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9:51:46

조니 맥도웰

조니 맥도웰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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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코트를 빛낸 레전드 1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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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양동근_KBL_레전드_1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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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문경은_KBL_레전드_12.jpg
<rowcolor=#fff> 양동근 G 이상민 G 주희정 G 허재 G 김주성 F 문경은 F
파일:전희철_KBL_레전드_1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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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전희철 F 조니 맥도웰 F 애런 헤인즈 F 추승균 F 현주엽 F 서장훈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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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1998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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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외국선수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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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2023,#ddd
<rowcolor=#fff> 1997 시즌 1997-98 시즌 1998-99 시즌 1999-2000 시즌 2000-01 시즌
제이슨 윌리포드
나래 / 센터
조니 맥도웰
현대 / 포워드
조니 맥도웰
현대 / 포워드
조니 맥도웰
현대 / 포워드
아티머스 맥클래리
삼성 / 포워드
<rowcolor=#ffffff> 2001-02 시즌 2002-03 시즌 2003-04 시즌 2004-05 시즌 2005-06 시즌
마르커스 힉스
동양 / 포워드
마르커스 힉스
동양 / 포워드
찰스 민렌드
KCC / 포워드
크리스 랭
SK / 센터
크리스 윌리엄스
모비스 / 포워드
<rowcolor=#ffffff> 2006-07 시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피트 마이클
오리온스 / 포워드
테런스 섀넌
전자랜드 / 포워드
테렌스 레더
삼성 / 센터
제스퍼 존슨
kt / 포워드
허버트 힐
전자랜드 / 센터
<rowcolor=#ffffff> 2014-15 시즌 * 2015-16 시즌 2016-17 시즌 2017-18 시즌 2018-19 시즌
리카르도 라틀리프
모비스 / 센터
안드레 에밋
KCC / 가드
리카르도 라틀리프
삼성 / 센터
디온테 버튼
DB / 포워드
라건아
현대모비스 / 센터
<rowcolor=#ffffff> 2019-20 시즌 2020-21 시즌 2021-22 시즌 2022-23 시즌 2023-24 시즌
자밀 워니
SK / 센터
숀 롱
현대모비스 / 센터
자밀 워니
SK / 센터
자밀 워니
SK / 센터
디드릭 로슨
DB / 포워드
* 2010-11 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지했다가 4년 만에 다시 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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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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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2023,#ddd
<rowcolor=#fff> 가드 가드 포워드 포워드 센터
1997 시즌
강동희
기아
제럴드 워커
SBS
정재근
SBS
전희철
동양
제이슨 윌리포드
나래
1997-1998 시즌
이상민
현대
강동희
기아
문경은
삼성
조니 맥도웰
현대
키넌 조던
동양
1998-1999 시즌
이상민
현대
강동희
기아
김영만
기아
조니 맥도웰
현대
서장훈
SK
1999-2000 시즌
강동희
기아
조성원
현대
허재
삼보
조니 맥도웰
현대
서장훈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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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리바운드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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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2023,#ddd
<rowcolor=#fff> 1997 시즌 1997-98 시즌 1998-99 시즌 1999-2000 시즌 2000-01 시즌
제이슨 윌리포드
나래 / 12.8개
키넌 조던
동양 / 14개
서장훈
SK / 14개
조니 맥도웰
현대 / 13.3개
재키 존스
SK / 16개
<rowcolor=#fff> 2001-02 시즌 2002-03 시즌 2003-04 시즌 2004-05 시즌 2005-06 시즌
라이언 페리맨
동양 / 14.8개
라이언 페리맨
LG / 13.5개
라이언 페리맨
LG / 13.6개
애런 맥기
KTF / 12.9개
나이젤 딕슨
KTF / 15.9개
<rowcolor=#fff> 2006-07 시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2010-11 시즌
올루미데 오예데지
삼성 / 13개
테렌스 레더
삼성 / 12.5개
테렌스 레더
삼성 / 11.3개
크리스 알렉산더
LG / 9.8개
크리스 알렉산더
LG / 10.1개
<rowcolor=#fff> 2011-12 시즌 2012-13 시즌 2013-14 시즌 2014-15 시즌 2015-16 시즌
알렉산더 존슨
SK / 14.4개
리온 윌리엄스
오리온스 / 11.4개
숀 에반스
KGC / 11.5개
리카르도 라틀리프
모비스 / 10개
리카르도 라틀리프
삼성 / 11.9개
<rowcolor=#fff> 2016-17 시즌 2017-18 시즌 2018-19 시즌 2019-20 시즌 2020-21 시즌
로드 벤슨
동부 / 13.4개
리카르도 라틀리프
삼성 / 13.6개
제임스 메이스
LG / 14.7개
라건아
KCC / 12.5개
숀 롱
현대모비스 / 10.8개
<rowcolor=#fff> 2021-22 시즌 2022-23 시즌 2023-24 시즌 2024-25 시즌 2025-26 시즌
아셈 마레이
LG / 13.5개
아셈 마레이
LG / 12.5개
아셈 마레이
LG / 14.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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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맥도웰현재모습.jpg
이름 조니 맥도웰
(Johnny McDowell)
생년월일 1971년 1월 20일 ([age(1971-01-20)]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일리노이 주 델러번
출신학교 하워드 칼리지(NJCAA) (1989~1991)
텍사스 대학교/알링턴 캠퍼스[1] (1991~1993)
포지션 파워 포워드
신체사이즈 194cm, 107kg
프로입단 1997년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18번 (대전 현대 다이넷)
KBL소속팀 대전 현대 다이냇/걸리버스 (1997~2001)
인천 SK 빅스 (2001~2003)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3~2004.1)
등번호 44

