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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070><colcolor=#ffffff>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초대 회장 정몽윤 鄭夢允|Chung Mong-yoon | |
출생 | 1955년 3월 18일[1] ([age(1955-03-18)]세) |
서울특별시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하동 정씨 (河東 鄭氏)[2] |
직업 | 기업인 |
현직 | 현대해상 회장 |
학력 | 중앙고등학교 (졸업)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경영학 / 학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
부모 | 아버지 정주영, 적모 변중석 |
형제자매 | 형 정몽필, 정몽구, 정몽근, 정몽우, 정몽헌, 정몽준 누나 정경희 남동생 정몽일 여동생 정정인, 정정임 |
배우자 | 김혜영[3] |
자녀 | 장녀 정정이(1984년 출생) 장남 정경선(1986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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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초대 회장.2. 생애
1955년 3월 18일, 서울특별시에서 정주영의 7남으로 태어났다. 여담이지만 바로 위에 형 정몽준과 동생 정몽일과 함께 다른 형제들과 좀 다르게 생겨 생모가 따로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가 나돌었다. 정몽준과 정몽일의 생모가 다른걸 보면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4] 중앙고등학교(64회)를 졸업하고[5] 미국으로 유학하여 샌프란시스코 주립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학원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후 현대해상화재보험을 물려받아 현재까지 경영하고 있다.3. 야빠
범현대가는 원래 축빠가 많은 집안이다. 아버지 정주영은 현대중공업 부서별 축구대회에서 현역 선수로 뛰었고 야구단보다 축구단을 먼저 만든 바[6] 있다. 여기에 바로 위의 형 정몽준은 FIFA 부회장까지 지낸 축구계의 거물 중 거물이고 사촌동생인 정몽규는 현직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다. 조카인 정의선은 KIA 타이거즈의 오너이지만 구단주직을 맡고 있지 않고 전북 현대 모터스의 운영에 관심이 더 많았다.이런 가풍 속에서 정몽윤은 보기 드문 야구광이다.[7] 고등학생 시절부터 모교인 중앙고의 경기를 빠짐없이 관람하였다고 한다. 현대해상 직장인 야구단은 정 회장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사회인 야구에서는 상당한 강팀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기에는 직접 1루수로 뛰기도 했다고 한다. 증언 1, 증언 2, 증언 3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대한야구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사재를 털어 협회를 헌신적으로 지원하여,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의 위업 기반을 만들어준다. 프로 선수들의 아시안게임 참여가 허용되면서 한국야구 사상 최초의 드림팀이 구성된 때였다. 정몽윤은 금메달 획득 후 드림팀 1기 선수단에게 뒷풀이 자리를 거하게 마련해줬는데 정몽윤이 사비를 털어 뒷풀이 비용 전액을 댔다고 한다.
이후에도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등 큰 성과를 올렸다. 정몽윤의 전폭적인 지원과 KBO와의 원활한 협조로 야구협회가 가장 잘 운영되었던 시기였는데,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낀 아마추어 원로 야구인들이 사사건건 딴죽을 걸면서 2001년 1월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물러나면서도 30억원을 협회 기금으로 출연하면서 “알뜰한 운영으로 기금을 100억원까지 늘리면 협회가 자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라고 금융인다운 말을 남겼다. 안타까운 것은 정몽윤 회장이 키워놓은 협회는 금융인이었던 그가 손을 떼자 야구인들의 무능에 힘입어 주먹구구 운영을 보여주고 만다.
친형 정몽헌 회장이 구단주로 있었던 현대 유니콘스를 향한 애정도 엄청났다. 유니콘스의 창단 첫 해인 1996년부터 현대해상 로고를 헬멧과 유니폼에 새길 수 있도록 광고를 집행했는데 유니콘스의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가세가 기울고 설상가상으로 정몽헌 구단주가 불법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투신자살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유니콘스를 향한 후원을 이어갔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현대가 안의 다른 형제 기업들이 유니콘스의 살림살이에 나몰라라 하던 시절에도 정몽윤만큼은 유니콘스를 잊지 않고 구단이 해체될 때까지 후원했다. 유니콘스 구단의 공중분해 직전인 2007년 초에도 김시진 감독 이하 선수들을 불러 "아무 걱정하지 말고 평소 하던대로 훈련에 전념하라"고 몸소 격려했다.
참고로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미 KIA 타이거즈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1개 리그에서 2개팀을 운영하는 상황을 더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주주들의 불만도 상당했고...사실 현대자동차그룹 측에서 2001년경 유니콘스를 인수하려는 의향을 드러낸 적 있다. 하지만 당시 구단 대주주이던 하이닉스가 인수 자금으로 무려 900억을 부르는 바람에 협상이 결렬, 대신 싸게 매물로 나온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것이다.
