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6:41:22

이준(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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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이건 의친왕 이곤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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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궁 제4대 궁주
<colcolor=#ffffff> 대한제국 고종의 증손
이준 | 李準
파일:이준황손_프로필사진.jpg
출생 <colbgcolor=#fff,#191919>1961년 9월 11일 ([age(1961-09-11)]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
(現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전주(全州)
준(準)
증조부 고종 태황제
증조모 명성태황후(적증조모)
귀인 장씨(생증조모)
조부 의친왕
조모 의친왕비(적조모)
수인당 김씨(생조모)
부친 사손 이곤[1]
모친 사동궁사손비 '황경생'
가족 관계 누나: 이양, 이기, 이제
부인: 김성자
장남: 이범[2]
차남: 이백[3]
사동궁주
재임 기간
1984년 3월 24일 ~ 현재
현직 제4대 사동궁 궁주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4]
약력 외국계 대기업 근무
희망의 한국신당 중앙위원
자유민주연합 상임행정위원
제4대 사동궁 궁주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의친왕기념사업회 설립4. 가족관계
4.1. 친가(대한제국 황실)4.2. 배우자 / 자녀
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제국 황실의 직계 후손이다. 고종의 친증손이며, 고종의 차남[5] 의친왕의 장손자로 사동궁(寺洞宮, 의친왕부)의 사손(嗣孫)이다. 의친왕기념사업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2. 생애

1961년 9월 11일[6] 서울에서 의친왕의 6남 이곤과 황경생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7] 의친왕의 2남부터 5남까지는 다른 종친들의 후사를 잇기 위해 출계했고[8], 1남 이건일본으로 귀화함에 따라, 의친왕의 사후 이곤이 사동궁 사손, 즉 의친왕가의 종주가 되었고, 부친 이곤의 서거 이후 이준이 그 지위를 물려받았다.

서울 중구 덕수궁에서 태어나 거주하다가 정부의 퇴거 조치로 인해, 가족과 함께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205번지 홍릉[9] 재실로 거처를 옮겼다.

성장 후 외국계 대기업에서 상무이사, 전임이사, 부이사장, 이사장으로 근무했다. 1998년에서 1999년까지 희망의 한국신당 중앙위원 직위를 역임했고, 2000년에서 2001년까지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상임행정위원으로 재임했다.

1989년 4월 21일, 고모 할머니 덕혜옹주가 76세를 일기로 생전 후사를 이을 자녀가 없이 한많은 삶을 살다 별세하자 덕혜옹주의 조카손주인 이준 황손이 상주가 되어 창덕궁 수강재에서 4월 25일, 황실 가족장으로 영결식이 엄수되었다.[10]
파일:덕혜옹주_상주_이준황손.jpg
<colbgcolor=#29176e> 덕혜옹주 영결식에 상주를 맡은 장조카 이준 황손

덕혜옹주의 영결식이 끝나고 같은달 30일 영친왕이방자 여사가 서거하자 당시 일본에 살던 5촌 당숙인 이구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 3일 동안 이준 황손이 상주를 대신하였고, 이구가 도착하자 함께 칠일장을 치렀다. 2005년 7월, 회은황세손 이구가 일본 도쿄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하자 부인 및 사촌동생 이원 황사손[11] 내외와 함께 이구의 삼년상을 치렀다.

3. 의친왕기념사업회 설립

2022년 정년퇴임 후, 엔지니어로서의 경험과 기회를 살려 ICT분야 청년 대상 스타트업 투자기업의 고문으로 취임한데 이어, 같은 해 7월 의친왕가의 후손들과 독립운동가의 자손들, 의친왕을 존경하는 많은 국민(시민)들과 함께 대한제국 황실의 가장 큰 어른 이해경(의친왕의 5녀)이 명예회장으로, 의친왕의 종손 이준 황손이 회장으로 추대되어 의친왕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파일:의친왕기념사업회_창립총회.jpg
<colbgcolor=#29176e> 2022년 10월 21일 의친왕기념사업회 창립총회
사동궁, 운현궁, 대궁, 계동궁, 맹현가 등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들과 김가진 대동단 총재의 손녀 김선현 회장, 우사 김규식 박사의 손녀 김수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등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 등 학계와 김영란 경운회 회장, 장경수 장욱진문화재단 이사장 등 문화예술계 등 다양한 인물들이 의친왕기념사업회 창립총회 및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 전시 개막식에 참석하였다.

의친왕기념사업회를 설립 후 매년 광복절과 맞물리는 8월 15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홍유릉 권역에 위치한 의친왕 묘역에서 [대한예전] 전통을 중심으로 한 대한제국 의친왕 기신제조선 국왕에 준하여 봉행하기 시작했다.[12]
파일:의친왕기신제1.jpg
<colbgcolor=#29176e> 2023년 8월 15일 홍유릉에서 열린 대한제국 의친왕 기신제 중 초헌관 이준 황손

현재 대한제국 의친왕 기신제 및 5대 제향(조경단, 환구대제, 종묘대제, 사직대제, 건원릉제)과 각 조선왕릉 제향에 사촌동생이자 대한제국 직계적통인 황사손 이원과 더불어 활동하면서 황실의 전통문화를 계승 및 보전하고, 의친왕의 독립운동 역사를 연구, 출판, 황실유물보존, 전시하는 사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13] 이준은 "대중적으로 '이 무능하여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프레임이 만연한 것이 안타까워, '의친왕과 황실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질 바란다."고 밝혔다.[14]

4. 가족관계

파일:대한황실계보도.jpg
<colbgcolor=#29176e> 대한제국 황실 계보도
고종황제는 3남 1녀(조졸 제외, 성인으로 생존한 자녀 기준)를 두었다. 첫째가 순종황제, 둘째가 의친왕 이강, 셋째가 영친왕 이은, 넷째가 덕혜옹주이다. 첫째 순종황제와 넷째 덕혜옹주는 죽기 전에 후사없이 훙서하였고, 셋째 영친왕(의민황태자) 이은의 아들 이구 황세손 역시 후사가 없이 일본 도쿄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의친왕의 9남인 이갑 황손의 장남 이원[15]을 사후양자로 들여 대한제국 황실(영친왕계)의 적통을 잇게 하였다.

