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92929><colcolor=#ffffff> 제인 버킨 Jane Birkin OBE | |
본명 | 제인 맬러리 버킨 Jane Mallory Birkin |
출생 | 1946년 12월 14일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런던 웨스트민스터 메릴본 | |
사망 | 2023년 7월 16일 (향년 76세) |
프랑스 파리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3cm |
직업 | 가수, 배우, 모델 |
활동 | 1964년 – 2023년 |
배우자 /파트너 | 존 배리(1965년 결혼–1968년 이혼) 세르주 갱스부르(1968년–1980년) 자크 드와이옹(1980년–1991년) |
자녀 | 케이트 배리(1967년생)[1] 샤를로트 갱스부르(1971년생) 루 드와이옹(1982년생)[2]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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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olbgcolor=#292929><colcolor=#ffffff> 1960년대의 제인 버킨. |
영국 런던 출생으로 주로 프랑스를 무대로 활동한 배우 겸 모델이자 가수였으며. 1960년대 스윙잉 런던과 1970년대의 프랑스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컨이자 뮤즈 중 한 명이었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세르쥬 갱스부르와는 연인 사이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며,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루 드와이옹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1984년 유명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의 버킨백[3]이 제인 버킨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인데, 본인의 업적과 네임밸류에 비하면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얄궂게도 절대다수의 부고에서는 버킨백이 언급되었다.
2. 생애
194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1930-40년대 노엘 카워드의 뮤즈로 활약했던 배우 주디 캠벨이었으며 아버지 데이비드 버킨은 영국 해군 소령이자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스파이로도 활동한 적이 있었다. 오빠인 앤드루 버킨도 극작가로 일하고 있다. 그야말로 예술계 로열 패밀리 출신.[4][5]시작은 상술했듯이 배우 겸 모델이었다. 1964년 연극 <Carving a Statue>에서 단역으 로 데뷔했으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과 조 마소 감독의 〈원더월〉에 출연하면서 영국에서 배우이자 모델로 어느정도 이름을 알린다.
그러던 중 프랑스로 넘어가[6] 〈슬로건〉이라는 영화 오디션에서 훗날 일생의 사랑이 되는 세르쥬 갱스부르를 만나게 된다.[7] 훗날 그는 “나는 예전부터 가슴이 작고 양성적인 여자를 그려왔다.나는 제인을 만나기 전부터 제인을 그려왔다.” 라는 말을 남겼다.
40대의 세르쥬 갱스부르와 동거를 시작한 버킨은 약 13년간 그와 파트너로 함께하였다. 갱스부르의 파트너 답게 가수 데뷔도 하게 되었는데 보컬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영국 악센트가 섞인, 특유의 속삭이는 듯한 갸날프고 소녀적인 목소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어린아이의 혀짤배기 소리(lisp)와도 비슷해서 누가 들어도 귀엽지만, 프랑스어 원어민의 귀에는 특히 매력적으로 들린다고.
둘 사이에서 샤를로트 갱스부르[9]를 얻지만, 세르쥬의 끊임없는 바람기와 마약과 술을 일삼는 삶으로 인해 지친 제인은 결국 프랑스 영화감독인 자크 드와이옹[10]의 아이를 임신한 채[11] 아이들과 세르주 갱스부르를 떠나 버린다.
제인 버킨이 세르쥬 갱스부르를 떠나게 되자 원래 음반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던 'Pull Marine' 앨범의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세르주는 급히 제인 버킨과 음색이 닮은 사람을 수소문한 끝에 프랑스의 국민배우 이자벨 아자니를 섭외하는데 성공했다. 1983년 발매된 'Pull Marine' 앨범은 비록 이자벨 아자니의 가창력은 별로였지만 제인 버킨과 비슷한 창법과 음색으로 인해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배우로서의 경력은 중년으로 접어든 80년대와 90년대에 절정을 맞았는데 이 시기에 프랑스 최고 권위 시상식인 세자르 시상식 후보에 3번 선정되었으며 거장 감독들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85년에는 제42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영화 더스트로 방랑자의 상드린 보네르와 함께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경합했다. 심사위원들은 배우가 아닌 영화 자체에 상을 주며 그 해엔 여우주연상 시상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내에선 패션 아이콘 위주로 언급되지만 무시하기 어려운 경력이 있는 배우이다.
꽤 커리어 관리를 잘한 편인지라 프랑스 아트하우스 영화 감독들에게 꾸준히 러브콜을 받아오면서 최근까지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아녜스 바르다와 자크 리베트 영화에 자주 출연한 편. 물론 모국이 영국이니 영어 영화에도 얼굴을 내밀곤 했다.
