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11:30:39

보코 하람

<colcolor=#fff><colbgcolor=#000> 보코 하람
جماعة أهل السنة للدعوة والجهاد
파일:보코 하람 엠블럼.png
창설일 2002년
규모 불명
지도자 아부 우마이마타
참전 보코 하람 반란
말리 내전
위치 나이지리아 카두나주 치쿤[1]

1. 개요2. 상세3. 악명4. 역사5. 타 테러 단체와의 교류6. 나이지리아군과의 내전 양상7. 연합군 참전과 전쟁의 지속8. 막장인 현지 상황9.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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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oko Haram

나이지리아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2. 상세

파일:external/venturesafrica.com/Boko-Haram.jpg
보코 하람 전투원
2002년나이지리아 북부에서 조직되어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자세한 조직 구성이나 간부 등에 대하여 알려진 게 별로 없다. 병력은 7,000명에서 10,000명으로 추정한다. 공식적인 명칭은 자마아투 아흘릿 순나 리다와티 왈지하드[2]로, 풀이하면 '선지자의 가르침과 지하드의 선전에 헌신하는 백성들'이다. 보코는 하우사어[3]라틴 문자, 넓게는 서양식 교육을 의미하고 하람은 아랍어로 죄·부정한 것[4]이라는 의미로, 보코 하람은 "서양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뜻이 된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서양 및 다른 대륙의 교육과 비이슬람 교육, 타 종교 문화들은 철저히 거부한다. 또한 이들은 서구 교육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근대 과학이나 기술도 반대한다. 실제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서 보코 하람의 실태를 취재한 기사에 나오는 친정부 성향의 무슬림 청년 1명은 "보코 하람은 서구적인 걸 거부한다 하지만, 그러면 총, 볼펜은 왜 쓰는지 모르겠다"며 비아냥거렸다.

이들에 대해 알아보려면 이 동영상(한글 자막 있음)을 참고할 것. 정작 보코 하람이 이상으로 여기는 이슬람 제국동로마 제국페르시아의 문화와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데다 고대 그리스 학문 서적을 열심히 번역해서 잘만 써먹었고 중국이나 인도와도 열심히 교역하고 다녔다는 건 애써 외면한다. 애초에 무함마드도 '서방'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인 총독과 서신, 선물을 주고받고 이란의 군사 전략을 적극 수용하는 등 외부의 것을 배척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기존의 것만 추구했다면 그 적은 병력으로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3. 악명

소말리아에 있는 알샤바브와 더불어 아프리카의 '탈레반'이라고 불린다. 사실 이놈들의 행보를 보면 탈레반보단 알카에다, 다에쉬와 더 가까우며 후술하겠지만 실제로도 저 둘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 교류를 나누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오토바이 부대를 이용해 테러나 만행을 저지르거나 폭탄 테러를 저지른 뒤 정부군을 피해 치고 빠지는 전술을 썼으나 테러와 함께 아예 특정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거기다 출산 중인 임산부를 습격해 산모와 태아를 동시에 살해하거나 10살 정도의 여자아이까지 자폭 테러 공격에 투입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점령 지역에서 후퇴할 때는 자기들이 납치해 강제로 아내로 삼은 여자들이 자기네가 떠나면 원래의 비무슬림 가족들과 재결합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강제 납치한 성노리개 아내들을 학살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쓰레기 같은 모습도 보여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기사[5]

주된 공격 장소는 경찰서, 관공서, 병원, 성당[6]과 각종 공공시설들, 서구식 교육을 가르치는 모든 학교와 현대적, 선진적 시설들이다.[7]
파일:external/649041b125d7e55dd99ddf7209c5ab8701293ab0ab8654a1ed036b97dfaa4856.jpg
초대 지도자이자 창사자인 무함마드 유수프

2009년 BBC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정부군에 의해 사살당한 보코 하람의 창시자이자 초대 지도자 무함마드 유수프(Mohammed yusuf, 1970~2009)는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에 반대했다. 정작 쿠란에는 지구가 '타조알'마냥 큼지막하다고 나온다. 애초에 중세 이슬람 천문학 자체가 고대 그리스 천문학의 지구 구형설에 바탕을 둔 것이다. 자칭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의 역사에 대해 무식한 것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나이지리아는 보코 하람에 의해 극심한 테러와 내전 상태에 시달리고 있다. 북부의 이슬람 다수 지역에서 샤리아 통치를 강요하고 있기에 이교도 및 온건파 무슬림들에게도 테러리즘으로 치부당하지만, 압도적인 세력을 자랑하며 여러 내전 및 복잡한 문제로 엉망인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쉽사리 제압하지 못하였다.

4. 역사

보코 하람의 태동은 나이지리아 국내사(史)상에선 논쟁거리다. 비단 국내가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여기 주목하는 이들은 많다. 일단 보코 하람과 유형을 같이하는 집단의 탄생 자체가 일정 이상 근현대화를 달성한 아랍권+아프리카 국가들간엔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당 국가 전체가 보코 하람과 같은 극악의 끝을 달리는 무장 조직, 테러 단체와 21세기까지 내전을 빚어오는지의 여부를 관찰하면 아프리카가 아닌 아라비아 반도(AQAP), 남아시아(탈레반)까지 범주를 확장해도 과반수는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 이 같은 역사적 굴곡이 나이지리아와 소수 국가의 특수한, 최소 보통은 아닌 사정임을 알게 된다. 보코 하람의 난이 거의 진압된 다음에도 초기 보코 하람을 비판하는 데 미온적이거나, 보코 하람에 동정적인 여론의 존재, 적어도 조기수습이 가능했던 평범한 갈등이 겉잡지 못하게 확대된 결과에 비탄하는 학계나 일각의 시선을 보면, 조직의 악마적 실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관찰에 주의할 부분은 창설 시기와 활동 개시 시점의 7년 간극이 있다는 점이고, 이 시간은 보코 하람에 무장 단체로 노선 변화가 야기되기까지의 사실상의 발전 기간. 그 기간이 7년이나 된다는 사실부터 보코 하람의 본질적 측면이 후기처럼 테러 단체의 요소를 포함했는지의 여부완 별개로 설립 시점, 목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는 보코 하람의 탄생에 외부 요인의 존재, 나이지리아 정부의 귀책 사유를 의미한다.

