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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조순형에 관한 여담을 설명하는 문서.2. 여담
- 2006년 재보궐선거때 김진홍 목사가 지지 유세를 한적 있다. #
- 2007년 조순형은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출마했으나 경선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인제와 갈등을 빚으며 탈당했다.
- 정계 은퇴를 한 뒤에 설훈 의원의 노인 폄하 발언 논란에 대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
-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국민의당 서초구 을 조순형 후보의 유세에서 사람들이 이 문서의 조순형[1] 과 헷갈렸지만 동명이인이다.
- 현재는 정계를 완전히 떠나 아내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조순형 : 노무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을 시청하며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노대통령은 마치 민주당이 개혁에 반대하고" "노대통령에 반대한 사람들의 집단인 양 비하했습니다. "자신이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는 행위는 보통 사람도 해서는 안돼"
조순형 : "더러운 손으로 개혁을 실천할 수 없는 것처럼 "더러운 입으로 개혁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더러운 입으로 개혁을 말하기 전에" "이러한 반개혁적 작태부터 즉각 중지해야 합니다." "노대통령이 취소와 사과를 할 때까지 우리 민주당은" "비장한 각오로 대처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조순형 : "소속 의원, 모든 당직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침묵시위를***"
새천년민주당 의원 : 가자! 청와대로!
김성순 의원 : 야! 노무현 나와!
김성순 의원 : 야! 노무현 나와! 노무현이!
김경재 의원 : "여기 책임자가 누구요?
순경 : "일단 집회신고 안된 상황이니까"
강운태 사무총장 : "나 잘 알지? 그러니까"
순경 : " 대표분들 몇분 선정하셔서***" "세분, 네분 정도 이렇게 하셔서 저희들이 안내해 드릴게요."
돌발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LNsTQUh6_po 2004년 1월 16일 집회 시위 모습
조순형 : "더러운 손으로 개혁을 실천할 수 없는 것처럼 "더러운 입으로 개혁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더러운 입으로 개혁을 말하기 전에" "이러한 반개혁적 작태부터 즉각 중지해야 합니다." "노대통령이 취소와 사과를 할 때까지 우리 민주당은" "비장한 각오로 대처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조순형 : "소속 의원, 모든 당직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침묵시위를***"
새천년민주당 의원 : 가자! 청와대로!
김성순 의원 : 야! 노무현 나와!
김성순 의원 : 야! 노무현 나와! 노무현이!
김경재 의원 : "여기 책임자가 누구요?
순경 : "일단 집회신고 안된 상황이니까"
강운태 사무총장 : "나 잘 알지? 그러니까"
순경 : " 대표분들 몇분 선정하셔서***" "세분, 네분 정도 이렇게 하셔서 저희들이 안내해 드릴게요."
돌발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LNsTQUh6_po 2004년 1월 16일 집회 시위 모습
- 자신 아내를 책을 발매를 했다.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아내 김금지가 지켜본 정치역정 30년) -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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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 때의 명신 허조를 조순형과 비슷하게 그렸다. 허조 문서에도 나오지만, 그 역시 조순형 못지 않은 쓴소리꾼이기 때문이다.
- 선친 때부터 민주당계 정당에 몸 담았다가 말년에 충청권 보수정당으로 이적해 정치 인생을 마친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조순형은 민주당계 정당에 오래 몸담은 것은 맞지만, 성향 자체는 중도우파(보수)에 가까웠다. 사실 삼김이 정치판을 잡고 있던 시절만 해도 정당끼리의 이념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정당을 선택할 때 보통 삼김 중 한 보스에게 발탁되어 그 보스의 당에 따라 입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 초반 무렵만 해도 김영삼-이회창은 한나라당, 김대중은 민주당, 김종필은 자유민주연합의 주도권을 잡고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이들의 러브콜에 따라 정당을 정했다. 김대중의 경우에도 햇볕정책 등 대북노선을 제외하면 중도우파 성향에 가까웠고, 특히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DJP연합을 통해 JP 및 구 민정/공화계 세력과 손을 잡는 등 스펙트럼을 더욱 오른쪽으로 넓히기도 했다.[6][7] 각 당의 정치인들이 서로 이적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졌다.
