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제13대 국회의원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 종로 | 성동 갑 | 성동 을 | ||
이종찬 | 정대철 | 서정화 | 강금식 | 조세형 | |
성동 병 | 중랑 갑 | 중랑 을 | |||
박용만 | 최훈 | 김영구 | 이상수 | 김덕규 | |
성북 갑 | 성북 을 | 도봉 갑 | 도봉 을 | 노원 갑 | |
이철 | 조윤형 | 신오철 | 이철용 | 백남치 | |
노원 을 | 은평 갑 | 은평 을 | 서대문 갑 | 서대문 을 | |
김용채 | 김재광 | 오유방 | 강성모 | 임춘원 | |
마포 갑 | 마포 을 | 양천 갑 | 양천 을 | 강서 갑 | |
노승환 | 강신옥 | 양성우 | 김영배 | 공석 | |
강서 을 | 구로 갑 | 구로 을 | 영등포 갑 | 영등포 을 | |
남재희 | 김기배 | 유기수 | 장석화 | 나웅배 | |
동작 갑 | 동작 을 | 관악 갑 | 관악 을 | 서초 갑 | |
서청원 | 박실 | 한광옥 | 이해찬 | 박찬종 | |
서초 을 | 강남 갑 | 강남 을 | 송파 갑 | 송파 을 | |
김덕룡 | 황병태 | 이태섭 | 김우석 | 김종완 | |
강동 갑 | 강동 을 | ||||
김동규 | 김중위 | ||||
* 강서 갑 이원배 의원직 상실 (1992.2.28.) * 영등포 을 김명섭 의원직 상실 (1989.5.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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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결과
2.1. 종로구2.2. 중구2.3. 용산구2.4. 성동구 갑2.5. 성동구 을2.6. 성동구 병2.7. 동대문구 갑2.8. 동대문구 을2.9. 중랑구 갑2.10. 중랑구 을2.11. 성북구 갑2.12. 성북구 을2.13. 도봉구 갑2.14. 도봉구 을2.15. 노원구 갑2.16. 노원구 을2.17. 은평구 갑2.18. 은평구 을2.19. 서대문구 갑2.20. 서대문구 을2.21. 마포구 갑2.22. 마포구 을2.23. 양천구 갑2.24. 양천구 을2.25. 강서구 갑2.26. 강서구 을2.27. 구로구 갑2.28. 구로구 을2.29. 영등포구 갑2.30. 영등포구 을2.31. 동작구 갑2.32. 동작구 을2.33. 관악구 갑2.34. 관악구 을2.35. 서초구 갑2.36. 서초구 을2.37. 강남구 갑2.38. 강남구 을2.39. 송파구 갑2.40. 송파구 을2.41. 강동구 갑2.42. 강동구 을
1. 개요
본 항목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의 서울특별시 지역구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항목이다. 선거구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순서로 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쓰는 공식 발표법이기 때문이다.2. 결과
13대 총선 서울특별시 지역구 결과 | ||||
평화민주당 | 민주정의당 | 통일민주당 | 신민주공화당 | 무소속 |
17석 | 10석 | 10석 | 3석 | 2석 |
전체적인 결과는 총 42석 중 여당이 10석, 야권이 32석으로 야당의 압승으로 나타났고, 범보수계(민정+공화)와 민주당계(평민+민주+통합파 무소속)로 구분해도 13:29로 더블스코어 차이가 났다.
2.1. 종로구
종로구 종로구 일원[종로]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종찬(李鍾贊) | 46,534 | 1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 | 37.95% | 당선 | |
2 | 김명윤(金命潤) | 44,488 | 2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36.28% | 낙선 | |
3 | 정인봉(鄭寅鳳) | 15,139 | 3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2.34% | 낙선 | |
4 | 제정구(諸廷垢) | 15,031 | 4위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12.26% | 낙선 | |
5 | 한상필(韓相弼) | 418 | 6위 |
[include(틀:사회민주당(1985년))] | 0.34% | 낙선 | |
6 | 차장량(車長良) | 305 | 7위 |
[include(틀:우리정의당)] | 0.24% | 낙선 | |
7 | 김경민(金慶珉) | 683 | 5위 |
| 0.5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5,660 | 투표율 70.4% |
투표 수 | 123,664 | ||
무효표 수 | 1,066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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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이 있는 지역답게, 민주당과 평민당이 절대 민정당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단일화를 한 유일한 선거구다.[2] 평민당은 당초 후보로 내정된 박영숙 총재대행을 전국구로 보내고 민주당 김명윤 후보로 단일화했다.
야권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현역 지역구 의원인 민정당 이종찬 후보가 신승했다. 김명윤 후보가 민주당, 평민당의 단일 후보로 나왔지만, 서울 지역에서는 첫 출마라 종로 터줏대감인 이종찬 의원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강성 야권지지자들의 표가 빈민운동가인 한겨레민주당 제정구 후보에게도 많이 가면서 단일화의 효과를 완전히 누리지 못했다.
종로의 단골출마자이며, 이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나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정인봉 변호사가 판사직을 사퇴하고 처음으로 종로에 출마한 선거이기도 하다. 김두한 전 의원의 아들이자 김을동 전 의원의 남동생인 김경민씨도 군소정당 후보로 아버지의 예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1%도 득표하지 못하고 낙선했다.
2.2. 중구
중구 서울 중구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장기홍(張基弘) | 27,617 | 2위 |
| 28.59% | 낙선 | |
2 | 김중태(金重泰) | 20,721 | 3위 |
[[통일민주당|]] | 21.45% | 낙선 | |
3 | 정대철(鄭大哲) | 38,228 | 1위 |
[[평화민주당|]] | 39.58% | 당선 | |
4 | 문창탁(文昌鐸) | 8,935 | 4위 |
[[신민주공화당|]] | 9.25% | 낙선 | |
5 | 김명주(金明珠) | 240 | 6위 |
[[한국국민당(1981년)|]] | 0.24% | 낙선 | |
6 | 이세춘(李世春) | 837 | 5위 |
| 0.8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7,878 | 투표율 70.60% |
투표 수 | 97,346 | ||
무효표 수 | 768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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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정치규제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민한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신민당 돌풍에 밀려 낙선하는 바람에 국회입성에 실패한 평민당 정대철 전 의원이, 유신체제의 몰락과 5공 출범 이후 8년만에 다시 국회에 입성한다.
당초 민정당에서는 민관식 전 국회부의장 및 문교부 장관이 공천을 받았으나, 이후 모종의 이유로 공천을 반납한다. 결국 민정당은 마땅한 거물급 인사를 찾지 못했는지 장기홍 홍신개발 대표를 대타로 공천한다. 당초 민관식-정대철 두 후보 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으나, 정치 초년생인 장기홍 후보는 정대철 후보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결국 정 후보가 10% 이상의 차이로 손쉽게 이겼다.
2.3. 용산구
용산구 용산구 일원[용산]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서정화(徐廷和) | 48,103 | 1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 | 32.88% | 당선 | |
2 | 김재영(金在暎) | 33,691 | 3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3.03% | 낙선 | |
3 | 한영애(韓英愛) | 34,364 | 2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3.49% | 낙선 | |
4 | 설송웅(楔松雄) | 25,721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7.58% | 낙선 | |
5 | 정무형(鄭茂亨) | 3,779 | 5위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2.58% | 낙선 | |
6 | 이부규(李富圭) | 599 | 6위 |
| 0.4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14,226 | 투표율 68.97% |
투표 수 | 147,750 | ||
무효표 수 | 1,493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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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는 4개월 전 치러진 제13대 대선에서 1위 김대중 후보와 2위 노태우 후보의 격차가 0.6%에 불과하고, 2위 노태우 후보와 3위 김영삼의 격차도 2.6%에 불과하는 등 세 후보가 모두 3% 이내의 초접전 승부를 벌였다.