실제로 현대 프런트 출신의 증언에 의하면 정몽윤 회장 본인이 현대 유니콘스를 직접 인수하고 싶어했으나 여러 규약 및 주주들의 의견을 거슬러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불발되었고 현대해상은 금융회사이기 때문에 원칙대로라면 금산분리 원칙으로 인해 야구단의 지분을 확보할 수가 없다.[8] 정몽윤 본인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웠을 듯하다. 현대가 끝내 해체됐을 때도 상당히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과거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던 국가대표 유격수 박진만을 여전히 아끼는 듯 하다. 정몽윤 회장이 현대 선수 중 가장 관심을 보이고 아꼈던 선수가 바로 박진만이며, 2004년 말 박진만이 FA 자격을 얻었을 때도 재정난에 시달리던 현대 구단이 심정수는 놓쳐도 박진만은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에는 정몽윤 회장의 의중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물론 박진만은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정몽윤 회장과는 개인적으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하며,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는 박진만과 함께 잠실구장에 5차전 직관을 오기도 했다. 여담으로 박진만은 이 당시까지만 해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다. 소속팀 삼성이 2009 시즌 5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바람에 시즌을 일찍 마쳤고, 개인 훈련을 하던 중 정몽윤 회장에게 같이 야구 보러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제19~21대 KBO 총재였던 구본능 총재가 2017년 말 임기가 끝나면 퇴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차기 KBO 총재로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그러나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새 KBO 총재로 추대되었다.
여담으로 넥센 선수로 뛰었던 심수창이 말하길 목동 야구장 내 넥센 락커룸에 정몽윤이 들어오자 심수창이 “아저씨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심수창에게 명함을 건네줬는데, 심수창은 그걸 “정.몽.윤” 이라며 한 글자씩 읽었다고... 게다가 오주원은 목동구장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정몽윤에게 “야! 빨리 나와!” 라며 문을 두들겼다고 한다. 물론 오주원은 자신이 두들겨대던 화장실칸에서 문이 열리고 거기서 정몽윤이 나오자 반사적으로 정수리가 화장실 바닥에 닿을 정도로 인사했다고 한다.[9] 그런데도 좋게 넘어간 것을 보면 확실히 야구광이다.
4. 여담
- 한 때 어느 네티즌이 그의 지갑을 주웠다고 인증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 아내 김혜영 여사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브릿지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2010년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자선 브릿지 대회를 열어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 등 해당 종목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5. 가족 관계
자세한 내용은 범현대가 문서 참고하십시오.6. 경력
- 1982. 현대종합상사 부장
- 1988.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현대할부금융 주식회사 (現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회장
- 1997.~ 2000. 대한야구협회 회장
- 1998.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
- 2001.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 1986.~ (現) 주한 요르단 명예 영사
- 2004.~ (現) 현대해상화재보험 이사회 의장
[1] 음력 1955년 2월 24일[2] 지예부사공파(知禮部事公派) 25세손 상(相)○, ○채(采), ○문(文), ○림(林) 항렬이나 이를 따르지 않고 범현대가만의 돌림자를 사용하였다.[3]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브리지 혼성 부문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화제가 됐다.[4] 다만 정주영은 막내동생인 정몽일과 달리 정몽윤은 변중석 여사의 소생이 아니라고 인정하지는 않았다.[5] 형 정몽준은 61회다.[6] 물론 정주영도 프로야구단 창단 생각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프로야구 출범 당시 현대그룹에게 인천-경기-강원 지역을 연고로 하는 야구단 창단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다만 시점상 올림픽 유치가 더 우선이라며 야구단 창단 제안을 먼저 걷어찼다. 그리고 프로야구가 대박을 터뜨리자 야구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한으로 생각했고, 이후에도 계속 프로야구 진입을 노리다가 리그 출범 후 15여년이 지난 1996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하면서 그 한을 풀게 된다.[7] 정몽윤 말고도 열혈 야구광이 한 사람 더 있었는데 그의 친형이자 현대 유니콘스 구단주였던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다.[8] K리그에서도 하나금융그룹이 대전 시티즌을 인수하여 대전 하나 시티즌으로 팀 이름을 바꿨을 때 이 문제가 걸림돌이 됐는데, 이 때 하나금융그룹은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대전 시티즌 법인의 자산을 인수하도록 하는 편법을 사용하면서 문제를 회피했다. 그러나 KBO에서도 이 방법이 가능했을지는 미지수인데,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클럽 규정 제1조에서 프로 클럽의 자격 요건을 "국내법을 근거로 설립된 영리법인 또는 비영리법인"으로 명시하여 주식회사와 사단법인뿐만 아니라 재단법인도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에 비영리법인인 재단법인 형태의 인수가 가능했지만, 2022년 기준 KBO 야구규약 6조에서는 야구단의 자격 조건을 "구단의 운영을 주된 사업목적으로 하여 설립된 자본금 10억원 이상의 주식회사일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비영리법인인 재단법인을 이용한 편법이 막혀 있기에 원칙적으로는 현대해상 측에서 구단을 인수하긴 힘들다. 물론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특혜를 줬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삼청태현을 포함한 현대의 역사가 끊기고 히어로즈로 새로 시작한 현 시점에서는 부질없는 가정일 뿐. 참고로 훗날의 키움 히어로즈는 키움증권이 (주)서울히어로즈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네이밍 스폰서만 하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9] 유니콘스 말기까지 범 현대가 일원 중에서 끝까지 후원한 사람이니 2004년에 입단했던 오주원에게는 당연히 여러 번 만나서 아는 사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