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20:27:43

의사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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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의사상자 선정 및 예우
2.1. 의사자 선정 및 예우에 관한 현 제도의 문제점2.2. 기타
3. 목록
3.1. 의사자3.2. 의상자

1. 개요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② "의사자(義死者)"란 직무 외의 행위로서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의상자가 그 부상으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를 포함한다)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이 법에 따라 의사자로 인정한 사람을 말한다.
③ "의상자(義傷者)"란 직무 외의 행위로서 구조행위를 하다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신체상의 부상을 입어 보건복지부장관이 이 법에 따라 의상자로 인정한 사람을 말한다.
④ "의사상자"란 의사자 및 의상자를 말한다.

義死傷者 / Killed or Wounded for a Righteous Cause[1]

직무 외의 행위로서 타인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을 말한다.[2] 재난 현장에서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호하다가 사망한 경우,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의 피해를 막거나 가해자를 체포하려다가 사망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한 부상을 입은 경우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이들의 예우 및 지원의 방법에 대해 정하고 있다.

2. 의사상자 선정 및 예우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의사자(義死者)란 직무 외의 행위로서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의상자가 그 부상으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를 포함한다)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이 법에 따라 의사자로 인정한 사람을 말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의사자 선정을 위해서는 의사상자심사위원회에 신청자(유족)이 선정 신청을 하거나,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직권으로 선정신청을 하여야 하고, 위원회는 선정 여부를 60일 내에 심의하여 결정한다. 의사자로 선정된 경우 의사자 유족에게 의사자 증서가 지급 되고, 훈장 등의 영전이 추서될 수 있다. 고인의 유족의 경우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 의료급여, 교육보호, 취업보호 등 예우가 주어진다. 국립묘지기본법이 개정됨에 따라 2007년부터 의사자는 국립현충원에 안장·이장이 가능하다. 이 경우 국립대전현충원에만 안장이 가능한데, 의사자 묘역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의상자(義傷者)로 선정되면 영주허가를 받는다. 대상자가 불법체류자였을 경우에도 예외 없이 해당 죄를 사면받고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혜택 외에도, 일부 민간단체에서도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KBO포스트시즌한국시리즈 티켓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2.1. 의사자 선정 및 예우에 관한 현 제도의 문제점

  • 우선 의사자 선정은 일반인의 청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의사자의 유족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보건복지부에 신청을 해야 가능하다. 이는 의사자의 희생으로 인한 아픔이 있는 의사자 유족이 꼭 신청하고, 자료를 수집해야만 인정해주겠다는 태도는 유족의 아픔을 고려하지 못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 앞의 정의규정에서 보듯이 의사자는 직무 외의 행위를 해야만 인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직무 중 순직한 경찰관, 소방관 등은 법률상 의사자가 아니다. 물론 순직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국가유공자법 등으로 예우를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이 직무 중에 타인을 구호하다가 사망한 경우 의사자로 인정되기 매우 어려워진다. 아래의 사례 중 박지영 승무원이 이 때문에 법적으로 의사자로 인정될 수 있는지 논란이 있다. 박지영 승무원의 숭고한 희생은 물론 예우받아 마땅하지만, 선박 승무원의 승객 구조의무는 직무상 의무이기도 하기 때문.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박지영 승무원은 비정규직으로 선원 구호가 구체적인 의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렇게 본다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대부분의 선원들이 비정규직인 것이 현실인데, 승객 구조 의무를 규정한 선원법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같은 승무원인데도 탈출 승무원들을 처벌할때는 승객의무 규정을 적용해 처벌하고 박지영 승무원의 의사자 인정을 할때는 승객보호 의무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모순이 생긴다. 물론 선원의 처벌 문제와 박지영 승무원의 희생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의사자 인정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결국은 인정을 해 준 모양이다. 기사
  • 또한 예산상의 이유 등으로 심사위원회가 의사자 인정에 많이 인색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사
  • 또한 의사자 선정시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은 상한이 정해져 있고 그 사망으로 인한 보상금은 중복지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현행법상 의사자 보상금의 보상 한도는 2억원 남짓이 되는데, 만일 의사자의 사망으로 보험금, 배상금, 심지어 국민 성금 등이라도 받게 되면, 그 받은 금액은 그 보상한도에서 모두 차감된다. 힘들게 의사자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사실상 유족에게 별 보상이 되지 않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것. 실제로 천안함 피격 사건에서의 금양호 선원들은 의사자 인정을 받았음에도 국민 성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을 거부당한 사례가 있다.
  • 장애인이나 국가유공자와 달리 전기, 수도, 도시가스, 전화요금이나 고속도로 통행료,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요금, 박물관, 미술관 등 공공시설 이용료 할인혜택이 없는게 흠이다.

