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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협/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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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정협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청소년 대표팀 경력은 없다.

국가대표팀 기록 (2015~): 25경기 출장, 5득점[1]

2. 슈틸리케호

파일:external/sport-asia.com/20150117_australia-v-korea-republic_lee-jeong-hyeop_afcasiancup.com_615x400.jpg

2.1. 2014년

2014년 초중반까지만 해도 해외 유학이나 청소년 대표팀같은 엘리트 코스도 전무했을 뿐더러 K리그 골수팬이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르던 그저 그런 흔한 젊은 공격수 정도의 위상이었는데 2014년 12월, 그의 인생을 바꿀 전기가 찾아온다.

생소하던 그를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부상당한 김신욱 대체자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눈여겨 본 후, 아시안컵을 앞두고 A대표팀으로 발탁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 4일 슈틸리케호의 제주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되며, 성인 국가대표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K리그팬들 사이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듣보잡선수였던지라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테스트도 좋지만 지나친 모험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5번에 걸쳐 상주 경기를 관전한 후 확신을 갖고 이정협을 선발했다. 누차 대표팀 선발조건으로 소속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강조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비록 이정협이 이런 원칙에 어긋나지만 예외로 봐달라고 밝혔다. 전임 감독의 엔트으리에 학을 뗀 팬들도 이런 처사에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박주영을 축출한 게 어디냐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2.1.1. 2015년 AFC 아시안컵

A매치 데뷔전인 2015년 1월 4일 시드니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조영철과 교체되어 출장했다. 팀이 1:0으로 앞서가던 중 후반 추가 시간에 남태희가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크로스해 준 공을 반대편에 있던 김창수가 받은 다음 골문 앞에 있던 이정협에게 패스해 줬는데, 이를 놓치지 않고 슬라이딩으로 밀어넣었다. 슈틸리케호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3] 화려한 개인기로 만든 골은 아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집어넣어 국가대표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만들었다. 1988년 아시안컵의 신데렐라였던 황선홍 감독은 이정협에게 절실함과 준비된 자세가 있기에 골이 나온 것 같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한편으로 앞으로 그 절실함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4]

아시안컵 예선 1차전 오만전에서는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었는데 1:1 찬스에서 반대편의 한교원이 국군 체육부대장으로 보였는지, 어이없는 각도의 패스를해 메이저 대회 데뷔골 찬스가 날려버렸다. 물론 알 합시가 각도를 좁히고 나와서 패스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지만,[5] 결정적인 찬스에서 과감하게 슈팅할 배짱이 없었다는 건 공격수로서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이다. 본인도 절치부심했는지 예선 2차전 쿠웨이트전에 교체 투입되었을 때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기회를 잡으면 과감히 슈팅을 날렸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이근호의 패스를 받아 전반 32분에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넣었다.[6] 이 골을 잘 지킨 대한민국은 조 1위로 2015년 AFC 아시안컵 8강에 진출했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선 본인이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82분 교체될 때까지 전방에 콕 박혀서 우즈벡 수비진을 쉼없이 괴롭혀줬다. 하루 덜 쉰 상태에서 체격 좋은 이정협과 지속적으로 부딪치며 체력이 고갈된 우즈벡 수비진은 연장전에 돌입하자 한국의 측면공세에 무너져 내렸다.

4강 이라크전에서는 1골 1어시스트로 공격포인트 2점을 기록했다. 전반 20분 프리킥 상황에서 김진수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선취골을 넣었다. 후반 5분에는 가슴 트래핑으로 김영권에게 볼을 떨궈줬고, 김영권은 그대로 왼발 슛을 날렸고, 바운드된 볼이 득점으로 연결되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후에도 전방에서 이라크 수비수들에게 지속적으로 부대끼고 수비에도 동참했다. 이때 다소 충돌이 심하다 싶으면 여지없이 드러누워 적절하게 시간을 끌었다. 백미는 공중볼 경합후 떨어지다 허리를 땅에 부딪쳤다며 쓰러져 잠시 나가 있다 돌아와서는 이라크 진영을 질풍같이 뛰어다니는 모습.