1. 소개2. KBL 입성 전3. KBL에서의 선수생활4. 시즌별 성적5. 이후6. 플레이 스타일7. 기타8. 관련 문서

1. 소개

대전 현대의 중흥기를 이끈 외국인 농구선수이자, KBL 초창기 최고의 언더사이즈 빅맨 중 하나였다. 현재 외국인 선수 득점 2위 7,077점에 기록되어 있는 전설적인 선수 중 한명. 1위는 애런 헤인즈.

2. KBL 입성 전

NJCAA[2] 소속의 하워드 칼리지에서 2년을 보내고, 1991년 텍사스 대학교/알링턴 캠퍼스에 편입해 2시즌을 보냈다. 팀이 워낙 약체였던 탓에 겨우 6-5(196cm, 미국신장)[3]의 맥도웰이 센터파워 포워드를 오가며 골밑을 지켜야했고, 2시즌 내내 팀내 최다 득점과 리바운드를 올렸다.(2시즌 평균 16.9득점-9.7리바운드-2.7 어시스트)

1993년 졸업 후 NBA 진출에 실패한 맥도웰은 미국 하부리그인 USBL[4]의 마이애미 트로픽스에서 1시즌을 뛰었고, 이후 스페인 4부리그팀인 히혼 발론세스토에 입단해 2시즌을 뛰는데, 1994-95 시즌에는 히혼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3부리그에 진출시켰지만, 바로 다음시즌에 리그 최하위에 그치며 다시 4부리그로 추락했고, 맥도웰은 팀과 이별했다.

이후 1997년 여름 KBL 트라이아웃에 지원한 맥도웰은 20명의 선수 중 전체 19순위로 대전 현대의 지명을 받으며, 낯선 동아시아 국가에 발을 내딛었고, 그렇게 전설이 시작되었다.