오사마 빈 라덴2001년 9.11 테러로 달성한, 서방에 적대적이거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시선으론 엄청난 위업일 성과에 고무돼 보코 하람은 자연 발생했다. 초기엔 지역 정당의 색채가 짙었다. 1994년부터 남서부 해안 기독교 우세 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둔 집권 세력의 정책 전반(친서구, 남서부, 세속화, 현대화)의 반발기조를, 특히 서구화 교육의 반대 정신을 근간 삼고 이슬람 회귀주의적 기치를 내세웠는데 이는 후진국-개도국의 과도기 과정에 어느 나라건 누적되는 개발독재, 양극화, 지역 갈등, 도농 격차등 여러 이유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불만 여론과 결합해 하층민,소외계층을 중심으로 해 반동세력의 정치적 분출구가 되고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보르노(+요베, 바우치, 카노) 주에서 순식간에 정치 세력화된 이 단체가 대번에 중앙정부의 시선을 안 끌기란 불가능했다.

한 번에 알 수 있듯 해안-내륙, 도농 격차, 세속-종교, 현대-전통 등 전형적인 대립 구도가 형성되자, 이 같은 현상이 북동부 분리주의 운동으로 비화될 걸 우려한 정부의 압박이 후속하고 몇 년 간의 정치, 물리적 긴장 관계가 지속된다. 2008년부터 그 긴장이 다른 양상으로 흐르기 시작하는데, 보코 하람 하부조직이 무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진위가 불투명한 혐의가 추가되며 '2009년 보코 하람 폭동'으로 갈등이 폭발한다. 해당 사태에 있어서 부수적 피해를 차치한다면 오랜 내전의 원인 제공자는 사태 발생의 단초를 제공하고 초동 대처에 실패한 치안군과 중앙 정부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009년 보코 하람 폭동은 치안유지군이 도로교통법에 따라 보코 하람의 재산을 압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유수프를 포함한 보코 하람 당원들은 장례식 도중이었고, 압수 재산은 공동묘지로 운구 중인 상여 행렬에 사용되던 오토바이 130여 대였다. 이 과정에 보코 하람측이 불복하며 17인의 사상자를 내고, 당원측은 보복으로 경찰을 습격해 상응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 폭동은 2009년 7월 26일~29일에 이르기까지 700여 명의 인명피해와 300명 가량의 부상자가 발생한 끝에 상기 보코 하람 지도자 무함마드 유수프의 처형으로 사태 종결됐다. 이는 중복 강조가 부족한 중요한 사건으로, 보코 하람 내전의 시작이자 나이지리아 현대사의 분기점이다.
파일:muhammdyusuf.jpg 파일:bokoharammosque.jpg
붙잡힌 유수프 유수프 생전 강의하던 모스크의 잔해
유수프는 진압 과정상 사망이 아니라 체포됐는데, 폭동을 진압하는 건 물론이고 보코 하람 운동 자체를 종결 가능한 천재일우의 기회로 군측은 보았을 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유수프를 재판 없이 처형했다. # 우두머리를 잃은 정치 세력의 자연 해체를 예상했겠지만, 이는 기념비적인 대응 실패로 기록된다. 보코 하람 세력의 중추 기반은 종교 시설이 겸하는 교육 기관으로, 공교육 혜택 밖에서 공립 교육을 대체하는 기능을 하던 느슨한 조직이 자금, 물자, 조직, 훈련을 외부로부터 이식받은 타 군벌, 무장 세력, 준 군사조직과 달리 비체계적이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민간에 융합돼 전통적으로 존재하던 조직은 리더가 제거돼서 해체될 뚜렷한 강령과 위계구조가 없었고 공교육 확대 과정에서 서구화된 세속주의 교육이 지역 기반 이슬람 전통 교육의 영역을 침범하는 데 반발하던 상당히 소심한 집단이었다는 사실에서 부각된다.

단체의 생성부터 소멸에 준하기까지 20년이 안 된 단체의 짧은 약력은 보코 하람의 초기 설립자들의 생존과 증언을 보장하고 있고 이들은 종교 기관, 교육 시설, 고아원 등 민완동계가 2002년 보코 하람으로 거듭나고, 다시 거기서 변질이 감지된 시기는 2005년부터였다고 술회하곤 한다. 신빙성을 담보할 순 없지만 이들은 초기 보코 하람 지도자들을 대상한 정부의 요인 암살도 증언하고 있다. 때문에 보코 하람의 주도권이 05년 이래 집단 내 과격파로 귀속된 상태에서 파벌의 실질 수장인 유수프의 처형은 타 창설자들이 즉각 손쓰기 어려운 권력 공백을 초래했고, 그런 공백을 차지한 자신들이 막지 못한 괴인이 아부바카르 셰카우였다는 진술이다.