2.2. 기타

개를 구하다가 다친 것은 의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뉴스 겸 판례가 있다. 한밤 도로서 강아지 구하려다 다리 잃었다…'의상자' 인정될까

3. 목록

창작물 속의 의사상자 사례가 아닌 실존인물 사례만 적으며, 명단 추가 시에는 짧은 설명을 추가합니다.

3.1. 의사자

의사자 추모관
  • 채종민 - 2007년에 대전 국립현충원에 의사자 묘역이 첫 조성되면서 최초로 안장된 1호 인물. 2006년 7월, 당시 35세였던 채씨는 전남 진도군 서망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던 도중 파도에 휩쓸려 가는 9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구조됐지만 그는 조류에 밀려 떠내려갔고 수색 1시간 만에 해수욕장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위급한 상황에서 생면부지인 아이의 생명을 구하려다 희생된 공로를 인정받아서 2015년 5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심경철 - 2001년 1월 15일 오전 10시경 경상남도 거제군 남여도 부근 바다를 항해하던 중 유조선의 선수중앙부에서 원인을 알수 없는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여성 실습생 2명이 위험에 빠지자 자신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구명기구를 던져 구하고 자신은 숨졌다. 2017년 12월에는 12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되었다.
  • 전재규 - 남극 세종 과학기지에서 한국해양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3년 12월 8일에 기상악화로 귀환하지 못한 3명의 팀원 동료들을 구하기 위하여 출항 하였다가 보트가 전복되어 사망하였다. 2007년 11월 국립대전현충원에 의사자로 안장되었고 국민훈장 석류장이 추서되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2016년 12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되었고 그가 사망했던 지점에 있는 해저화산이 '전재규 화산'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 김신 -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94학번에 입학하여 군에서 제대한 후 복학하여 3학년에 재학중인 2000년 7월 30일에 고향인 전라남도 영암의 월출산 저수지에서 중학생 2명이 물에 빠져 생사의 갈림길에 선 광경을 목격하고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김씨는 살신성인을 통해 2명의 생명을 구한 뒤 숨졌다. 사후 같은해 12월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의사자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 대전 현충원에 의사자 묘역이 첫 조성될 당시에 최초로 묻힌 7인중 한명이 되었다. 당시 고인의 장례를 학생장으로 치렀던 전남대는 2020년에 전남대 민주길 조성사업 과정에서 세운 추모의 벽에 고인을 의인으로서 전남대를 빛낸 인물로 등재했다. 그후 사망한지 무려 24년만에 전남대는 2024년 8월 26일 하계 졸업식에서 그에게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하기도 했다.
  • 송영희 - 2008년 1월 3일 여고동창생의 아이들이 충북 단양강변 얼어붙은 강가에서 놀던 중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자, 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으나 결국 아이들과 함께 향년 40세로 사망하였다. 그후 2007년부터 새롭게 대전 국립현충원에 의사자들의 묘역이 조성되게 되면서 여성 최초로 의사자 묘역으로 안장이 되었는데 이로 인해서 여성으로써는 처음으로 묻힌 최초의 여성 의사상자로 기록되게 되었다.[3]
  • 도현우 - 2008년 1월 9일 경북 칠곡군 왜관읍 신협에 침입한 은행 강도가 동료 여직원을 흉기로 위협하자, 이를 저지하던 중 흉기에 찔려서 31세로 사망하였다.
  • 이용안 - 2007년 4월 22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방파제 내측 해상에서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진 이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동반으로 익수가 되어서 54세로 사망했다.
  • 이종현 - 당시 17세로 2008년 8월 2일 강원도 한섬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높은 너울성 파도에 휩쓸린 이를 구조하기 위해 튜브를 던지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되고 이후 한섬해변 앞 해상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 정요한 - 2009년 12월 17일에 말레이시아 밀림의 원주민 마을로 해외 자원봉사 활동을 떠났다가 이듬해인 2010년 1월 2일에 바닷물에 빠진 관광객을 구하다가 숨졌다. 