아시안컵 맹활약을 통해 자타공인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로 자리매김하며 스타덤에 올랐으며,[7] 군대렐라(군대+신데렐라), 상주 카바니, 협자기, 디에고 군스타, 군차리토, 상주키치 등 많은 별명이 생겨났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른 별명은 솔저 (...) 당시에는 군인이 맞았으니 빼도 박도 못할 별명이다. 또 슈틸리케의 양아들이라는 뜻에서 슈틸정협이라는 별명도 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이기고 우승을 한다면 국군체육부대장이 포상휴가를 적극 검토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정협은 득점을 올리지 못한채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후반 42분에 교체되었고, 팀은 연장 승부 끝에 아쉽게 패배하였다. 그래도 아시안컵에서 손흥민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아시안컵 종료 직후 FIFA에서 FIFA가 선정한 아시아를 빛낼 새 스타 5인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8] 그리고 사단장에게 4박 5일 포상휴가를 받았다. 포상 휴가 후 남해에서 훈련 중인 소속팀에 합류했다.

2.2. 2015년

3월 27일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도 선발 출전했으나, 전반 26분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기성용과 교체되었다. 그런데 이정협이 빠지고 기성용이 몸을 푸는 사이에 동점골을 헌납했고, 이정협을 대신해 공격수를 맡은 구자철이 부족한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팀이 전체적으로 전방 압박이 사라진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동시에 간접적으로 자신이 엄연히 국가대표의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6월 11일 월드컵 아시아 2차 지역예선을 앞두고 열린 UAE와 평가전에서 후반 이용재와 교체되어 들어가 특유의 왕성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주워먹기 골로 3번째 추가골을, 그리고 본인에게는 A매치 4번째 골을 기록했다.

다만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 이후로는 국대 차출이 없다. 그렇지만 일단은 선수 본인이 빨리 회복되는 것이 우선인데다가, 2015년의 A매치도 결국 소집되지 못하였으니[9] 이정협은 2016년이 되어야 다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2.2.1. 2015 EAFF 동아시안컵

7월 24일 EAFF 동아시안컵 23인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8월 2일 동아시안컵 중국전에 선발 출장해 82분을 소화하고 김신욱으로 교체되었다. 비록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중앙 수비수를 달고다니면서 끊임없이 수비 배후를 노리는 원톱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2선에서 이종호, 김승대, 이재성, 권창훈이 미드필더 사이에서 끊임없이 볼이 돌아다니고 2:0 완승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날 해설을 맡았던 허정무 부총재도 이런 이정협의 움직임을 칭찬했다.
8월 5일 한일전에서는 김신욱이 선발 출장하여 빠졌다.

8월 10일 동아시안컵 북한전에 선발 출장해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다른 선수들과 연계플레이 능력이 상당히 많이 발전해서 선수들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많이 제공해줬다. 그러나 그 자신은 리명국이 눈부신 선방을 잇달아 펼치면서 득점에 실패, 대회 무득점으로 그쳤다. 이정협은 결정적인 찬스를 두 번이나 맞이했지만 한 번은 리명국의 얼굴면상을 맞추었고 한 번은 김승대와 2대 1 패스를 받아 골문까지 가져오는데는 성공했지만 헛발질을 하는 바람에 수비수의 발을 맞추고 말았다. 일부 기레기와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골결정력 부족' 운운하며 비난했지만, 정작 슈틸리케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슈팅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은 만족스러웠고, 결정력은 손흥민, 구자철이 합류하면 해결될 것'이라며 낙관하는 답을 내놓았다. 물론 본인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왔을때는 정확히 골로 연결 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이건 플레이스타일을 떠나서 선수로서의 본분이다.

그러나 현대 축구의 트렌드 자체가 스트라이커는 골 넣는 기계에서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역할로 다양해졌다. 알기 쉬운 예로 FC 바르셀로나에서 스트라이커 롤을 맡는 선수는 리오넬 메시지만 실제 포지션은 2선 공격수이다. 브라질은 네이마르라는 최고급 2선 공격수를 보유했지만 최전방에서 이정협같은 롤을 수행해줄 공격수가 없어 2000년대 중반부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즉, 현대 축구에서 최전방 공격수와 스트라이커는 동의어가 아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70여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역사 속에서 '스트라이커'라는 용어에 걸맞은 선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도 황선홍 은퇴 이후 십여년 동안 스트라이커 정의에 걸맞은 선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은 구자철이 일시 부진했을 때도 믿음을 갖고 계속 기용했고, 반대로 이동국과 김신욱이라는 스코어러 대신[10] 이정협을 발굴해 쓴 것이다.