하지만 총선은 달랐다. 내무부 장관과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낸 민정당 서정화 후보가, 압도적인 경력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민주당 김재영 후보와 평민당 한영애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설민석 강사의 아버지인 설송웅 전 의원이 처음으로 출마한 선거다. 이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패배한 후, 1995년 초대 민선 용산구청장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3수끝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2.4. 성동구 갑
성동구 갑 응봉동, 금호1가동, 금호2·3가동, 금호4가동, 옥수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세기(李世基) | 35,666 | 2위 |
| 32.00% | 낙선 | |
2 | 박종철(朴宗喆) | 18,512 | 3위 |
[[통일민주당|]] | 16.61% | 낙선 | |
3 | 강금식(姜金植) | 36,819 | 1위 |
[[평화민주당|]] | 33.03% | 당선 | |
4 | 박병호(朴炳浩) | 18,267 | 4위 |
[[신민주공화당|]] | 16.61% | 낙선 | |
5 | 이연국(李演國) | 2,185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4,250 | 투표율 68.50% |
투표 수 | 112,439 | ||
무효표 수 | 990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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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원인 민정당 이세기 후보는 정계진출 이전부터 4.19 혁명을 이끈 학생 지도부의 일원으로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재선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국토통일원 장관과 체육부 장관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성동구 갑은 총선 직전 치러진 대선에서 부재자 표가 섞인 성수1가1동을 제외하고 모든 동에서 김대중 후보가 노태우 후보를 이긴 평민당 강세 지역이었다. 결국 교수 출신 정치신인인 평민당 강금식 후보가 이세기 후보를 1% 차이로 꺾고 당선되었다.
2.5. 성동구 을
성동구 을 왕십리·도선동, 왕십리2동, 마장동, 사근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설영주(楔永珠) | 21,109 | 2위 |
| 19.84% | 낙선 | |
2 | 심의석(沈宜錫) | 16,922 | 4위 |
[[통일민주당|]] | 15.97% | 낙선 | |
3 | 조세형(趙世衡) | 43,901 | 1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41.45% | 당선 | |
4 | 노진환(魯璡煥) | 16,953 | 3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6.00% | 낙선 | |
5 | 최윤기(崔允基) | 3,580 | 5위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3.38% | 낙선 | |
6 | 김원식(金元植) | 3,538 | 6위 |
[include(틀:무소속)] | 3.3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1,859 | 투표율 66.00% |
투표 수 | 106,876 | ||
무효표 수 | 963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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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정치규제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민한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신민당 돌풍에 밀려 낙선하는 바람에 국회입성에 실패한 평민당 조세형 전 의원이 승리했다. 2위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가 두 배를 넘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총선 직전 치른 제13대 대선에서도 평민당 김대중 후보가 이곳에서는 1위였고, 다른 정당이 조세형 후보를 상대할 만한 거물을 내세우지도 않았기에 압도적인 선거 결과가 나왔다.
2.6. 성동구 병
성동구 병 중곡1동, 중곡2동, 중곡3동, 중곡4동, 능동, 구의동, 광장동, 자양1동, 자양2동, 자양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신영균(申榮均) | 36,142 | 2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 | 30.87% | 낙선 | |
2 | 박용만(朴容萬) | 37,769 | 1위 |
[[통일민주당|]] | 32.26% | 당선 | |
3 | 최운상(崔雲祥) | 26,591 | 3위 |
[[평화민주당|]] | 22.71% | 낙선 | |
4 | 윤백현(尹百鉉) | 15,496 | 4위 |
[[신민주공화당|]] | 13.23% | 낙선 | |
5 | 신상수(申相洙) | 1,047 | 5위 |
| 0.8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9,502 | 투표율 69.60% |
투표 수 | 117,949 | ||
무효표 수 | 90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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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성동구 병 선거구는 오늘날의 광진구 (광진구 갑, 광진구 을)에 해당한다.
현역 의원인 민주당 박용만 후보가 승리했다. 연예인이자 재력가인 민정당 신영균 후보는 1.4% 차이로 아깝게 낙선했다. 이후 신영균은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때 신한국당 전국구 후보로 당선된다.
평민당 김대중 총재가 제13대 대선때 성동구 갑에서 1위를 했지만, 외교관 출신인 평민당 최운상 후보는 부족한 인지도때문에 3위로 내려앉았다.
2.7. 동대문구 갑
동대문구 갑 신설동, 용두1동, 용두2동, 제기1동, 제기2동, 청량리1동, 청량리2동, 회기동, 휘경1동, 휘경2동, 이문1동, 이문2동, 이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유종열(劉鍾烈) | 26,900 | 2위 |
| 23.73% | 낙선 | |
2 | 노승우(盧承禹) | 26,716 | 3위 |
[[통일민주당|]] | 23.56% | 낙선 | |
3 | 최훈(崔薰) | 28,475 | 1위 |
[[평화민주당|]] | 25.12% | 당선 | |
4 | 이인근(李仁根) | 24,442 | 4위 |
[[신민주공화당|]] | 21.56% | 낙선 | |
5 | 장광근(張光根) | 4,348 | 5위 |
[[한겨레민주당|]] | 3.83% | 낙선 | |
6 | 전명환(田明煥) | 594 | 7위 |
| 0.52% | 낙선 | |
7 | 강두원(姜斗遠) | 1,878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6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5,466 | 투표율 70.01% |
투표 수 | 114,405 | ||
무효표 수 | 1,052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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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와 4위와의 격차가 4%도 안될 정도로 4당 후보가 초접전을 벌였다. 현역 전국구 의원인 평민당 최훈 후보가 승리했다.
훗날 3선 의원,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낼 장광근 전 의원이 처음으로 출마한 선거이다.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5위로 낙선했다.
2.8. 동대문구 을
동대문구 을 전농1동, 전농2동, 전농3동, 전농4동, 장안1동, 장안2동, 장안3동, 장안4동, 답십리1동, 답십리2동, 답십리3동, 답십리4동, 답십리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영구(金榮龜)[4] | 34,821 | 1위 |
| 30.37% | 당선 | |
2 | 송원영(宋元英) | 23,364 | 3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0.37% | 낙선 | |
3 | 고광진(高光振) | 32,017 | 2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7.92% | 낙선 | |
4 | 김태웅(金泰雄) | 15,352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3.39% | 낙선 | |
5 | 진영효(陳榮孝) | 4,054 | 6위 |
| 3.53% | 낙선 | |
6 | 고달준(高達後) | 5,043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3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5,466 | 투표율 70.01% |
투표 수 | 114,405 | ||
무효표 수 | 1,12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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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전국구 의원인 민정당 김영구 후보가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서울 동북부의 유일한 민정당 당선자가 된다. 재미있는 점은 16년 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홍준표 의원이 서울 동북부의 유일한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가 된다.
동대문구에서만 무려 5선을 지낸 야권 중진 민주당 송원영 후보는, 다선 의원에 대한 교체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3위로 낙선하면서 정계를 은퇴한다.
2.9. 중랑구 갑
중랑구 갑 면목1동, 면목2동, 면목3동, 면목4동, 면목5동, 면목6동, 면목7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순재(李順載) | 26,483 | 2위 |
| 31.40% | 낙선 | |
2 | 류택형(柳宅馨) | 17,052 | 3위 |
[[통일민주당|]] | 17.30% | 낙선 | |
3 | 이상수(李相洙) | 27,242 | 1위 |
[[평화민주당|]] | 32.30% | 당선 | |
4 | 박훈(朴勳) | 9,984 | 4위 |
[[신민주공화당|]] | 11.84% | 낙선 | |
5 | 황익수(黃益洙) | 3,560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2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8,671 | 투표율 71.61% |
투표 수 | 84,988 | ||
무효표 수 | 667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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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변호사인 평민당 이상수 후보가, 유명 탤런트인 민정당 이순재 후보를 불과 0.9% 차이로 꺾고 첫 선거에서 당선된다. 이후 이상수 의원은 국회 환노위에서 노무현, 이해찬, 이인제 의원 등과 맹활약한다.
4년 뒤의 재대결에서는, 민자당 이순재 후보가 직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역 덕분에 민주당 이상수 후보를 꺾고 설욕전에 성공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순재는 정계 은퇴 이후 2005년 재보궐선거때 자신과 두 번 맞붙었던 이상수가 부천에 출마하자, 이상수의 후원회장을 맡는다. 두 번 맞붙었지만, 둘 사이에 서로 한 건의 고소, 고발도 없을 정도로 제대로 된 승부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10. 중랑구 을
중랑구 을 상봉1동, 중화1동, 중화2동, 묵1동, 묵2동, 망우1동, 망우2동, 신내1동, 신내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천명기(千命基) | 27,619 | 2위 |
| 25.60% | 낙선 | |
2 | 박찬(朴璨) | 26,287 | 3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4.36% | 낙선 | |
3 | 김덕규(金德圭) | 31,328 | 1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9.04% | 당선 | |
4 | 강병진(姜秉珍) | 20,080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8.61% | 낙선 | |
5 | 김성식(金星植) | 2,559 | 5위 |
[[한겨레민주당|]] | 2.3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0,719 | 투표율 67.84% |
투표 수 | 109,031 | ||
무효표 수 | 1,158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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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전직 의원에다(천명기, 박찬, 김덕규), 3년 전 총선에 출마하며 이름을 어느정도 알린 공화당 강병진 후보까지 가세해 박빙 승부가 예상되었다.