사고 당일 자원봉사단원들과 함께 해변을 산책하다 예상치 못한 강한 파도에 한국여성 3명이 휩쓸리자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여성들은 구조했으나 정작 본인은 24세라는 나이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 금나래, 황지영 - 2009년 8월 9일 오전 4시경 친구들과 함께 피서를 마치고 충청남도 서천군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에서 목포 방향을 향해 달리던 도중 승용차 한 대가 가드레일과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대형 교통사고 현장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급히 자신들이 타고 있던 차를 갓길에 세우고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차도 1차선에 있던 사고차량 옆에서 핸드폰의 불빛에 의존하여 수신호를 하면서 보험회사에 연락하는 등의 사고처리를 돕는 구조작업에 매달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들을 보지 못하고 뒤에서 달려오던 카렌스 차량이 두사람을 덮쳐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 당시 23세와 24세였으며 사망후에 전라북도 김제시 최초로 의사자로 선정되었고 2010년 12월 22일에 제 3회 시민영웅 시상식에서 2010년 올해의 시민 영웅상을 추서받았다.
  • 김충식 - 2005년, 호주의 한 해변에서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진 원광대학교 어학연수생을 구하러 물에 뛰어들었다가, 연수생은 구했지만 대신 숨지고 말았다.
  • 김다예, 김민화, 이진희 - 울산광역시 중구 내황초등학교 4학년(1993년생)에 다니던 이들은 2003년 7월 19일, 울산 태화강에서 물놀이를 하던 도중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같은 학교의 2학년(1995년생) 후배 어린이를 구하려다 대신 숨지고 말았다. 2006년 5월 19일 정부로부터 의사자로 선정되었고 모교인 내황초교에서는 제 85회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추모비를 건립하고 울산 의사자 3 어린이 (또는 세 의사 어린이)로 호칭하여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렸다. 2007년 2월 14일에는 이들이 다닌 내황초 제 16회 졸업식 때 명예졸업장이 수여되기도 했다.
  • 박은혜 - 1977년생으로 1987년 7월 19일,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現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미호천 내 골재 채취장에서 웅덩이 물에 빠진 어린이를 손을 잡아서 구하고 자신은 물속에 빨려들어가는 바람에 11세의 나이로 숨졌다. 1999년에 의사자로 지정 되었으며 바로 아래의 변지찬 군 이전의 최연소 의사자였다.
  • 변지찬 - 1998년생. 2005년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 송학리 검암천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먼저 물에 빠졌던 친구를 구하려다 같이 숨졌다. 당시 친구가 무려 2m 깊이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이를 본 변군이 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망설이지 않고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어 구하려다가 물에 빠져 안타깝게 8세라는 어린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2008년에 안장 되었으며 20[age(2000-01-01)]년 기준으로 최연소 의사자이다.
  • 최성규 - 1964년 12월 23일 서울 출생이며 1996년 8월 10일 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한 여대생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고 여대생을 구해주러 달려갔다가 위기상황에서 가해자인 성폭력범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4] 1998년에 지하철 2호선 성수역 부근의 3번 출구에 그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 이경민 - 2000년 7월 14일에 발생한 일명 부산 부일외고 수학여행 참사로 불리는 사건인 추풍령 경부고속도로 연쇄추돌 참사 당시 독일어과 1학년이었으며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사고가 발생하자 잠든 친구들을 깨워서 이미 부서진 버스 유리창의 틈 사이로 5∼6명의 친구들을 밀쳐내다가 발과 다리에 불이 옮아 붙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불길에 휩싸인 버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나머지 12명의 친구들과 함께 안타깝게 숨지고 말았다. 사망 이후인 7월 17일에 보건복지부에 의해서 이군을 의사자로 결정 하였으며 같은해 2000년 11월 25일에는 한국 중등교장 협의회와 한국 청소년 자원봉사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인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대회의 스폰서인 푸르덴셜 생명보험이 제정한 중고생 자원봉사 대상에서 특별상이 수여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해당 사고의 1주기 추모식때는 부산 연제구 연산9동에 위치한 정수사에서 아래의 의사자인 이수현 씨의 부모가 찾아와서 같이 자식을 잃은 슬픔을 나누기도 했다.[5]