3. KBL에서의 선수생활

3.1. 대전 현대 다이냇/걸리버스 (1997~2001)

KBL 시절 성적

파일:맥도웰다이넷입단.jpg
왼쪽이 조니 맥도웰. 오른쪽에는 제이 웹. 사실 대전 현대 입장에서는 나중에 LG에서도 혼자 팀의 공격을 이끈거나 마찬가지였던 세인트 조셉 대학교 출신의 득점기계 버나드 블런트를 지명하려 했지만, 이충희 당시 LG 감독이 암묵의 룰을 깨고 지명해 버리자 신선우감독이 힘이 좋아 보이던 맥도웰을 뽑았다.[5]

파일:재키존스와 맥도웰.jpg
그러나 힘이 뛰어난 맥도웰은 단단한 체구와 파워를 바탕으로 KBL 내 다른 팀의 골밑을 박살내는 활약을 펼쳤다. 힘이 워낙 좋은 선수였던지라 매치업에서도 밀리지 않는 활약을 펼친데다, 팀의 동료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던 라인업인 전설의 , , 라인업이었다. 특히 이상민의 볼배급이나, 이상민과 보여주었던 2:2 픽앤롤 플레이는 호사가들이 한국의 존 스탁턴칼 말론의 픽앤롤에 비견할 정도의 파괴력을 갖춘 것이었다. 재키 존스와도 훌륭한 호흡을 자랑했던 맥도웰이 있었기에 대전 현대는 90년대 후반 KBL의 지배자로 군림할수 있었다.

대전 현대 시절 맥도웰의 업적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2시즌 연속 (1997~1999) 챔피언결정전 우승
  • 3시즌 연속 (1997~2000) 챔피언결정전 진출
  • 3시즌 연속 (1997~2000) 정규리그 1위
  • 3시즌 연속 (1997~2000)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
  • 3시즌 연속 (1997~2000) 베스트 파이브




1997~2000 3시즌 동안 제이 웹(201cm), 재키 존스(202cm), 로렌조 홀(203cm) 등 파트너가 바뀌는 와중에도 "골밑의 지배자" 맥도웰의 위치는 굳건했고, KBL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년 연속 외국 선수상을 차지한다.[6] 오죽했으면 99-00 시즌 챔프전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재계약 하려했던 센터 로렌조 홀은 "더 이상 맥도웰의 그늘 아래 있기 싫다"면서 재계약을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로렌조 홀이 재계약을 못한 건 그거 외에도 너무 강한 힘과 거친 플레이로 부상자들이 속출하자 다른 9개 구단들이 담합해서 홀을 재계약하면 가만 안 있겠다고 들고 일어난 탓도 있었다.

00-01 시즌들어 갑자기 "토털 바스켓볼"병에 걸린 신선우 감독이 정통 센터 대신 스윙맨 데이먼 플린트(195cm)를 데려오면서 맥도웰이 센터로 나서야했고, 190.5cm의 단신센터 맥도웰은 재키 존스(202cm), 무스타파 호프(200.7cm) 등 떡대 센터들을 상대로 고군분투 했지만 팀성적은 리그 6위까지 추락하고 만다. 이 와중에 맥도웰은 자신의 포지션과 팀 운영방침에 대해 신선우 감독과 갈등을 일으켰고,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하며 4년간 몸담아 온 대전 현대와 이별한다.

3.2. 인천 SK 빅스 (2001~2003)

파일:external/pds.joins.com/2014100714143052833_3.jpg
오랜만에 트라이아웃 시장에 나온 맥도웰은 2001년 외국인 드래프트 전체 6순위로 인천 SK 빅스에 선발되었고, 역시 친정팀 서울 삼성을 박차고 나온 문경은과 원투펀치를 이루어 인천 SK를 정규리그 4위까지 올려놓는다. 만 30세의 맥도웰은 6라운드 54경기로 늘어난 01-02 시즌 전경기를 소화하며 평균 22.8점-12.1리바운드-5.8어시스트-2.0스틸-1.7블록의 여전한 지배력을 선보였고, 심지어 어시스트와 스틸은 최명도, 조동현, 홍사붕 등 가드들을 제치고 팀내 1위였다.[7] 팀은 바뀌었지만 여전한 지배력을 보여준 맥도웰은, 인천 프랜차이즈팀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란 평을 들으며 재계약에 성공한다.

