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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재해리스 1세 Jaehaerys I Targaryen | |
이름 | 재해리스[1] 타르가르옌 1세 (Jaehaerys I Targaryen) |
가문 | 타르가르옌 가문 |
생몰년 | AC 34 ~ AC 103 |
재위 | AC 48 ~ AC 103 |
부모 | 아버지 아에니스 1세, 어머니 알리사 벨라리온 |
형제 | 라에나 타르가르옌, 아에곤 타르가르옌, 비세리스 타르가르옌, 알리산느 타르가르옌, 바엘라 타르가르옌 |
배우자 | 알리산느 타르가르옌 |
자식 | 아에곤, 대너리스, 아에몬, 바엘론, 알리사, 마에겔, 바에곤, 다엘라, 사에라, 비세라, 가에몬, 발레리온, 가엘 |
별명 | 조정왕 (The Concliator) 늙은 왕 (The Old King) 현명한 왕 (The Wise) |
드래곤 | 버미토르 |
배우 | 마이클 카터[2] 《하우스 오브 드래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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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과 피 | 하우스 오브 드래곤 |
타르가르옌 왕조의 4대 왕. 아에니스 1세와 알리사 벨라리온의 3남으로, 숙부인 마에고르 1세가 반란 당시에 급사하고 나서 즉위했다.
전대 국왕이 폭군으로 유명했다면 이쪽은 타르가르옌 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유명하며, 본인의 할아버지 아에곤 1세와 함께 칠왕국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손꼽힌다. 온화한 성품이었고 조정왕이라는 별명답게 모든 것을 최대한 외교적,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서도 분노하면 단호해지기도 하는 성격이었다. 문무를 겸비했고 69세까지 장수하여[3] 55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칠왕국을 훌륭하게 통치하며, 행정과 사법 제도를 정비해 아에곤 1세가 시작한 칠왕국의 통합을 완료시키고 수많은 업적을 쌓은 왕이다.[4] 그야말로 칠왕국판 세종대왕.
여동생이자 왕비인 알리산느 타르가르옌도 재해리스와 마찬가지로 지혜롭기로 유명했으며 남편의 제일가는 상담자였고, 당시 그 흔한 정부 하나 들이지 않고[5] 알리산느에게만 충실하며 6남 7녀라는 많은 자식들을 낳았고 그만큼 많은 손주들과 증손주들을 남겼다.[6]
덤으로 생일이 9월 20일인데 작가인 조지 R.R. 마틴의 생일과 동일하다.
2. 생애
2.1. 왕자 시절과 즉위
아에니스 1세와 알리사 벨라리온 왕비의 넷째이자 삼남으로 태어났으나, 형들인 아에곤과 비세리스는 전부 숙부 마에고르 1세에게 살해당했다.[7] 재해리스 본인은 마에고르 1세의 재위 내내 드래곤스톤에서 어머니와 여동생 알리산느 타르가르옌과 함께 인질로 갇혀 있다가, 가장 위협적인 감시자 비세니아 왕대비가 죽자 탈출해서 마에고르를 피해 바라테온 가문의 스톰즈 엔드에서 숨어 살았다.
그동안 마에고르의 계속된 폭정에 질려 있었던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서 왕을 끌어 내리고 재해리스를 대신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다. 바라테온 가문의 로가르 바라테온이 재해리스에게 호국경으로 임명되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라에나 타르가르옌은 드림파이어를 타고 막내동생에게 도주했으며, 마에고르의 최측근이었던 수관 에드웰 켈티가르,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킹스가드 두명마저도 도주하고, 특히 선박대신 및 제독 다에몬 벨라리온은 함대까지 빼돌려 재해리스에게 가담했다. 나중에 가서는 라니스터 가문, 티렐 가문, 아린 가문같은 대가문들까지도 대놓고 재해리스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결국 마에고르 1세가 자살로 추측되는 죽음을 맞이한 뒤, 재해리스는 킹스랜딩으로 귀환하여 48AC에 14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마에고르에게 협조한 귀족과 하인들 대부분은 재해리스의 자비로 큰 처벌을 면하게 된다. 다만 이중 마에고르가 벌인 학정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특히 비세리스 왕자를 고문하는 데 협조한 간수 및 고문기술자들은 처형당했고, 마에고르 치세에 임명된 킹스가드들은 한 명은 처형, 한 명은 결투 재판에서 죽었으며 나머지는 도주한 두 명을 포함해 장벽으로 유배되었다.