나이지리아 정부도 10년 내전의 처참한 상흔 때문인지 자신들의 대응 실패를 부정하지 않는다. 2015년 이후 나이지리아-차드간 국경지대로 밀려난 보코 하람은 목적 있는 투쟁보단 생존을 위한 도적으로 변했고, 자신들이 자행한 전쟁범죄의 책임+처벌에 대한 공포가 활동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대원들은 서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곤 한다. 이러한 사실을 의식해서인지 나이지리아 정부는 관용 정책으로 투항을 유도하고 있고, 이는 유효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허나 이와 별개로 보코 하람은 외부 지원, 마약 재배, 무장정파화와 같은 수단으로 존립 기반을 구축한 선배격 단체들과 달리 게릴라에 근접했다. 이렇듯 그 이념 전파와 모병창구, 조직 유지 중추가 되었던 낙후지역의 교육 시설이 민간과 밀접히 유착돼 있었던 것처럼 보코 하람의 난은 사실상 종식되었을지 모르나 보코 하람이 탄생했던 근간은 건재한다.

국제기관, 인권단체를 비롯한 서구 언론은 나이지리아 정부의 진압 과정상 무수히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 정확히 말하면 대규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비판을 반복하길 지속하고 있고, 여기 관해 나이지리아 정부나 학살 현장의 지역민들의 설명에서 보코 하람의 근간을 엿볼 수 있다. 학살 관련자를 취재하는 언론은 대개 주류라기보단 주류에 편입된 비주류에 가깝되, 그렇게 보도된 진압군과 자경단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입장은 일관성이 있다. 거기에는 그들만의 논리가 존재한다. 보코 하람 소탕의 주력은 나이지리아 정부군과 아프리카 연합군이되, 보코 하람 대원과 민간인을 판별할 여건이 출몰 지역 지역민이 아닌 이들에게는 갖춰져 있지 않다. 보코 하람 출몰 지역에서 이들의 보조 임무를 수행하는 세력이 분쟁 지역의 자경단으로, 이들의 역할은 보코 하람 대원을 은닉하는 대원의 가족, 보코 하람을 지원하는 옹호 세력을 단속하고 고발하는 것이다.

납치와 세뇌로 충원되는 부류 외에 보코 하람 대원의 상당수는 자진 입단이나 이념을 공유하는 친족들의 손에 반강제로 조직에 인도된 부류들로,[8] 이러한 전투원들을 제외하고도 보코 하람의 조직원들과 조직외 지원 세력은 촌락 공동체와 지역 사회에 혼재 상태로 은닉해있던 실정이다. 보코 하람에 친지나 가족을 둔 지역민은 보코 하람에 적대적이기 어렵듯 이들은 보코 하람을 근절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고, 이 점에서 게릴라는 '인민이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란 마오쩌둥의 변이 들어맞는 말이다. 학살 지역 지역민의 자경 활동과 정부군에 협조하는 이슬람 지식인은 보코 하람의 잔학상에 이탈한 민심의 방증이고[9] 이들의 입장은 내전상 부수적인 민간인 피해는 수반이 자연스러운 불가피한 것이며 대개의 학살 희생자들은, 즉, 가족의 일원이 보코 하람에 가담해서 백안시, 경원시되던 지역 사회 구성원들보다도 한 발 더 나가 선을 넘어 보코 하람에 봉사했던 부역자들이라는 내용이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해명. 그렇기 때문에 보코 하람의 동조, 지지, 비호, 가담 세력이 지역 사회로부터 구별해내기 난해할 뿐더러, 가능하더라도 처단이 어렵단 것이다. 이 같은 진술은 보코 하람의 근간을 드러내고 있다.

2019년 하반기에 이르러 나이지리아 군경은 보코 하람의 지역 기반 북서부 4개주를 중심, 종교 교육 기관 연쇄급습을 하루 걸러 단행하였다. #, #, #, #, # 이를 출구 전략으로 해석할 경우 10년 내전의 종식이 목전에 있다는 의미겠으나,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구금된 상태로 고문+세뇌 교육을 받던 건당 수백 명 단위 학생들은 또한 보코 하람이 왜 존재하고 유지될 수 있었으며, 중앙정부를 향한 살아있는 적개심은 향후의 가능성마저 죽었다고 할 수 없는 증거다.

2020년 6월 10일에 나이지리아 북동부에서 보코 하람 소속으로 보이는 무장대원들이 주민 69명을 살해했다. #

7월 8일에 나이지리아 북동부의 마이두구리 시에서 보코 하람의 공격으로 군인 23명이 사망했다. # 7월 13일에 보코 하람이 마이두구리 시 남서쪽에서 10km 떨어진 곳에서 군 호송차를 공격해 군인 10명이 사망했다. #

2021년 8월 5일에 차드 호 인근에서 차드 군인 28명이 보코 하람에 의한 공격으로 사망했다. #

5. 타 테러 단체와의 교류

2014년 7월에 ISIL과의 동맹을 선포했다.

2014년 8월 25일. '이슬람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칼리프 국가를 세운 것은 이라크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에 이어 2번째다. 이것이 ISIL에 대한 배신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했으나, 2015년 3월 보코 하람의 지도자가 ISIL에 충성 맹세를 하면서 둘의 관계가 분명해졌다.

보코 하람 지도자 아부바카르 셰카우는 8월 24일(현지 시간) 공개한 52분 분량의 영상에서 "그워자[10]에서 우리 형제에 승리를 안겨준 알라 덕분에 이 지역이 이슬람 칼리프 국가의 영토 일부가 됐다"고 밝혔다. 셰카우는 "그워자는 이제 나이지리아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곳"이라며 "알라의 은총이 오랫동안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4월 26일 BBC 아프리카판이 현지 시간으로 보코 하람이 IS에 충성 맹세를 한 뒤, '이슬람 국가 서아프리카주(The Islamic State's West Africa Province (ISWAP))'[11]곧바로 사헬 내전에서 활약하고있다.