다음시즌에도 맥도웰은 팀내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스틸-블록까지 전부 팀내 1위를 기록했고, KBL 입성이후 6시즌 연속 20-10의 기록을 이어나갔지만, 조동현 등 주전들의 줄부상에 센터 외인들의 부진이 겹치며 팀은 7위로 플옵진출에 실패한다.

3.3.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3~2004)

파일:맥도웰오토몬스.jpg
인천 SK와 재계약에 실패한 맥도웰은 다시 트라이아웃에 지원, 2라운드 전체 15순위로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최희암 감독의 선택을 받는다. 하지만 만 32세의 맥도웰은 급격히 노쇠한 모습을 보이면서 03-04 시즌 새로 영입된 찰스 민렌드, 앨버트 화이트 같은 테크니션 4번들에게 탈탈 털렸고, 팀의 최하위 추락 원인이 되었다. 결국 맥도웰은 4라운드를 채우지 못한채 중도 퇴출되며, 화려했던 과거와 이별하게 되었다.

4. 시즌별 성적

역대 성적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1997-98 현대 44 480/736
(65.22%)
1/18
(5.56%)
232/329
(70.52%)
1195 520 165 65 40
1998-99 45 426/712
(59.83%)
11/36
(28.21%)
223/310
(71.94%)
1108 609 154 64 28
1999-00 45 412/654
(63.00%)
14/53
(26.42%)
173/247
(70.04%)
1039 598 211 75 32
2000-01 40 322/580
(55.52%)
21/70
(30.00%)
160/223
(71.75%)
867 535 209 61 43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1-02 SK 빅스 54 466/850
(54.82%)
27/85
(31.76%)
218/299
(72.91%)
1231 653 315 109 92
2002-03 54 426/712
(59.83%)
11/36
(28.21%)
223/310
(71.94%)
1094 594 227 81 45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3-04 모비스 35 214/377
(56.76%)
3/14
(21.43%)
106/143
(74.13%)
543 320 137 53 11
KBL 통산
(7시즌)
317 2761/4715
(58.56%)
80/315
(25.40%)
1315/1808
(72.73%)
7077 3829 1418 508 291

5. 이후

  • 2019년 4월 7일 ~ 4월 14일 (3회 ~ 4회) tvN 예능 미쓰 코리아 3회 방송에 등장해 은퇴를 한 계기가 당시 두살의 아들을 위해 농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옛동료였던 이상민과 조성원의 영상편지를 보고 반가움과 함께 눈물까지 보였다. 추승균 빼먹었다 영상

6. 플레이 스타일

파워를 앞세워서 매치업 상대를 누르고 골밑을 휘저었고, 리바운드를 잘 따냈다. 사실 힘만 단순히 좋은 플레이어가 아니었고 펌프 페이크나 포스트에서 드롭 스텝, 준수한 스피드와 속공에서 트레일러 역할 등 신선우 감독의 전술에 잘 따르는 선수였다. 나름대로 미들슛도 갖춘 선수였다. 게다가 시야가 넓고 패싱 센스도 좋은 편이라 시즌 평균 어시스트를 4개 가량을 해줄 능력도 갖춘 선수였다.

KBL은 첫 시즌 당시 각 팀이 191㎝ 이하의 선수 1명과 191㎝~203㎝의 선수 1명으로 단신 가드와 장신 빅맨 조합으로 외국인 선수를 뽑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첫 시즌은 그에 맞게 제럴드 워커(안양 SBS), 칼 레이 해리스(원주 나래)등의 가드 용병이 활약하기도 했다. 허나 정작 리그를 제패한 팀은 클리프 리드를 단신 선수로 뽑아 4번으로 쓰고 다른 외국인 선수인 로버트 윌커슨(193cm)를 5번으로 빅맨 쓴 기아 엔터프라이즈였다. 이런 트위너 빅맨 2인 용병조합으로 골밑을 용병으로 점령하여 흥한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벤치마킹해 단신 빅맨 혹은 유사시 3번으로도 뛸 수 있는 선수를 찾는 팀들 역시 있었고, 그런 환경에서 현대 다이넷이 찾아낸 선수가 바로 조니 맥도웰.