올드타운에 가서 하이 셉톤의 축복을 받으며 14세의 나이로 왕에 즉위한다. 이 과정에서 전대 국왕 마에고르 1세가 무장 교단 봉기에서 밟아는 놓았지만 결국 뿌리뽑지 못했던 무장 교단을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산시키고 교단의 재판권까지 빼앗아 정교분리의 원칙을 확립했다.[8] 왕 맘에 안 들면 닥치는 대로 죽여대던 마에고르의 폭정을 기억하는 영주들이 알아서 기던 것도 없잖아 있다. 대신 왕가는 교단을 전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성년이 될 때까지는 어머니인 알리사 벨라리온이 섭정을, 반란을 가장 앞장서서 지지했던 로가르 바라테온이 수관을 맡았다. 이윽고 둘은 황금 결혼식에서 결혼하면서 로가르는 재해리스 1세의 의붓아버지가 되었다. 양부가 된 로가르 바라테온은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는 교단의 반발을 막기 위해서 재해리스와 알리산느 남매를 따로 결혼시킬 생각이었으나, 이미 어릴 때부터 가까웠던 여동생과 사랑하는 사이었던 재해리스는 그 결정에 반발하며 알리산느와 몰래 각자의 드래곤[9]에 탑승해서 드래곤스톤까지 도망친 다음에 근친 결혼식을 올려서 온 집안을 뒤집어놓았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드래곤스톤에 틀여 박혀서 모친과 새로운 아버지 행세를 하려는 수관인 로가르에게 반발하였다. 로가르는 재해리스에게 분노해 어떻게든 초야를 치르지 않은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 여러 뒷공작을 시도했다. 재해리스 또한 자신을 아들 취급하며 어머니와의 약혼 과정을 비밀로 한 로가르에게 불만을 가졌고, 드래곤스톤으로 여러 영주들을 불러 회합을 가지는 등, 킹스 랜딩의 로가르를 견제했다.
이에 반발한 로가르는 어머니 알리사 왕대비와 다투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알리사에게 나약하다며 소리치면서 모욕하고 재해리스의 폐위까지 언급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재해리스는 어머니의 동의 하에 로가르를 수관에서 파면시키고 스톰즈 엔드로 쫓아낸다. 나중에 로가르는 성인이 된 재해리스가 정식으로 섭정의 권력을 이양받자 화해를 요청하여 용서받았다.
2.2. 집권 초중기
50AC, 16세가 되던 해에 재해리스는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기 시작한 뒤로부터 대대적인 개혁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협의회를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면서 일부를 해고하고 그 대신으로 자기가 직접 신분고하 없이 뛰어난 인물들을 선발해 채용하였다. 소협의회를 단순한 자문회에서 실질적인 관료기관으로 만든 것은 재해리스였다. 그리고 이 당시 재무대신 레고 드라즈와 구상해낸 그의 초기 정책 중 하나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10] 일반 백성들이나 상인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대신 비단 같은 사치품과 국방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성채 증축에 부가세를 씌우는 것이었다.[11] 그래서 재해리스와 레고의 노력으로 좋지 못한 칠왕국의 재정을 개선시키는데 성공한다.
다음해 알리산느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렀고 하룻밤도 치렀는데, 어차피 왕국 대부분은 재해리스를 정식으로 왕으로 임명했고 무장 교단은 해산되었지만, 근친혼을 인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둘은 지지를 얻기 위해 용을 타고 왕국을 순례하였고, 동시에 마에고르의 전 왕비였던 엘리노르 코스테인을 포함한 일곱 명의 설교자들을 왕국에 파견하였다. 이 왕국 순례 과정에서 알리산느 왕비가 메이든풀에서 과격파 수녀들에게 습격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해 알리산느는 첫째 아에곤을 낳았으나 3일 만에 죽었고, 다음 해에는 대너리스를 낳았다.