평민당 김덕규 후보가 3.4% 차이로 신승했다.
2.11. 성북구 갑
성북구 갑 성북1동, 성북2동, 동소문동, 삼선1동, 삼선2동, 동선1동, 동선2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길음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정례(金正禮) | 30,603 | 2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 | 23.45% | 낙선 | |
2 | 고인순(高寅淳) | 10,578 | 5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8.10% | 낙선 | |
3 | 설훈(薛勳) | 29,482 | 3위 |
[[평화민주당|]] | 22.59% | 낙선 | |
4 | 최재우(崔在羽) | 16,326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2.51% | 낙선 | |
5 | 김현식(金鉉植) | 953 | 6위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0.73% | 낙선 | |
6 | 송영기(宋榮起) | 1,882 | 5위 |
[include(틀:사회민주당(1985년))] | 1.44% | 낙선 | |
7 | 이철(李哲) | 40,652 | 1위 |
[include(틀:무소속)] | 31.15%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91,086 | 투표율 68.83% |
투표 수 | 131,515 | ||
무효표 수 | 1,039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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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총선에 출마해 "정치 사형수[5] 이철, 성북에 돌아오다"라는 파격적인 구호를 내걸고 당선된 이철 의원은, 김영삼-김대중의 야권 단일화가 무산되자 양김씨를 비판하며 민주당과 평민당 모두 합류를 거부하고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다행히 지역구 내 높은 인기 덕분에 무소속 후보로도 당선되었다.
설훈 의원이 최초로 출마한 선거이다. 낙선 이후 성북구에는 다시 출마하지 않고, 도봉구 을에서 2번, 부천시 을(구 부천 원미 을)에서 3번 당선되었다.
2.12. 성북구 을
성북구 을 돈암1동, 길음3동, 종암1동, 종암2동, 월곡1동, 월곡2동, 월곡3동, 월곡4동, 상월곡동, 장위1동, 장위2동, 장위3동, 석관1동, 석관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강성재(姜聲才) | 30,771 | 2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 | 23.59% | 낙선 | |
2 | 현승일(玄勝一) | 30,600 | 3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3.46% | 낙선 | |
3 | 조윤형(趙尹衡) | 50,310 | 1위 |
[[평화민주당|]] | 38.57% | 당선 | |
4 | 김유(金裕) | 16,833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2.90% | 낙선 | |
5 | 임태백(林太伯) | 1,904 | 5위 |
[[한겨레민주당|]] | 1.4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0,003 | 투표율 69.14% |
투표 수 | 131,365 | ||
무효표 수 | 947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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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당 조윤형 전 의원이 10월 유신으로 해산된 국회를 떠난 뒤 16년만에 다시 국회에 재입성한다.
훗날 국회의원이 될 강성재 동아일보 기자와 6.3 항쟁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한 현승일 국민대 교수도 각각 민정당,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조윤형 전 의원을 꺾기에는 인지도 면에서 역부족이었다.
4위를 한 공화당 김유 후보는 안타깝게도 선거운동 기간 중 지병으로 쓰러졌고, 선거 낙선 3일 후인 4월 28일 별세한다.
2.13. 도봉구 갑
도봉구 갑 미아3동, 미아4동, 번1동, 번2동, 수유3동, 쌍문1동, 쌍문2동, 쌍문3동, 방학1동, 방학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장천석(張天錫) | 23,183 | 2위 |
| 19.34% | 낙선 | |
2 | 박정태(朴正泰) | 16,436 | 5위 |
[[통일민주당|]] | 13.71% | 낙선 | |
3 | 한호상(韓虎相) | 22,532 | 3위 |
[[평화민주당|]] | 18.80% | 낙선 | |
4 | 신오철(申五澈) | 39,873 | 1위 |
[[신민주공화당|]] | 33.27% | 당선 | |
5 | 조순형(趙舜衡) | 17,817 | 4위 |
[[한겨레민주당|]] | 14.8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5,484 | 투표율 68.78% |
투표수 | 120,695 | ||
무효표수 | 85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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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3관왕으로 유명한 공화당 신오철 후보가, 소속 정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3번이나 낙선하면서 얻은 동정 여론을 타고 마침내 당선되었다.
전통적으로 여당이 약한 서울 강북지역인데다가 민정당 후보의 인지도도 낮아 여권 표가 구 여권 후보인 신오철 당선자에게 많이 갔다. 조순형 현역 의원이 야권단일화에 실패한 김영삼, 김대중을 모두 비판하며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전통적 야권표를 3명끼리 가른 것도 신 후보의 당선에 도움이 되었다.
2.14. 도봉구 을
도봉구 을 미아1동, 미아2동, 미아5동, 미아6동, 미아7동, 미아8동, 수유1동, 수유2동, 수유4동, 수유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배성동(裵成東) | 23,981 | 2위 |
| 23.84% | 낙선 | |
2 | 임정규(林井圭) | 17,714 | 3위 |
[[통일민주당|]] | 17.61% | 낙선 | |
3 | 이철용(李喆鎔) | 32,283 | 1위 |
[[평화민주당|]] | 32.09% | 당선 | |
4 | 김우경(金遇敬) | 12,932 | 4위 |
[[신민주공화당|]] | 12.85% | 낙선 | |
5 | 박영식(朴永植) | 1,200 | 7위 |
| 1.19% | 낙선 | |
6 | 전대열(全大烈) | 3,262 | 6위 |
[[한겨레민주당|]] | 3.24% | 낙선 | |
7 | 진복기(陳福基) | 901 | 9위 |
| 0.89% | 낙선 | |
8 | 김원길(金元吉) | 7,344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7.30% | 낙선 | |
9 | 이영수(李永守) | 973 | 8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9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9,467 | 투표율 67.91% |
투표 수 | 101,503 | ||
무효표 수 | 913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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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방동네 사람들>의 작가로 유명한 소설가 이철용 평민당 후보가, 현역 전국구 의원인 민정당 배성동 후보를 꺾었다.
제7대 대통령 선거에 군소 후보로 출마했고, 카이저 수염으로 유명한 진복기씨도 출마했으나, 최하위로 낙선했다.
2.15. 노원구 갑
노원구 갑 창1동, 창2동, 창3동, 월계1동, 월계2동, 공릉1동, 공릉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안대륜(安大崙) | 21,754 | 3위 |
| 24.09% | 낙선 | |
2 | 백남치(白南治) | 25,699 | 1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8.46% | 당선 | |
3 | 박병일(朴炳一) | 24,602 | 2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7.25% | 낙선 | |
4 | 성정기(成正基) | 10,640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1.78% | 낙선 | |
5 | 유인태(柳寅泰) | 7,575 | 5위 |
[[한겨레민주당|]] | 8.3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4,013 | 투표율 67.90% |
투표 수 | 90,993 | ||
무효표 수 | 723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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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민주당, 평민당 후보끼리의 치열한 선두다툼 끝에, 서울대 강사를 지내는 등 학자로 활동한 민주당 백남치 후보가 당선되었다.
유인태 전 의원이 처음으로 출마한 선거이기도 하다. 이후 선거구를 옮겨 도봉구 갑과 도봉구 을에서 총 3번 당선되었다.