맥도웰은 NBA나 유럽 등의 상위리그에선 빅맨으로 뛰기에는 한계가 있는 신장이지만, 아시아 리그인 KBL에선 충분히 골밑을 박살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의 소유자였다. 재키 존스등의 센터 파트너와 함께 실질적인 4-5번 콤비로 골밑을 휘젓고, 외곽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모습으로 KBL을 제압했다.

이렇게 단신 선수 기준으로 빅맨 역할을 하는 선수들이 계속 나오자, KBL은 최대 키 208cm 한계에 두 선수 합계 398cm 안에서 마음대로 선수를 뽑을 수 있게 기준을 바꾸었고, 이렇게 되자 모든 팀들이 기준 안에서 외국인 선수들을 2빅맨 혹은 1트위너+1빅맨 으로 뽑아 채우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서장훈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인 빅맨은 전멸하고 기존에 인사이더 보던 선수들이 스몰 포워드 자리로 밀려나 트위너가 되었다. 클리프 리드와 맥도웰은 KBL에서 한국인 빅맨들을 반쯤 멸종시킨 최강의 골밑 조합이었던 것. 그리고 역시나 2000년대 KBL 용병 역사를 적을 때 포지션에 PF, C만 꽉 차게 만든 장본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8]

그러나 이후 외국인 선수 제도의 개편으로 매치업 상대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노쇠화로 자신의 운동능력이나 파워가 감퇴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락세가 찾아왔고 한국농구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

7. 기타

  • 한국 문화에 큰 거부를 드러내지 않고 받아들이고, 팀원들과 친화력 있게 지내려는 모습으로 한국형 용병 타이틀을 얻으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다만 간혹 감독들에게 뒷돈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당시 잘나가던 용병들은 누구나 크고작은 뒷돈 의혹을 달고 다니던 시절이었기에 설령 사실이라 해도 맥도웰 한명만을 비난하긴 어려운 문제이다.
  • KBL에서 오래 뛰어서 한국과 한국 팬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서 2004-2005 시즌때 귀화 및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 2011-2012시즌 올스타전 당시 레전드 올스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몇몇 외국인 OB를 초청하려는 계획이 있었고, 맥도웰에게도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와서 맥도웰 역시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KBL에서 취소했다고(...).
  • LinkedIn 페이지도 있는데, 최근에는 미국에서 중견 물류회사[9]에서 근무하고 있었다가 퇴직한 것으로 보인다. KBL 20주년 기념 레전드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했고 초창기 전성기를 이끌었던 과거 동료들과 만나고 싶다고 인터뷰했다.
  • 2019년 4월 7일 ~ 4월 14일 (3회 ~ 4회) tvN 예능 미쓰 코리아 에서 은퇴후 근황이 공개되었다.
  • 자신의 현역시절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팀원들과 버스를 타고 지냈던 것이 그립다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리그이기도 하고,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국내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등 만족스런 선수생활을 보냈기에 여러모로 그리움이 남은 모양.
  • 당시 같이 코트에서 뛰었던 서장훈이 농구해설가로 활동할 것이라는 본인의 예상과 달리, 여장도 마다않는 예능인 서장미가 된 걸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맥도웰이 싫어합니다
  • 멕도웰이 97-98 챔프전 5자천에서 서장훈 못지 않게 예능인으로 활약 중인 허재와 리바운드 경합 과정에서 본인의 팔에 맞아 부상당해서 눈썹 주위에 피를 흘리는 레전드 장면을 만들게 함과(?) 동시에 허재를 챔프전 투혼의 사나이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 사실 현대 시절엔 안티도 상당했던 선수이다. 물론 본인의 인성에 문제가 있거나 사고를 쳐서는 아니고, 플레이가 멋진 것도 아닌데 너무 잘한다는 단순한 이유. 당시는 농구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 아니었고, 맥도웰이 상당히 테크니션임에도 힘으로만 농구하는 선수라는 편견이 많았다. 사실 뛰어난 피지컬을 활용하는 것은 농구선수로서 당연한 것임에도 일반 대중들은 유독 독보적인 피지컬을 지닌 맥도웰이나 서장훈같은 선수들에게 '힘/키로만 농구한다' 식의 박한 평가를 내렸다. 이런 배경에는 당시 상황이 크게 작용했는데, 당시는 프로 초창기이므로 당연히 외국인선수들이 한국농구판에서 뛰는게 처음이었고, 농대시절 슈퍼스타로 군림하던 선수들이 피지컬이 뛰어난 외국인들에게 밀려 조연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팬들의 충격도 컸다. 이 때문에 피지컬의 우위를 살려 농구하는 것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반감이 컸고, '테크니션'에 대한 환상 역시 커졌다. 서장훈은 대학시절만 해도 안티가 그렇게까지 많은 선수는 아니었으나 프로 초창기부터 안티가 엄청나게 늘었고, 90년대 후반 외국인 선수들 중에 유독 가드, 포워드 포지션의 선수들이 인기가 많기도 했다.[11] 맥도웰은 현대 팬들을 제외하곤 공공의 적 수준에 인기가 많은 편도 아니었으나, 당시 현대 팬들은 (이상민의 인기에 힘입어) 농구판 전체를 통틀어서도 압도적 규모였다보니 절대적인 인기 자체는 많은 편이었다.

