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오혜령 吳蕙齡 | Oh Hye Ryong | |
출생 | 1941년 6월 27일 ([age(1941-06-27)]세) |
경기도 경성부 서교정 (現 서울특별시 서교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해주 오씨 |
신체 | 150cm, 45kg, O형 |
학력 | 서울혜화초등학교 (졸업) 이화여자중학교 (졸업)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 / 학사) |
종교 | 개신교 |
직업 | 극작가 |
소속 | 평화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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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력
데뷔 :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흘러간 목신』 입선(1964)1965-1972 이화여고 영어교사 역임
1965-1978 TBC/MBC/KBS/DBS 라디오 및 TV 프로그램 진행, 제7대 별밤지기
1968 <미평화봉사단 언어교육단> 부단장으로 도미
1976 <세계언론인작가대회> 사무총장으로 피선
1983-2013 <평화의 집> 원장
1990-현재 <평화교회> 전도사
1993-2006 <평화영성수련원> 원장
2006-현재 <오아시스아카데미수련원> 원장수상 :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흘러간 목신』 입선(1964)
경향신문 신춘문예 희곡 『성야』 입선(1965)
『인간적인 진실로 인간적인』(1967)으로 수상
-한국일보 연극영화예술상
-동아일보 연극대상(1968)
-현대문학신인문학상(1968)
희곡집 『나는 누구입니까』(1990)로 수상
- 한국희곡문학상-
유집상 전도부문 금상(1993)
자랑스러운 연세영문인상(2008)
올빛상(2010)
영성시개척상(2016)
방송 :
KBS 라디오 재치문답, 영화음악
DBS 라디오 라디오 에세이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사랑의 야화, 젊음의 찬가, 젊음은 가슴마다, 세계의 명곡 KBS TV 재치문답, 명사탐방
TBC TV 딸과 함께
음반 : 영시낭송집 <별이여 나 또한 너처럼>(1976)
2. 저서
번역서 제외 총104권째 발간(세계적으로 세기적인 위업)희곡집
인간적인 진실로 인간적인(1973)
나는 누구입니까(1989)
서간집
꿈빛깔의 그대 목소리(1977)
고백록
일어나 비추어라(1980)
‘起きよ,光を放て’(일어나 비추어라 일본어번역판,1988)
묵상록 사랑하는 나의 님 보셨나요(1981)
수필집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1977)
내 삶의 저녁은 그대 햇살에(1983)
그대 발 밑에 내 꿈을 깔았느니(1984)
사랑은 홀로 넉넉한 빛이어라(1985)
벗으면 벗으리라(1986)
내 마음에 한 노래 있어(1987)
내 손을 네 가슴에(1988)
사랑하며 죽으리라(1989)
이 사랑이 타오르기까지(1990)
바람이 불면 나는 울고 싶다(1991)
지금은 우리 마주보아야 할 시간(1992)
날이 밝자 꺼버린 등불을 왜 생각하나(1998)
수필선집
영혼의 아픔을 겪는 그대를 위하여(1983)
지금 여기서 사랑하리라(1983)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1989)
묵상기도집
<오혜령매일묵상기도집(전4권, 1998)>
1권(1-3월) 제가 당신 앞에 없었나이다2권(4-6월)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
3권(7-9월) 제 고요와 당신 침묵이 만나
4권(10-12월) 마침내 별 하나를 보게 해 주소서
<오혜령영성묵상기도집(2003)>
강여울 풀씨처럼(전12권)
1월 – 첫사랑을 되찾고파
2월 – 사과 한 입 베물다가
3월 – 아름다움은 빛날 뿐
4월 – 꽃들도 눈물 흘려요
5월 – 터질 듯한 꽃망울처럼
6월 – 그리움 다섯, 그리움 일곱
7월 – 이별은 더 큰 만남으로
8월 – 그리움의 속살끼리
9월 – 사랑의 화살은 아직도
10월 – 마르지 않는 눈물항아리
11월 – 첫사랑 고백을 듣던 그 날처럼
12월 – 그대여, 정녕 오시렵니까<오혜령매일영성묵상기도집(전12권, 2016)>
1월 – 표징과 실재의 숨바꼭질