54AC에는 일곱 명의 설교자 중 하나인 알핀이 하이 셉톤으로 선출되었고 발리리아인들은 안달족과 문화적, 신체적으로도 다르기 때문에 근친혼이 허용된다는 "예외주의 교리"(Doctrine of Exceptionalism)가 정식 교리로 세워졌다. 같은 해 엘리사 파먼이 누나 라에나 타르가르옌의 알 세 개를 훔쳐갔고 어머니 알리사 벨라리온이 아이를 낳고 죽었다. 나중에는 아에레아 타르가르옌 공주가 실종되는 일이 있었다. 2년 뒤 아에레아가 끔찍한 몰골로 돌아왔고 재해리스는 발리리아의 출입을 일제히 금지했다.
그리고 다음해 55AC에는 대장장이의 아들 출신으로 킹스 랜딩의 도서관 사서직을 맡고 있던 셉톤 바스,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법무대신 알빈 매시와 함께 전 왕국을 총망라하는 통일된 법전을 작성했는데, 이건 정복왕 아에곤 1세도 지역 영주들의 자치권 보장을 위해 하지 못했던 일이다. 2년 뒤 마일즈 스몰우드를 해임하고 바스를 수관으로 천거했다. 바스는 타르가르옌 왕조 역대 최고의 수관 중 하나로 손꼽히며 재해리스의 최고의 업적들에는 항상 바스가 관여했다.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바스의 반대파들은 하층민 출신인 바스가 셉톤이라기보다는 마술사에 가까운 존재라고 비난했지만 바스는 왕의 절친한 친구이다보니 바스에 대한 왕의 신뢰는 굳건했다. 바스의 조언에 따라 재해리스는 킹스 랜딩의 상하수도를 도입하여 도시의 청결과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도 했다. 같은 해 바엘론 타르가르옌이 태어났다.
58 AC에는 북부를 방문했는데, 재해리스는 펜토스와 티로시가 재해리스 왕의 뛰어난 외교력을 듣고 협상을 부탁했다. 이때 알리산느 타르가르옌이 먼저 윈터펠에 가서 알라릭 스타크를 방문했는데, 그를 설득하여 밤의 경비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북부 영토를 기프트에 일부 분할해 주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왕비 알리산느와 함께 유일하게 장벽을 방문한 왕이기도 하다. 밤의 경비대의 성 중 하나인 딥 레이크는 알리산느가 자기 보석을 팔아서 마련해 준 돈으로 지었다. 그리고 이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장벽의 성 중 하나인 스노우게이트는 퀸스게이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왕비의 조언으로 초야권도 완전히 폐지했는데, 이건 평민들이 좋아하고 나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만한 법이다. 어차피 현실의 중세에서도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라 이걸 빌미로 영지 민중에게 돈을 뜯던 영주들 빼곤 별 탈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59AC 겨울에는 왕국에 기근과 함께 오한병이라는 전염병이 왕국에 돌았으며, 소협의회 절반과 킹스가드 두 명을 잃었다. 이때 장녀인 대너리스 공주도 죽어 재해리스 부부가 크게 슬퍼했다. 또한 측근인 재무대신 레고 드라즈가 수도에서 강도들에게 살해되는 사건까지 터지면서 재해리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12] 그래서 소협의회에 들어갈 유능한 인물들을 다시 구해야 했다. 또한 왕실 친위대인 킹스랜딩 도시 경비대도 사령관과 대원들이 많이 죽어서 수도의 치안이 악화되기도 했다. 다음해에는 알리사 타르가르옌 공주가 태어났다. 60AC에는 도르네 변경의 제3차 도르네 전쟁에서 로가르 바라테온과 함께 독수리 왕을 토벌했다. 이 토벌로 이 당시 전염병 때문에 떨어진 왕권을 회복했다고 한다.
61AC에는 강철 은행에서 받은 돈을 바탕으로 치세 기간 동안 웨스테로스 전체를 잇는 도로인 킹스로드의 건설을 시작했다.