- 이에 따라 김대중의 계파인 동교동계에도 실제로는 중도우파 성향의 의원들이 많았고, 라이벌이었던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대북노선을 제외하면 이념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강운태, 박상천, 한화갑, 김경재, 한광옥, 박주선, 조순형이 있었다.[8] 현재처럼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적 색채가 분명하게 들어난 시기는 2004년이다. JP의 은퇴로 삼김이 모두 정치를 떠나고, 진보와 보수의 이념 색채가 뚜렷했던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고 노무현이 창당을 주도한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다수석을 차지하면서 민주당계 정당과 보수정당의 이념이 확연히 갈리게 되었다. 조순형 역시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 때 열린우리당 합류를 거부했고, 새천년민주당에 남아 대표직을 수행했으며 노무현 탄핵 당시에는 한나라당과 손잡고 탄핵소추안 발의를 이끌었다. 이 때문에 동교동계와 친노-친문 세력은 같은 민주당 내 계파이지만 이념적인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여러차례 분열과 합당을 반복해야 했다.[9]
- 이러한 한국 정치세력의 이념적 역사를 살펴본다면 조순형이 말년 들어 보수정당에 몸 담은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닌 셈이다. 김대중에 의해 발탁됐기 때문에 민주당계 정당에 몸을 담았다가, DJ가 퇴임한 뒤 양당의 이념적인 색채가 확연해지자 보수 성향의 정당으로 옮긴 것이다. 특히 2007년 대선 이후 민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이 됐는데, 과거 갈라섰던 친노 계열과 다시 합쳐야했기 때문에 조순형의 정치적 성향에도 더욱 안 맞았을지 모른다. 다만 특이하게도 한국의 제1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에는 몸담지 않았다.[10]
-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들에게도 쓴소리를 가감 없이 하였다. 특히 노무현의 경우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로 갈라진 이후 노무현 정권 내내 정권에 쓴소리를 하는 정치적 반대파로 대립하기도 했었다. 다만 김대중, 노무현 모두 자기 인사들에게 "조순형의 말은 아무리 욕을 하든 뭐라 하든 귀담아 들으라" 는 조언을 했다고 한 걸 보면 이들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그닥 나쁘지 않았다.
- 호가 아버지인 조병옥 박사와 같다.
2.1. 너 노사모지 해프닝
- 2006년 재보궐선거 서울 성북구 을 지역구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경쟁 후보인 한나라당 최수영 후보 지원 유세 도중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너 노사모지라는 발언을 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후 개표 결과 2위로 낙선하는가 싶더니 새벽에 뒤집고 역전승. 그러나 이로 인해 노무현 지지세력이 웃을 순 없었던 것이, 열린우리당 후보가 3위에 3표 차이로 선거 비용을 한 푼도 보전 못받고 패한데다 조순형은 애초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사람이라 열린우리당에서 낙선을 호소했기 때문.
[1] 1944년 1월 4일 생이다. 전 서울시의회의원이다.[2] 옛날에는 친해지만 2003년 열린우리당분당 및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3] 국민의당 소속으로 당선되었고, 국민의힘에 흡수합당되어 국민의힘 소속이다.[4] 수도권 지역 민주당계 정당 다선 중진의원이고 나이도 비슷한 연배이며(조세형 1931년생, 조순형 1935년생) 14-15대 국회의원 시절에 같이 국회에서 일한 적 있고, 범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조순형은 2003년 이후 노무현과 척을 졌고, 조세형은 노무현과 2009년 둘 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친분을 유지한 것은 차이점이다.[5] 정대철 전 의원 손윗동서, 정호준 전 의원 이모부이고, 순천 12-14대 3선 중진의원이었으며, 2022년 별세.[6] 김대중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 미국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했기 때문에, 외교적인 성향은 친미주의자였으며 급진적인 운동권 계열과는 어느 정도 선을 그었다. 이적단체로 지정된 한총련이 가장 많은 탄압을 받던 시기도 국민의 정부 시기였다.[7] 이 때문에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단협 사태가 터지기도 했다. 동교동계 및 김대중의 영입으로 민주당에 들어온 구 한나라당, 자민련 출신 의원들이 정몽준으로의 단일화를 요구하며 노무현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 이후 노무현이 최종 후보로 선출되자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왔지만, 일부는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으로 이적하며 본인의 친정으로 되돌아갔다.[8] 이 중 김경재, 한광옥, 박주선은 2022년 기준으로 아예 보수정당으로 소속을 바꿨다. 한광옥은 박근혜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맡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를 지지했으며, 한화갑은 새누리당 입당을 하지 않았지만, 역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를 지지했다.[9] 다만 양 계파의 보스인 김대중과 노무현의 사이는 오히려 좋은 편이었고, 김대중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의 국정운영에 여려차례 지지를 표했다. 2004년 총선 당시에는 자신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에 크게 실망하며 열린우리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10]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에 합당되기 직전 탈당했다.