 본인의 위치에서 내려오고, 공멸의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 같은 심약한 이가 그 위치를 얻게 되자 삼체문명이 인류를 공격해 멸망시키지만, 결국 삼체문명도 인류가 마지막으로 보낸 신호에 의해 존재가 노출되어 막강한 제3세력에게 사이 좋게 멸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