2월 – 만남의 표지, 사랑의 상처
3월 – 구원의 열망의 표상, 목마름
4월 – 당신 얼굴의 햇살에 볼을 비비며
5월 -- ‘이미’와 ‘아직’이 ‘오늘’이리니
6월 – 물러섬으로서의 축제
7월 – 서로 통하여 서로 대신
8월 – 모든 사람의 모든 것
9월 – 하나님의 영토를 엿볼 수 있는 안경
10월 – 확실한 것 하나가 무엇이뇨
11월 – 밤이 인도하는 동행현존
12월 – 하룻밤을 들르러 온 길손처럼
수상록
<오혜령 수상록>
한 모금의 물 1(2017) 한 모금의 물 2(2017)
한 모금의 물 3(2017)
한 모금의 물 4(2017)
한 모금의 물 5(2018) 영성시집
<오혜령365일영성시집(전12권, 2009)>
1월 – 침묵의 강에 띄워놓고
2월 – 물방울 하나 온 하늘 덮고 있어
3월 – 바람 머물다 간 자리
4월 – 다녀 왔습니다
5월 – 머금고 머금어야
6월 – 아침이 말 걸어와
7월 – 산새들의 마음 아노라
8월 – 덤부렁 듬쑥
9월 – 너를 너로 듣는 나
10월 – 한 목소리 나의 영혼 휘감을
11월 – 고독할 자유도 없는 저녁 한때
12월 – 흐르면서도 영원하네
<오혜령봉헌시집(2009)>
1. 영혼의 뒤란, 영혼의 앞뜨락
2. 나를 꾀어낸 그 곳 호젓한
<오혜령사랑시집(2009)>
1. 나 바다 너 바다 위 달<오혜령365일영성시집 영문판(2014)>
A Collection of Thirty-three Spiritual Poems
The Night Sky, the Silver River
<오혜령연작영성시집>
1. 한 점 사랑바람(2014)
2. 안을까 안길까(2014)
3. 그림자의 춤(2014)
4. 그 무한고독, 사랑의 숲(2016)
5. 아침의 명멸(明滅) (2016)
6. 잊을 수 없네, 그 작은 하늘(2017)
7. 구름 하나 우리의 길동무(2018)
8. 꽃방망이 흔들며(2018)
9. 사랑이 돌리는 수레바퀴(2018)
10. 온 우주가 문 쾅 닫은 듯(2018)
11. 바다야, 내 인생 뱃전에(2018)
12. 산을 떠안은 채(2018)
13. 저무는 것은 없다오(2018)
14. 우주가 분다, 휘파람을(2019)
15. 고향에 가 본 날(2019)
16. 고독에서 사랑으로 뛰어든 이야기(2019)
17. 어떤 하얗디하얀 날(2020)
18. 별빛에 길을 묻노니(2020)
19. 분홍이 흑백을 말하다(2020)
20. 초록 잎새들 사이로(2020)
21. 기쁨이 날 업고 휘리릭(2021)
22. 눈물에 비친 그리움 하나(2021)
23. 계수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2021)
24. 시간 안의 여로(2022)
25. 지금이라면(2022)
26. 있지 않은 나 안에 있는 당신(2022)
27. 여기 내 앞에는 거기도(2022)
28. 나를 벗어나 나에게로(2023)
29. 몸만 있고 마음은 떠나고(2023)
30. 초록이 풀어놓은 하양(2023)
31. 보이는 길만 걸은 적 없구나(2023)
32. 그럼에도 희망의 문을(2024)
33. 봄에 떠나는 겨울나들이(2024)
34. 저 새들의 소리는 어디에서 왔는가(2024)
35. 나는 아직 아침을 떠나지 않았다(2024)
3. 일생
1) 천재의 탄생, 고통의 시작
1941년 6월 27일 서울 서교동에서 출생한 오혜령 극작가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급성폐렴으로 죽어서 유리관 속에 사흘 동안 있다가 기적적으로 소생한 사건부터 시작해서 홍역, 말라리아, 하반신마비, 방광염, 관절염, 신우신염, 신장염, 맹장염, 만성위염, 악성위궤양, 편도선염, 관상대동맥경련증, 심근경색, 갑상선기능항진(갑상선기능저하증), 위암, 십이지장암, 림프암, 천장관절염, 척추측만증(후만증), 자율신경실조증, 폐결핵, 미주신경실신증, 폐쇄성기관지염, 백내장, 만성치주염, 턱관절장애, 악성저혈압, 통풍관절염, 경동맥협착증, 과민성대장염, 기관지협착증, 혈전 및 혈관장애, 역류성식도염, 점액낭염, 역류성인후두염, 흉추압박골절, 협심증, 혈소판수치감소증, 늑골골절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큰 질환들로 말미암아 단 하루도 육체적 건강을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타고나 영아시절부터 접속사와 부사를 사용해 능숙하게 문장을 구사하는 연금술적 언어재능을 보였으며 이화여자고등학교 시절 실시한 IQ 검사에서 178이라는 엄청난 결과가 나와 요주의학생으로 지목되고 거의 매일 상담실로 불려가곤 했다.