알 카에다와 어중간한 사이라 IS와의 교류가 없는 주장도 있으나, 선전물도 IS의 방식을 모방해서 공개해오고 있으며, 사진을 공개할 때도 'IS 서아프리카 주'라는 명칭으로만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시리아에 본사를 둔 IS의 관영 종군 선전매체 아마크 통신과도 활발하게 접촉하는지, 가끔 아마크가 보도한 영상을 보면 나이지리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후 IS 서아프리카 주의 지도자는 아부 무사브 알 바르나위로 바뀌었는데, 무려 IS 본부에서 직접 셰카우를 해임시키고 바르나위를 앉힌 것이다. 아부 무사브 알 바르나위는 셰카우와는 달리 무슬림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아부바카르 셰카우가 쿠데타라고 격렬히 반발하며 조직원들의 반절을 끌고 나가 분열되어 있는 상태. IS 지휘부에서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은 투쟁 방식의 변화 필요성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IS 지휘부가 존재하는 이라크는 60%가 시아파, 시리아는 20%가 시아-알라위이고, 이들은 모두 중앙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는 시아파와 온건 수니파를 집중 공격하여 '종파와 상관 없이 모두가 무슬림'이라는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가장 유효한 전략이다. IS의 선전물을 보면 배교자(Apostate)[12]를 죽이는 것이 불신자(Unbeliever)[13]를 죽이는 것보다 우선한다고 하는데, 바로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사정이 아주 다르다. 기껏해야 기독교도가 10%를 넘지 못하는 시리아와 이라크와는 달리 기독교도가 50%를 차지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존재하며, 무슬림인 모하무두 부하리가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정부의 요직은 기독교 신자가 장악하여 이들에 대한 투쟁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IS의 눈에는 기독교인들과 그들의 군대인 나이지리아군을 공격해야 할 참에, 아부바카르 셰카우는 무슬림들을 테러하고 이슬람 주류 국가인 니제르차드[14]에서 어그로를 끌다가 오히려 된통 두들겨맞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IS의 해외 지파 중 유의미하게 세력을 형성한 곳은 리비아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인데 리비아 내 IS는 절멸 직전이며, 아프간은 몇몇 국경지대 마을만을 점유하고 있을 뿐이니, 나이지리아를 상실한다면 글로벌 이슬람 제국의 모토에 큰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셰카우가 반발하자 아부 무사브 알 바르나위는 IS 주간지 알-나바(Al-Naba)와의 인터뷰에서 '셰카우 아래의 보코 하람은 잘못된 대상을 공격했고, 그 사이에 진정한 적은 더 강해졌다' 라고 밝힌 것에는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6. 나이지리아군과의 내전 양상

파일:external/cdn1.vox-cdn.com/Nigeria_Boko_Haram_attacks.jpg 파일:/system/photos/2015/9/22/1557697/article.jpg
보코 하람 주요 테러 지역 지도(2009~현재).
보코 하람의 탄생지인 동북부 지역(보르노 주)과 특히 북부 지방에서도 기독교 신자가 많은 카노(Kano) 시가 이들의 주요 공격 타겟이다.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노획한 보코 하람 깃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본격적인 테러와 내전 활동은 2009년부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현재까지 발생한 난민만 100만 명 이상으로 집계된다.

2010년대 들어서 그 악랄한 테러와 학살 행각이 더욱 심해졌다. 201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기독교 남부 지역과 무슬림 북부 지역 사이에 위치한 도시 조스에서 보코 하람의 테러 공격으로 32명이 죽고 74명이 부상당했다. 2011년 크리스마스에도 수도 아부자의 가톨릭 성당들에 연쇄 테러를 벌여 27명을 죽였으며, 조스와 북부 요베 주 성당들에서도 폭탄이 잇따라 터져 경찰이 죽고,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13년 5월에는 경찰복으로 위장한 보코 하람 조직원들이 지프 트럭 3대에 나눠타고 보르노 주 바마 마을을 공격하였다. 이들이 경찰서를 비롯해서 나이지리아 육군 초소, 감옥, 교회 등을 습격하여 55명이 사망하고, 105명의 수감자가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보르노 지방에 대해 비상사태와 통금을 선포하였고, 나이지리아 국군을 파견하여 폭격을 하였다. 그 결과 2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2014년 3월 2일에도 북서부 마이두구리와 인근 마을에서 두 차례 차량 폭탄 테러 등이 발생해 최소 90명이 숨졌다.

조직이 결성된 2000년대 초에서 2013년까지만 해도 이들이 학살한 사망자가 무려 10,000여 명 수준, 2014년 1월부터 3월까지만 집계해도 각종 폭탄 및 총기 테러로 공식 사망자만 200명이 넘을 정도이다. 사실 나이지리아 정부에서 줄여 발표하는 공식 통계[15]가 그나마 이 정도라는 거고, 국제 엠네스티는 2014년 3월까지만 봐도 사망자가 1,5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2014년 한해 발생한 사상자는 또 다시 10,000명 이상이다.

한국에서 이들이 알려진 건, 지난 2013년 2월 북한의사 3명을 참수한 사건이다. 김선일처럼 그저 외국인이라고 인질로 잡은 것도 아니고 그냥 살해한 것.
파일:external/i.telegraph.co.uk/Boko-Haram-5_2909162b.jpg
보코 하람에게 납치당해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당하고 인질 겸 노예가 된 여학생들
2014년에는 서구식 교육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학교를 습격해 여학생 276명을 납치해서 강제로 결혼시켰다. 아마 보코하람의 테러 중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일 것이다. 이슬람의 교리 상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 성행위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형식만 빌렸을 뿐 실상은 이렇다. # # 그리고 새로 자신들이 공개한 동영상에서는 아예 대놓고 (노예로) "시장에 내다 팔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하고 있다. # 납치된 여학생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으로 강제로 개종시키는 만행도 저질렀다. 납치된 여학생이 이슬람 경전 쿠란을 읽는 동영상이 입수되기도 했으며, 내용은 수감자가 된 조직원과 여학생들을 교환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여학생들의 행방은 이후 묘연하다가, 납치된 지 2년이 지나서야 15명의 소녀들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영상을 정부에 보내 협상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가족들에겐 숨기고 있다가 CNN에서 가족들에게 딸이 살아있단 희망을 주기 위해 공개함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젠 나이지리아만이 아닌 니제르 같은 이웃 나라에서도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니제르에서 비이슬람 지역에 대한 폭탄 테러가 벌어지면서 보코 하람이 용의자로 떠오르는 중이다.