2.16. 노원구 을
노원구 을 도봉1동, 도봉2동, 하계동, 중계동, 상계1동, 상계2동, 상계3동, 상계4동, 상계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권오주(權五周) | 16,161 | 4위 |
| 15.97% | 낙선 | |
2 | 신두희(申斗凞) | 21,028 | 3위 |
[[통일민주당|]] | 20.78% | 낙선 | |
3 | 임채정(林采正) | 30,346 | 2위 |
[[평화민주당|]] | 29.99% | 낙선 | |
4 | 김용채(金鎔采) | 31,150 | 1위 |
[[신민주공화당|]] | 30.79% | 당선 | |
5 | 정선배(鄭善培) | 2,474 | 5위 |
| 2.4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7,108 | 투표율 69.46% |
투표수 | 102,187 | ||
무효표수 | 1,028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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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 출신이며, 3년 전 치러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때까지 포천군-연천군-가평군 선거구에서 줄곧 당선된 신민주공화당 김용채 의원이 선거구를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접전끝에 당선되었다. 선거구를 옮긴 이유는 민정당 실력자인 이한동 의원과 소선거구에서 맞붙으면 패배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4년 뒤 치러지는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때는, 김용채 전 의원과 임채정 전 의원이 재검표까지 가는 더 치열한 승부를 벌인다. 처음에는 민자당 김용채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발표되었으나, 재검표끝에 민주당 임채정 후보의 당선으로 정정된다.
2.17. 은평구 갑
은평구 갑 녹번동, 증산동, 신사1동, 신사2동, 응암1동, 응암2동, 응암3동, 수색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오유방(吳有邦) | 30,687 | 1위 |
| 31.80% | 당선 | |
2 | 오상현(吳上鉉) | 23,644 | 3위 |
[[통일민주당|]] | 24.50% | 낙선 | |
3 | 조동회(趙東會) | 29,127 | 2위 |
[[평화민주당|]] | 30.19% | 낙선 | |
4 | 송지현(宋芝顯) | 9,555 | 4위 |
[[신민주공화당|]] | 9.90% | 낙선 | |
5 | 황성(黃成) | 487 | 7위 |
| 0.50% | 낙선 | |
6 | 송창달(宋障達) | 2,139 | 5위 |
[[한겨레민주당|]] | 2.21% | 낙선 | |
7 | 손가명(孫嘉明) | 832 | 6위 |
| 0.8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1,534 | 투표율 68.78% |
투표 수 | 97,342 | ||
무효표 수 | 871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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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이후 민주공화당의 정풍운동을 주도하다가 민정당 입당을 거부하고 정치규제를 당한 오유방 전 의원이, 공화당 해산 후 8년이 지난 뒤에야 민정당에 입당한 뒤 출마한다. 전북 무주군-진안군-장수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던 오상현 전 의원도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평민당은 김대중 총재의 동교동계 측근인 조동회 후보를 공천했다.
오유방 후보는 접전 끝에 평민당 조동회 후보를 1.6% 차이로 꺾고 당선되었다.
2.18. 은평구 을
은평구 을 불광1동, 불광2동, 불광3동, 갈현동, 구산동, 대조동, 역촌1동, 역촌2동, 진관내동, 진관외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완일(朴完一) | 26,814 | 2위 |
| 25.80% | 낙선 | |
2 | 김재광(金在光) | 27,154 | 1위 |
[[통일민주당|]] | 26.13% | 당선 | |
3 | 이원형(李沅衡) | 26,612 | 3위 |
[[평화민주당|]] | 25.61% | 낙선 | |
4 | 임인채(任忍采) | 13,619 | 4위 |
[[신민주공화당|]] | 13.10% | 낙선 | |
5 | 이현배(李賢培) | 9,700 | 5위 |
[[한겨레민주당|]] | 9.3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53,073 | 투표율 68.42% |
투표 수 | 104,733 | ||
무효표 수 | 83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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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독자 계보까지 거느렸던 야권 거물인 민주당 김재광 의원이 당선, 7선 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표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1위인 김재광 당선자와 3위인 평민당 이원형 전 의원과의 표차가 겨우 542표일 정도로 초박빙 승부였다.
2.19. 서대문구 갑
서대문구 갑 충정로동, 천연동, 현저동, 북아현1동, 북아현2동, 북아현3동, 대신동, 창천동, 연희1동, 연희2동, 연희3동, 홍제1동, 홍제2동, 홍제4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강성모(姜聖模) | 36,097 | 1위 |
| 37.04% | 당선 | |
2 | 김상현(金相賢) | 30,598 | 2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31.39% | 낙선 | |
3 | 김학민(金學珉) | 23,054 | 3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3.65% | 낙선 | |
4 | 신순원(申淳元) | 5,621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5.76% | 낙선 | |
5 | 오재관(吳在官) | 1,341 | 5위 |
| 1.37% | 낙선 | |
6 | 고은석(高恩錫) | 736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7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8,825 | 투표율 70.75% |
투표 수 | 98,212 | ||
무효표 수 | 765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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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나이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낸 기업가 출신 민정당 강성모 후보가 야권 거물인 민주당 김상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김상현 전 의원은 60년대부터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최측근이었다. 민추협 결성때도 DJ의 대리인으로 맹활약했으나, DJ가 김영삼 총재와의 이견 후 민주당을 나가 평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할 때 DJ를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아 YS를 지지한다. 김상현의 증언에 따르면, 동교동계에 찍혀서 이희호 여사까지 지역구에 와서 평민당 김학민 후보를 적극 지원하는 바람에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야권표를 충분히 결집하지 못해 낙선했다.#
2.20. 서대문구 을
서대문구 을 홍제3동, 홍은1동, 홍은2동, 홍은3동, 남가좌1동, 남가좌2동, 북가좌1동, 북가좌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안성혁(安聖爀) | 24,417 | 2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 | 26.45% | 낙선 | |
2 | 강원채(康源采) | 22,620 | 3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4.50% | 낙선 | |
3 | 임춘원(林春元) | 35,478 | 1위 |
[[평화민주당|]] | 38.43% | 당선 | |
4 | 이승일(李勝一) | 7,295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7.90% | 낙선 | |
5 | 이근봉(李根鳳) | 2,498 | 5위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2.7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3,355 | 투표율 69.75% |
투표 수 | 93,009 | ||
무효표 수 | 701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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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전국구 의원인 평민당 임춘원 후보가 당선되었다. 막대한 재력과, 4개월 전 대통령 선거때 김대중 후보에게 큰 표차로 1위를 안겨준 서대문구의 민심을 타고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2.21. 마포구 갑
마포구 갑 아현1동, 아현2동, 아현3동, 공덕1동, 공덕2동, 신공덕동, 도화1동, 도화2동, 용강동, 대흥동, 염리동, 노고산동, 신수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명환(朴明煥) | 29,836 | 2위 |
| 29.48% | 낙선 | |
2 | 박홍섭(朴弘燮) | 25,012 | 3위 |
[[통일민주당|]] | 24.71% | 낙선 | |
3 | 노승환(盧承煥) | 36,134 | 1위 |
[[평화민주당|]] | 35.71% | 당선 | |
4 | 이종순(李鍾淳) | 10,203 | 4위 |
[[신민주공화당|]] | 10.0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50,678 | 투표율 67.73% |
투표 수 | 102,047 | ||
무효표 수 | 862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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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의원인 평민당 노승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결혼식 주례를 가장 많이 서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탁월한 지역구 관리를 해왔기에 비교적 여유롭게 5선에 성공했고, 당선 후 국회부의장에 오른다.
이후 노승환 의원은 다음 국회의원 선거때 공천 탈락을 이유로 민주당을 탈당하고 불출마 선언을 했으나, 뜬금없이 초대 민선 마포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2.22. 마포구 을
마포구 을 창전동, 상수동, 서교동, 동교동, 합정동, 망원1동, 망원2동, 연남동, 성산1동, 성산2동, 상암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주천(朴柱千) | 28,178 | 2위 |
| 26.70% | 낙선 | |
2 | 강신옥(姜信玉) | 40,563 | 1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38.44% | 당선 | |
3 | 김승목(金承穆) | 22,955 | 3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1.75% | 낙선 | |
4 | 장덕환(張悳煥) | 13,814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3.0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8,200 | 투표율 71.64% |
투표 수 | 106,175 | ||
무효표 수 | 665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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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변호한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민주당 강신옥 후보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2위 후보와 10% 넘는 격차로 당선되었다.
2위로 낙선한 민정당 박주천 후보는 이후 절차부심해 3당 합당 이후 민자당 공천에서 강신옥 의원을 꺾고 선거에서도 당선, 내리 3선을 기록한다.