8. 관련 문서


[1] 대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텍사스 대학교/오스틴 캠퍼스와는 별개의 다른 학교다.[2] National Junior College Athletic Association. 1938년에 창설된 미국 내 2년제 대학교들의 스포츠 경기를 관할하는 단체다. 남자종목은 1, 2, 3부로 나뉜다. 4년제 대학들의 단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NCAA다.[3] 하술하겠지만 실제 신장은 190cm 정도로 NBA의 포인트 가드나 슈팅 가드의 신장이다. 미국 선수들은 신장 측정 시 신발을 신고 재거나 1인치를 올려서 말하는 등 실제 신장과 차이가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4] 야구마이너 리그처럼 유망주들의 리그이며 이 곳에 기량을 갈고 닦아 NBA나 유럽 농구리그로 진출하려는 선수들이 주로 뛰었다. 2008년부터 리그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5] 트라이아웃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온 대전 현대 신선우 감독은 분을 참지 못하여 이충희 감독에게 쓰레기통을 집어던졌다고 한다(…).[6] 마르커스 힉스가 2001~2003 2시즌 연속 수상한걸 마지막으로, 외국 선수상을 2연패한 선수는 한명도 없을 정도다.[7] 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에선 5위팀 창원 LG에 어이없게 2연패를 당하며 탈락한다. 맥도웰은 여전한 활약을 펼쳤지만 최명도이상민이 아니었다;;;[8] 극 소수 가드 포지션 등록선수가 있었으나 대부분 대체용병 수준에 그쳤고, 2000~2010년간 가드로서 꾸준하게 나왔던 선수는 팀에 서장훈이 있어서 굳이 빅맨슬롯을 채울 필요가 없었던 팀에 따라다녔던 장신 스윙맨 용병 로데릭 하니발 외엔 없다시피 했다.[9] 독일 슈넬렐케 그룹의 미국사업부. 이전에는 BLG로지스틱스에서 근무했다. 근처에 벤츠공장이 있어서 하청업체로 보여진다. 특기사항으로 구사가능 언어에 한국어스페인어가 있다.[10] 빅맨치고는 작은 키(브라운이 193.9cm), 엄청난 파워, 키에 비해 엄청나게 긴 윙스팬(윙스팬이 무려 221cm이다.) 등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얼굴도 비슷하다.[11] 유독 테크니션 이미지가 강한 버나드 블런트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블런트는 덩크를 거의 하지 않는 선수임에도 인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