아무 근거도 정당성도 없는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막장 행각들, 각종 테러, 기독교도 여학생 납치 등 반인륜적인 범죄를 수도 없이 저지르고 다녀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은 국제 테러 단체이자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다수의 대원이 투항하는 등 기세가 한 풀 꺾여가는 모습이 보였고, 그러던 중에 9월 말에는 지도자가 사살되었다고 보도되었으나, 2014년 10월 2일 사살되었다던 아부바카르 셰카우가 자기가 멀쩡히 살아있음을 동영상 인증했다. 36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셰카우는 "나는 여기에 살아있다. 나는 알라가 사망한 후에야 숨을 거둘 것", "내 삶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나를 죽이지 못할 것", "만일 너희가 나를 죽이더라도 이슬람 통치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코란을 가르치며 여전히 이슬람 국가에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두 개의 영혼이 있냐고 묻지만 나는 하나의 영혼만 있다" 등의 정신승리적인 소리만 늘어놓았다.

2014년 6월에는 북부 보르노 주 쿰마브자 마을에서 부녀자와 여자아이 60명을 납치하고, 30명의 성인 남성을 살해하였다. 이 시기까지 나이지리아에서 보코 하람에 의해 불타고 파괴된 기독교 교회성당185곳에 달했다.

10월 3일에는 동영상을 통해 실종된 나이지리아인 공군 조종사 참수 장면과 불에 탄 공군기 기체 일부를 보여줬다. 지난 9월 11일 북동부 욜라에서 보코 하람 폭격 임무를 갖고 이륙한 알파 제트기와 조종사 2명이 실종됐는데, 참수당한 조종사들이 이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은 셰카우의 사망설에도 그를 죽인 자에 대해 7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동영상은 AP 통신이 과거와 같이 동일한 채널을 이용해 입수했다.

셰카우는 이번 동영상 속에서 나이지리아군 항공기 10대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다. #

2014년 말에도 보코 하람을 규탄한 이슬람 지도자들이나 시아파 세력, 나이지리아의 무슬림 형제단들에게까지 테러와 살육을 저지르는 중이다.

2014년 11월 이후에는 나이지리아 뿐만이 아니라 카메룬에도 세력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카메룬 정부군과 전투를 치르기도 한다. 기사

2014년 이후 2015년 1월 현재까지 나이지리아 북동부를 내전으로 무차별 파괴하는 중이다. 16개의 도시와 마을이 보코 하람의 공격에 파괴되고, 추가로 1천여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르노 주 바가 시를 폭발물과 화염병으로 무차별 공격했으며, 보코 하람 때문에 추가로 발생한 난민도 무려 2만여 명 이상 발생했다. 이후에도 나이지리아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며 가옥 3700채 이상을 파괴했다. 기사

보코 하람에 의한 어린이 희생자 40%가 자살 폭탄에 대한 것이다. #

2020년 12월 13일 나이지리아 북서부 카트시나 주 모처의 학교가 기습당한다, 이 기습의 결과 무장괴한에게 600명 중 300명 가량의 학생이 납치당했고 하루 뒤 보코하람은 이 습격의 배후를 자처한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는 이런 보코 하람의 주장에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유인 즉슨 보코 하람은 그 세력이 전만 못할 뿐더러 습격이 발생한 지역은 그렇게 열화된 조직의 세력권과 상당한 지리적 격차가 있기 때문으로, 나이지리아 정부의 저조한 지역장악력이 드러남과 동시에 분석가들은 셰카우의 전술이 고도화된게 아니라면 보코 하람마저 근절치 못한 상태에서 신진 무장세력이 발호한 설상가상의 상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7. 연합군 참전과 전쟁의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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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코 하람 소탕에 동참한 카메룬군 2015년 3월 15일, 나이지리아 북동부 아다마와 주에서 정부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보코 하람 소속 T-55 주력전차
2015년 들어서도 나이지리아와 카메룬 정부군과의 격전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군은 보코 하람 100여 명을 사살하였으며, 이들의 행패를 보다못한 아프리카 연합 또한 보코 하람 토벌을 위해 병력 7,500명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자 보코 하람 지도자인 아부바카르 셰카우는 영상에서 이렇게 응답했다.
"(연합군이) 7천 명으로 되겠나? 7백만 명을 보내라. 그것도 적다. 우리가 하나하나 상대해 주마."
한편 차드군은 전투 끝에 나이지리아 국경 도시에서 보코 하람을 몰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기사 그동안 내전에 시달린 탓에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도요타 전쟁으로 용맹을 떨친 차드군이라면 부패한 나이지리아 군대보다 기대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당연히 .[16]

2월 초부터는 나이지리아 정부군도 반격에 성공해 감보루 등 4개 마을을 보코 하람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하루 앞서, 곰베 주에서는 보코 하람의 2차례 테러로 5명이 사망했다.

2월 2일, 나이지리아 현 대통령인 굿럭 조나단의 재선을 위한 유세 연설이 끝나고 대통령이 나간 지 불과 3분 후에 집회장 주차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 조나단 대통령은 구사일생으로 무사했다고 한다. 당국자들은 이번 사건도 보코 하람의 짓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도 위에 나온, 여성을 이용한 악랄한 자폭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여성 테러범 2명을 포함해 2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한 이 시도는 나이지리아 전체에 굉장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조나단 대통령은 분노하여 반드시 보코 하람을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했다.