2.3. 2016년

2016년 3월 14일 발표된 대표팀 명단에 들었다. 그러나 이전 경기들에서의 부진했던 모습 때문에 발탁 초기에는 "전날 그따구로 하고도 뽑히다니" 라는 여론이 많았는데... A매치 복귀전인 레바논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 기성용의 패스를 받아 기적적으로 결승골[11]을 넣으면서 승리의 1등공신이 되었다(...). 좋은 모습을 울산에서도 보여줄지가 관건.

3월 27일, 태국과의 평가전에서도 선발출전했는데 석현준과 투톱으로 풀타임을 뛰었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레바논전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이정협은 석현준의 골장면에서 측면으로 빠져있어 수비수 두 명의 시선을 빼앗아 주었고 또 두 번이나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다만 본인은 남태희의 크로스를 헤딩슛으로 연결하거나 기성용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슈팅을 날리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단점인 슈팅이 발판이 되어 후반 23분에 날아온 골 기회를 날려먹었다.

전체적으로, 국가대표팀 공격진의 한 축으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전형적인 골잡이 스타일의 스트라이커가 아님에도 중요한 시점마다 골을 터뜨려 주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리그에서는 그저 그런 수준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팬들에게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유는 앞에서 지겹게도 설명했듯. 손흥민, 구자철 등 1.5~2선 공격수를 적극 활용하는 슈틸리케호의 전술에 잘 맞는 원톱이지만, 울산은 그게 아니기 때문인 것. 문제는 리그에서의 부진이 계속되니 폼이 떨어져서 레바논전에서 결승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 평가전 라인업에는 들지 못했다는 것. 레바논전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지만 리그에서의 꾸준한 활약으로 재승선에 성공한 황의조와는 대조되는 부분. 다시 국대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면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야만 할 것이나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다.

2016년 11월 A매치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며 3월 이후 오랜만에 대표팀에 재승선했다. 그러나 2016 시즌 울산에서 30경기 4골이라는, 울산과 어울리지 않았던 그의 스타일을 고려하더라도 처참한 성적을 낸 공격수를, 그가 아무리 슈틸리케 감독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더라도 당장 2016 시즌 K리그 클래식 MVP와 득점왕을 독차지한 정조국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발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발 여론이 크다.

11월 11일 캐나다 평가전에 선발출전하여 쐐기골을 넣었다. 골뿐만 아니라 자신의 강점인 2선과의 연계와 2대1 패스를 잘 활용했다. 일단 대표팀에서의 폼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반면 울산 현대 팬들은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 심지어 울산의 2선이 부족해서 이정협이 부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

11월 15일 월드컵 최종 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 선발출장했다. 그리고 이날 보여준 경기력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현재 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붙박이 주전 원톱이 아니라는 초조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조악한 플레이로 일관했다. 반면에 교체로 투입된 김신욱은 주변 동료를 살피는 여유와 시야를 보여주면서 이전부터 한계로 지적받던 투톱 성향을 어느 정도 극복해낼 가능성을 보였다. 만약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면 대표팀에서 김신욱을 조커 한정이 아닌 전반부터 원톱으로 가동하는 경우를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다. 석현준의 복귀 그리고 가능성은 낮지만 황의조 정조국 박주영 등 골잡이를 조커로 뽑는다면 이정협의 설 자리는 없어진다. 분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경기에 이정협이 보인 활약이라면 아시안컵때 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며 우즈백선수들의 스테미나를 깎아놓은 것이다. 거기다 이정협과 공중전에 익숙해져 있던 우즈백 수비수들은 김신욱이 들어오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원톱으로서 기량이 정체되었다는 비난은 면키 어려울 듯 하다.