  • 김지연 - 2003년 8월 24일 새벽 3시 30분 경기 시흥시 신천동의 한 놀이터에서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인 웬뚜안뚜(24)와 레휘황(29)이 귀가하던 여고생을 성폭행 하는 것을 보고 이를 제지하려다가 김 군은 웬뚜안뚜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인천 길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김지연 군 살인 사건 참조.
  • 김종수 - 2007년 8월 30일 전남 여수시 해안가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썰물에서 휩쓸려 급류에 휘말린 네 명의 아이를 구조하고서 43세로 사망했다.
  • 김인성 - 2007년 11월 17일 충남 태안군 고남면 바람아래 해수욕장 바다에 입수해 해루질을 하던 도중 조류에 밀려서 떠내려가던 이를 구조하다가 64세로 사망했다.
  • 백준호 - 2004년 5월 18일 에베레스트 원정대에서 박무택 등반대장과 장민 대원 두 사람이 에베레스트 정상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던 중 장민이 실종되고, 박무택이 설맹으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베이스캠프에서 무전을 통해 알게 된후 다음 날인 5월 19일 셰르파 한 명과 함께 박무택을 구조하러 가지만, 박무택은 동상이 심하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여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결국 셰르파는 먼저 하산하고 그는 박무택의 곁을 지키다가 홀로 하산했지만, 그 마저 하산 도중 실종되었고 외국인 산악팀에 의해 시신이 발견되었다. 2005년 대한민국 최초 산악 의사자선정되었다. 영화 히말라야의 박정복 역의 모티브가 되었다. 2016년 모교(중·고등학교)에 동상이 세워졌다.
  • 송혜근 - 2004년 7월 16일 오후 1시께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 관동마을 뒷산 웅덩이에서 익사 직전의 친구 2명을 구하고 자신은 물에 빠져 숨졌다. 12월 10일 의사자로 선정되었다.
  • 조대형 - 자율방범대원으로 일하던 조씨는 2006년 5월 8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現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에서 고장 차량을 갓길로 옮기던 도중 뒤따라오던 트럭에 치여 숨졌다.
  • 이용상, 허석희, 정봉조, 안상철, 김재후, 박연주, 람방 누르카효, 김종평, 하레파 유스푸 -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후 민간 어선인 금양호를 몰고 천안함 희생자 구조에 힘쓰다가, 선박이 충돌하여 침몰하게 되어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람방 누르카효와 김종평의 두명만 시신이 발견되었고 나머지 7명은 아예 찾지못하고 말았다.
  • 올즈보이 오강거[6], 다와[7](국적:
    [[몽골|]][[틀:국기|]][[틀:국기|]]) - 처제와 조카 사이로 당시 18세와 32세 였으며 몽골인인 이들은 경기도 광주시에서 2011년 7월 집중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이웃집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배수구를 막고있는 장판을 제거하는 정비작업을 하다가 두 사람이 장판을 들어올리는 순간 고였던 물의 급류가 한꺼번에 불어나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면서 휩쓸려 숨졌다. 이들의 시신은 각각 1㎞와 3㎞ 떨어진 하천에서 상처투성이의 익사체로 발견됐다.당시 세계일보 기사
  • 오판석, 박창섭 - 2012년 인천 페인트원료 창고 화재 때 추가 피해를 막으려다가 숨졌다.
  • 강신일 - 2013년 1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소재 감귤 공장에서 동료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구조하기 위해 감귤찌꺼기 저장 창고로 들어갔으나 남아 있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 양성호 -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에서 붕괴 후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왔음에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사고 현장으로 다시 뛰어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 박지영, 정현선, 김기웅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승무원이었던 이들은 다른 선박직 승무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상황에서 학생 등 승객들의 구호에 끝까지 힘쓰다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해 숨졌다.