가수로서는 2004년, 2012년, 2013년 방한해 내한 공연을 했다.
자신이 부르길 거절해서 다른 사람이 대신 부른 노래가 몇 곡 있는데 그래서 대박난 노래들이 있다. 이자벨 아자니가 대신 부른 Ohio와 엘자 룅기니가 대신 부른 T'en va pas이다.
3. 사망
한국 시간으로 2023년 7월 16일, 자택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공연을 앞두고 있었지만 뇌혈관에 문제가 발견되어 공연을 취소했는데 이후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4. 주요 출연작
- 1966: 욕망[12]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 1968: 원더월
- 1978: 나일 살인사건 - 아가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 원작으로 초호화 앙상블 캐스팅 영화, 제인 버킨의 비중은 낮다
- 1984: 지상의 사랑 / 누벨바그 거장 자크 리베트 감독
- 1985: 더스트 - 베니스 영화제에서 연기 호평을 받았다. 다만 수상은 못했는데, 경쟁 부분에서 상드린 보네르랑 연기 경쟁이 붙어 심사위원들이 누가 훌륭하냐고 따지다가 결국 둘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수상자 없음으로 결론났기 때문이다.
- 1987: 아무도 모르게 / 누벨바그 거장 아녜스 바르다 감독
- 1988: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 아녜스 바르다 감독
- 1990 Daddy Nostalgie / 대디 노스탈지 /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 1991: 누드 모델 / 자크 리베트 감독 /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 2012: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 홍상수 감독 / 특별출연 - 한국 독립 영화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며,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서 출연했다고 한다.[13]
- 2021: Jane Par Charlotte / 샤를로트 갱스부르 감독 / 다큐멘터리
5. 음반 목록
- 1969: 《Jane Birkin - Serge Gainsbourg》
- 1973: 《Di Doo Dah》
- 1975: 《Lolita Go Home》
- 1978: 《Ex-Fan des Sixties》
- 1983: 《Baby Alone in Babylone》
- 1987: 《Lost Song》
- 1990: 《Amours des feintes》
- 1996: 《Versions Jane》
- 1999: 《À la légère》
- 2004: 《Rendez-vous》
- 2006: 《Fictions》
- 2008: 《Enfants d'hiver》
6. 서훈
- 2001년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
- 2004년 프랑스 국가공로훈장(Ordre national du Mérite) 슈발리에
- 2015년 프랑스 국가공로훈장(Ordre national du Mérite) 오피시에
[1] 인스타그램 1967년 4월 8일에 첫번째 남편 존 배리 사이에서 출생한 딸로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2013년 12월 11일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추락사했다.[2] 인스타그램 세르주 갱스부르와 결별 후 1982년 9월 4일 자크 드와이옹 사이에서 출생한 딸로 현재 가수, 배우, 모델로 활동 중이며 음악가 토마스 존 미셸 사이에 슬하 아들 1명 말로 미셸을 두었다.[3] 파리발 런던행 비행기 1등석에 탑승했던 제인 버킨 옆좌석에 에르메스 CEO인 장-루이 뒤마가 앉았는데, 버킨에게서 적당한 사이즈의 가죽백이 없다는 불평을 들은 뒤마가 영감을 받고 만든 백을 '버킨백'으로 명명한 다음 버킨에게 선물했고, 이것은 곧 부유층의 스테이터스 심볼이 되었으며, 2020년대 들어서는 최소 가격대가 1,500만 원부터 시작했다.[4] 앤드루 버킨이 조카인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주연으로 기용해 직접 연출한 이언 매큐언 소설 원작 영화 〈시멘트 가든〉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을 정도였다.[5] 원작 소설은 한국판이 출간되었는데, 영화는 DVD조차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6] 이 때는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고 한다.[7] 참고로 세르쥬와 버킨 둘 다 당시 이혼 경력이 있었다. 전 남편은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전용 BGM을 작곡한 존 배리. 배리 소생의 딸 케이트 배리도 있었다.[8] 국내에서는 2012년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9] 세르쥬 갱스부르 항목 참조.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탄생은 계획에 없었다고 한다.[10] 한국에서는 뽀네뜨와 러브배틀로 유명하다. 참고로 자크 드와이옹과도 1980년부터 1991년까지 동거만 했다.[11] 현재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루 드와이옹이다.[12] 제인 버킨은 단역으로 비중은 낮다.[13] 한국의 독립영화는 한국보다 유럽권에서 더 인지도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