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20 05:50:33

에두아르두 카르발류


SC 브라가
Sporting Clube de Braga
파일:Eduardo_Carvalho_Profile_1.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에두아르두 ComM
Eduardo ComM[1]
본명 에두아르두 두스헤이스 카르발류[2]
Eduardo Dos Reis Carvalho
출생 1982년 9월 19일 ([age(1982-09-19)]세) /
포르투갈 미란델라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 체중 88kg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코치
소속 선수 SC 미랑델라 (1992~1996 / 유스)
비토리아 SC (1996~1997 / 유스)
SC 미랑델라 (1997~1998 / 유스)
SC 브라가 (1998~2001 / 유스)
SC 브라가 B (2001~2006)
SC 브라가 (2006~2010)
SC 베이라마르 (2007 / 임대)
비토리아 SC (2007~2008 /임대)
제노아 CFC (2010~2014)
SL 벤피카 (2011~2012 / 임대)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 (2012~2013 / 임대)
SC 브라가 (2013~2014 / 임대)
GNK 디나모 자그레브 (2014~2016)
첼시 FC (2016~2019)
SBV 피테서 (2018~2019 / 임대)
SC 브라가 (2019~2020)
지도자 SC 브라가 (2020~ ) / 골키퍼코치
국가대표 파일: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6경기 (포르투갈 / 2009~2016)

1. 소개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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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 현재는 SC 브라가의 골키퍼코치를 역임 중이다.

2. 클럽 경력

로컬 클럽 미랑델라의 유스팀에서 시작, 이후 SC 브라가 B팀에 포함되며 성인팀에 데뷔했다. 2007년 1월 SC 베이라마르에 임대되며 1군 무대에 데뷔했고, 그해 여름에 비토리아 SC로 임대이적, 07-08 시즌 맹활약하며 비토리아의 리그컵 우승을 이끌고 팀을 UEFA컵 무대에 올려놓았다.

08-09 시즌에 원소속팀인 브라가로 복귀해 리그 전경기 출장을 기록했으며, 브라가의 UEFA컵 16강 진출에도 공헌했다. 이어진 09-10 시즌에는 리그에서 단 20실점만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팀을 사상 최고순위인 2위까지 올려놓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고,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2010년 7월, 제노아 CFC로 이적하며 세리에 A 무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한시즌만에 SL 벤피카로 임대이적하며 포르투갈 무대에 돌아왔고, 이후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에 한시즌 임대된 뒤 13-14 시즌에 고향팀 SC 브라가로 한시즌 임대되었다.

2014년 6월 27일, 크로아티아GNK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했다.

2.1. 첼시 FC

2016년 8월 25일, 다소 갑작스럽게 첼시 FC로 이적했다. 지난 시즌 마르코 아멜리아와 같은 써드키퍼 역할일지, 혹은 아스미르 베고비치의 이탈에 대비한 백업키퍼 영입일지는 두고 봐야 했는데, 베고비치가 잔류하면서 써드키퍼 확정.

2017년 5월 23일, 첼시와 1년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아스미르 베고비치가 본머스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뜨면서 추가적인 영입이 없는 한 자말 블랙맨과 함께 세컨키퍼 자리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보이는 중. 그러나 윌리 카바예로가 영입되며 써드키퍼로 남을 듯 하다.

하지만 첼시 키퍼들이 너무 건강한탓에 한경기도 못뛰고있다

2017-18시즌이 끝나고 구단에서 발표한 재계약 대상자에서 제외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 프리미어리그 구단별 방출 명단

그러나 7월 1일이 지나고 첼시와 재계약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름 아닌 비테세로 임대를 간다는 것. 결국 1년 재계약[3] 후 비테세로 팀을 옮겼다. # 말 그대로 비테세 전력 강화 목적의 계약이다.

비테세 합류 후 꾸준히 주전으로 활약했다가 시즌 막판에는 주전에서 밀렸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 첼시와의 계약이 만료되었다. #

2019년 7월 SC 브라가에 복귀하였다.

2.2. SC 브라가

2021년부터는 골키퍼 코치로써 브라가에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다.

3. 국가대표 경력

유로 2008 이후 국대에 소집되기 시작하다가, 2009년 2월 핀란드와의 친선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루었다. 이후 월드컵 예선 전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포르투갈의 주전 골키퍼로 기용되었으며, 조별리그 3경기 모두 클린시트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6강에서는 무적함대 스페인을 상대했는데, 비록 경기는 다비드 비야의 결승골로 아쉽게 0-1로 패배했으나 에두아르두는 스페인의 맹공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선방쇼를 펼침으로써 본인의 이름을 축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후 소속팀에서 부진에 빠지며 벤치로 밀려나는 어려움을 겪고 후이 파트리시우라는 걸출한 골리의 성장으로 국대에서도 벤치로 밀려났다. 하지만 엔트리에는 꾸준히 뽑히며 유로 2012브라질 월드컵 최종명단에도 들었으며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선발 출전했던 골키퍼 베투(1982)가 부상으로 실려 나가자 파트리시우가 출전하리란 해설진들의 예상을 뒤엎고 투입되어 한경기 뛰기도 했다.[4]

유로 2016에서도 후보 골키퍼로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팀의 우승이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4. 여담

  • 첼시에 입단할 당시 등번호 30번을 받았다가, 나중에 37번으로 변경되었다. 이유는 이적시장 마지막날 다시 돌아온 연어 다비드 루이스가 등번호 30번을 가져갔기 때문. 여기서 에두아르두가 등번호를 변경할 당시 이미 다비드 루이스의 첼시리턴이 어느정도 기정사실화 되어있던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1] UEFA 유로 2016 수훈, 포르투갈 공화국 공로장 3등급 사령관장 Ordem do Mérito Comendador[2]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3] 옵션으로 1년 연장 가능[4] 주전으로 낙점된 후이 파트리시우가 월드컵 첫 경기인 독일전을 제대로 말아먹어서 파트리시우는 나가리되고 베투가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찼다. 즉 에두아르두는 경기 출전하기도 힘든 3순위 골키퍼. 그래도 용케 한경기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