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rowcolor=#194996> 직책 | 이름 | 로마자 이름 | 국적 | 생년월일 | 비고 |
<colbgcolor=#cc0000><colcolor=#ffffff> 감독 | 변성환 | BYUN Sunghwan | 1979년 12월 22일 | |||
코치 | 김도용 | KIM Doyong | 1976년 5월 28일 | |||
민동성 | MIN Dongsung | 1979년 4월 15일 | ||||
이상용 | LEE Sangyong | 1986년 1월 9일 | ||||
골키퍼 코치 | 신화용 | SHIN Hwayong | 1983년 4월 11일 | |||
피지컬 코치 | 김성현 | KIM Sunghyun | 1985년 11월 3일 | |||
스카우트 | 배기종 | BAE KiJong | 1983년 5월 26일 |
이종민의 역임 직책 | ||||||||||||||||||||||||||||||||||||||||||||||||||||||||||||||||||||||||||||||||||||||||||||||||||||||||||||||||||||
| ||||||||||||||||||||||||||||||||||||||||||||||||||||||||||||||||||||||||||||||||||||||||||||||||||||||||||||||||||||
이종민의 기타 정보 | ||||||||||||||||||||||||||||||||||||||||||||||||||||||||||||||||||||||||||||||||||||||||||||||||||||||||||||||||||||
SUWON SAMSUNG BLUEWINGS | ||||
이름 | 이종민 李宗珉 | Lee Jongmin | |||
출생 | 1983년 9월 1일 ([age(1983-09-01)]세) |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신장 175cm | 체중 68kg | |||
직업 | 축구 선수 (라이트백, 윙어 / 은퇴) 스카우트 | |||
소속 | <colbgcolor=#cc0000> 선수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2~2004) 울산 현대 호랑이 (2005~2008) FC 서울 (2008~2012) → 상주 상무 피닉스 (2011~2012 / 군 복무)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 광주 FC (2014~2017) 부산 아이파크 (2018~2019) | ||
기타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0~ / 스카우트) | |||
국가대표 | 24경기 4골 (대한민국 U-20 / 2002~2003) 4경기 0골 (대한민국 U-23 / 2006) 4경기 0골 (대한민국 / 2006~2008) | |||
링크 | ||||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학력 | 서귀포초 - 서귀포중 - 서귀포고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現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스카우트.2. 선수 경력
2.1. 유소년 시절
제주특별자치도 출신으로 서귀포에서 김진수, 설동식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초중고를 나왔다. 서귀포고 시절인 2001년 백호기 우승과 대회 MVP를 수상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준 덕분에 U-17 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제주 지역을 넘어 전국 83년생 중 순위권에 들만큼 유명한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다.2.2. 수원 삼성 블루윙즈 1기
당시 청소년 대표팀을 예의주시하며 유소년 선수 수집에 열을 올리던 윤성효 수원 2군 감독의 눈에 들어 김호의 아이들로서 2001년 백록기가 끝나자마자 수원 삼성에 입단했다.2002년 계약금 2억2천만원, 연봉 2천을 받으며 고교 최고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입단 첫해에는 R리그와 청소년 대표만 뛰었고 1군에선 뛰지 못했다.
2003시즌부터 본격적으로 기회를 받았고 시즌 초반부터 기회를 받으며 시즌 리그 16경기에 나서 2도움을 기록했다. 또한 박성화 감독의 지도 아래 정조국,
하지만 2004년을 앞두고 부임한 차범근 감독 눈에 완전히 벗어나며 전력 외 자원이 됐고 시즌 종료 후 이적을 택한다.
2.3. 울산 현대 호랑이
2005시즌을 앞두고 전재운과 트레이드로 울산의 유니폼을 입었다. 등번호 17번을 달았다.김정남 감독은 이종민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었고 이종민도 프로 데뷔 후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유망주의 꼬리표를 떼고, 주전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특히 울산의 9년 만의 K-리그 우승에도 공헌하는 등 리그 내 수준급 측면 자원으로 거듭났다. 초반에는 윙어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보곤 했으나 박진섭의 이적 후 우측 윙백으로 자리를 잡으며 본격적으로 윙백으로 뛰기 시작한 시기이다.
또한 2006년 K리그 슈퍼컵, A3 챔피언스컵, 2007년 K리그 리그컵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하였다.
그렇게 리그에서 인정받자 2006년 핌 베어백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어 대표팀 경기도 소화하는 등, 물오른 기량을 뽐내기도 했다.
2008년 2월에는 2008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 나서 대한민국의 우승을 이끄는 등 허정무호에서도 선발되곤 했다.
2.4. FC 서울
2008년 3월 20일, 뜬금없게도 FC 서울로 전격 이적했다. 조건은 김동석에 현금을 얹은 1:1 트레이드. 선수가 당시를 후술하기로 K리그의 특이한 로컬룰로 인해 선수의 동의 없이 이적 당하고 만다.뜬금없이 주전급 선수를 내주고, 유망주와 현금을 챙겨오는 울산 프런트의 행보에 울산 팬들은 분노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양 팀과 선수 모두에 재앙이 되는 트레이드로 남고 말았는데... 이종민은 서울 입단 후 2008년 8월 오른쪽 대퇴이두근 파열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부상을 계속 당하며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고, 이후 유리몸이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서브 자원으로나마 2010시즌 서울의 리그, 리그컵 더블에 기여했다.