2.23. 양천구 갑
양천구 갑 목1동, 목2동, 목3동, 목4동, 신정1동, 신정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범진(朴範珍) | 22,075 | 3위 |
| 24.17% | 낙선 | |
2 | 박수복(朴受福) | 23,510 | 2위 |
[[통일민주당|]] | 25.74% | 낙선 | |
3 | 양성우(梁性佑) | 25,717 | 1위 |
[[평화민주당|]] | 28.16% | 당선 | |
4 | 이규정(李圭正) | 14,683 | 4위 |
[[신민주공화당|]] | 16.08% | 낙선 | |
5 | 고순복(高順福) | 262 | 8위 |
[[사회민주당(1985년)|]] | 0.28% | 낙선 | |
6 | 서병찬(徐丙讚) | 533 | 7위 |
| 0.58% | 낙선 | |
7 | 김황식(金晃植) | 3,448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77% | 낙선 | |
8 | 이종일(李鍾壹) | 1,076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1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5,424 | 투표율 67.86% |
투표수 | 91,897 | ||
무효표수 | 593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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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인 평민당 양성우 후보가, 관선 강서구청장[6]을 지낸 민주당 박수복 후보를 2.4% 차이로 꺾고 당선된다. 이후 재선의원이 되는 민정당 박범진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는 3위로 쳐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목동신시가지아파트의 입주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는데, 목동아파트의 입주가 완료된 후에는 여당인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의 우세지역으로 탈바꿈한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때 더불어민주당 황희 후보가 당선될때까지 민주당계 정당은 목동이 속한 양천구 갑에서 계속 낙선한다.
울산에서 군소정당인 민주농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이규정 전 의원도, 지역구를 옮겨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지역 기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4개월 전 대통령 선거때 공화당 김종필 후보가 이 지역에서 얻은 득표율의 거의 두 배가 넘는 득표율을 얻었다. 하지만 다시 양천구 갑에 출마하지 않고 울산으로 돌아가서 한 번 더 당선된다.
2.24. 양천구 을
양천구 을 신월1동, 신월2동, 신월3동, 신월4동, 신월5동, 신월6동, 신정3동, 신정4동, 신정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양창중(楊昌中) | 22,036 | 3위 |
| 22.21% | 낙선 | |
2 | 탁형춘(卓炯春) | 16,121 | 4위 |
[[통일민주당|]] | 16.24% | 낙선 | |
3 | 김영배(金令培) | 34,866 | 1위 |
[[평화민주당|]] | 35.14% | 당선 | |
4 | 최후집(崔厚集) | 25,034 | 2위 |
[[신민주공화당|]] | 25.23% | 낙선 | |
5 | 서태종(徐泰鍾) | 1,156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1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3,829 | 투표율 69.59% |
투표수 | 100,091 | ||
무효표수 | 878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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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재선 의원인 평민당 김영배 의원이 높은 인지도와 신월동의 야당세를 바탕으로 넉넉한 표차로 다시 당선되었다.
특이하게도 주요 4개 정당 중 서울에서 당세가 가장 약한 공화당 최후집 후보가 2위로 선전했다. 당시 총선에서 서울 서남권 지역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이 꽤 선전한 편이였다. 구로구 을 선거구에서는 당선자(유기수)까지 배출했다.
2.25. 강서구 갑
강서구 갑 화곡1동, 화곡2동, 화곡3동, 화곡4동, 화곡5동, 화곡본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유영(兪煐) | 18,805 | 3위 |
| 23.03% | 낙선 | |
2 | 이원종(李源宗) | 21,026 | 2위 |
[[통일민주당|]] | 25.75% | 낙선 | |
3 | 이원배(李元湃) | 21,988 | 1위 |
[[평화민주당|]] | 26.93% | 당선 | |
4 | 고병현(高炳鉉) | 17,319 | 4위 |
[[신민주공화당|]] | 21.21% | 낙선 | |
5 | 김수태(金秀泰) | 2,502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0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5,847 | 투표율 71.03% |
투표수 | 82,286 | ||
무효표수 | 646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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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당 이원배 후보가 3수끝에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다만 이번 선거 전에는 두 번 모두 전라북도 선거구에 출마해 낙선했고, 서울 출마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1위인 평민당 이원배 후보와 4위인 공화당 고병현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5.7%에 불과할 정도로 치열한 4파전 승부가 벌어졌다. 하지만 이원배 의원은 수서 비리 사건에 연루되며 임기 중 구속과 동시에 4년간 피 선거권을 박탈당했고, 결국 아슬아슬하게 당선된 의원직이 아깝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다음 총선에는 불출마한다.
2위로 낙선한 민주당 이원종 후보는, 4년 뒤 제14대 총선에 민자당 후보로 출마하나, 민주당 박계동 후보에게 또다시 2% 이내의 격차로 접전패한다. 이후 문민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역임하나 국회의원직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불출마한다.
민정당 유영 후보도 4년 뒤 총선에서 다시 낙선한 후, 1995년 초대 민선 강서구청장에 당선된다.
2.26. 강서구 을
강서구 을 염창동, 등촌1동, 등촌2동, 가양동, 발산동, 공항동, 방화1동, 방화2동, 과해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남재희(南載熙) | 25,198 | 1위 |
| 31.32% | 당선 | |
2 | 최두환(崔斗煥) | 21,755 | 2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7.04% | 낙선 | |
3 | 김재현(金在炫) | 17,534 | 3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1.79% | 낙선 | |
4 | 김인식(金仁植) | 10,509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3.06% | 낙선 | |
5 | 최수영(崔洙泳) | 1,317 | 6위 |
[[한겨레민주당|]] | 1.63% | 낙선 | |
6 | 이경표(李敬表) | 4,125 | 5위 |
[[제3세대당|]] | 5.1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8,528 | 투표율 68.41% |
투표 수 | 81,081 | ||
무효표 수 | 643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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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중진인 남재희 후보가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강서구 을 선거구가 당시만 하더라도 공항 주변의 개발안된 농지가 꽤 많았기에 여당인 민정당이 야권에게 맥없이 밀리는 지역이 아니었다.
낙선한 민주당 최두환 후보는 3당 합당 합류를 거부하고 4년 뒤 치러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때 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 남재희 의원을 상대로 설욕에 성공한다.
2.27. 구로구 갑
구로구 갑 신도림동, 구로1동, 구로2동, 구로3동, 구로4동, 구로5동, 구로6동, 고척1동, 고척2동, 개봉1동, 개봉2동, 개봉3동, 오류1동, 오류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기배(金杞培) | 53,853 | 1위 |
| 32.63% | 당선 | |
2 | 김정강(金正剛) | 28,311 | 4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17.15% | 낙선 | |
3 | 박영록(朴永祿) | 51,786 | 2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31.38% | 낙선 | |
4 | 정순주(鄭淳柱) | 30,016 | 3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8.18% | 낙선 | |
5 | 최영남(崔泳男) | 1,049 | 5위 |
[[제3세대당|]] | 0.6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38,346 | 투표율 69.83% |
투표 수 | 166,426 | ||
무효표 수 | 1,411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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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김기배 의원과, 야권 중진이지만 강원도를 떠나 서울 출마는 처음인 평민당 박영록 전 의원의 치열한 2파전 승부가 전개되었다. 1988년 당시 구로구는 오늘날의 구로구와 금천구를 포함했는데, 당시 구로구에서 여당 표가 어느정도 나오는 고척동, 개봉1동, 오류1동등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접전이 예상되었다.