  • 양대홍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사무장이었던 그는 본연의 업무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의사자로 선정이 안되었었으나, 2015년 6월 18일 보건복지부 제2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에서 의사자로 선정되었다.
  • 제진수 - 이집트 현지 여행사의 사장[8] 이자 가이드였으며 2014년 2월 16일에 성지순례를 갔던 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들이 탄 버스가 괴한에게 폭탄 테러를 당하여 발생한 이집트 시나이 반도 버스 폭탄테러 사건 당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살신성인 하여 승객들을 구하고 피해를 최소화 하였으나 끝내 폭사하고 말았다.
  • 안치범 - 2016년 9월 9일 새벽 4시경, 서울특별시 마포구의 원룸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고 이를 목격한 안 씨가 불길 속을 뛰어 들어가 모든 원룸의 초인종을 누르고 전원 대피시켰으며 안 씨는 연기에 질식해 9월 20일 숨졌다. [9]
  • 박권병 경장, 김형욱 경위 - 2016년 11월 8일에 강원도 삼척 촛대바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써 두 사람은 몸을 사리지 않고 물에 뛰어들어서 익수자 및 고립자를 구조하던 도중 박권병 경장은 끝내 순직 하였으며 김형욱 경위는 실종되었지만 사고발생 3일뒤인 11월 11일 차가운 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고 말았다.
  • 최원욱 - 1982년 1월 31일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25살이던 2007년 7월에 동호대교에서 자살을 시도한 여성을 구한 뒤 자신은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을 거뒀다. 사후 동호대교에서 잠원 한강공원으로 이어지는 육교 입구에 그의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 이근석 - 1997년 1월 11일 명동 인근에서 소매치기범을 추격하던 도중 범인이 휘두른 흉기로 인해서 22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고 서울시에 의해서 사고 지점에 추모비가 세워졌으나 영업과 통행문제로 인해서 유가족들의 동의하에 2017년에 철거되고 말았다.
  • 천찬호 - 2010년 7월 22일 강원도 고성에서 빗길 고속도로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스스로 가던길을 멈춘후에 사고방지를 위해서 구조활동을 돕다가 2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에 모교인 고성 고등학교의 총동문회에서는 살신성인에 대한 귀감으로 추모비를 건립하고 장학금을 제정했다.
  • 김창경 - 2014년 8월 25일 죽왕면 오호리 도로에서 사고 차량을 목격하고 자신의 차량을 사고 차량 앞에 정차한 후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뒷 차량이 사고 현장을 덮치는 2차 사고로 그는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42세로 사망했다. 이에 2023년 6월 9일 김씨를 의사자로 인정했고 동년 9월에는 사건이 일어났던 죽왕면 송지호 철새 관망타워 정원에 추모비를 건립했다.
  • 고보련 - 2005년 7월 23일에 학원에서 주최한 여름 수련회 행사당시 함덕 해수욕장에서 수영 미숙으로 인해서 파도에 휩쓸린 친구인 오 모양 (당시 15세)를 구하기 위해서 뛰어들었으나 끝내 목숨을 잃었다. 사망후 2005년 9월에는 제주도 교육청에서 유족에서 표창장이 추서되었고 12월에는 정부로부터 의사자로 지정 되었으며 2006년 3월 28일에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함덕 해수욕장에서 추모비가 제막 되었는데 여기에는 의사자 증서를 돌에 새겨놓고서 친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의로운 소녀 또는 숭고한 희생정신과 사랑을 남기고 한마리 물새가 되어 떠나간 소녀 로 칭송받게 되었다.
  • 김덕중 - 1998년 8월 22일 경북 문경시 영강에서 중학생 2명이 급류에 휘말려 허우적거리자 강물로 뛰어들어 1명을 구조하고 나머지 1명을 마저 구조하다가 사망하였다.
  • 남정화 - 2016년 1월 8일 경남 경주시 강동면 소재 경주~포항 간 7번국도에서 전복되어 있는 승용차를발견하고 119에 신고한 후에 사고차량의 운전자를 구조하던 중 뒤에서 오던 후속 차량에 치어 2차사고로 27세로 목숨을 잃었다.
  • 이상재 - 2016년 2월 12일 강원도 삼척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사고차량 운전자의 상태 확인 및 2차사고 예방을 위해 수신호를 하던 중 뒤에서 오던 차의 충격으로 36세로 숨졌다.
  • 임종기 - 2013년 12월 23일 경남 김해시 부근 중앙고속도로에서 2~3차로에 걸쳐 정차한 차량을 발견하고 안전조치를 취하던 중 뒤에서 오던 승용차의 충격을 받고 57세로 사망했다.
  • 한지은 - 2020년 2월 16일 전북 남원시 인근 터널에서 발생한 32중 차량 충돌사고로 인한 화재 당시 차량에 같이 탑승했던 동료의 탈출을 돕다가 터널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돼 24세로 사망했다.
  • 이헌호 - 2021년 5월 25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저수지에서 동료들과 함께 농업 시설물 안전정밀 점검을 하던 중 물에 빠진 동료 1명을 구하려다 자신도 빠져서 29세로 사망했다.