3. 신태용호

2017 동아시안컵 때 차출 되었지만 출전도 활약도 없었고, 결국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승선에는 실패했다.

4. 벤투호

4.1. 2019년

2019년 5월말에 발표된 6월 A매치 2연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2년만에 성인대표팀에 복귀했다.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대표팀 감독인 파울로 벤투는 선발 이유에 대해 '소속팀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두루두루 점검하고 파악한 결과 대표팀 경기력과 스타일에 적응할거라 판단하고 선택했다' 라고 밝혔다. [12]
호주전에는 부산에서 열리는 경기인 만큼 출장이 기대되었지만 결국 결장. 이란전에는 후반 30분 교체투입되었지만 뭔가를 보여주기에는 팀 전체적으로 체력이 소진되기 시작할 무렵이라 그런지, 본인의 기량이 덜 올라온 것인지 그다지 위력적인 면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다만 장점인 활동량만은 그 와중에도 눈에 띄기는 했다.

9월 A매치 2연전 명단에 들었다. 그리고 조지아 전에서는 역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활동량만 보여주었다.

12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2019 동아시아컵 대표팀에 선발됐다. 1차전 홍콩전에서 김승대가 전반 39분 갑작스런 부상을 당하면서 교체 출전했다.

12월 15일 2차전 중국전에 선발 출전했다.

12월 18일 3차전 일본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완벽한 득점찬스에서 골을 날려버리는 등 결정력에선 아쉬운 장면을 보여줬다. 하지만 최전방에서 일본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경합해서 빌드업을 방해하고 아군에게 볼을 흘려주며 공간을 만들어주는 등 본인이 기용되는 이유인 포스트 플레이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공격수로서 전방 압박수비도 적극 가담해서 수비할때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국대 축구를 오랫동안 봐온 팬들은 득점력은 아쉽지만 기대하던 롤에서의 제 몫은 해줬다며 격려하는 중. 다만 스트라이커로서의 득점력은 본인이 국대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개선해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유럽파인 황의조, 손흥민, 황희찬이나 동아시아파인 김신욱을 빼면 그나마 최전방 롤을 수행할 만한 선수가 이정협이라는 점에서 대표팀의 원톱 스트라이커 자원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13]

4.2. 2020년

2020년 10월 스페셜매치에 성인대표팀 공격수로 선발되었다.

2020년 10월 김학범호와 친선경기에서는 권경원의 자책골로 팀이 2:1로 패할 상황에서 후반 44분에 동점골을 터뜨려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2020년 11월 A매치에는 선발되지 않았다.[14]

4.3. 2021년

황의조가 소속팀의 차출거부로 나오지 못하자 공식 A매치에는 오랜만에 소집명단에 들게 되었다. 이정협이 소속팀인 경남 FC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K2에서 경남 FC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정협을 향한 벤투 감독의 신뢰가 꽤나 두텁다는 것을 알 수 있다.[15] 또한 당시 소집명단에서 그를 제외하면 마땅한 원톱자원이 없다는 점을 볼 때 이정협의 차출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3월 25일 한일전에서 벤치에 있다가 후반전 시작과 함께 이강인과 교체되어 출전하였다. 후반 14분에 동료들에게 압박 지시를 내려 이를 성공해 역습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팀 전체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인해 0:3 참패를 당했고, 본인도 지난 동아시안컵 때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줘 팬들을 또 다시 실망시켰다.

2021년 6월 소집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경남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것이 원인으로 보이는데, 당장 이번 대표팀 공격수로만 보더라도 부동의 원톱 공격수 황의조와 장신 공격수 김신욱이 버티고 있으며 매탄소년단의 발빠른 신예 정상빈이 주목받고 있고 비록 이 셋에 밀려 차출되진 못했지만 한 단계 높은 K리그1에서 득점왕 경쟁을 하고 있는 주민규오세훈, 조규성, 김지현 등 차세대 공격수들도 대표팀 선발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본인은 경기력마저 좋지 않으면 리그 수준이나 팀 수준을 고려할 때 전혀 선발메리트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인의 부진한 경기력을 다시 끌어 올릴 필요가 있다.