2.5. 상주 상무 피닉스 & FC 서울/2012년
2011시즌을 앞두고 최효진, 김치우와 함께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하며 군복무를 시작했다.2시즌 동안 38경기를 소화하며 간만에 경기 감각을 회복했다.
하지만 2012시즌 전역 후 서울에선 여전히 자리가 없었고 3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또 다시 서울의 리그 우승을 함께 경험했다.
2.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기
결국 잦은 부상으로 몸과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던 이종민은 2013 시즌을 앞두고 다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게 된다. 무려 8년 만에 성사된 프로 데뷔팀으로의 복귀였다. 게다가 슈퍼매치 라이벌인 두 구단 사이에 이적은 2006년 백지훈 이후 무려 7년 만에 성사된 것.[1]하지만 2013 시즌 수원에서 7경기 출장에 그치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나마 6월 26일 전북 홈경기에서 멋진 프리킥으로 한골을 넣긴 했다. 결국 3년 계약을 맺었으나 이를 포기하고 수원을 떠나고 만다.
2.7. 광주 FC
남기일 감독의 구애 끝에 결국 2014년 1월 21일 FA 자격으로 광주 FC로 이적하였다. 2014시즌 광주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팀이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2015 시즌에는 주장에 선임해 클래식에 복귀한 광주가 선전하며 잔류하는 데 공수에서 큰 기여를 했다.
2016 시즌에도 역시 주장을 맡게 되었다. 이로써 2년 연속 주장에 선임. 2017시즌에도 광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팀의 K리그 챌린지 강등을 막는 것에는 실패했다.
비록 2016시즌 무릎 부상 이후 기량이 저하되긴 했지만 2014시즌 2015시즌 보여준 모습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광주 FC의 10주년 BEST 11 오른쪽 풀백으로 선정되었다. 이종민이 광주시절 보여준 활약상은 이 칼럼을 보면 자세하게 알 수 있을 듯.
그리고 2022년 8월, 늦었지만 광주에서 팬들과 오랜만에 만남을 갖기도 했다.
2.8. 부산 아이파크
2017년을 끝으로 광주와의 계약이 만료된 뒤 선수단 분위기를 잡아줄 베테랑을 원했던 최윤겸 감독의 구애에 응해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했다. # 그리고 부산 아이파크에서도 1년 간 팀을 이끌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
2018시즌 23경기 3도움을 기록했다.
2019시즌은 총 4경기 출장하며 간접적으로나마 부산의 승격에 기여했다. 2019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고 조용히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3.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스카우트
2020년 1월 2군 코치로 승격한 조재민의 후임 스카우트 신분으로 친정 팀에 복귀했다.2021시즌부터 강등된 2024시즌까지 우로시 제리치, 니콜라오 두미트루, 세바스티안 그로닝, 페이살 뮬리치, 로드리고 바사니, 맥스웰 아코스티, 웨릭 포포까지 참담한 외국인 공격수 스카우팅 성적으로 수원팬덤 사이에서 이종민에 대한 비난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고, 강등의 가장 큰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이후 김주찬, 유제호와 같은 유망한 젊은 자원을 팀으로 데려오는 것에 큰 기여를 했고, 코즈카 카즈키 정도를 제외하고[2] 외국인 선수의 영입과는 무관했다는 기자 출처의 썰 이 나오면서 부정적이었던 여론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4. 플레이 스타일
광주 지역 라디오 방송인 올 댓 광주FC 16화에서 이종민 선수의 플레이스타일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 바가 있다. 이곳에서 들을 수 있다.요약하면 2017시즌까지 통산 299경기동안 47포인트를 쌓을 정도로 공격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는 풀백이다. 풀백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이나 우측면으로의 전진 패스를 통해 빌드업을 하는 능력도 좋은 편이고 또 공격 가담을 많이 하지만 볼 키핑 능력이 좋기 때문에 이종민이 풀백을 보는 경기에서는 그 위치에서의 역습 허용이 적은 편이다. 또 워낙 킥이 좋기 때문에 페널티 라인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도 최전방 원톱에게 바로 연결되는 크로스를 많이 올리는 편이다. 광주 FC에서는 송승민이 측면에서 볼을 키핑하면서 측면 수비가 송승민 쪽으로 붙으면 뒤에서 자리잡고 있는 이종민에게 백패스를 하고 이종민이 위협적인 크로스를 올려서 원톱에게 바로 연결하는 플레이를 흔하게 보여주었다.
5. 여담
- 피파 온라인 2에서 이천수가 삭제된 후, 그와 가장 비슷한 체감을 가진 선수로 추천되었다 (...) 실제로도 오른발잡이에 프리킥을 잘 차는 등, 이천수와 비슷한 면이 많긴 하다.
- 해외 이적 없이 K리그에서만 20년 가까이 뛴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고향을 연고로 하는 팀인 제주 유나이티드에서는 은퇴할 때까지 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