  • 서보민 - 2023년 9월 6일 태풍 힌남노로 경북 포항시에 있는 하천이 범람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물이 차오르는 상황이 발생하자 차량 이동을 위해 내려갔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당시 주민들의 대피를 돕다가 21세로 사망했다.
  • 정동일 - 2016년 7월 7일 14시 40분경 제주도 서귀포시 토산리 남원하수처리장 제 7중계 펌프장에서 저류조 퇴적물 제거 공사 중 공사를 같이하던 동료가 퇴적물 높이 확인을 위해 저류조에 들어갔다가 나오던 중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구조를 위해 사다리를 내려가던 중 의식을 잃고 함께 떨어져서 32세로 사망하였다.
  • 안준호 - 건설회사 직원으로 2017년 7월 18일 서울시 양천구 소재 빗물저류 배수시설 확충공사 현장에서 기습적인 폭우로 인해 수문이 자동으로 개방되어 공사현장 터널 내부로 다량의 빗물이 유입되자 터널 내부에서 이를 모르고 계속 작업 중이던 동료 2명의 대피를 돕기 위해서 터널 내부로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빗물이 차오르며 빠져나오지 못하고 동료들과 같이 28세로 사망하였다.
  • 유병택 - 탁송기사인 그는 2019년 7월 22일 경기도 시흥시 인근 외곽순환도로 2차선로에 정차돼 있는 고장차량을 발견하고 본인의 차량을 세우고 고장차량으로 다가가 후방에 안전 삼각대를 설치하고 고장차량의 운전자를 돕는 중에 후속차량에 치여서 47세로 사망하였다.
  • 전수악 - 1946년생으로 1977년 5월 18일 경남 의령군 소재 하천에서 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학생 2명을 목격하고 1명을 구하고 또다른 1명을 마저 구하려다가 사망하였고 2006년에 의사자로 지정되었다.
  • 황하택 - 1921년생. 1984년 3월 29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야산에 불이 나자 파천 마을의 이장으로써 제일 먼저 솔선수범으로 앞장서서 마을주민들과 함께 산불 진화를 하던 중 산불이 확산되어 그만 전신화상으로 숨을 거두었다.
  • 이연수 - 1952년생이며 강원도 영월의 민간인 의용소방대의 산불감시원으로써 활동하다가 1984년 2월 18일에 산불이 발생하자 진화작업에 참여하여 진화작업 도중에 불타는 갈대잎에 몸이 옮겨붙는 바람에 소사하였다.
  • 이재수 - 1991년 2월 4일 인천시 계양구 소재 개울가에서 놀던 아이 2명이 얼음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뛰어 들어가서 1명은 겨우 구조하였으나 나머지 1명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얼음판이 깨지는 바람에 밑으로 빠져 차가운 강가에서 아이와 함께 익사하고 말았다.
  • 최귀남 - 1991년 8월 23일 태풍 내습에 따른 제방붕괴방지 활동 중 둑이 무너져 내리면서 근처에 있던 사람들을피신시키던 도중에 토사에 깔려서 실종 되었다가 끝내 사망한채로 발견되었다.[10]
  • 이혜경 - 2015년 7월 26일 경북 울진군 소재의 덕구 계곡에서 동호회 회원들과 트레킹을 하던 중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호회원 2명을 발견하고 물에 뛰어들어서 구조 후에 본인은 끝내 사망하였다.
  • 김창경 - 2014년 8월 25일 새벽 12시 5분쯤 강원도 고성군의 한 도로에서 방호벽을 들이받고 멈추고 있는 한 사고 차량을 보고 해당차량 앞에 정차해서 구조활동을 하던 중 이를 보지못한 음주운전 차량이 사고를 덮친 2차 사고로 42세로 숨졌다. 2023년 6월 12일에 무려 9년만에 의사자로 지정되었다.
  • 민현식, 김점자, 김라희 - 2018년 1월 26일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때 마지막까지 환자를 대피시키려다 희생된 인물들로 화재 발생 당시 마지막 순간까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대피시키다가 응급실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환자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59세의 민현식씨는 밀양시 소재의 행복한 병원의 정형외과 과장이었으며 해당 병원으로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당직 파견을 나왔으며 이날도 당직 근무중 화재로 인해서 환자 대피를 돕던중 1층에서 사망한채로 발견되었다. 책임 간호사인 김점자씨와 간호 조무사 김라희씨는 당시 49세와 37세로 연기가 병원 안에 차오르기 시작하자 2층 병실을 뛰어다니며 대피하라! 라고 외쳤으며 이후 거동이 불편한 환자 4명을 데리고 환자용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 현은경 - 2022년 8월 5일 경기도 이천시의 신장 투석 전문 병원에서 환자들을 구하다 숨진 50세의 간호사로 당시 3층에서 시작된 화재가 매캐한 유독가스를 발생시켜서 연기가 4층 투석 병원으로 올라갔다. 이때 유독가스가 퍼져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환자 구조에 힘썼다. 충분히 피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끝까지 남아 환자들의 대피를 도왔으며 이 때문에 생명을 건진 환자들이 많았었다. 결국 의족을 낀 환자 1명과 함께 출입문 바로 앞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11]