2005년 7월, 5촌 당숙 이구의 서거 후, 현 황사손 이원(상협)과 함께 황사손(皇嗣孫)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당시 황실의 가장 큰 어른이던 이해경 왕녀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는 '이준은 사동궁 사손으로 의친왕가를 이어야한다.'는 공통된 입장이 있었다. 이에 황사손 지위는 손아래 사촌동생 이원이 끊어진 대한제국 황실 적통(영친왕계)으로 출계하여 황사손으로 봉무(봉직)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현재 조선 왕실대한제국 황실의 직계 후손들은 전부 의친왕계만 남았다.[16]

4.1. 친가(대한제국 황실)

ㅁ 친고조부 : 헌의흥선대원왕(獻懿興宣大院王)
ㅁ 친고조모 : 순목대원비 민씨(純穆大院妃 閔氏)
ㅁ 친증조모 : 귀인 장씨(貴人 張氏)
ㅁ 친조모(계비): 수인당 김씨(修仁堂 金氏)
  • 부친 : 황손 이곤(皇孫 李錕)
  • 모친 : 황경생(黃庚生)

4.2. 배우자 / 자녀

  • 본인: 황손(皇孫) 이준(李浚)
  • 부인: 김성자(金成子)
    • 장남: 이범(李梵)
    • 차남: 이백(李柏)

5. 여담

  • 대한제국 의친왕가의 종손으로 황실 어른들의 기대 속에서 자랐으나, 어린 시절 방송과 언론의 잦은 노출로 부담감을 느껴 의식적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잠시 정당 활동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17], 평생 외국계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그래서인지 의친왕 가문의 적통 종손임에도, 일반 대중에게 인지도는 그닥 낮은 편이다.
  • 의친왕기념사업회를 설립한 그 해 8월 15일, 첫 사업으로 홍유릉 의친왕묘에서 의친왕 기신제를 봉행하고, 10월, 국내 최초로 의친왕의 유물을 한데 모아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기록과 기억〉#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서울 경운박물관에서 3개월 동안 진행하였다.
  • 숙부 이석이나 둘째 고모인 이해원[18]과는 달리 황실 복원 운동에는 회의적이다. 본인도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이 왕인 나라이다. 다만 조선 왕실과 대한 황실의 유구한 전통과 궁중 문화가 이 시대에 다시 살아 숨쉬길 바라며, 할아버지 의친왕의 황실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섯째 고모 이해경과 황사손 이원도 이준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 휴일에는 전국의 '의친왕과 대한황실 관련 유적지'를 다니며 황실독립운동의 역사적 사료와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1] 의친왕 가문의 차남으로 아명은 명길이며 손위 형들이 종친에 양자출계함에 따라 사동궁 사손이 되었다[2] 황실명 범, 호적명 승환, NH농협 근무[3] 황실명 백, 호적명 승은, 국기원 태권도 사범[4] 의친왕의 로노크 대학교 동기동창인 우사 김규식 박사의 손녀 김수옥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안중근, 김가진, 윤봉길, 안창호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후손들이 참여하고 있다. 백범 김구의 증손인 김용만 의원 당선인이 이 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5] 고종의 조졸(어려서 사망)한 자녀들 포함하여 5남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성인까지 생존한 고종의 자녀는 1남 순종, 2남 의친왕, 3남 영친왕, 4녀 덕혜옹주의 3남 1녀이다. 성인까지 생존한 자녀 기준으로 '차남'으로 표기하였다.[6] 음력으로는 8월 11일.[7] 손위로 첫번째 아들인 이수가 있었지만 조졸(어려서 사망)하여 사실상 장남으로 표기하였다. 여담으로 이곤이 40살을 훌쩍 넘겨서 본 막둥이인데 큰누나인 이양과의 나이차가 무려 17살 차이이다.[8] 둘째 이우운현궁으로, 셋째 이방은 소현세자파로, 넷째 이창은 은전군파로, 다섯째 이주인평대군파(대궁 사손)로 출계하였다.[9] 現 영휘원(永徽園,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소).[10] 구 황실의 가족장이었으나 국방부 의장대까지 동원되어 군악대와 운구를 그들이 했었으니 사실상 국가가 후원한 국민장이나 다름없었다.[11] 2005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이구 황세손의 사후양자로 정식 입적하였다.[12] #.[13] #.[14] #.[15] 본명 이상협. 당시 일반 회사원으로 오손도손 평범하게 잘 살아가고 있었다.[16] 나머지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문중은 이준 사동군 사손, 이원 황사손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주 먼 양녕대군, 효령대군, 화의군, 인평대군, 숭선군 등 여러 파로 갈라진 후손들 즉, 일반인 남남과 다름없는 무늬만 왕족 출신인 셈이다.[17] 여담으로 아버지 이곤도 사망 전까지 민주당 초급행정특보위원, 민주정의당 특임행정위원으로 활동했다.[18] 한 종교단체에 의해 대한제국 '여황제'로 등극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황실 후손들이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어느 곳에서도 인정하지 않은 여황제 등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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