2.3. 자녀들과 후계자 논란
아내 알리산느와의 금슬이 어찌나 좋았는지 13명이나 되는 자식을 본 것으로 유명하다. 자식들은 각각 순서대로 아에곤, 대너리스, 아에몬, 바엘론, 알리사, 마에겔, 바에곤, 다엘라, 사에라, 비세라, 가에몬, 발레리온, 가엘을 낳았다. 이중 아홉 명만이 성인 때까지 살아남았다. 자세한 것은 타르가르옌 가문 항목 참조. 큰 아이들은 유능해서 재해리스와 알리산느가 총애하며 모두 민중들에게 인기가 많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지만, 밑에 가면 갈수록 이상할 정도로 아이들의 상태가 나빠져서 말년에는 자식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차남이자 후계자였던 아에몬을 가장 아꼈다.[13] 아에몬의 순산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의 탄생을 매우 기뻐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후계자로 밀어주는 태도를 보일 정도였다. 아에몬이 전사한 뒤에는 칠왕국은 풍요롭고 인생의 숙원으로 매달렸던 도로 사업이 잘 풀렸음에도, 사람들은 재해리스가 어느 것에도 기뻐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아에몬이 죽은 이후에는 잘 때마다 와인을 두어잔 마셔야 잠에 들 수 있었다고 토로할 정도.손주들로는 차남 아에몬 소생의[14] 라에니스, 삼남 바엘론과 차녀 알리사 소생의[15] 비세리스와 다에몬, 4녀 다엘라의[16] 외동딸 아에마 아린, 5녀 사에라의 서자들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후손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용들의 춤에서 전멸에 가깝게 많이 죽었다.
2.4. 집권 후기
80AC에 왕세자인 아에몬 타르가르옌을 법무대신으로 임명했다. 3년 후 제4차 도르네 전쟁에서 도르네가 스톰랜드를 침공해 오자 각자 용을 타고 아에몬, 바엘론 왕자와 함께 함대를 쓸어버렸다.그러나 87AC에 딸 비세라가 낙마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92AC에 타스 해적 진압에서 재해리스가 총애하는 왕세자 아에몬이 토벌에 나섰다가 전사했다. 비세라와 아에몬의 죽음은 재해리스와 알리산느한테 큰 슬픔이 되었고 바엘론이 후임 왕세자가 되었다. 그런데 재해리스가 아에몬의 외동딸로 자신의 손녀인 라에니스 대신 차남 바엘론을 후계자로 삼자, 왕비 알리산느는 '여자가 남자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어디 있냐'며 매우 분노하였고 남편과 이 문제로 다투다가 별거를 택했다. 이에 삼녀인 마에겔 공주가 둘 사이를 중재해서 화해했다고 한다.
98AC에 즉위 50주년을 맞이하여 대 마상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차례차례 비극이 겹쳤는데 먼저 같은 해 명신이자 그의 오랜 친구인 바스가 죽었다. 이후 킹스가드의 사령관이자 마상대회 공동 우승자인 라이엄 레드와인 경, 후계자였던 셋째 아들 바엘론 왕자, 오토 하이타워 경이 차례로 수관직을 맡았다. 바엘론 왕자는 형 아에몬이 죽고나서 새로 왕세자가 되어 군왕의 자질을 보일 정도로 잘 해내어 재해리스가 총애했으나 요절했고 라이엄 레드와인과 오토 하이타워는 바스만큼 유능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다음해 막내딸 가엘이 투신자살로 죽었고 그 다음해에는 알리산느 왕비가 슬픔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으며 후계자인 바엘론 왕자마저도 죽고만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아들이자 아치 마에스터인 바에곤의 조언으로 재해리스는 101년의 대협의회에서 하렌홀에서 전국 각지의 영주들을 모두 불러 모아 그들과 의논하면서 후계자를 결정했고, 바엘론의 장남인 손자 비세리스 타르가르옌이 후계자로 결정되었다.
재해리스 1세의 임종 |
재해리스 1세의 장례식 |
귀족과 평민들을 불문하고 많은 백성들에게 사랑받았던 성군이었기 때문에 그가 죽자 가족들은 물론이고 전국이 슬퍼했다. 심지어는 사실상 적대국이었던 도르네 공국에서도 사신을 보내서 재해리스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
3. 하우스 오브 드래곤
비세리스와 아에마 부부, 최고성사(좌) 재해리스 1세(가운데) 라이엄 레드와인, 라에니스와 코를리스 부부(우) |
후손들이 일으킨 용들의 춤을 다루는 프리퀄 드라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도 잠깐 나온다. 배우는 영국 출신의 마이클 카터(Michael Carter). 재위 말년 3남이자 왕세자였던 바엘론의 사망 이후, 후계자를 결정하기 위해 101 AC에 소집한 대협의회에서 등장한다. 원작과 달리 수염이 길지 않다.[20]
수많은 후보들 중에서 장손녀인 라에니스와 장손자인 비세리스만이 마지막까지 남고 그들의 배우자인 코를리스 벨라리온과 아에마 아린도[21] 양옆에 자리한 가운데, 여인에게 철왕좌를 넘겨줄 수 없었던 웨스테로스 전역의 영주들이 비세리스를 선택하자 드래곤의 가문을 멸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들뿐이라는 냉혹한 사실을 깨닫고 심상치않은 표정을 짓는다.[22]
여담으로 드라마에서 벨라리온 가문의 일원 전체가 흑인으로 설정 변경됐는데, 재해리스는 어머니 알리사가 벨라리온 가문 출신임에도 백인으로 나온다.