예상 대로 선거 결과도 박빙이었다. 민정당 김기배 후보가 평민당 박영록 후보를 1.25% 차이로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2.28. 구로구 을
구로구 을 가리봉1동, 가리봉2동, 가리봉3동, 독산1동, 독산2동, 독산3동, 독산4동, 독산본동, 시흥1동, 시흥2동, 시흥3동, 시흥4동, 시흥5동, 시흥본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최백희(崔百熙) | 29,147 | 3위 |
| 19.34% | 낙선 | |
2 | 김종배(金宗培) | 18,138 | 4위 |
[[통일민주당|]] | 12.03% | 낙선 | |
3 | 나이균(羅二均) | 42,025 | 2위 |
[[평화민주당|]] | 27.89% | 낙선 | |
4 | 유기수(劉基洙) | 44,588 | 1위 |
[[신민주공화당|]] | 29.59% | 당선 | |
5 | 한인수(韓仁洙) | 3,387 | 7위 |
| 2.24% | 낙선 | |
6 | 전수복(全洙福) | 992 | 8위 |
[[한국국민당(1981년)|]] | 0.65% | 낙선 | |
7 | 정태윤(鄭泰允) | 5,380 | 6위 |
| 3.57% | 낙선 | |
8 | 김영재(金永宰) | 805 | 9위 |
| 0.53% | 낙선 | |
9 | 조봉제(趙鳳濟) | 6,202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1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20,045 | 투표율 69.05% |
투표수 | 151,940 | ||
무효표수 | 1,276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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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유기수 후보가 약한 당세와 정치신인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깜짝 당선되었다. 구로공단내에 중소기업을 갖고 있고, 출마 이전부터 근로자들을 상대로 사회사업을 열심히 한 것이 승리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2.29. 영등포구 갑
영등포구 갑 영등포1동, 영등포2동, 영등포3동, 당산1동, 당산2동, 도림1동, 도림2동, 문래1동, 문래2동, 양평1동, 양평2동, 신길2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득헌(李得憲) | 24,669 | 3위 |
| 25.34% | 낙선 | |
2 | 장석화(張石和) | 29,825 | 1위 |
[[통일민주당|]] | 30.64% | 당선 | |
3 | 김수일(金秀一) | 26,961 | 2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7.69% | 낙선 | |
4 | 류관석(柳寬石) | 8,417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8.64% | 낙선 | |
5 | 권혁충(權赫忠) | 1,536 | 7위 |
[[한겨레민주당|]] | 1.57% | 낙선 | |
6 | 백철(白喆) | 2,599 | 6위 |
| 2.67% | 낙선 | |
7 | 박한상(朴漢相) | 3,333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4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9,785 | 투표율 70.22% |
투표 수 | 98,164 | ||
무효표 수 | 82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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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이며 정치신인인 민주당 장석화 후보가 승리했다. 이후 장석화 의원은 13대 총선때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에서 당선된 민주당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3당 합당에 불참, 야권에 남는다.
낙선한 평민당 김수일 후보는 이후 초대 민선 영등포구청장에 당선된다. 현역 의원이었던 박한상 의원은 민주당과 평민당 어느 한 쪽도 선택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3.4% 득표에 그치며 참패했다. 이밖에도 강서구에서 잦은 낙선으로 유명한 백철 후보도 군소정당인 우리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2.67%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했다.
2.30. 영등포구 을
영등포구 을 여의동, 신길1동, 신길4동, 신길5동, 신길6동, 신길7동, 대림1동, 대림2동, 대림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명섭(金明燮) | 31,888 | 1위 |
| 29.15% | 당선 | |
2 | 이원범(李元範) | 31,423 | 2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8.72% | 낙선 | |
3 | 이용희(李龍熙) | 31,337 | 3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8.64% | 낙선 | |
4 | 박상웅(朴相雄) | 14,739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3.4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2,702 | 투표율 67.82% |
투표 수 | 110,352 | ||
무효표 수 | 965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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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인 민정당 김명섭 당선자와 3위인 평민당 이용희 후보와의 격차가 551표에 불과할 정도로 1위~3위 후보끼리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선거 이후에도 진통은 계속되었는데, 2위 민주당 이원범 후보와 3위 이용희 후보가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김명섭 의원의 당선이 무효화되었다.
이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대타로 출마한 민정당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가 당선된다. 김명섭은 지역구를 영등포구 갑으로 옮겨 두 번 더 당선된다.
2.31. 동작구 갑
동작구 갑 대방동, 상도2동, 상도3동, 상도4동, 본동, 노량진1동, 노량진2동, 신대방1동, 신대방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허청일(許淸一) | 25,675 | 2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 | 27.07% | 낙선 | |
2 | 서청원(徐淸源) | 37,270 | 1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39.29% | 당선 | |
3 | 김상균(金相均) | 18,222 | 3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19.21% | 낙선 | |
4 | 윤용구(尹鏞求) | 9,883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0.42% | 낙선 | |
5 | 김부겸(金富謙) | 3,088 | 5위 |
[[한겨레민주당|]] | 3.25% | 낙선 | |
6 | 지창수(池昌洙) | 451 | 6위 |
[[한국국민당(1981년)|]] | 0.47% | 낙선 | |
7 | 조용국(趙庸局) | 255 | 7위 |
| 0.2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4,523 | 투표율 71.06% |
투표 수 | 95,594 | ||
무효표 수 | 750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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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 전체로 보면 4개월 전 대통령 선거에서 평민당 김대중 후보가 1위였지만, 상도2동, 상도4동, 신대방2동은 민주당 김영삼 후보가 이겼기 때문에 갑구의 민주당세가 을구보다 강하다고 평가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상도동계'의 어원이 된 김영삼의 상도동 자택은 상도1동이 있는 을구에 속해있다.
이 지역구에서는 민주당과 평민당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야권 표심이 민주당 서청원 전 의원에게 쏠렸다. 덕분에 서청원 후보는 현역 의원인 민정당 허청일 후보를 큰 표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첫 출마한 선거이기도 하다. 낙선 후에는 서울에 다시 출마하지 않고, 정치적 근거지를 경기도 서남권으로 옮겨 과천시-의왕시, 군포시등지에서 출마한다. 또 군포시에서 3선 의원을 역임한 이후에는 정치적 근거지를 본인 고향에 인접한 대구광역시로 옮긴다.
2.32. 동작구 을
동작구 을 상도1동, 흑석1동, 흑석2동, 흑석3동, 동작동, 사당1동, 사당2동, 사당3동, 사당4동, 사당5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유용태(劉容泰) | 23,560 | 2위 |
| 25.81% | 낙선 | |
2 | 양해준(梁海焌) | 12,017 | 4위 |
[[통일민주당|]] | 13.16% | 낙선 | |
3 | 박실(朴實) | 37,247 | 1위 |
[[평화민주당|]] | 40.81% | 당선 | |
4 | 조준호(趙俊鎬) | 17,675 | 3위 |
[[신민주공화당|]] | 19.36% | 낙선 | |
5 | 편영우(片永宇) | 756 | 5위 |
| 0.8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2,700 | 투표율 69.32% |
투표수 | 91,992 | ||
무효표수 | 737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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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동작구 을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거주하는 사당동은 서민 가구 비중이 꽤 높은 동네였다. 4개월 전 대선에서도 민주당 김영삼 후보의 상도동 자택이 있는 상도1동을 제외한 선거구 내 모든 행정동에서 평민당 김대중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사당동은 김대중 후보의 득표율이 2위인 민정당 노태우 당선자의 득표율보다 두배 가까이 높았다.
이러한 지역적 이점을 바탕으로. 현역 의원인 평민당 박실 후보가 2위인 민정당 유용태 후보를 15% 차이로 꺾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2.33. 관악구 갑
관악구 갑 봉천본동, 봉천1동, 봉천2동, 봉천3동, 봉천4동, 봉천5동, 봉천6동, 봉천7동, 봉천8동, 봉천9동, 봉천10동, 봉천11동, 남현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우연(金寓淵) | 21,829 | 3위 |
| 16.62% | 낙선 | |
2 | 임광순(林廣淳) | 14,473 | 4위 |
[[통일민주당|]] | 11.02% | 낙선 | |
3 | 한광옥(韓光玉) | 51,199 | 1위 |
[[평화민주당|]] | 38.99% | 당선 | |
4 | 이상현(李相賢) | 37,390 | 2위 |
[[신민주공화당|]] | 28.47% | 낙선 | |
5 | 김봉철(金奉喆) | 321 | 9위 |
[[민주한국당|]] | 0.24% | 낙선 | |
6 | 정혜원(鄭惠元) | 1,645 | 6위 |
[[한겨레민주당|]] | 1.25% | 낙선 | |
7 | 심덕원(沈德原) | 741 | 8위 |
| 0.56% | 낙선 | |
8 | 이영희(李英姬) | 2,277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73% | 낙선 | |
9 | 최병순(崔炳順) | 1,431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0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2,934 | 투표율 72.35% |
투표수 | 132,356 | ||
무효표수 | 1,050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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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악구는 4개월 전 대선에서 평민당 김대중 후보가 민정당 노태우 후보, 민주당 김영삼 후보를 모두 10% 이상의 격차로 제치고 1위를 한 지역이다. 서울에서 호남 출신 인구가 가장 많고, 진보 성향의 대학생 유권자도 많은 동네라서 김대중과 평민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예상대로 평민당 후보로 출마한 한광옥 전 의원이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특이한 점은 민정당도, 민주당도 아닌 공화당의 이상현 후보가 2위를 차지했다. 대유그룹 창업주의 막내아들이자, 관악구에서 남부예식장을 운영하며 지역 활동을 해온 덕분에 선전했다. 이상현 후보는 이후 한 번 더 낙선한뒤 세번째 도전인 1996년 제 15대 총선에서 승리한다.
