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7-28 01:50:43

윤급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尹汲
1697년 ~ 1770년 (향년 73세)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각종 요직을 두루 거쳐 좌참찬에 이른다.

고전에 해박하고 글씨 또한 아름다워 영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너무 강직하여 탕평책이라는 당시 시대 정신과는 맞지 않다보니 정승의 반열에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자는 경유(景孺), 호는 근암(近庵), 본관은 해평(海平).
오음공파(梧陰公派) 중시조 윤두수의 5대손이자 장주공파(長洲公派) 중시조 윤휘의 4대손으로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윤세수이다.

2. 생애

172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해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하지만 이때 시권의 비봉[1]에 나이와 본관을 쓰지 않아 격식 위배로 탈락하였으나, 헌납 채응복의 상소로 구제되었다.

영조의 탕평책을 계속 반대하여 자주 파직, 좌천되었으나 의로운 주장이 많아서 곧 서용되곤 하였다.

사도세자임오화변 때 마침 형조판서로서 당시 영의정 김상로, 병조판서 홍계희, 정순왕후(조선 영조)의 부친 오흥부원군 김한구와 함께 벽파를 형성했다. 당색은 노론으로 김한구 등의 남인과 결합해 영조 재위 말까지 정국을 주도했다.

3. 여담

  • 보물 제1496호로 그의 초상이 전해지는데, 변상벽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 글씨가 뛰어나 윤상서체(尹尙書體)란 독특한 서체를 이루었다.
  • 부리던 하인 중 임오화변의 고변자 나경언이 있다.
  • 영조보다 빨리 세상을 떠나 정조 등극 이후 있을지 모를 정치 보복으로부터는 벗어나 있었다.

[1] 祕封: 시험지 끝에 응시자 본인의 관직·이름·본관·거주지 및 부·조·증조의 관직 이름, 외조의 관직 이름과 본관 등을 다섯 줄로 쓴 뒤, 관원들이 응시자의 이름을 알아볼 수 없도록 그 위를 종이로 붙여 봉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