3.2. 의상자

  • 안재희 - 협성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안 씨는 1998년 10월 23일, 인근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수원시 신풍동의 한 공중화장실에서 한 40대 남성이 4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고 시도하던 것을 발견, 격투 끝에 제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안 씨는 가해자 황영동이 휘두른 흉기에 허벅지를 찔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후 2006년 모 공기업에서 의상자 특채로 합격, 입사하였다.
  • 김행균 - 2003년 7월 25일 9시 9분 경 경부선 영등포역 8번선에서 안전선을 넘어 선로 쪽으로 접근하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밀쳐 구한 뒤 자신은 넘어져 열차에 치여 왼쪽 발목과 오른쪽 발등을 잃었다.[12] 같은 해 11월에 철도청 직원들에 의해 그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12월 17일에 국가의상자 1급 판정을 받았다. 기념비는 8번선으로 내려오는 계단 바로 옆에 있으며, 당시 사고 상황과 그의 약력이 간략히 적혀있다. 그는 역무원이었기 때문에 철도공상자에도 해당한다. 공단화와 공사화[13] 이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공상공무원 지정 대상이었다.[14]
  • 강철수 - 2020년 1월 29일 3시 30분 경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먹자골목에서 탑승한 남성 승객이 잠실대교 남단에서 내려 자살 시도를 하자 쫓아가 구조했다. 구조 과정에서 강철수씨는 좌측 주관절 염좌, 고관절 타박상 등 상처를 입어 치료를 받았다. 결국 7월 24일 2020년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에서 의상자로 지정되었다.
  • 서적열 - 1988년 지리산 폭우 당시 불어난 계곡물에 남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구조를 나섰다가 남자아이를 구조한 뒤 계곡물 가운데 언덕에 추가로 고립된 생존자들이 있는걸 발견해 27명을 구조하다가 인대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하였고[15] 이후 보행장애 6급과 의상자로 선정이 되었고 지리산 국립공원 공단에 특채가 되었다고 한다. 이 사연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방영되었다.
  • 율다셰프 알리아크바르 (국적:
    [[카자흐스탄|]][[틀:국기|]][[틀:국기|]])
    2020년 3월 23일 23시 22분 경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에서 귀가 도중 자신이 사는 원룸 주택 건물 2층에서 발생한 화재를 목격하자마자 건물로 뛰어 올라가 해당 원룸의 문을 두드리며 한국말로 "불이야"를 외쳤다. 방 안에서 신음 소리만 날 뿐 별다른 반응이 없자 원룸 주인한테 가서 열쇠까지 받아 방문을 열려고 했으나 열쇠가 맞지 않아 열지 못했다. 이에 알리 씨는 건물 외벽 가스관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 구조를 시도했으나 열기와 연기로 인해 이웃을 구하지는 못했고 등과 손, 귀 등에 2~3도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다. 그는 불법체류자 신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활동을 하였음이 조명받아 여론의 지지를 받았으며, 2020년 7월 24일 2020년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에서 의상자로 지정되었으며, 영주권도 부여받았다.#