2.34. 관악구 을
관악구 을 신림본동, 신림1동, 신림2동, 신림3동, 신림4동, 신림5동, 신림6동, 신림7동, 신림8동, 신림9동, 신림10동, 신림11동, 신림1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종인(金鍾仁) | 34,752 | 2위 |
| 27.12% | 낙선 | |
2 | 김수한(金守漢) | 31,017 | 3위 |
[[통일민주당|]] | 24.21% | 낙선 | |
3 | 이해찬(李海瓚) | 39,950 | 1위 |
[[평화민주당|]] | 31.18% | 당선 | |
4 | 권태오(權泰梧) | 18,664 | 4위 |
[[신민주공화당|]] | 14.56% | 낙선 | |
5 | 엄정남(嚴正男) | 3,731 | 5위 |
| 2.9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6,625 | 투표율 69.20% |
투표수 | 129,148 | ||
무효표수 | 1,03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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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대선 직후 재야 영입 케이스로 평민당에 입당한 이해찬 후보가, 두 거물인 민정당 김종인 후보와 민주당 김수한 후보를 꺾었다.
당시 김종인 후보는 국보위 위원, 재선 전국구 의원 경력에다가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로 유명했고, 김수한 후보도 5선 의원을 지낸 야권 중진이자 현역 의원이었다. 하지만 관악구는 호남 출신 비율이 많고, 따라서 4개월 전 대선에서도 김대중 후보가 큰 표차로 승리하는등 평민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역이었다. 게다가 이해찬 후보도 재야 출신이라는 신선함에다가, 서울대를 졸업하고 이 동네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등 지역 연고가 있었다.
이해찬 당선자는 이후 총선에서 7전 전승[7]을 거두며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오른다. 낙선한 김종인 후보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지역구 출마였으며, 이후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에 3번 더 당선되면서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만 5번 당선되는 진기록을 세운다.
2.35. 서초구 갑
서초구 갑 잠원동, 반포본동, 반포1동, 반포2동, 반포3동, 방배본동, 방배1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종률(李鍾律) | 22,743 | 2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 | 25.12% | 낙선 | |
2 | 김형래(金炯來) | 17,820 | 3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19.68% | 낙선 | |
3 | 장현(張顯) | 11,372 | 4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12.56% | 낙선 | |
4 | 이하우(李夏雨) | 10,165 | 5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1.22% | 낙선 | |
5 | 이석원(李錫原) | 506 | 6위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0.55% | 낙선 | |
6 | 박찬종(朴燦鍾) | 27,584 | 1위 |
[include(틀:무소속)] | 30.46% | 당선 | |
7 | 임길수(林吉洙)[8] | 342 | 7위 |
[include(틀:무소속)] | 0.3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8,742 | 투표율 70.62% |
투표 수 | 90,919 | ||
무효표 수 | 387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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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김대중 두 후보의 야권단일화를 촉구하며 삭발까지 한 박찬종 의원은, 야권 단일화가 무산되자 양김을 비판하며 민주당, 평민당 모두 합류를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원래 지역구는 부산 원도심이었는데, 아무래도 부산은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열렬한 지지기반이라 당선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전국적인 민심의 바로미터인 서울로 지역구를 옮긴다.
이 당시에는 박찬종 후보가 깨끗하고 소신있는 차세대 정치인으로 인기가 있었기에[9], 주요 4당 후보를 모두 꺾고 승리를 거둔다.
2.36. 서초구 을
서초구 을 서초1동, 서초2동, 방배2동, 방배3동, 도곡동, 양재동, 내곡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동복(李東馥) | 22,743 | 2위 |
[include(틀:민주정의당)] | 25.12% | 낙선 | |
2 | 김덕룡(金德龍) | 31,377 | 1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34.57% | 당선 | |
3 | 정완기(鄭完基) | 14,715 | 4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16.21% | 낙선 | |
4 | 한병기(韓丙起) | 19,591 | 3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21.59% | 낙선 | |
5 | 김병욱(金秉旭) | 1,335 | 6위 |
[include(틀:신한민주당)] | 1.47% | 낙선 | |
6 | 구자호(具滋鎬) | 4,296 | 5위 |
[include(틀:무소속)] | 4.7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2,004 | 투표율 69.13% |
투표 수 | 91,252 | ||
무효표 수 | 514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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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총재의 최측근인 민주당 김덕룡 후보가 당선되었다. 정치활동 경력은 20년이 넘었지만,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시절 투옥과 정치규제를 반복해서 당했기에 출마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3당 합당 이전의 강남 지역은 김영삼 후보와 민주당의 우세 지역이었고, 덕분에 첫 출마인데도 손쉽게 당선되었다.
2.37. 강남구 갑
강남구 갑 신사동, 논현동, 학동, 압구정동, 청담동, 역삼1동, 역삼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희경(鄭喜卿) | 16,448 | 3위 |
| 17.89% | 낙선 | |
2 | 황병태(黃秉泰) | 24,850 | 1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7.03% | 당선 | |
3 | 김경재(金景梓) | 16,438 | 4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17.88% | 낙선 | |
4 | 최재구(崔載九) | 19,681 | 2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21.41% | 낙선 | |
5 | 강봉수(姜奉秀) | 248 | 7위 |
[[한국국민당(1981년)|]] | 0.26% | 낙선 | |
6 | 김상철(金尙哲) | 2,720 | 6위 |
| 2.95% | 낙선 | |
7 | 장기욱(張基旭) | 11,528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2.5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3,103 | 투표율 69.56% |
투표 수 | 92,588 | ||
무효표 수 | 675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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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및 대학 총장 출신의 정치 신인인 민주당 황병태 후보가 당선되었다. 장기욱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야권 표가 3명의 후보에게 나눠졌음에도 거둔 갚진 승리였다. 강남 지역은 이후 보수 정당의 텃밭이 되나, 이때만 하더라도 강남은 김영삼 후보와 민주당의 우세 지역이었다.
김대중 총재의 측근이었던 평민당 김경재 후보도 오랜 미국 망명 후 복귀해 첫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애초에 강남은 4개월 전 대선에서도 김대중 후보가 큰 표차로 3위를 거두었기 때문에 평민당의 험지였다.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김상철 후보도 본인이 창당한 우리정의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3%를 득표, 참패한다.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 우리정의당은 해산된다. 이후 김상철 변호사는 보수 성향으로 급선회했고, 문민정부 출범 후 첫 관선 서울특별시장으로 임명되나 그린벨트 무단 형질변경 의혹 때문에 7일만에 경질된다. 시장으로 임명될때도 국회의원에 출마해 3% 득표에 그치며 유권자의 외면을 받은 사람이 임명되는게 옳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2.38. 강남구 을
강남구 을 삼성1동, 삼성2동, 대치1동, 대치2동, 대치3동, 개포1동, 개포2동, 개포3동, 세곡동, 일원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태섭(李台燮) | 41,123 | 1위 |
| 35.97% | 당선 | |
2 | 민창기(閔昌基) | 23,949 | 3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0.95% | 낙선 | |
3 | 박명서(朴明緖) | 10,732 | 4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9.38% | 낙선 | |
4 | 박춘응(朴春應) | 3,392 | 5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2.96% | 낙선 | |
5 | 김용덕(金容德) | 367 | 6위 |
| 0.32% | 낙선 | |
6 | 홍사덕(洪思德) | 34,746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0.3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55,882 | 투표율 73.60% |
투표 수 | 114,726 | ||
무효표 수 | 417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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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덕 의원은 4개월 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 사이의 야권 단일화 무산을 비판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지역구도 고향인 경상북도 영주·영풍·영양·봉화 선거구에서 강남구 을로 옮겼다.
홍사덕 후보의 무소속 출마로 야권 표가 더 분산되면서, 김영삼과 통일민주당 강세 지역인 이곳에서 민정당 이태섭 후보가 승리했다. 이태섭 후보는 3년전 중대선거구 하에서 치른 총선임에도 3위로 낙선한 아픔을 딛고 3년만에 국회에 복귀했다.