4. 평가
작가 공인 타르가르옌 가문 최고의 성군이자 명군으로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후세에도 추앙받는다. "중재왕"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재해리스 1세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단연 외교력이었고, 되도록이면 평화를 지향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했는데 필요에 따라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그와 함께 뛰어난 권모술수도 부릴 줄 알았다.매우 총명하여 학식이 뛰어났고 아버지 아에니스 1세가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서 열심히 무예를 연마했기 때문에 무예도 뛰어나 문무겸비한 왕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독수리 왕을 지원하는 로가르 바라테온의 동생 보리스를 일대일로 싸운 뒤 베어 죽이면서[23], 전염병으로 떨어진 왕권을 회복하고 유약한 아에니스의 아들이라는 딱지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장년기에는 딸 사에라 타르가르옌의 처녀성을 취한 젊은 브랙스톤 비스버리 경에게 장애인이 되는 형벌 대신 결투 재판의 기회를 줬는데, 킹스가드를 동원하는 대신에 직접 딸의 대전사로 나서서 상대의 체력이 떨어질 때까지 잘 방어하면서 기다리다가 블랙파이어로 상처를 줘서 제압한 다음에 눈을 찔러버리는 무용을 보여줬다.[24]
서약을 파기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대표적으로 킹스가드 두 명이 마에고르를 버리고 자기 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믿을 수 없다며 밤의 경비대로 보내버렸다.[25] 또, 킹스가드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루카모어 스트롱 경이 킹스가드의 맹세를 저버리고 비밀리에 세 명의 아내와 결혼해 열여섯이나 되는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역시 그를 거세하고 밤의 경비대로 보내버렸다.
사실 재해리스 1세가 이같은 업적과 개혁을 세우는데는 용을 필두로 한 강력한 왕권도 한 몫 했다. 후에 마찬가지로 성군으로 불리는 다에론 2세와 아에곤 5세가 개혁에 대한 귀족들의 반발로 반란에 시달리거나 대놓고 무시받은 것만 봐도, 타르가르옌 왕조의 힘은 드래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26]
특히 재해리스 1세가 팬들에게 명군으로 더 추앙받는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판단력이 흐려져 이상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칠왕국의 다른 왕들과는 다르게, 뛰어난 판단력을 가졌고[27] 말년에 아들들이 죽자 후계 문제가 예사롭지 않음을 바로 간파하고 대협의회를 개최해 칠왕국의 모든 영주들과 함께 이를 상의하고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후계 문제를 신속하고 확실하게 정리했다는 것이다. 이런 안전하고 순조로운 계승으로 인해 뒤를 이은 '젊은 왕' 비세리스 1세 또한 그에 힘입어 평화로운 시대를 다스려 칠왕국을 번영시켰다. 하지만 비세리스 1세는 재해리스 1세와 달리 후계 문제를 깨끗히 해결하지 못해 내전의 단초를 제공했고, 결국 사후에 친족간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재해리스가 힘들게 번영시킨 칠왕국을 제대로 파탄낸다.