2월 8일에는 아프리카 연합의 개입에 대한 도발로 카메룬의 북부 마을 3곳을 공격해 30여 명을 납치한 뒤 그 중 12명을 처형했으며, 다음날에는 이웃나라 니제르의 국경지대 교도소를 공격하고 정부 건물에 차량 폭탄 테러도 감행했다. 기사

최근에는 결국 보코 하람마저도 IS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다른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게 된 것이다.

2월 13일 새벽, 보코 하람은 차드 호수를 배로 건너 차드의 응구부아 마을을 습격하여 7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참조 차드 호숫가에 있던 니제르 측 마을에서도 보코 하람의 습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2월 17일, 차드군은 나이지리아 디크와 전투에서 보코 하람 117명을 사살하고, 자국 군인 2명이 사상했다고 발표했다. 2월 24일에 차드군은 보코 하람 200여 명을 사살하였고, 이 과정에서 차드군은 1명의 사망자와 3명의 부상자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기사 차드의 이드리스 데비 대통령은 보코 하람의 지도자 셰카우가 숨어있는 장소를 알고 있으며, 항복하지 않으면 쓸어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기사 3월 3일에는 차드군이 나이지리아의 디크와를 완전히 탈환하였다. 차드군에서는 37명의 부상자와 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기사

2015년 3월에는 카메룬과 인접한 나이지리아 감보루에 18일부터 장갑차와 오토바이에 탑승한 보코 하람 대원들이 출현해 주민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18일에 8명, 19일에 3명 등 총 11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3월 20일(현지 시각)에는 차드군에 의해서 2개월 전 보코 하람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10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되어 논란이 되었다. 기사

3월 28일에는 나이지리아 대통령 선거 방해를 위해 대대적 테러를 감행했고, 40여 명을 전기톱 참수했다고 한다. 4월 1일에는 차드군에 대한 반격으로 보르노 주 말람 파토리 마을 부근에서 전투를 벌여 2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4월, 보코 하람의 조직적 선거 방해에도 불구하고 나이지리아에서는 군 장성 출신의 모하무두 부하리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반부패 여론과 함께 보코 하람과의 내전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조나단 정권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부하리 대통령이 군 장성 출신인 만큼 보코 하람에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말~5월 초에 나이지리아군이 # 여러 근거지를 급습해 보코 하람 조직원들을 사살하고 7,000명이 넘는 납치 여성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중 200명 넘게 임신 중이라고 한다. 한편 나이지리아 정부군의 단독 작전이 아닌 미영 특수부대도 투입된 협력 작전이라는 소문도 있다.

2015년 현재 보코 하람의 병력은 최대 9,000명으로 추정된다.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 알 카에다, IS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고,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이들이 점령한 지역은 벨기에 영토 면적에 육박한다.

2015년 5월 29일에 취임한 모하무두 부하리 대통령은 "조나단 전 대통령의 노선을 이어받아 반드시 보코 하람을 소탕하겠다"고 선언했다. 부하리 대통령은 군 장성 출신이라, 광신도 집단인 보코 하람에 대해서 강경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부하리 대통령의 선언을 시작으로 나이지리아 정부는 보코 하람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을 시작했다.

2015년 7월 4일, 나이지리아 동북부 자바르마리 마을의 주차장에서 여성 6명을 이용해 또 다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 어린이군인을 포함한 희생자 55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다. 경찰은 이후 사건 현장 주변에 설치된 급조 폭발물을 발견하고 이를 해체했다고 한다. 기사 부하리 대통령은 비인간적이자 야만적인 악행이라고 비난하며 보코 하람 소탕에 나섰다.

2015년 9월 20일 정말 지치지도 않는지 마이두구리에서 또 다시 폭탄 테러를 감행, 최소 54명이 숨졌다. 기사

2015년 말까지만 집계해도, 2015년이 시작되고서부터 또 다시 3,500명의 사람들이 보코 하람과의 전쟁과 학살통에 죽었다고 한다. 기사 AFP통신에 따르면 넷사넷 벨라이 앰네스티 아프리카 지부 조사국장은 2015년 9월경, 이날 "올해 들어 아직 300일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보코 하람에 의한 희생자 수는 3,500명을 넘어섰다"며 "관계국 정부들은 보코 하람의 영향권에 있는 지역의 시민 보호를 위해 필요한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희생자들은 보코 하람과의 전쟁 중인 나이지리아카메룬, 차드, 니제르 출신 군인과 민간인들이었다.

일단은 현재 나이지리아 정부는 최근 보코 하람의 근거지로 알려진 자국 북동부 지역에서 보코 하람의 기지들을 파괴하고 지도자들을 체포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혀왔다. 또한 315명의 테러리스트를 구속 중이라고 전해왔다. 한편 번번히 가짜 사망설이 돌았던 보코 하람 지도자 아부바카르 셰카우가 이번에도 살아있다는 주장이 전해지기도 했다. 기사

현지 시간 10월 28일, 나이지리아군이 보코 하람에 억류됐던 338명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28일 나이지리아 정부군은 "전날 보코 하람 근거지인 북동부 삼비사 숲 인근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어 붙잡혀 있던 어린이 192명과 여성 138명을 비롯한 338명을 구출했다"고 밝혔다. 군은 또 인질 구출 과정에서 보코 하람 대원 30명을 사살하고 무기와 탄약을 압수했다고 말했다. 다만 구출 인원 가운데 지난해 4월 보르노 주 치복에서 납치된 여학생 200여명이 포함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지난 6년간 보코 하람의 만행과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250만명에 달한다. 관련 기사

현지 시간 12월 5일 차드 공화국 차드호에 속한 루루푸 섬에서 자폭 테러를 벌여 최소 3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80명이 다쳤다고 한다.