2.39. 송파구 갑
송파구 갑 풍납1동, 풍납2동, 방이동, 잠실본동, 잠실1동, 잠실2동, 잠실3동, 잠실4동, 잠실5동, 잠실6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조순환(曺淳煥) | 22,538 | 2위 |
| 20.02% | 낙선 | |
2 | 김우석(金佑錫) | 27,627 | 1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4.54%[10] | 당선 | |
3 | 남현식(南賢植) | 21,884 | 3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19.44% | 낙선 | |
4 | 조용직(趙容直) | 18,221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6.19% | 낙선 | |
5 | 김병수(金炳洙) | 3,598 | 6위 |
| 3.19% | 낙선 | |
6 | 이대용(李大鏞) | 2,329 | 7위 |
[[한겨레민주당|]] | 2.06% | 낙선 | |
7 | 허경구(許景九) | 16,343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4.5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3,643 | 투표율 69.18% |
투표 수 | 113,210 | ||
무효표 수 | 670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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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인인 민주당 김우석 후보가 이번 총선 지역구 최저득표율을 거두며 승리했다. 낮은 득표율로 이긴 이유는, 허경구 의원이 대통령 선거때 야권 단일화에 실패한 김영삼, 김대중 두 후보를 비판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당시 강남 지역이 김영삼과 민주당의 우세 지역이었고, 김우석 후보는 허경구 후보의 독자출마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다.
평민당 남현식 후보는 중견 탤런트 이숙씨의 남편이다. 4년 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으나 공천에서 탈락했고, 잇단 정치적 좌절로 병을 얻어 1994년 12월에 별세했다.
2.40. 송파구 을
송파구 을 거여동, 마천1동, 마천2동, 오금동, 송파동, 석촌동, 가락동, 문정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종남(朴宗南) | 25,858 | 3위 |
| 22.60% | 낙선 | |
2 | 김병태(金秉泰) | 28,930 | 2위 |
[[통일민주당|]] | 25.29% | 낙선 | |
3 | 김종완(金鐘完) | 30,419 | 1위 |
[[평화민주당|]] | 26.59% | 당선 | |
4 | 류호필(柳浩弼) | 22,120 | 4위 |
[[신민주공화당|]] | 19.33% | 낙선 | |
5 | 박용일(朴容逸) | 6,259 | 5위 |
[[한겨레민주당|]] | 5.47% | 낙선 | |
6 | 안영명(安榮明) | 797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6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8,361 | 투표율 68.44% |
투표수 | 115,218 | ||
무효표수 | 835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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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전 대통령 선거에서, 송파구가 분리되기 이전의 강동구는 민주당 김영삼 후보가 승리했다. 대통령 당선자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2위였고, 평민당 김대중 후보는 3위였다. 하지만 송파구 을 지역구에 속한 마천동, 거여동, 석촌동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대통령 선거때의 표심이 4개월 뒤 총선까지 이어졌고, 덕분에 평민당 김종완 후보가 제약회사 사장인 민주당 김병태 후보를 1.3% 차이로 꺾고 신승했다.[11] 강남 지역 8개 선거구 중 평민당 후보가 승리를 거둔 유일한 선거구다.
2.41. 강동구 갑
강동구 갑 하일동, 상일동, 명일동, 고덕동, 암사1동, 암사2동, 암사3동, 길1동, 길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황동현(黃東鉉) | 25,806 | 3위 |
| 22.67% | 낙선 | |
2 | 김동규(金東圭) | 37,837 | 1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33.24% | 당선 | |
3 | 정진길(鄭鎭吉) | 30,658 | 2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6.93% | 낙선 | |
4 | 김익중(金益重) | 15,912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3.97% | 낙선 | |
5 | 임도빈(任道彬) | 3,613 | 5위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3.1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2,133 | 투표율 66.57% |
투표 수 | 114,584 | ||
무효표 수 | 758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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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김동규 의원은, 상공부 관료를 지내다가 신군부에 의해 해직을 당했고, 이후 대우그룹에서 일하다가 3년 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때 강동구(지금의 송파구·강동구) 선거구에 출마했다. 이때 대한민국 총선 역사상 가장 많은 지역구 득표(참의원 선거 제외)인 227,598표를 얻고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다.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고, 아마 선거법을 바꾸어 중대선거구 제도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절대로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4개월 전 대통령 선거에서도 강동구 갑 지역은 민주당 김영삼 후보가 승리했다. 특히 인구가 가장 많은 명일동의 지지세가 압도적이었다. 이러한 기세를 타고 민주당 김동규 후보가 넉넉한 표차로 승리, 재선에 성공했다.
2.42. 강동구 을
강동구 을 천호1동, 천호2동, 천호3동, 천호4동, 성내1동, 성내2동, 둔촌1동, 둔촌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중위(金重緯) | 30,698 | 1위 |
| 30.04% | 당선 | |
2 | 이상윤(李相倫) | 26,179 | 3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5.62% | 낙선 | |
3 | 장충준(張忠準) | 27,170 | 2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6.59% | 낙선 | |
4 | 김종택(金鍾澤) | 13,435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3.14% | 낙선 | |
5 | 김종수(金鍾洙) | 3,598 | 7위 |
| 0.71% | 낙선 | |
6 | 홍성표(洪晟杓) | 1,989 | 5위 |
[[한겨레민주당|]] | 1.94% | 낙선 | |
7 | 이종수(李鍾壽) | 1,970 | 6위 |
[[제3세대당|]] | 1.9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51,782 | 투표율 67.84% |
투표 수 | 103,022 | ||
무효표 수 | 846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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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전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선거구 내 8개 동에서 한군데도 이기지 못한 여당의 험지이지만, 현역 전국구 의원인 민정당 김중위 후보가 접전끝에 승리했다. 야권에서 거물급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것도 승리의 요인이었다.
[종로] 종로1·2·3·4가동, 종로5·6가동, 청운효자동, 창신1동, 창신2동, 창신3동, 숭인1동, 숭인2동,
가회동, 사직동, 삼청동, 이화동, 혜화동, 무악동, 부암동, 평창동, 교남동[2] 물론 마땅한 인물을 구하지 못해 두 정당 중 하나만 후보를 낸 선거구도 여럿 있으나, 두 정당끼리 협의끝에 단일화를 한 선거구는 종로가 유일하다.[용산] 후암동, 남영동, 청파동, 효창동, 용문동, 한남동, 보광동, 한강로동, 서빙고동, 이촌1동, 이촌2동, 원효로1동, 원효로2동, 이태원1동, 이태원2동, 용산2가동[4]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는 '김영균'으로 잘못 기입되어 있다. 하기야 龜가 거북 구/거북 귀/터질 균 세 독음을 갖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5] 실제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었다.[6] 양천구는 선거 직전에 강서구로부터 분리되어 신설된 구다.[7] 7번 선거 중 관악구 을 지역에서 5선,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서 재선을 지냈다.[8] 나중에 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다.[9] 물론 옛 민주공화당 출신이라는 약점이 있긴 했다.[10] 13대 총선 지역구 최저득표율 당선.[11] 이때 낙선한 김병태 후보는 8년 뒤 송파구 병 선거구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당선된다.
가회동, 사직동, 삼청동, 이화동, 혜화동, 무악동, 부암동, 평창동, 교남동[2] 물론 마땅한 인물을 구하지 못해 두 정당 중 하나만 후보를 낸 선거구도 여럿 있으나, 두 정당끼리 협의끝에 단일화를 한 선거구는 종로가 유일하다.[용산] 후암동, 남영동, 청파동, 효창동, 용문동, 한남동, 보광동, 한강로동, 서빙고동, 이촌1동, 이촌2동, 원효로1동, 원효로2동, 이태원1동, 이태원2동, 용산2가동[4]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는 '김영균'으로 잘못 기입되어 있다. 하기야 龜가 거북 구/거북 귀/터질 균 세 독음을 갖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5] 실제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었다.[6] 양천구는 선거 직전에 강서구로부터 분리되어 신설된 구다.[7] 7번 선거 중 관악구 을 지역에서 5선,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서 재선을 지냈다.[8] 나중에 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다.[9] 물론 옛 민주공화당 출신이라는 약점이 있긴 했다.[10] 13대 총선 지역구 최저득표율 당선.[11] 이때 낙선한 김병태 후보는 8년 뒤 송파구 병 선거구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당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