성군인 점과는 별개로 딸들에 대한 대우는 독자들에게 비판받기도 한다. 넷째 딸 다엘라가 지나치게 겁이 많고 심약한 것에 대해 따뜻하게 보듬어준 아내 알리산느와는 달리 질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며, 그녀가 무서워하든 말든 어린 나이에 빨리 시집을 보내려 닥달하다가 결국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 다엘라는 산욕열로 사망하고 말았다. 다섯째 딸 사에라의 경우도 그녀의 행실과 언사에 문제가 심히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친딸을 창녀라고 매도하며 평생 연을 끊어버렸고, 사에라를 용서해달라고 간청하는 알리산느에게도 그 애는 원래부터 창녀였으니 찾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폭언을 날린 것에 문제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28] 여섯째 딸 비세라는 어릴 때부터 오빠 바엘론 왕자의 주변을 맴돌며 왕비 자리를 노리는 야심찬 성격에 알리산느가 적극적으로 주선한 혼인이라지만, 몇 안남은 직계 공주의 배우자감으로 딸리는 북부 맨덜리 가문의 할아버지뻘인 테오모어 맨덜리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또한 아에몬 왕자의 사망 이후 웨스테로스의 보편적인 계승법에 따라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손녀 라에니스 공주의 계승권을 박탈하고, 다른 아들인 바엘론 왕자를 차기 왕세자로 지목했는데 이에 대해 라에니스는 물론 알리산느조차 크게 반발했으며, 여자가 왕이 되지 못한 선례를 남김으로서 후대에 용들의 춤으로 이어지는 계승권 논쟁의 불씨를 낳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러나 칠왕국의 귀족들은 남계 계승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을 알아야하며, 이에 관해서는 비세리스 1세의 실책이 훨씬 큰 부분인데, 선례와 관습법을 무시하고 라에니스와는 달리 계승권에서 명백히 동생보다 밀리는 라에니라를 후계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비세리스 1세가 죽자마자 바로 용들의 춤이 일어났고 그 전부터 비세리스의 소협의회 대신들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총명했던 라이오넬 스트롱마저 "웨스테로스 역사상 여인이 철왕좌에 앉은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라고 대놓고 말하며 딸 라에니라를 후계자로 천명한 비세리스 1세의 판단이 칠왕국을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묘하게 콩가루스러운 가족들간의 문제는 아무래도 재해리스 치세가 태평성대였다 보니까 지루해질 수 있다 보니 작가가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 듯 하다.
5. 역사적인 유사점
잉글랜드 왕국의 왕 에드워드 3세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 50년간 명군으로써 왕위에 있었다는 점과 왕세자였던 흑태자 에드워드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서 손자인 리처드 2세가 왕위에 올랐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오스만 제국의 쉴레이만 대제하고 비교할 수도 있는데 오스만 왕조 황금기의 최고로 추앙받는 성군이라는 점, 통합된 법전을 만든 점, 왕비도 유명하고 백성들에게 사랑받았다는 점, 낮은 출신의 명재상 친구가 있었다는 점, 마찬가지로 자식농사가 비극이었으며 사후에 나라가 파탄나기 시작했다는 점도 있다.[29]
조선으로 따지면 세종대왕에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 왕조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성군, 황금기인 치세라는 점 외에 4번째 왕에다가 3남, 초대 왕의 손자인 것도 비슷하다. 왕비 또한 뛰어난 인물에 부부간의 금슬이 좋았고 가장 적자를 많이 낳은 왕이었지만 말년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으며 정작 자식 농사가 비극으로 끝난 것도. 그리고 업적 대부분이 세종대왕은 태종이 마련해 준 강력한 권력, 재해리스는 마에고르의 숙청과 용이라는 권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덤으로 밤의 경비대에게 기프트 지역을 추가해준것은 4군 6진 정책을 연상시킨다. 