2016년 5월 13일(현지 시간)에 미 고위 관리는 보코 하람이 리비아의 IS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전사들을 보내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

2016년 6월 4일에 수백 명의 대원을 동원하여 나이지리아 접경 니제르 남동부의 국경도시 보소를 공격해 니제르 군인 30명과 나이지리아 병사 2명을 살해했다. 하지만 니제르군의 반격으로 역관광당해 후퇴했다. 같은 날 나이지라아 정부군과 친정부 민병대 합동테스크포스(JTF)가 보코 하람의 북동부 보르노 주 추군구두 기지를 급습해 교전을 벌였다. 이 공격으로 현장에 있던 지휘관 아미르 아부바카르 가나를 비롯한 보코 하람 대원 19명을 사살했다. 나이지리아 정부군은 보코 하람 캠프에서 급조폭발물(IED)을 제거하고 이들의 무기를 대량 수습했다.

2016년 6월 18일에 나이지리아 북동부 안다마와 주 굴라크시 쿠다 마을의 장례식장을 공격해 민간인 24명을 살해했다. 30일에는 카메룬의 자카나 타운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벌여 10여명이 숨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2016년 9월 16일에 니제르와 차드 정부는 합동 작전을 펼치면서 보코 하람 대원 30여 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

2016년 9월 25일에 최근 나이지리아군의 공습으로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보도됐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 하람의 지도자 아부바카르 셰카우가 유튜브 동영상에 직접 등장하였다. #

2년 6개월 만에 피랍 여학생 21명이 풀려났다. 이런 가운데 나이지리아 정부와 보코 하람 양측이 지금도 억류 생활을 하는 치복 여학생들과 나이지리아 교도소에 수감 중인 보코 하람 대원들 간 맞교환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

2016년 9월 30일에 UN에서는 보코 하람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수만 명이 심각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고 인명피해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

2016년 10월 13일에 보코 하람에 납치된 치복 여학생 218명 중 21명이 석방되었다. # 그런데 나이지리아군, 경찰이 난민촌서 보코 하람 피해 여성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왔다는 사실을 휴먼라이츠워치(HRW)가 밝혔다. #

2016년 11월 5일에 나이지리아군은 보코 하람에 납치된 여학생 1명을 구출했다. # 그리고 나이지리아 정부는 2016년 12월 14일부터 보코 하람에 납치된 민간인 1,800여 명을 구출했다고 밝혔다. # 보코 하람에 납치된 여학생 21명이 석방되었다. # 그리고 보코 하람에 의해 납치된 82명의 여학생들도 석방되었다. #

2016년 12월 11일에 나이지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마이두구리라는 도시에서 보코 하람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자폭 테러가 발생했다. #

12월 23일,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보코 하람의 최후 거점인 보르노 주 삼비사 숲을 탈환했다고 한다. 오후 1:35경 보코 하람 주둔 캠프를 접수하였으며, 14일부터 삼비사 숲에서 총 1,880명의 민간인을 구출했다. #

2017년 2월 17일, 나이지리아 정부군은 마이두구리 시 외곽에서 보코 하람과 맞붙으면서 11명이 사망했다. #

2017년 3월 16일, 카메룬군이 나이지리아 국경에서 보코 하람의 근거지를 공격하여 보코 하람이 붙잡고 있던 인질 5천 명을 구출하고, 보코 하람 대원 60명을 사살하고 21명을 생포했다. 구출된 인질 5,000명은 나이지리아 반키에 있는 난민 캠프로 보내졌다.

2017년 5월 6일 보코 하람이 차드군 기지를 기습하여 교전이 벌어졌는데, 차드군의 반격으로 격퇴된다. 이 교전에서 차드 군인 9명, 보코 하람 대원 40명이 사망했다.

2017년 6월 28일에 니제르의 난민 캠프에서 보코 하람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가 발생되었다. #

차드는 앞으로는 국경 밖 작전은 중단하기로 했다. #

8. 막장인 현지 상황

보코 하람도 문제지만 나이지리아 정부군도 가관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 2013년 11월 호 보도에 의하면 정부군이 증거도 없이 테러범 마을이라고 하며 멀쩡한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어 노약자, 아이들까지 학살한 후 약탈하는 만행을 벌이기까지 한다. 이러다보니 테러 단체도 밉지만 정부군은 더 증오하여 아예 테러 단체로 들어가서 정부군이 아무리 테러리스트들을 많이 사살해도 테러 단체들이 멀쩡하게 활동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는 상황이다. 애초에 나이지리아의 경찰과 군대가 가진 공권력은 심각하게 부패했는데, 지나치게 가혹한 법 집행과 전형적인 후진국식 부정부패로 악명이 높다.[17] 굳이 보코 하람 관련 문제가 아니라도 종종 범죄와 관련 없는 엉뚱한 사람들을 진압 과정 중에 사살하는 일이 빈번해 나이지리아 국내랑 국제 사회의 비난과 조소를 듣고 있다. 이러니 보코 하람이 제대로 진압될 리가 없다.