이후로 이정협의 상위호환 격에 해당하는 조규성이 대단한 활약을 보여 주고 있으며, 서드 스트라이커 자리는 셀틱 FC에 입단한 젊은 오현규에게 뺏기며 대표팀에 뽑힐 일이 없게 되었다.그러나 3년 후에 조규성이 아시안컵 중 박용우, 김영권과 함께 최악의 활약을 보여버리고 오현규도 셀틱에서 힘든 주전경쟁을 펼치게 되었다.

[1] 2021년 3월 기준[2] 결승전까지 6경기 모두 출장하여 2득점 1도움[3] 이날 첫 골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수의 자책골이었기 때문에, 이겨도 절반의 승리가 되었을 것이다.[4] 참고로 황선홍 감독이 말한 절실함은 슈틸리케 감독이 이미 강조한 품성이었다.[5] 각을 좁히고 나오던 오만 골키퍼 알 합시는 물론이고 한교원 조차 자신에게 공이 올줄 몰랐다. 게다가 빠르게 온것도 아니고 완만하게 휘어 날아와서 오만 수비수들이 충분히 대응가능했다.[6] A매치 데뷔 골과 같은 슬라이딩 슛이었다.[7] 해당 칭호는 오랜 시간이 지난 벤투호 시절에 다다러서도 언론이나 해설진에서도 자주 회자되곤 한다.#[8] 나머지 4명은 아랍에미리트의 미드필더 오마르 압둘라흐만(알 아인), 호주의 마시모 루옹고(스윈던타운), 이란의 사르다르 아즈문(루빈 카잔), 카타르 수비수 압델카림 하산(알 사드).[9] 11월 12일 미얀마전, 11월 17일 라오스전은 모두 이정협이 발탁되지 않은 채로 치러졌고 그 두 경기를 끝으로 2015년의 A매치는 막을 내렸다.[10] 둘 다 체격 조건이 좋아서 대표팀에서 원톱으로 기용하라고 말이 많았지만, 정작 리그에선 처진 스트라이커로 설 때 효율이 극대화되는 선수들로 전방에 혼자 세워놓은 적은 있어도 이정협처럼 수비수와 부대끼며 잠수타고 비벼서 체력 소모시키는 롤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선수들이다. 이 둘은 후방지원이 열악해지면 미들까지 내려와 버리거나 아예 고립된다.[11] 본인의 A매치 4번째 득점.[12] 소속팀에서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차라리 김신욱을 뽑지 이정협이 웬말이냐는 반응이 있다. 하지만 김신욱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김신욱은 포스트 플레이 능력이 부재한 탓에 최전방에서 자주 지워지고, 투톱으로 보낼 만한 파트너가 이근호 말고는 찾기 힘들다. 또한 철퇴 타입인 김신욱은 빌드업을 선호하는 벤투와의 궁합이 맞을지도 의문이었기 때문, 그나마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에서 김신욱을 철퇴 타입으로 활용하여 큰 소득을 올리긴 했다..[13] 이마저도 황의조를 빼고 손흥민, 황희찬, 김신욱은 최전방 원톱 롤을 수행하기엔 모자라다. 투톱이나 스리톱에서만 위력이 나올 뿐. 그나마 수행할 수 있는 오세훈조규성 등은 아직 유망주에 가까운지라...[14] 평가전은 선발 인원이 23인이고, 골키퍼 3명을 제외한다면 포지션별 2명씩 선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1월 A매치 선발명단을 보면 스트라이커 포지션에는 황의조 단 1명만 선발되었다. 즉, 벤투는 이정협을 황의조 후보로써 굳이 선발하기 보다는, 유사시에 나상호, 황희찬 등을 공격수에 세우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15] 벤투의 전술과 꽤나 잘 맞는 측면이 있는 선수이긴하다. 결국 2선과의 연계가 중요한 원톱의 역할상 해당 역할에 맞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전임 감독인 슈틸리케도 이러한 장점에 의해 발탁하였으나 해당 감독의 역량은 딱 거기까지여서 그 이상은 없었지만 벤투는 황의조를 활용하여 대표팀 공격을 이끌어가고 있다. 잘만 되면 이정협도 플레이 스타일이 맞기 때문에 백업으로 활용 가치는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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