우연도 우연이지만 아마 작가가 역사적 개연성을 생각하고 설정을 짰기 때문에 이런 공통점들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1] 발리리아식 발음으로 자에하에리스[2]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에서 빕 포르투나 역할을 맡았다. 성우로도 활동하여 데몬즈 소울의 대장장이 볼드윈과 쌍검의 비요르를 연기했으며 다크 소울의 매의 눈 고로도 알려져 있다.[3] 전근대에는 평균 수명이 40세 이하였기에(다만 이것은 전근대시대에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평균이 깎인 것이고 그것을 제외한다면 40대 후반~50대 정도) 69세면 매우 장수한것이다.[4] 재해리스 1세 시절의 대학사의 언급에 따르면 재해리스의 치세에 도르네를 제외한 웨스테로스 전체의 인구가 2배나 증가했고 수도인 킹스랜딩은 인구가 4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재해리스 1세 이전에 전쟁이 잦았다는것을 감안하면 인구 증가를 이룬것만 해도 굉장한 업적이다.[5] 재위 말년 사에라와 관련된 문제로 알리산느와 대판 싸우고 한창 별거하고 있던 시절 순행을 나온 블랙바 가문의 막내딸이 자신을 유혹하려 하자 "난 왕비가 있고 애인을 만들 의향이 없단다"라며 바로 거부하기도 했다.[6] 증손주들인 래나 벨라리온, 라에노르 벨라리온, 라에니라 타르가르옌 모두 재해리스의 재위 시절에 태어났다.[7] 큰형 아에곤은 자신의 계승권을 주장하며 신의 눈 전투에서 마에고르와 맞붙었다가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전사, 둘째형 비세리스는 알리사와 재해리스와 알리산느가 드래곤스톤에서 탈출하자 분노한 마에고르에 의해 고문당하다 사망했다.[8] 가만 보면 이 중재(?)가 기가 막히는 날강도질이다. 주는 건 없고 지금까지 빼앗은 건 공식적으로 꿀꺽하며 덤으로 하나 더 뺏는 게 중재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교단이 이 처사에 반발하여 항의하다가 또 반란을 일으켜야 정상인데 가만히 있었다는 걸 독자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 그나마 당시 교단은 마에고르 1세의 대숙청으로 무장 교단의 몰살부터 자신들을 지지해주던 수십개의 귀족 가문들도 멸문당했고, 지도자인 최고성사까지 암살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서 타르가르옌 왕가에게 숙이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9] 재해리스의 드래곤 버미토르, 알리산느의 실버윙.[10] 마에고르가 무장 교단과 왕가에 대적하는 영주들을 토벌하면서 돈을 지나치게 많이 써버리다보니 왕실의 재정 사정이 굉장히 나빴다.[11] 둘 다 실제로 절대왕정 수립 과정에서 국왕들이 했던 일이다. 특히 마에고르가 높은 세금을 부과하다가 민심을 잃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명한 처사이다.[12] 이때 재해리스가 얼마나 큰 슬픔과 분노에 빠졌는지 레고 드라즈의 살인범들을 모두 잔혹하게 처형하였다. 칠왕국의 모든 이들이 재해리스의 잔혹한 처사에 놀랄 정도.[13] 차남이지만 후계자인 이유는 재해리스 1세의 장남인 아에곤은 태어난지 3일만에 죽었기 때문이다. 아에몬은 본인의 인생내내 재해리스 1세의 장남으로 살았다.[14] 재해리스 1세 부부의 이부누이로 아에몬에게는 고모 겸 이모인 조슬린 바라테온과 결혼했다.[15]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전통대로 친남매끼리 결혼했고 재해리스 1세 부부와 비슷하게 금슬도 좋았다.[16] 당대 동부의 관리자 로드릭 아린과 결혼했다.[17] 재해리스 1세의 사후 한참 뒤에나 일어난 일이지만 알리센트는 이후 재해리스의 손자 비세리스 1세의 두번째 왕비가 되면서 손자며느리가 된다.[18] 사실 중세 유럽에서는 국왕을 간병하는 일은 주로 고위급 귀족의 자제들이 했다.[19] 알리센트는 간병을 하면서 재해리스 1세와 정이 많이 들었고, 최고의 성군에게 책을 읽어준 일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았던 것 같다. 나중에 용들의 춤으로 자녀들을 모두 잃고 폐인이 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저승에서 재해리스 1세를 만나 그때처럼 책을 읽어줄 것이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20] 원작에서 재해리스 1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염을 길렀고 나중에가면 수염이 매우 길어졌다.[21] 아에마도 재해리스의 4녀 다엘라 타르가르옌의 외동딸이니 타르가르옌 가문의 후손이다.