나이지리아의 열악한 치안 및 여러 복잡한 문제와 같이 주변 니제르 및 여러 나라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복잡한 문제 속에서 보코 하람은 점차 세력을 넓혀가고 있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나이지리아 정부군으로도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 미국이나 유럽도 엄청난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점차 주변 나라들에 이들 세력이 커지는 걸 우려하지만, 미국은 안 그래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도 뿌리 뽑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 잡는다고 나이지리아로 파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코 하람의 세력이 뿌리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은, 보코 하람이 무력을 동반하는 좀 더 극단적인 단체이긴 하지만 나이지리아 북부의 종교 근본주의 성향 역시 딱히 보코 하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나이지리아 북부의 주정부들은 중앙정부의 허락도 없이 독단적으로 샤리아를 전면 도입하였기에 중앙정부와 기독교인이 많은 나이지리아 남부 주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코 하람이 현대 의학을 금기시하는 정신 나간 정책 역시 지지를 받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병원비가 소득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싼 것으로 악명 높고, 특히 북부 건조지대 농민들은 병원비나 약값을 감당할 비용이 없다. 대부분은 아파도 민간 요법 정도나 써야 하는 상황에다 비싼 돈을 주고 병원에 가더라도 의료진과 병원 수준은 엉망진창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상심리를 가지고 서구 의학은 사탄의 발명품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다른 사람들이 치료받는 것도 방해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이슬람근본주의를 펼쳤음에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군이 너무나 부패하기에 결국 탈레반에게 참패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18]

물론 보코 하람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나이지리아, 카메룬, 니제르, 차드 등의 나라가 협력하여 전투에 나서고 있고 최근엔 아프리카 연합도 병력 지원에 동참해 보코 하람은 큰 피해를 입어 진격이 추춤해졌으며, 이전보다는 한결 나아진 상황이다. 게다가 나이지리아군은 보코 하람을 기습 공격하면서 셰카우가 치명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 물론 이들의 깽판이 줄어든 건 아니다.

9. 같이 보기

  • 나이지리아 이슬람 반란
  • 미드 SIX는 보코 하람에게 납치된 나이지리아 여학생들을 구출하려는 미국 DEVGRU 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 미드 씰팀의 시즌 3편에서 DEVGRU에게 또 털린다.
  • 블랙 팬서(영화)에서도 잠시 나와서 트찰라나키아에게 털린다. 정확히 작중에서 누구인지는 지칭되지는 않지만 배경이 이들의 본거지인 삼비사 숲이고, 여자들을 납치하여 히잡을 씌우고 노예로 삼으려고 데려가는 모습을 보면 우회적으로 지칭한 것이 확실하다.


[1] 수도 아부자 바로 위에 있다.[2] Jama’atu Ahlis Sunna Lidda’awati wal-Jihad.[3] 나이지리아 북부 및 니제르 남부에 걸쳐 쓰이는 하우사족 언어. 약 5,000만 명이 이 언어를 쓰는데 아프리카 동서부에서 꽤 많이 쓰인다.[4] '하람(حرم)'은 하렘과 그 어원이 같다.[5] 현지 피해자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보코 하람 대원들은 직접 아내들을 죽일 경우 그 여성과 함께 경건한 상태로 천국에서 다시 만나 재결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6] 일부러 미사예배를 드리는 시간만을 노려 폭탄을 터뜨려서 최대한 많은 신자들을 학살하는 잔혹한 수법을 저지른다.[7] 정작 자기들이 부하들을 가르치고 지휘통신을 하는 휴대폰-노트북과 더불어서 자신들의 무기자체가 서구 과학의 산물인데 잘만 운용하고 있다.[8] 보코 하람이 원성을 사는 소녀 납치도 목적이 테러의 일환, 대정부 도발이나 인신매매라기보단 대원의 결혼이다.[9] 보코 하람의 이슬람 전통 사상에 동조, 자진 입단했더니 입단자들의 자질을 선별, 탈락시 불구로 만들고 버린다던가, 전투원들이 지역 기반을 반복적으로 노략질하면서 공포 통치를 구사하는 도적패로 전락했다든지.[10] 나이지리아 북부 보르노주.[11] 아랍어로는 ولاية غرب إفريقيا‎)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보도하였다.[12] 샤하다(신앙 선언)를 하고 무슬림이 되었으나, 시아파의 교리를 받음으로써 이슬람 교단에서 이탈.[13] 기독교도를 지칭. 애초에 기독교인은 이슬람 신앙 선언을 한 적이 없으므로 배교자로 취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의 여호와, 즉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다른 신이 아닌 하나의 같은 신을 다르게 부르는 것 뿐이다.[14] 종교 구성이 나이지리아와 비슷하게 북부 52%는 무슬림, 남부 43%는 기독교인인데 정치의 구심점은 무슬림이다.[15] 나이지리아 정부의 보코 하람 관련 사상자 통계는 과거 굿럭 조나단 대통령 정권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할 정도로 지나치게 축소해서 발표한다고 악명이 높았다. 오히려 해외의 사상자 집계가 훨씬 정확하다.[16] 차드는 국민 소득이 1,000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며 국민들의 대다수가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이기에 외화 한 푼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 판에 아프리카에서는 꽤나 돈이 많다는 나이지리아가 보코 하람 토벌을 요청하니 얼씨구나 하고 참여할 수밖에. 외국 군대의 힘을 빌리는 거니 당연히 경제적 보답이 뒤따를 것이고, 나이지리아 정도면 나름 경제적 보답을 잘 해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17] 심지어 나이지리아는 다른 나라들에서 존경의 상징이 되는 소방관조차 뇌물 없이는 안 움직이고, 화재 현장에서 화재 진압보다 화재 현장의 물건을 멋대로 가져가는 도둑질하는 데 더 신경 쓴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사실 나이지리아 공권력과 공공기관이 이렇게 심각하게 부패하게 된 것은 나이지리아가 처한 심각한 경제난에 있다. 정부가 경제난으로 공무원에 제대로 된 급여를 주지 못하니 공무원들간에 부정부패가 만연해져서 나중에는 답이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것이다.[18] 그나마 제대로 된 중앙정부가 없으며 모든 민족을 아우르는 사상과 역사가 없어 단일된 국가를 세워 보지 못했던 아프간과 달리 나이지리아는 최소한 중앙정부가 존재하고, 연방제 국가라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살다보니 억지로 섞여서 군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