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30 15:27:03

오시비엥침

오시비엥침
폴란드어: Oświęcim
독일어: Auschwitz
<colbgcolor=#DC143C> 국가
[[폴란드|]][[틀:국기|]][[틀:국기|]]
행정구역 마워폴스키에
면적 30.3km²
인구 34,170명[1]
시간대 UTC+01:00 (GMT)[서머타임]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자매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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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도시. 악명높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가 있었던 곳이다.

2. 역사

폴란드의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크라쿠프보헤미아, 실롱스크를 잇는 길목으로 발전했고 유대인도 정착했다.

1241년, 몽골 제국폴란드 왕국을 침공할 때 몽골군에게 약탈당했고 이후 재건되었다.

대홍수 때는 스웨덴군에게 점령되지 않은 지역 중 하나였으며 폴란드 분할 때는 오스트리아령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에 귀속되었다. 이후 폴란드가 독립하자 폴란드에 돌아왔다.

1939년 10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한 지 한 달만에 독일 국방군이 도시를 점령했다. 당시 거주 중이던 유대인 수천 명은 이후 수용소로 끌려갔다.

1941년, 이게파르벤의 화학공장이 도시 동부에 건설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가 건설되어 도시가 유대인들을 강제노동시킬 수 있는 지역으로 변모해갔다. 또한, 오시비엥침 주위에 위치한 8개의 마을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약 17,000명이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1945년 1월 27일, 소련군공세로 인해 나치 독일이 밀려나면서 해방되었다. 소련은 유대인 수용소의 일부를 독일군 포로 수용소로 개조해 운영했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5년까지,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1946년까지 운영했었다. 소련 및 폴란드에 의해 나치 수용소장이던 루돌프 회스의 사형이 집행된 곳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

현대에는 크라쿠프의 위성도시 역할이며[3],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다. 이후 2006년 5월 28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방문했다.

3. 자매 도시


[1] 2022년 12월 31일 기준.[서머타임] [3] 버스로 1시간 걸린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광할 때 크라쿠프에서 이곳을 찍고 오는 경우가 많다. 사실 가깝기는 카토비체 쪽이 조금 가까워서 이쪽으로도 오긴 하는데, 카토비체는 관광 목적으로 오래 머물만한 곳은 아니라 크라쿠프 쪽 수요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