[22] 이런 재해리스의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아 그의 증손자대에서 칠왕국 사상 최대의 내전이 일어나고 타르가르옌 가문의 상징이자 권력의 원천인 드래곤부터 가문의 일원들까지 대부분 사망하는 참사가 터진다.[23] 그것도 드래곤에서 내려 직접 싸워 이겼다. 다만 이게 위험한 것이 적진의 한복판에 재해리스가 드래곤을 타고 가서 적을 불태우고 다니다가 보리스의 도발에 넘어가 드래곤에서 내려 단신으로 싸운것이다. 독수리 왕의 부하들이 용에게 겁을 먹어서 숨고 제대 국왕군이 도착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적에게 포위되어 공격당할 위험한 상황이었다.[24] 그런데 이건 왕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는 걸 이용해서 직접 브랙스톤을 처형한 것에 가깝다. 게다가 이 과정을 사에라가 강제로 지켜보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딸과의 관계가 파탄난다.[25] 결국 이 둘이 장벽에서까지 반란을 일으켜 또다시 서약을 어겼음을 보면 자신에게 협조하던 둘을 내친 건 재해리스의 혜안이었다.[26] 타르가르옌 왕조는 웨스테로스 기준으로 안달족보다도 늦게 자리잡았으며, 애초에 입성할 때부터 용의 힘을 빌려 전국을 통일해 왕조로 자리잡은 가문이다. 작중에서 용은 단신으로도 군대와 요새를 모두 무찌를 수 있는 최종병기였기 때문에,(용들의 춤에서 아에곤 2세의 녹색파가 전력에서 라에니라의 흑색파를 압도했음에도 패하게 된 원인이 라에니라가 보유한 드래곤이 더 많아서 이 드래곤들에게 병력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 용을 독점한 타르가르옌에게 웨스테로스 전체가 알아서 기었던 것. 특히 왕령지인 국왕령이 생산력이 허약한 땅임을 감안하면 용이 아니고서는 칠왕국의 다른 지역들을 압도할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 3마리를 모두 동원한 제1차 도르네 정복만큼은 끝내 실패했을 정도로, 최종병기인 용을 보유한 상황에서도 타르가르옌의 완전통일은 단기간 내에 불가능했다. 게다가 1차 도르네 정복에서 아에곤은 사랑하는 왕비 라에니스와 귀중한 전력인 용 메락세스를 잃게 되었다. 당연히 용이 모조리 죽어버린 용들의 춤 이후에 타르가르옌의 권력은 더욱 휘청일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 남은 용마저 죽어버린 아에곤 3세 시절에 바로 몰락하지 않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이렇게 용이 없고 척박한 땅을 가져 왕실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열악한 상황이 되자 타르가르옌의 권력기반은 점점 흔들리고 약화된 끝에, 다에론 2세와 아에곤 5세 때 그들이 추진한 정치가 귀족들의 반대로 추진한 개혁이 모두 실패해버리는 난항을 겪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에곤 5세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용의 부활까지 시도했을 정도. 사실 달리보면 당시에는 거의 비현실적인 존재가 된 용의 부활을 노릴만큼 타르가르옌의 권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는 의미다. 다만 바엘로르 1세와 아에곤 4세가 실정을 연달아 저지르고 마지막 왕 아에리스 2세가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녀도 폐위되지 않은 걸 보면 최소한의 권력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아에리스 2세가 폭정을 거듭하다가 거의 모든 귀족을 적으로 돌려버린 로버트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타르가르옌은 왕좌에서 폐위되어 웨스테로스에서 쫒겨나고 망명하는 꼴로 전락한다. 결국 용으로 흥해서 용으로 몰락해버린 것. 심지어 타르가르옌 가문을 몰락시키고 새로 왕가가 된 바라테온 가문은 이전 왕가보다 더 무능해서 로버트 사후에 다섯 왕의 전쟁이라는 내전이 벌어져 아직도 제대로 진압못하며 파탄난 재정도 해결못해 칠왕국이 국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연유로 인해 타르가르옌이 용들을 거의 다 잃어버린 용들의 춤이 지배계층에서 타르가르옌과 용을 끌어내리고, 그들을 역사에서마저 배재하려는 흑막 세력의 농간이지 않냐는 추측도 존재한다. 마에스터 참고.[27] 재해리스의 누나인 라에나도 재해리스가 판단력이 뛰어나며 변함없다는것을 인정했다.[28] 허나 사에라의 행적을 보면 창녀라고 부르고 연을 끊는게 오히려 온화한 처벌일 정도로 행실이 개판인 건 사실이었다.[29] 실제로 쉴레이만 1세가 사망하고 나서 오스만 제국은 명군이 잘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