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22:06:57

정몽필

<colbgcolor=#003768> 현대제철 제12대 사장
정몽필
鄭夢弼 | Chung Mong-pil
파일:wjdahdvlf.jpg
출생 1934년 1월 1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現 북한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사망 1982년 4월 29일 (향년 48세)
경상북도 금릉군 아포읍
(現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경부고속도로 김천JC 인근
본관 하동 정씨
직업 기업인
학력 경기상업고등학교 (졸업)
연희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 / 학사)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부모 아버지 정주영, 계모 변중석[1]
형제자매 남동생 정몽구, 정몽근, 정몽우, 정몽헌, 정몽준, 정몽윤, 정몽일
여동생 정경희, 정정인, 정정임
배우자 이양자(1942 ~ 1990)
자녀 장녀 정은희(1971 ~ )
차녀 정유희(1973 ~ )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4.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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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최종 직책은 현대제철 사장으로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의 장남. 현대그룹의 후계자였지만 1982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2. 생애

1934년 강원도 통천군 출생. 정주영의 장남이다. 정몽필의 생모는 정주영의 첫사랑으로, 정주영이 19세, 생모는 17세 때 정몽필을 낳았다. 하지만 정주영 집안에서 생모와의 혼인을 인정하지 않아[2] 결혼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일로 정몽필의 생모는 통천을 떠나게 되어 정주영과 헤어졌다.[3]

이후 정주영이 변중석과 재혼하였을 때 정몽필은 이미 태어난 것이다. 1921년생인 변중석과 1934년생인 정몽필은 나이 차이가 13살밖에 나지 않는다.[4] 사실상 모자지간보단 남매라고 해도 될법한 나이였던 것.[5] 그래도 변중석은 시집을 오자마자 어린 아이인 정몽필을 친자식처럼 양육하였고 정몽필도 변중석을 친어머니로 여기고 성장하였다.

본인도 불같은 성격이지만 아버지는 정몽필보다 더 불 같은 성격이라 아버지를 어려워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사실 정몽필 뿐만 아니라 정주영의 자식들과 동생들이 모두 정주영을 어려워한 건 많이 알려진 사실. 그래서 정주영에게 전할 말을 어머니인 변중석 여사를 통해서 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여튼 그렇게 경영 수업을 받던 와중, 1982년,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6] 경부고속도로에서 현대 그라나다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가다가 트레일러와 추돌로 운전기사와 함께 허무하게 사망했다. 12톤 트레일러를 추월하려고 하다가 옆구리를 들이받아 8m 정도 끌려가 낭떠러지로 추락해 연료탱크가 터지고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운전기사와 정몽필 모두 숨졌고, 차량은 완전 전소되었다.#

정주영은 정몽필의 사망을 접하고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업무를 모두 마치고서야 귀가하였다. 정몽필의 사망을 접하고 집에서 대성통곡하던 변중석은 뒤늦게 귀가하는 정주영을 보자마자 당신! 사업하다가 애들 다 죽일 셈이오!라고 정주영에게 소리친다. 결혼생활 내내 정주영을 내조하며 말을 아끼던 변중석이 처음으로 남편에게 소리친 순간으로 정주영은 아내의 불호령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이 아님에도 변중석이 정몽필을 친자식으로 여기고 양육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순간.

3.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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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징

  • 현대 가문에서 가장 먼저 축구에 입문하고 좋아한 인물이다. 정몽필의 영향으로 동생인 정몽준과 사촌동생인 정몽규대한축구협회의 회장을 역임하며 축구에 진출하였다.
  • 대통령을 역임한 이명박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정몽필은 정주영의 불 같은 성격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명박이 현대제철 사장이던 시절 정몽필은 전무였는데 정몽필이 아버지와 마찰을 한참 일으키다가 중간에서 안건을 물리치는 일이 잦아서 직원들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결국 이명박이 정몽필에게 협조를 부탁하자 정몽필이 정주영에게 협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 아내인 이양자는 위암을 이기지 못하고 1990년 9월에 사망한다. 동생인 정몽우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5개월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자식과 큰며느리의 잇다른 사망에 계모인 변중석은 건강을 많이 잃어버리고 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 딸만 둘을 두었다. 장녀인 정은희의 남편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IHL의 대표이다. 자동차 램프를 제조하며 형이 사망하고 장남의 역할을 맡는 동생 정몽구가 정몽필 가계의 회사로 남겨두었다. 차녀인 정유희는 쌍용그룹의 회장을 역임한 김석원의 장남이자 국민대학교의 이사장인 김지용과 결혼하였으나 이후 이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1] 생모는 정주영이 결혼하기 전 만난 첫사랑이나 결혼을 인정받지 못하였고 변중석은 정몽필이 태어나고 정주영과 결혼하여 정몽필에게는 계모이다. 그러나 변중석이 친아들처럼 여기고 양육하여 정몽필도 변중석을 친어머니로 생각하고 성장하였다.[2] 정주영의 집안은 몰락 양반인 잔반(殘班)가문이었으나, '양반 집안'이라는 정체성은 계속 유지돼 왔다. 반면, 정몽필 생모의 아버지는 이장을 하던 당시 유력 집안이었으나 상민 출신이었다. 일제 강점기엔 여전히 신분제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에 결혼 반대가 있었을 것이다.[3] 광복 이후 6.25 전에 둘이 한번 또 만났다는 설도 있다. 다만 이땐 다른 남자랑 결혼한 상태였다고. 이후 첫사랑은 6.25가 터지면서 함경북도 청진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소떼 방북 시절 그녀를 그리워한 정주영 회장이 김정일한테 찾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알아보니 몇년 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4] 참고로 정몽구는 1938년생으로 친모 변중석과 17살 차이가 난다.[5] 당장 변중석 소생의 첫 아들인 정몽구와 막내아들인 정몽윤의 나이 차이가 변중석과 정몽필의 나이 차이보다 더 많이 난다.[6] 당시 행정구역상 경북 금릉군 아포면. 현 김천JC 부근. 이 때 당시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