[1] 말 그대로 의로운 일을 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을 뜻한다.[2] 경찰, 군인, 소방관, 구조대원 등이 직무상 행위를 하다가 사망했을 경우에는 순직이라고 한다.[3] 2007년에 첫 조성 당시에는 남성 의사자만 7명만이 안장되어 있었는데 2008년 3월에 안장된 것으로 인해서 최초의 여성 안장자 1호가 되었다.[4] 1996년 11월 26일에 방송된 MBC 경찰청 사람들 166회에서 112 지령실:의로운 죽음 편으로 방영되었다.[5] 이곳에 이수현씨의 위패가 있고 부일외고의 사망자 일부의 위패도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6] 한국명은 김유진. 오강거 양과 함께 목숨을 잃은 다와 씨의 친언니인 체크미트 씨의 딸이다. 체크미트 씨는 고국인 몽골에 이미 한번 결혼을 했었다가 오강거 양을 낳고 이혼했으며 곤지암리에 거주 중이었던 김학태씨와 재혼을 한 상태였다.[7] 김학태씨의 사촌 형님이자 한국계 미국인인 윌리엄 박 (본명:박완식)씨의 아내이며 오강거 양의 어머니인 체크미트 씨의 친동생이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 거주했다가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입국해서 언니네 부부 집 건너편에서 보증금 없이 월세방에 살고 있었다.[8] 이집트 현지의 교민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이집트 최대의 3대 여행사인 블루스카이 트래블. 해당 사건으로 사장이 사망하여 중심을 잃고 폐업한다.[9] MBN 어느날 갑자기 15회 - 아들의 시간 에피소드로 방영되었으며 실명을 사용했다.[10] 참고로 1991년에는 무려 29개의 태풍이 발생했으며 이때 당시에는 제12호 태풍인 글래디스가 북상하던 때였다. 처음 내습을 하던 8월 15일부터 소멸하던 24일까지 충북지역에서 큰 피해를 주기도 하였다.[11] 해당 환자는 평소 의족을 뺀 채 투석을 받아왔는데 현은경 간호사가 대피를 돕기 위해 의족을 끼워주다가 유독가스에 질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날 거동이 불편했던 환자 4명과 현 간호사가 숨졌다.[12] 그래서 왼쪽 다리는 의족을 차고 오른쪽 발에는 특수 제작한 신발을 신는다고 한다.[13] (구)철도청의 건설정보부문은 국가철도공단, 건설정보부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한국철도공사가 승계했다.[14] 2003년 8월 12일에 KBS 긴급구조 119 2003 아름다운 철도원 에피소드로 방송되었다. #[15] 무릎 인대가 부분 손상도 아니고 아예 끊어진 상태였었는데, 인대가 끊어진 줄도 모르고 27명을 모두 구조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고 이 남자아이와는 2024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영 당시 제작진의 주선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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