2)고난의 청소년기
10살에 한국 전쟁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이후 계모에게 미움을 사서 몹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느라 약한 몸에 병을 더 많이 얻었다. 의학교과서에 예외적으로 실리는, 마취가 되지 않는 체질 때문에 생배를 자르고 급성맹장염수술을 받고, 전신마취로 수술하고도 수술후 지옥을 맛본다는 편도선절제수술도 무마취로 받는 고난을 겪었다.
이런 소용돌이 중에도 이화여고 학보사인 「거울지」의 기자활동, 4.19항쟁 참여, 수련수녀 11개월 등으로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건강상 학교를 제대로 출석하지 못하고 입퇴원을 반복하며 고3 막바지 1주일간 동생이 밑줄 쳐 놓은 참고서로 열공한 결과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3)찬란한 청년기
1965년 연세대학교 전체수석 졸업후 활발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탓에 방송가의 러브콜이 쇄도해 라디오와 tv의 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집필활동도 왕성하게 해서 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모교인 이화여자고등학교의 영어교사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평화봉사단언어교육단> 부단장을 맡아 미국인들에게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멕시코에서 <세계언론인작가대회> 사무총장으로 피선돼서 국위를 선양했다.
4)거룩한 장년기
1978년 위암, 십이지장암, 림프암 3대 암을 선고받으며 화려했던 사회생활을 중단하고 투병기에 들어갔다. 암세포가 발견됐을 때 이미 말기였기 때문에 방사선치료와 약물투여를 포기하고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며 복수가 차올라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에 도달했을 때 임사체험을 통해서 암세포가 떨어져나가는 자연치유의 특혜를 받았다. 신앙체험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치유광선을 쏴 주셔서 새 생명을 돌려받는 삶의 극적 전환기를 맞는다.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투병일지를 바탕으로 출간된 고백록 「일어나 비추어라」가 베스트셀러가 되고(이 책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자서전에서 직접 언급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에서 읽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동명의 연극이 상연되는 등 큰 화제가 됐다.
천성적으로 영성적이었던 오 작가는 덤으로 얻은 삶을 사회복지에 투신하기로 결단하고 무의탁노인복지시설 「평화의 집」을 사비로 개원해 일체의 정부지원 없이 운영하며 자기증여적 헌신을 꾀했다. 이 시기에 극심한 관상대동맥경련증으로 하루에도 수 차례 혼절해가면서도 매일 세 끼니를 손수 준비해서 노인들을 섬기며 한글과 영어, 성경 공부까지 시켰다. 이후 대상을 결손가정 청소년으로 확대하며 알고 믿는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고 심한 주방일로 말미암아 손가락 발가락까지 극심한 류마티스 관절염과 통풍관절염을 얻었다.
5)득도의 노년기
「평화의 집」의 노인들이 모두 소천하고 결손가정 청소년들이 독립한 후, 「평화영성수련원」을 통해 목회자 영성수련을 시작했다. 3대암의 치유기적체험 이후 매일 평균 7시간 이상의 기도와 1,300여회에 이르는 성경통독, 관상체험 및 갖가지 영성신비체험을 통해서 현세를 아득히 초월한 경지에 도달했다. 타고난 기본 소양과 의지적 노력과 하나님의 주입덕이 베푼 은사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완덕으로 오르는 큰 승리를 일궈냈다.
현재 「평화교회」와 「오아시스아카데미수련원」을 통해 영성제자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4. 가문
1) 아버지 고 오화섭 교수해방 이후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이며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학자요 번역가. 인천 출생으로 1935년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서 1940년에 졸업하고, 1941년 이 대학의 대학원을 수료했다.
고려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영미문학 가운데 특히 희곡을 많이 번역할 뿐만 아니라 그는 원문의 연극적 취향을 살리면서 한국어로 무대상연에 적합한 산문문체를 구사해서 희곡번역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결과 제3회 한국 번역문학상을 수상했다.
2) 어머니 고 박노경 교수
고 오화섭 교수와 와세다대학교 영문학과의 동기동창으로, 캠퍼스 커플로 결혼함. 청주시 출신. 여인소극장의 대표로, 수많은 번역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연출가라기보다 CEO로 알려져 있다. 여담이지만 무성영화에서 자막이 있는 영화로 바뀔 즈음, 「어화」의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문리대학장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때 아깝게도 49세의 나이에 귀천했다.
3) 남동생 오세철 전 연세대학교 교수
맑스주의를 연구한 대한민국의 학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직행동, 사회심리학, 사회학 분야의 공부를 한 뒤 1975년에 조직행동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전임교수로 재직하다가 2013년에 퇴임하고, 이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현상과인식」이라는 잡지를 펴냈으며 「사회심리학」, 「한국사회변동과 조직」 등의 강의를 하며 아직도 건강하게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